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있는 작은 간이역, 모량역을 시로 노래한 시인들이 의외로 많다.   가장 대표적 사람은 문인수 시인이다. 문인수 시인 (1945~2021)은 비교적 늦은 마흔이란 나이에 등단하여 서정시의 대가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 시인이다. 목월문학상을 비롯하여 웬만한 국내문학상은 거의 모두 수상했다. 필자 나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2012년 발간된 제8시집 『적막 소리』(창비)에는 모량역 시편들이 무려 7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유독 문인수 시인만이 모량역을 두고 이처럼 많이 쓴데에는 특별한 인연이나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최근 처음으로 모량역을 방문했다. 폐역사 서편을 지키고 있는 뽕나무 열매가 검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폐역의 쓸쓸함을 위로받듯 오랜만에 입과 손이 시커매지도록 따먹은 오디가 시 한편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모량역은 1922년 광명역으로 출발하여 1928년 보통역으로 승격되었으며, 1939년 모량역으로 역명이 변경되었다. 1977년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가 2008년 1월 1일자로 폐역이 되었다. 문인수 시인은 왜 폐역이 된 모량역을 찾아 왔을까? 시집 『적막 소리』 발간 이전에 이미 모량역은 폐역이 된 상태였다. 비록 폐역은 되었지만, 그가 남긴 시 속의 모량역은 여전히 건재하다. 문인수 시집 『적막 소리』 속의 모량역   문인수 시인의 『적막 소리』에 실린 시는 「모량역」, 「모량역의 거울」, 「모량역의 새」, 「모량역의 시간표」, 「모량역의 운임표」, 「모량역의 지층」, 「모량역의 하품」 등 모두 7편이다. 시 한편 제대로 쓰기도 어려울텐데..... 『적막 소리』 시집 속 모량역으로 가 보고자 한다.   모량역모량역은 종일 네모반듯하다면소지 변두리 낯선 풍경을가을볕 아래만판 부려놓는다.저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개 때문에저기서부터 시작되는 너른 들판을, 들판에 출렁대는 누런 벼농사를더 널리 부려놓는다. 개는 비명도 없이 사라지고,논둑길을 천천히 걸어 나오는 저 노인네는 또 누구신가.누구든 상관없이시꺼먼 기차 소리가 무지막지 한참 걸려 지나간다. 요란한 기차소리보다아가리가 훨씬 더 큰 적막을다시 또 적적, 막막하게 부려놓는다. 전부,똑 같다. 하루에 한 두 사람,누가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말거나모량역은 단단하다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되다. ( 「모량역」 전문) ‘모량역은 종일 네모반듯하다.’ ‘요란한 기차소리보다 아가리가 훨씬 큰 적막’ ‘모량역은 단단하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되다.’ 이와 같은 문장은 문인수 시인만의 표현이다. 이런 멋진 표현들이야말로 시를 읽는 즐거움 아닐까?역무원도 두지 않은 시골 간이역은 하품 같다. 출찰구 옆 키가껑충한 나무기둥은 허리쯤에 투명 아크릴 집표함만 하나 달랑, 낮게 차고 있다. 그전 것 한겹, 좀 전 것 한 겹. 요새 것 또 한 겹,도안이며 규격이며 지질이 각기 다른 기차표들이 시루떡처럼한데 차곡차곡 쌓여 있다. 가만, 이게 도합 몇년 치나 될까.편도에 잠깐씩 묻은 손때도 결국 괄목할 만한 두께구나.새로 난 길의 신판 절개지 앞에 선 것 같다.내 머릿속에도 하긴 여러 가닥 기적소리가 무지개처럼 겹겹 휘어져 있을 것이다. 간혹 관정처럼 뚫고 들어가보는,빨대 꽂아 물게 되는 시절/시절/시절, 지난 시절은이 모두 아름다운 잠이다. (「모량역의 지층」전문) 몇 문장만 언급하고 싶지만 시 읽는 기쁨을 위해 전문을 옮겨본다. 지층이 아닌 심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떠나지 마라, 먼 타관은 춥다. 작고 따끈따끈한 널 얼싸안고 여기 이대로 계속 짹짹거리고 싶다.(중략)때 불을 문 저 또렷한 기억, 새까만 입구가 못내 아깝다.나는 저 입 다문 적 없는 모음 깊이 무슨 새 한 쌍을 슬쩍, 속닥하게 들여놓고 싶다.더 이상 누구 떠나지 마라 (「모량역의 새」 일부) 쓸쓸하고 외롭고 비어 있는 곳도 시인의 입김이 닿으면 따뜻한 온기 가득한 역으로 다시 살아난다. 폐역이지만 기차가 달리고 있던 때의 모습을 무지개 일곱 빛깔로 뽑아내고 있다. 모량역은 문인수 시인만의 언어로 쓰여진 문인수 시인만의 작품이다.   시인들이 노래한 모량역   문인수 시인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모량역을 노래했다. 간이역의 시인으로 불리는 박해수 시인은 필자의 중학교 국어선생님이다.     방학숙제로 써 간 시를 뛰어난 작품이라며 교실 게시판에 붙여 놓았는데, 친구들이 어디서 빼겼냐고 했던 말에 씁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번 쯤 찾아뵙고자 했지만 이미 고인이 되셨다. 자유시 동인들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어서 좀 쓸쓸하다. 간이역마다 시비 세우기 운동을 전개했던 시인이었던 만큼 모량역을 빼놓지 않았다.눈물빛 도는 모량역/ 슬픔이 모락, 모락/ 횡소뿔빛에 걸리고/ 슬픔에 걸려나온 발자국(이하 생략)이 고장 출신 박곤걸 시인의 시 「모량역」에는 목월의 모량 안마을은/ 윤사월 신들린 꽃님의 웃음같은/ 살구꽃이 아침에피더니 저녁에 지는데(이하 생략) 즐거운 문장이 눈에 쏙 들어 온다. 목월의 제자이기도 한 정민호 시인의 시집 표제작인 시 「모량역을 아시나요」또한 쓸쓸한 폐역이 된 모량역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고 있다. 이외에도 찾아보면 더 많은 시인들이 있을 것이다. 하고 많은 역을 두고 시인들은 왜 모량역을 노래했을까? 시골 작은 간이역이 이토록 많이 시적 대상이 된 것도 모량역이 유일하다. 모량역만의 서정과 상징성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문인수 시인과 경주 문인수 시인이 모량역을 찾은 이유를 목월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인수 시인은 1985년 박목월 선생이 창간한 《심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에 대한 진심과 전력투구로 ‘황혼의 전성기’(정현종 시인)를 구가하던 그가 목월의 고향 모량리 생가와 이곳 모량역을 찾아왔던 것이다. 목월의 시 「가랑비」의 배경이 된 모량역은 목월이 대구로, 경주로 통학하고, 통근하던 역이었다. 문인수 시인도 모량역에 와서 세상과 소통했음을 알 수 있다. 문인수 시인은 경주와의 인연도 깊다. 문인수 시인은 2016년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다음해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 적 있다. 필자는 질의시간에 ‘시는 어떻게 오는가? 벼락치듯 오는가, 아니면 밭을 매듯 끊임없이 호미질을 하며 갈고 닦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시인은 병행해야 하되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한다는 말을 곁들였던 기억이 난다. 신경림 시인은 시집 『적막 소리』 추천사에서 “한결같이 한물갔거나 사라져 없는 지상의 것들을 노래하는 문인수 시인은 분명 아름다움이 어디서 오는가 아는 듯하다”고 말했다. 평론가 권혁웅은 “세속의 삶에 점묘하는 시인의 탁월한 문체를 문인수류(類)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며 문인수만의 문체에 주목했다. 황동규 시인은 “꿈틀대는 삶의 현장에 밀착된 문인수 시에는 무엇보다 ‘사람냄새’가 베어 있다”고 평했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과 직결된다. 경주출신 빈섬 이상국 작가는 문인수 시인의 별세 다음날 “문인수를 대신할 문인수는 없다”라는 글로 그를 추모했다. 모량역도 페역이 되었고, 모량역을 노래한 문인수 시인도 작고 했지만 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형의 시는 시골의 작은 모량역을 큰 역으로 재탄생 시키며 다음 세상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전인식 시인(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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