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원효에 대해서 물으면 대부분 해골 물 마신 이야기를 한다.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은 이야기는 사람들이 원효를 처음 접하는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옛날이야기. 민담, 설화 등은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이거나, 허구이거나 그 경계를 넘어 삶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설화 가운데 불교 설화가 가장 많고, 그 가운데에서 원효 관련 설화가 많다. 전해지는 형태에 따라 구전 설화와 문헌 설화로 구분하기도 한다. 대표적 문헌 설화로 『삼국유사』를 들 수 있다. 『삼국유사』의 원효와 연관된 이야기는 권 1 「기이」, 권 3 「탑상」, 권 4 「의해」, 권 5 「감통」에 이르기까지 전편에 걸쳐 다양하게 등장한다. /편집자 주
원효 설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전해져 온다. 국내에 없는 내용이 전해질 만큼 원효의 영향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원효 설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탄생 설화, 고행과 오도 설화, 대중 교화 설화, 경전 찬술 설화, 사찰 창건 설화, 관음 친견, 이적과 영험 설화 등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탄생에 관한 설화
서당이라는 어릴 적 이름, 설씨라는 성과 같은 가계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유성이 들어오는 꿈과 생후 7일 만에 어머니의 죽음 같은 요소는 붓다의 탄생 설화와 비슷한 점이 있다. 불지촌(佛地촌), 사라수(娑羅樹) 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불연적(佛緣的) 요소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후대의 사람들이 각색하거나 가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원효 관련 최초의 기록인 ‘고선사서당화상비’에도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고행(苦行)과 오도(悟道) 설화
해골 물 이야기는 원효를 대표하는 설화라 할 수 있다. 의상과 함께 구법 입당 길에 해골 물을 마시고 당나라로 가는 대신 신라로 되돌아온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돈오(頓悟)의 깨달음을 대표하는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은 일심(一心) 사상으로 정리할 수 있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 요약할 수 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라서 내용 언급은 생략한다.
대중교화(大衆敎化) 설화
‘누가 도끼 자루를 빌려주겠는가’로 시작하는 요석공주와의 이야기는 파계와 대중 교화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원효의 무애 사상을 대변한다. 불교에서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율이 있다. 계(戒)란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지켜야 하는 것이고, 율(律)이란 출가수행자가 지켜야 하는 규범이다. 출가자에게 계와 율은 엄격히 적용되는 것인데 원효는 이를 버리고 스스로 소성거사로 불리기를 자처했다. 조롱박을 흔들고 무애가를 부르고 무애춤을 추며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성속(聖俗)을 떠난 원효의 자유분방한 기행과 대중교화 설화는 일본까지 전해지고 있다.
불경 편찬 설화
원효의 대표 저서인 『금강삼매경론』을 찬술하는 과정에도 재미있는 설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왕후의 피부병 치료를 위해 약을 구하러 당나라로 건너던 사신이 풍랑을 만나 용궁으로 갔는데 용왕이 금강삼매경을 건네며 대안스님이 순서를 정하고 원효가 강의하면 왕후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 집필 과정에서 누군가가 훔쳐 가버려 소의 등에 올라타고 두 뿔 사이에서 지었다는 이야기, 황용사 백고좌회 강의를 대들보와 서까래로 자신을 비유한 이야기, 『화엄경소』를 짓다가 『제4 십회향품』에 이르러 집필을 중단하고 대중 속으로 뛰어든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경전 편찬과 관련된 설화는 민간보다는 승려들에 의해 전해진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사찰 창건 설화 또는 절 이름 유래 설화
원효와 관련된 사찰은 100여 곳이 넘는다. 오대혁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13곳, 강원도 1곳, 전라도 15곳, 충청도 3곳, 경남도 20곳, 경북도 23곳이나 된다. 북한지역인 황해도 2곳, 평안도 2곳, 함경도 2곳으로 조사되고 있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원효가 창건하였거나, 개산(開山)하였다는 설화가 14편가량, 원효와 인연으로 사찰 이름을 짓게 된 설화가 15편이나 되니 원효의 영향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원효가 창건했다는 절은 원효가 살던 집에 지었던 경산의 초개사, 강원도 양양의 영혈사, 중국에서 온 천명의 스님을 머물게 한 천성산 운흥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찰마다 전해오는 설화들을 일일이 열거할 순 없으나,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여시오어(汝屍吾魚)의 오어사, 사복불언(蛇福不言)의 도량사 창건 설화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절 이름은 원효와 크고 작은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원효암 또는 원효사라는 절 이름을 가진 곳은 18곳(오대혁 조사)이나 될 만큼 전국적으로 골고루 위치한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경주 인근만 해도 포항 운제산 원효암, 양산 천성산 원효암, 부산 금정산 원효암이 있다.
관음친견(觀音親見) 설화
관음친견 대표적 설화로 원효가 강원도 낙산사로 가는 길에 만난 관음보살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월수백(생리대)을 빠는 흰옷 입은 여인이 관음의 화신이었음을 알아보지 못한 후 소나무 아래 신발 한 짝과 관음보살상 자리 밑에 신발 한 짝이 같은 것으로 확인한 후에야 관음보살이었음을 확인한다. 관음보살은 수행자의 번뇌, 속인들의 고통을 여의게 하고 해탈의 영역으로 이끌게 한다. 『삼국유사』에도 문수보살, 보현보살 설화는 한두 편이지만 관음보살 설화는 21편이나 된다. 남해 보리암과 여수 향일암(원통암) 그리고 소요산 자재암 등에서 원효가 관세음보살 친견했다는 설화도 있다.
이적(異蹟)과 영험(靈驗) 설화
불교 설화에는 많은 이적(異蹟)과 영험담이 등장한다. 원효 설화도 마찬가지로 영험에 의한 감흥으로 연결된다.
화재를 진압한 설화로는 울주 도통골에서 불국사 대웅전 화재를 진압했다는 이야기 이외에도 불을 끈 이야기가 더러 있다. 소반을 던져 중생을 구한 척반구중(擲盤救衆) 설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전해진다. 원효가 도술을 부려 중국의 오대산 담운사의 일천 명의 스님을 널빤지를 던져 구한 설화가 전해진다. 국내의 척반구중의 예로 천성산 척판암, 묘향산 척반대 이야기가 있다. 샘물을 용출케한 설화는 천성암 샘, 자재암 원효정, 영혈사 영혈천 등에서 전해지고 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이와 관련한 구체적 지명과 증거물들도 전해지고 있다. 척판암 사적비, 묘향산 척판대 사적비 등이 그 예다.
원효가 입적하자 설총은 화장한 유해를 부수어 소조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모셨는데 설총이 예배하자 소조상이 고개를 돌렸다는 일화도 여러 문헌에 전승되고 있다.
원효 설화는 민족의 설화
민속연구가이자 설화 연구가 남창(南滄) 손진태(1900~미상)는 『한국 민족 설화연구』(1947년, 을유문화사)에서 ‘원효 설화는 민족 설화이다. 민족 설화라는 것은 한 민족 사이에 설화 되는 신화, 전설, 고담, 동화 등의 총칭이지만 집단적, 자연발생적으로 성장, 전승 집단의 사상과 감정 또는 생활 면모를 표현한 우리 민족 설화이다’라고 말했다. 1400년 가까이 누대에 걸쳐 이어져 오는 이야기를 우리는 되새겨볼 필요성이 있다.
현대사회의 치열하고 각박한 현실이지만 원효 이야기는 그냥 옛날이야기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가치관의 충돌, 세대 갈등, 빈부의 격차 등 분열과 분별심이 난무하는 오늘날 원효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비록 깨달음은 얻지는 못해도 서로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포용과 삶의 태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효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효 이야기는 유통기한이 없다.
전인식 시인(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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