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아줌마가 봤던 공익광고다. 조금 과장한다면 TV만 틀면 계속 나온 말이다. 오죽하면 어린 내가 기억할 정도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낳으라고 해도 안 낳
선거철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떤 사람에게 투표했는지 다 기억한다. 아버지는 누구에게 투표했다고 이야기하신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선거운동 기간 내내 뉴스에 나오는 피선거권자나 선거 포스터를 보고 아버지는 은연중에 이번 선거에 자신
살면서 기분 나쁜 일이 여러 가지 있다. 오늘 아줌마는 기분 나쁜 것 중 ‘비교’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줌마가 지금까지 하지 않는 것, 역시 ‘비교’다. 엄친아라는 말이 돌아다닐 정도니, 아줌마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에 다짐했었다. 이런
아줌마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결혼하기 전까지 제주도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았다. 가수 혜은이의 <감수광>으로만 인식되던 제주어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폭삭 속았수다>를 통해 외계어처럼 들리는 제주어를 대중들에게 많이 전파했다. 제주어는 많이 사라졌고,
아이들이 유치원 때 일이다. 쌍둥이가 친구를 울렸다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보통 친구를 울렸다고 전화하실 일이 없는데, 뭔가 또 있나 보다 싶었다. 잠깐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휘감았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얼른 유치원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우
아줌마 집 앞에 편의점이 있다. 초등학교 앞에는 의례 문구점이 있고 각종 문구부터 간식까지 즐비하다. 학원 앞과 학교 앞 편의점은 매출이 보장되는 곳이다. 도심권 학원가 편의점과 빵집은 높은 권리금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경기가 안 좋고, 소비 심리가 위축된 요즘이지
미·중 무역전쟁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2차전을 시작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경제를 좀 아는 엄마로서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걱정만 하고 있지는 않다. 경기 사이클로 인한 금리의 향방과 각국 정책으론 인한 영향을 파악하면 언제나 무사히 시간을 보내온
대한민국의 발전에 한 부분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희생해야 했다. 대한민국 대표 수출품이었던 가발, 옷, 신발 등을 생산하는 공장 직원들은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곳에서 15시간 이상 근무했다.
남녀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연애한다고 하면, 친구들의 반응이다. 여자는 20대에는 잘 생겼냐, 멋있냐, 키 크냐 등 외모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30대가 되면 직업이 뭐냐, 연봉이 얼마나 되냐 등 경제적인 관점으로 변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질문이 변한다는 게
아줌마에게는 세 아이가 있습니다. 부모가 같지만 세 아이는 모두 다릅니다. 생김새도 성격도. 한 배에서 함께 난 쌍둥이(첫째, 둘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줌마의 남편도 쌍둥이입니다. 게다가 일란성 쌍둥이. 정말 똑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르기도 합니다. 둘이 너무 잘
새해가 밝았습니다. 신년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작심삼일이 지났으니 벌써 신년 계획은 망해서 다른 계획을 또 세웠나요? 다른 계획이라도 세웠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냥 망했다고, 포기하셨나요? 제가 그랬습니다. 아줌마도 이십 대부터 신년 계획을 거창하게 세
아줌마는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으면 장례식을 간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어른들이 그렇다길래, 슬픈 일에 와주는 사람이 진짜 지인이라는 둥, 책에서든 지인에게서든 많이 들었고 귀에 인이 박혔다. 몇 번의 장례를 치른 지금, 아줌마는 알게 되었다
그날 그 밤.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일찍 잠이 든 밤, 아줌마는 어깨결림에 잘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홀로 보고 있었다. 비상계엄. ‘영화 채널을 보고 있었나?’ 리모컨을 잡았다. 모든 방송 채널에서 특별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일찍 잠든 남편을 깨워야 하
아줌마는 행복한 삶을 꿈꾸었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행복하게 살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살면서 행복 지수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도 행복한 삶을 어른이 되어서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상대적인 행복을 느낀다. 남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의식주가 해결되어도 불행함을 느낀다. 그래서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의 행복 지수는 낮다. 선진국보다 가난한 나라의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다. 물론 전쟁 중이거나 초 빈국은 제외다. 2020년대의 대한민국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두 시대의 행복 지수를 조사한다면 1970년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 지수가 높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빈부격차가 생기고 미디어의 발달과 인터넷, 스마트폰의 개발은, 알려고 하지 않아도 굳이 알게 되는 다른 이들의 삶과 나를 더욱 비교하게 되고 나의 자존감도 행복 지수도 박살을 내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갖고 싶었던 것을 구매하게 되었다고 하자. 몇 년을 기다리고 고대했던 소장의 기쁨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또한 그 행복의 깊이는 또 어떤가? 몇 년을 저축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소장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가 더 고가의, 최신상을 구매한다면, 나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줬던 상품에 대한 애정은 금세 식는다. 그것이 어떤 물품이 되었든, 고가의 자동차든, 보석이든, 집이든 문제의 본질은 같다. 더 좋은 것과 비교하는 순간, 남과 비교하여 얻은, 상대적인 행복은 오히려 불행이 된다. 아줌마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이렇다. 내 인생에 찾아온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육아 지옥이던 시절, 단 서너 시간만이라도 잠 좀 자봤으면 하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엄마라고 눈 맞춰주는 아이의 눈을 바라볼 때. 이제는 좀 컸다고 이부자리도 정리하고, 빨래도 정리하고, 나름의 역할을 해내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세 아이가 기분이 좋다고 꺼지지 않는 체력으로 계속 조잘대는 모습도, 온 식구가 막춤을 추는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거실 구석구석을 차지한 모습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에 가장 많이 행복한 순간순간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특별할 것이 없는 하루지만, 연한 녹색을 띤 나뭇잎을 보게 될 때도 행복을 느끼고, 사계절을 창밖의 논을 바라보며 평온함을 느낄 때, 책에서 가슴을 울리는 한 줄의 문구에도 행복감이 밀려든다. 대체로 고요의 순간, 평온의 순간, 깨달음의 순간에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아줌마의 행복은 절대적이다. 비교 대상이 없다. 상대적인 행복의 기준은 ‘남과의 비교’다 비교는 물건을 구매할 때 가성비나 품질을 따질 때 주로 사용하는 생활의 지혜다. 그런데 그것을 행복에 갖다 대면 상대적인 행복이 생겨나고, 쉽게 파괴되는 순간의 행복감만 있을 뿐이다. 다른 이의 성공이나 뜻밖의 행운은 나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진정한 축하보다는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된다. 절대적인 행복은 오롯이 나의 기준이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다른 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아줌마는 생각한다. 상대적인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진짜 행복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상대적인 행복은, 행복의 탈을 쓴 쾌락이 아닐까? 무엇보다 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행복이라면 ‘노-땡큐’다. 아줌마는 오늘도 행복하다. 시끌벅적한 아침이 지나고 아줌마만의 고독이 시간이 찾아왔다. 밀린 일들을 해야 하지만, 커피 한 잔과 고요의 순간은 또 행복이다. 오늘은 또 어떤 순간의 행복들이 찾아올까?
겨울이다. 녹음이 가득한 논밭에 바람이 불면 연둣빛 파도가 장관이었던 여름이 지나고, 노오란 황금빛 물결에 감탄을 지어내던 가을이 지나서, 싹둑 잘려 나간, 추수가 끝난 논밭은 쌀쌀한 겨울바람에 휑하다. 논밭에 부모님의 삶이 있구나, 인간의 삶이 있구나 싶다. 예전에 유행했던 것 중에, 하나가 기억이 난다. “죽음 체험” 유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관속에 직접 들어 가보고,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 삶이 지치거나 힘든 사람도, 인생을 한번 되돌아보고 싶은 이도, 부모와 자식이 함께 서로의 장례식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그래서 당시에 모든 방송사에서 내가 죽을 때 묘비명에 어떤 글귀가 쓰여 있으면 좋을까 하는 관련된 프로그램을 다루기도 했다. 아줌마도 당시에 내 묘비명에 쓰이면 좋을 말을 한참이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 고민했던 그 문구처럼 살려고 지금까지 노력하며 살아왔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건강 검진을 했다. 마흔이 되면 자주 아픈 곳이 한 군데 생기고, 쉰이 되면 자주 아픈 곳이 여러 군데 생긴다는데, 몸소 경험하고 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기계로 치면 50년을 썼는데 여기저기 탈이 안 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려니, 자연스레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몸을 잘 관리하려 나름의 노력도 한다. 몸은 그렇지만 정신은 어떤가? 시간이 이만큼 흘렀으니 아줌마는 기성세대, 중장년층이다. 아직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때의 그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대학 새내기 시절의 풋풋함과 열정이 가슴 한구석에 여전히 남아있는데, ‘라떼는~’을 말하지 않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여기저기서 많이 느낀다. 이런 것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그런데 아무리 받아들이려고 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도, 인생의 마지막 장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받아들인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별이다. 부모님과의 이별이다. 올해 초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아버지를 보냈다. 게다가 양가 어머님이 모두 편찮으시다. 시간이 지나면 양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결혼 초부터 인지했고,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양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려 노력했다. 결혼 15년이 지나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찮으신 두 어머님을 뵈면서 아줌마는 여전히 어찌할 줄 모르겠다. 어머니 앞에서는 철없는 막내딸, 막내며느리로 지내다 오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억장이 무너진다.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아무런 신체 반응이 없을 때도 아줌마는 엄마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의지가 됐다. 다행히 많이 좋아지셨지만, 여전히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아줌마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결혼하면서 나에게 생긴 또 한 분의 어머니도 편찮으시다. 그 몸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온다고 하면 엄마 손맛으로 담근 각종 반찬을 준비하신다. 집에 갈 때 가져가라고. 별 특이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맛이 좋은 것은, 어머님이 음식을 만드실 때 좋은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만드셔서 그런 것 같다는 형님의 말이 기억난다. 두 분 다 녹록하지 않은 형편에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막내딸, 막내아들에게는 강한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투병 생활로 살이 빠지시고 걷지 못하시고, 강한 약 때문에 고통스러워 우시고, 혼자 있는 순간에 ‘엄마’를 부르며 홀로 아파하시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을 때 아줌마는 또 무너졌다. 아줌마는 또 어머니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겠지만, 여전히 어머님이 안타깝고, 두 어머님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까, 두렵고 무섭다. 두렵고 무서운 나날이지만, 그런데도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주변에 선행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미 늦었다고 열변을 토하며 강의하는 엄마들도 있다. 아줌마는 그런 엄마들에게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갖는지 아는지 묻고 싶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학원에 다닌다. 몸으로 놀 시간도 친구도 없다. 학원과 학원을 이동할 때 혼자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학교는 심심하다. 선행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선생님이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는 학교가 재미없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를 보면 한심스럽고 바보 같다. 선행으로 모든 교과목을 익힌 아이들에게 학교는 심심하고 지루한 장소이고 고문의 시간일 뿐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선행이 끝나면 그다음 학년의 선행을 또 한다. 그렇게 학교는 점점 더 지루한 고문관이 되어간다. 그 시간에 복습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엄마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엄마가 아침 9시부터 저녁 3시까지 주 5일간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구구단 등 이미 내가 아는 것들에 관한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수업 시간에는 딴짓을 못 하고 꼼짝없이 앉아서 무조건 들어야 한다면 하루라도 재미가 있을까? 그런 과정이 일주일, 한 달, 일 년, 이 년이라면…, 엄마는 제정신으로 그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을까?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선행을 아줌마가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또한 선행의 의미를 많은 부모가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선행을,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과목을 이야기하고, 어디까지 무엇을 했냐고 재차 물어보면, 몇 학년 것까지 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줌마의 답답함이 이해되지 않는가?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초등 수학은 중학 수학의 단원을 쪼개서 학년별로 구분해놨다. 중학교 때부터는 학년별로 모든 단원을 다 익혀야 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단계가 높아진다. 일차방정식, 이차방정식, 고차방정식, 이렇게.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집합부터 통계까지 모든 단원을 다 익혔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어떤 단원은 재미있고 어떤 단원은 어려워한다. 물론 모두 다 잘하고 모두 다 재밌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호불호 단원이 생긴다. 수학을 엄청 좋아했던 아줌마도 싫어하는 단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무시하고 모든 단원을 2~3년 선행하는 것은 아이의 성장을 그르치는 길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일차방정식을 좋아하면 한두 단계를 넘어 이차방정식, 삼차방정식까지 선행하는 것은, 아이의 호기심과 성장에 불을 넣는 것이다. 그런데 함수를 싫어해서 일차함수도 겨우겨우 하는 아이에게 한 단계 넘어선 이차함수까지 선행하는 것은 아이의 호기심과 성장 동력을 끊어버리는 게 된다. 올바른 선행은 아이의 학습 능력과 호기심이 결합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에서 많은 서울 내 대학 입학생들이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타지역 대비 수도권이나 도심권에서 지방보다 높은 비율로 신입생을 배출하지만, 그 원인은 선행이 아니다. 초등학교 의예과반이 생겼다느니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보고 그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학원을 보낸다는, 그런 뉴스에 나오는 선행을 장려한 학원가에서 서울 내 대학이나 의예과에 더 많은 학생을 입학시켰다는 통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에게 무분별한 선행을 강요한다. 누구를 위한 선행인가? 무엇을 위한 선행인가? 제대로 된 교육철학을 갖고서 아이를 대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자문해봐라. 다른 아이들도 다 해서,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 봐한다고 답한다면, 다시 생각해봐라.
아줌마는 고향이 제주도다. 그래서 부모님을 뵈러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된다. 가족과 함께 갈 때도 있지만 아줌마 혼자 급히 다녀와야 할 때도 있다. 비행기는 비행시간은 적지만 공항에 가고 수속하고 대기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제법 길다. 그래서 아줌마는 항상 책을 챙긴다. 병원에 있는 엄마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오는 길, 제주 공항은 사람들이 언제나 많기에 서둘러야 한다.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되어 한 시간 정도 공항 대기실에 있어야 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읽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같은 곳 읽기를 여러 번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중장년의 세 남자가 아내 없이 처음 하는 해외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기실 곳곳 많은 의자에 사람들이 모두 앉았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본다. 부부도, 연인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각자의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아내 없이 떠나는 세 유부남만 인간으로 느껴졌다. 아줌마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책을 보는 사람은 나뿐인가?’ 지난해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3.0%로,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독서량은 3.9권으로 하루 독서 시간은 18.5분이다. 종합독서량에는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포함이다. 종이책만 기준으로 한다면 독서율이나 독서량은 더 내려갈 것이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일 년에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줌마는 걱정이 크다. 우리나라는 훌륭하고 익히기 쉬운 한글 덕택에 문맹률이 낮다. 거의 모든 국민이 한글을 안다. 그러나 실질 문맹률은 높다. 무슨 소리냐구? 글을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안 믿기는가? 아줌마도 처음에는 안 믿었다. 그러나 중학생 아이들이 한 단락의 글을 읽었지만, 그 단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과서마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EBS에서 다룬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다. 독서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책을 읽고 싶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못 읽는 것은 아닐까? ‘심심한 사과’ 사건을 아는가? 혼숙을 혼자 숙박으로 알고, 우천시 취소는 어느 도시냐고 되묻는다. 한글이 사용되기 전에 우리는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 있었다. 오랜 시간 사용되었으니 이미 한자는 우리 언어문화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심심한, 혼숙, 우천은 모두 한자다.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순 한글만 이용해서 글을 쓸 수 없다. 한 단락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 억지로 쓸 수는 있겠지만 매끄러운 글을 쓰는 것은 힘들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수능에 한자를 넣으라는 소리냐고 따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입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언어를 익혀야 한다. 한글만 알아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자를 익숙하게 읽고 써야 한다는 소리도 아니다. 아줌마도 한자는 잘 모른다. 그러나 심심, 혼숙, 우천처럼 한자의 뜻이 담긴 한글 소리는 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은 한자로 쓰고 읽을 수는 없지만, 한자 뜻이 있는 단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심할 심(甚), 깊을 심(深)). 혼숙과 우천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어들이 한글에는 엄청 많다. 한글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쓰였던 단어들이기에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한자의 중요성이 떨어진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한자를 생활에서 접하기는 점점 어려워졌고 한글과 한자가 분리되었다. 아줌마는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한자를 익히게 한다. 한자 급수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한글이 있기 전에 한자 문화에서 발전한 우리 언어는 한자어가 많다. 당연히 한자를 모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말속에 숨겨진 한자어들과 순우리말이지만 아이들이 헷갈리는 언어들을 찾아서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보자. 열두 달 중에 받침 없이 읽어야 하는 유월과 시월은 한자 숫자와 한글의 발음 유연성을 보여준다. 우리 말에서 한자어와 외래어, 순우리말을 구분하는 게임도 재밌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어의 잔재를 찾는 것도, 아이들에게 역사와 언어를 같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한자 급수를 따거나 한자 학원에 다니라는 소리가 아니다. 한글 속에 한자어는 당연하다. 지난 역사의 결과물이다. 한글 속에 담긴 한자어를 찾고 그런 단어들로 인해 파생된 단어들을 연결하는 재미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면 된다. 예를 들면 바람풍을 알게 되면 “풍력발전소, 선풍기의 풍도 바람풍이야?” 하며 풍자가 들어있는 단어들을 나열한다.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단어들이 섞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또 발전한다. 문해력은 학원에 다니면서 익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익혀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한자어를 몰라서는 안 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저출생 국가, 대한민국. 각종 현금성 지원부터 장기적인 안목을 통한 지원 방법들이 여기저기서 싹을 움트고 있다. 50년 후에는 중간 나이가 60대가 된다니, 정말 큰 문제다. 그래서 아이와 부모를 배려하는 문화가 곳곳에 자리 잡았으면 싶지만, 오히려 곳곳에 노키즈존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노키즈존을 하게 된 주인장 입장을 들어보면, 아줌마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민망하다.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소스를 아이가 매워서 못 먹으니 안 맵게 따로 제공해달라고 한다던가, 내 집 안마당인 듯 마구잡이로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는 부모에게 아이를 챙겨달라고 하면,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인터넷에 올리겠다, 맘카페에 올리겠다 등 갑질을 넘어 협박성 멘트가 돌아온단다. 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줌마가 면목이 없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찌 클까 걱정도 되고, 자기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모르는 안하무인의 엄마도 안타깝다. 배려도 없고 공감 능력도 없고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모른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이런 류의 사람은 강약약강의 전형적인 사람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약하고, 약한 사람 앞에서는 강한. 강한 사람 앞에서 비굴하게 사느라 스트레스받는 것을 약한 사람에게 쏟아붓는 케이스다. 평소에 비굴한 적이 없다고 자부하는가, 돈이든 권력이든 학벌이든 아킬레스건이 되는 분야의 강자가 나타나면 백 퍼센트 약자의 모습이 될 것이다. 자존감도 바닥이기 때문이다.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갑질이고, 내가 강약약강의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자존감이 없는 찌질한 족속임을 만천하에 자랑스럽게 공표하는 것이다. 물론 급하게 어린아이가 마실 따뜻한 물이나 우유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근처에 커피숍에 있다면 보통 사람은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고 부탁한다. 때로는 판매가 따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판매해주시면 안 되냐고 부탁한다. 식당에서 아이가 마땅히 먹을 것이 없다면 애초에 식당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바로 이동할 상황이 안 된다면 계란후라이나 계란찜 등 그 가게에서 가능한 것을 추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있는지, 판매를 부탁할 수도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제공이 안 된다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다른 계획을 얼른 세워야 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보통 엄마와 아빠들은 이렇게 행동한다. 그리고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몰상식한 일들이 제법 뉴스에 올라온다. 세상에 찌질하고 자존감이 바닥인데다 강약약강의 사람들이 늘었구나 싶다. 비싼 외제차를 타고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곳에 나타난 모녀. 비행기에서 장거리 여행 중 빈 옆좌석에 아이가 누웠다고 항의하고(아이의 머리가 넘어오지도 않았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인터넷에 누가 잘못한 것이냐고 글을 올렸다고 호되게 당한 미지의 사람. 경비원 아저씨들을 향한 많은 강약약강의 찌질이들. ... 서당 훈장 선생님의 긴 곰방대로 정수리를 ‘탁’하고 맞을 위인들이다. 아줌마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엄마가 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어른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사람(강강약약)이 되자는 마음가짐으로, 위보다는 아래를 내려보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잘 안 될 때도 있다. 아줌마는 자신한다. 그래도 몰상식한 놈보다는 상식적인 대다수가 있고, 강약약강인 사람보다는 강강약약인 사람이 더 많다고.
우리나라는 일본과 친일파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경험이 있다. 종이 쪼가리 한 장으로! 일본은 제국주의 성향으로 우리나라의 자원을 마구잡이로 수탈했다. 하물며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쌀마저도 수탈해가서, 우리나라에서는 쌀값이 폭등하고 굶어 죽는 백성이 넘쳐났다. 더 많은 자원을 우리나라 국토 곳곳에서 일본으로 잘 수탈하기 위해 철도를 깔고 교통망을 확충했으며 전국적인 이런저런(자원에서부터 토지까지) 조사도 이루어졌다. 전쟁 이후 세대는 일제의 잔재로 인해 식민사관 교육을 받았고 그 영향은 아줌마에게도 이어졌다. 아줌마는 1980~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당시 선생님들이 하신 말씀 중에 식민사관의 잔재가 있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일본의 국화는 벚꽃, 우리나라의 국화는 무궁화. 벚꽃은 모이면 예쁘고 무궁화는 모아놓으면 안 예쁘다. 그래서 일본은 잘 단결하고, 우리나라는 잘 단결하지 못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종목도 보면 단체전보다 개인전을 잘 따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고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했으며 자꾸 일본을 우러러보고 우리나라는 좀 모자라는구나 싶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서 힘든 시기를 거쳤지만, 그로 인해 우리나라 한글이 대중화되었고, 근대화되었다” 1930년대 일본은 우리나라 국민성을 말살하기 위해 한국어로 말하는 것조차 못 하게 했으며, 창씨개명(일본식 이름으로 개명)까지 시켰다. 아줌마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서 학벌이 낮은데도 일본말을 하시는 분들의 경우가 이런 연유에서 일본어를 하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말에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화작업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자원을 더 많이 효율적으로 수탈해가기 위해 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우리나라 정부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임시정부부터 시작인가, 독립하고 나서 이승만 정권 때부터인가? 다양한 시각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아줌마는 불만이 없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 때부터 우리나라가 시작되었기에 그 이전에는 주권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일본 시민이다. 그러므로 독립군은 반란군이고, 친일파는 의로운 국민이다. 그래서 친일파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한다. 식민사관 교육을 받고 자란 선생님께 교육을 받은 아줌마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그 안에서 일본을 우러러보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 사람이 독립기념관 관장이란다. 아줌마도 이제 반백인데, 혈압 좀 조심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 같은데, 안 도와준다. 인사청문회를 봤다. 가관이었다. 아줌마가 뒷목을 몇 번 잡았는지 모르겠다. 아줌마는 정치 잘 모른다. 머리가 뛰어나지도 않다. 학벌도 그냥저냥이다. 하지만 아줌마는 엄마다. 다른 건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일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이상한 말을 자꾸 할 때, 고이즈미 총리의 제국주의 사관과 정신을 비판했지, 노 재팬을 외치지 않았다. 역사는 반복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전쟁의 폐허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경제 대국(세계 20위권 이내)을 이루었다. 그러나 잘못된 교육과 인식은 한순간에 나라를 다시 망칠 수 있다.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리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2019년 코로나가 발생했다. 전 세계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대한민국에도 큰 상흔을 남겼다. 천만다행으로 코로나의 치사율이 급격히 낮아졌고 위험단계가 내려가면서 격리조차 없이 마스크만 제대로 착용하고 외출도 가능하다. 그렇게 역사가 되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2024년 여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코로나는 다시 시작되었다. 병원에 가면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가 싶다. 동네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검사하면 99.9% 코로나 확진이란다. 무증상으로 지나가는 사람, 일부러 검사를 안 하는 사람들까지 생각하며 확산세가 무섭단다. 결국 아줌마네 집에도 코로나가 들어왔다. 큰 딸아이가 코로나로 확진되더니 삼 일이 넘도록 열이 계속 나서 폐렴 검사를 했더니 폐렴이란다. 기침과 가래, 네다섯 시간마다 열이 나고, 아이는 몹시나 힘든 기간을 보냈다. 아줌마도 나머지 두 아이에게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폐렴도 뒤이어 찾아왔다. 옛날 드라마에서 폐병 걸린 사람이 피를 토하듯이 기침을 하는데, 딱 그 모습이다. 폐에 염증이 생긴 것이 폐렴이니 폐렴도 폐병 중의 하나이리라(다만 옛날 드라마에서 폐병은 폐렴이 아니라 폐결핵이다). 몇 주간을 병원을 드나들면서 느낀 것은 이번 코로나는 합병증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물론 코로나만 확진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가 코로나에 백일해, 코로나에 폐렴, 코로나에 장염이 이어서 온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면역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독감 환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걸려서 다 나았다고 방심하면 독감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들의 말은 마스크 없이 지내는 것은 당분간 힘들 것 같다고 한다. 큰 딸이 코로나에 폐렴이 걸려서 완치되었다고 마스크 없이 등교할 수 없다. 독감의 위험이 있으니 마스크를 착용하고 학교를 보냈다. 병원에 누워서 링거를 맞고 있으면, 기침으로 돌림노래를 부르는 수액실의 상황이 웃프다. 나이가 많고 적음의 차이도 없다. 어린 손주와 함께 오신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링거를 맞고 계시거나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맞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집에서 일단 누군가 시작되면 결국엔 온 가족이 힘든 병원나들이를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동네 병원에서 12시 30분까지 하는 오전 진료는 11시가 되기 전에 마감되기 일쑤고, 병원문을 여는 순간부터 문을 닫는 순간까지 병원은 북새통이다. “대기실에 50명이 없는데, 53명째라는 건 뭔 소리야?” “저 사람은 나보다 늦게 왔는데, 왜 저 사람이 먼저 진료받아요?” “오후 진료는 왜 접수 안 돼요?” 일일이 응대하는 간호사님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아줌마는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한다. “선생님, 저희 순서 지났나요?” 병원 오픈 전에 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삼사십 분 있다가 병원에 다시 오는 길이다. 역시나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접수가 제대로된 것이 맞냐는 질문을 하는 어르신께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차근차근 설명드렸다. 대기시간이 너무 기니, 댁이 멀지 않으시면 댁에 계셨다가 한 시간 30분 정도 있다가 오시라고, 저도 그랬다고. 지금 여기 코로나 확진자랑 폐렴환자들이 너무 많다고. 아줌마의 오지랖이 발동 중인 와중에도 또 다른 불만들이 간호사들을 향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다. 이번 코로나는 몸살이 함께 와서 지난 코로나보다 확실히 더 힘들다. 다행히 아줌마가 사는 동네에는 동네 병원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어서, 약도 해열제도 제대로 처방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런데 아줌마는 조금 무섭다. 이것이 곧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독감이 유행하고, 코로나는 여전히 변이를 계속하고, 원숭이두창 소식과, 만년설이 녹으면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아줌마의 걱정이 오지랖으로만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