초의선사(1786~1866)는 명맥만 이어져 오던 한국 다도를 중흥시켰기에 한국 차문화 중흥조(中興祖) 또는 다성(茶聖)으로 칭한다. 초의선사의 생애와 사상을 ‘다선일미(茶仙一味)’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당대의 고승으로 한 시대를..
원효의 흔적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원효는 머물렀던 곳, 또는 지나간 곳에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흔적이 남아있다. 사찰은 물론 산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문학, 사학, 철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등 예술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원효가..
산을 오르거나 절을 찾아 여행하다 보면 원효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도대체 원효라는 이름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원효봉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어떤 형태로든 원효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원효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를..
원효는 종교와 철학, 학문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시와 노래, 춤으로 오늘날까지 계승 발전되고 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사찰마다 원효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법당 주변의 벽화에는 원효에 관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곳이 많다. 마땅히 원효를 숭..
춤이란 사전적 의미로 인간의 육체를 표현 매체로 삼아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예술 행위라고 한다. 원효가 저잣거리에서 추었던 춤을 무애무(無㝵舞)라 한다. 걸림이 없는 춤이라는 뜻의 무애무는 ‘무애’라는 말에서 가져왔다. 무애란 『화엄경』의 일체..
원효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활발한 것 못지않게 대중예술과의 소통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여러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 1919년 우리나라 최초로 영화가 만들어진 후,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
원효 설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전해져 온다. 국내에 없는 내용이 전해질 만큼 원효의 영향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원효 설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탄생 설화, 고행과 오도 설화, 대중 교화 설화, 경전 찬술 설화, 사찰 창건 설화, 관음 친견, 이적과 영..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지만, 원효에 관한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원효를 이해하고 알기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단순히 기행이나 설화적 요소 이외에 불교의 깊이와 넓이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200..
원효가 이 땅에 왔다간지 1400여 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철학적, 학문적 연구는 물론 문학 작품으로 이어지며 재탄생, 재해석되고 있다.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원효를 대상으로 한 시를 중심으로 시대순으로 ..
원효(617~686)는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원효에게 영향을 준, 원효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원효는 공부를 위해 가까이는 물론 먼 곳으로까지 찾아갔다. ..
원효의 철학과 사상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철학과 사상은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영향을 주었을뿐만아니라, 인도, 중아아시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까지 7세기의 원효를 뛰어넘는 한국인은 없다. 원효가 저술한 책은 100여
원효(617~686)는 한국불교의 체계를 세우고 정립한 위대한 스승이자 사상가, 철학자, 교육자이다. 종교를 넘어 한국의 철학과 사상의 위상을 높힌 원효를 부르는 이름은 많고 다양하다. 원효성사, 원효대사, 원효보살, 해동보살, 해동성사, 해동법사, 해동종주, 서당화상
경주를 사랑한 화가, 신라인과 나눈 대화를 그리는 화가, 구도(求道)의 화가, 시공초월의 화가, 수묵추상화의 선구자. 이는 지홍 박봉수 화백를 일컫는 표현들이다. 화가의 이름 뒤에는 늘 경주 출신 화가가 따라붙는다. 경주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했고 좋아했다. 좋아할 수
박목월(1915~1978) 시인의 시비는 시인의 명성을 말해주듯 전국 곳곳에 세워져 있다. 지금도 세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고향 경주에는 모량리 목월 생가터, 모교인 건천초등학교 교정, 황성공원, 보문관광단지 목월공원, 보문호수 둘레길에서 시비를 찾아볼 수 있
경주에 있는 작은 간이역, 모량역을 시로 노래한 시인들이 의외로 많다. 가장 대표적 사람은 문인수 시인이다. 문인수 시인 (1945~2021)은 비교적 늦은 마흔이란 나이에 등단하여 서정시의 대가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 시인이다. 목월문학상을 비롯하여 웬만한 국내문학상
통영을 일컬어 예향(藝鄕)이라 부른다. 또는 항구가 아름다워 동양의 나폴리로 부르기도 한다. 예술의 고장인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푸른색의 화가 전혁림, 청마 유치환, 극작가 유치진, 초정 김상옥
현진건의 『무영탑』 - 아사달과 아사달의 탄생 아사달과 아사녀가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로 알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비롯한 역사서에는 찾아볼 수 없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등장은 빙허(憑虛) 현진건(1900~1943)의 소설 『무영탑(無影塔)』에서 기원한다. 1938~19
두 청년의 첫 만남 김동리(1913~1995)와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우리나라 시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은 스무 살 언저리에서부터 시작한다. 1933년 동리가 스물 하나, 미당이 열아홉이던 시절 선학원(禪學院)에서 처음
시인 김동리는 왠지 어색하다. 하지만 엄연한 시인이었다. 소설가가 아닌 시인 김동리는 익숙하지 않지만, 소설에 앞서 시로 먼저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인이다. 1995년 세상을 떠났을 때 미발표 유고시 30편이 발견되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소설이 아닌 시였다. 시작과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강우방 원장은 팔순 중반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최근 『성덕대왕신종, 천년의 신비-우보장엄(雨寶莊嚴)의 메타포』라는 제목의 연구문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2023년에는 『예술 혁명일지』라는 책을 출간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역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