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민씨 수월당(水月堂) 민주면(閔周冕,1629~1670)은 증조부 민유부(閔有孚), 조부 민성휘(閔聖徽) 그리고 부친 민진량(閔晉亮)과 모친 기계유씨 유대비(兪大備)의 따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1648년(인조26) 진사에 오르고, 1653년(효종4) 문과에 급제, ..
조선후기 경주를 대표하는 영양남씨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1748~1812)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에게 수학하고, 이만운(李萬運,1736~1820)·이기경(李基慶,1756~1819)·이우(李㙖,1739~1811)·한치응(..
황룡사(黃龍寺)는 월성 동쪽에 있고 분황사와 마주한다. 진흥왕 553년 2월에 대궐을 용궁(龍宮) 남쪽에 새로 지을 때 황룡이 나타났기에 황룡사라 이름하였고, 566년 그리고 569년에 담을 쌓아 17년 만에 완성하였다. 574년에 장육존상과 좌우 보살상을 조성하고,..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크고 작은 고분군 14기 가운데 봉황대(鳳凰臺)는 지름 82m, 높이 22m 큰 규모의 무덤으로 눌지왕·자비왕 등 매장 인물이라 추정되지만, 주변에 금관총(金冠塚)ㆍ식리총(飾履塚)이 5~6세기경 고분임을 생각할 때 봉황대 역시 비슷한 시기로 보인다..
도촌(道村) 강홍중(姜弘重,1577~1642)은 1624년 8월 20일부터 다음해 3월 26일 사이에 정사 정립(鄭岦,1574~1629), 종사관 신계영(辛啓榮,1577~1669) 등과 통신사 회답부사(回答副使)로 일본을 갔다 오면서 보고 들은 것을 『동사록(東槎錄)』..
첨성대 북쪽으로 관란(觀瀾) 이승증(李承曾,1515~1599)을 제향하는 문호사(汶湖社)가 있고, 옆에는 관란이선생정효각(觀瀾李先生旌孝閣)과 창의비(倡義碑)가 신라문화와 어우러져 이색적 풍경을 연출한다. 이승증은 평소에 서당을 짓고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힘쓴 학자로 ..
삼효각(三孝閣)은 월성김씨 노파(鷺坡) 김응벽(金應璧), 남고(南皐) 김응규(金應奎,1526~1601), 인의(引儀) 김응정(金應井) 삼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61년 명종년간에 세운 정려각이다. 앞서 필자는 2022년 12월에 [경주김씨 효자 삼효각이야기]로 소..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는데, 광명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큰길가에 열부 하씨 정려각(烈婦河氏旌閭閣)이 위치한다. 시멘트 담장 안에 갇혀 세월을 견뎌낸 정렬각(旌烈閣)은 텅 비었고, 그 옆에는 김두망(金斗望) 효자각이..
2024년 본지 연재 〈안강 두류리 구봉정사(龜峰精舍)를 찾아서〉에서 안동권씨 구봉(龜峰) 권덕린(權德麟,1529~1573)을 지역학 인물 관점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된 고조부 사정공 권수해(權壽海)가 영일로 유배 왔고, 증조부 사직공 권효충(..
청송심씨 학음(鶴陰) 심원열(沈遠悅,1792~1866)은 증조부 심형운(沈亨雲), 조부 심낙수(沈樂洙,1739~1799), 부친 심노암(沈魯巖,1766~?)의 가계를 이룬다. 정조 때 노론 시파의 대표적 인물로 사헌부장령·제주목사를 역임한 심낙수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 ..
여강이씨 이범중(李範中,1708~1783)은 자가 이경(彝卿), 회재 선생의 6대손으로, 대대로 경주의 양좌촌(良佐村)에서 살았다. 선대의 공간이었던 이향정(二香亭)은 1695년(숙종21)에 이범중의 호를 따서 이름하였고, 뒤뜰에 향나무 두 그루가 있으며, 사랑채에는..
서악동 서악서원을 지나 고분군을 따라 오르면 선도산 정상부 성모사(聖母祠)에 당도한다. 옆에는 마애여래삼존불이 있고, 동쪽으로 200m쯤 가면 성모사 유허비가 나온다. 신라 때 건립된 성모사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정령(仙桃聖母精靈)을 모신 사당으로,..
외동읍 방어리 원골마을 이가산 자락에 여주이씨 감화(甘華) 이정익(李鼎益, 1753~1826)의 구암서당(龜巖書堂)이 있다. 그는 회재 이언적의 8세손으로 후학강학을 위해 1818년경에 서당을 짓고 동쪽 건물에 감화정(甘華亭)이라 편액하였다. 감화정 이름은 “물을 마시..
초계문신(抄啓文臣)은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이은 제도로 정조의 문화정책 수행과 인재양성의 일환이었다. 경주최씨 질암(質菴) 최벽(崔璧,1762~1813)은 1790년(정조14) 11월에 규장각 초계문신에 선발되어 가문..
조선의 선비들이 경주를 찾아 유람하고 남긴 유람기행문 한문자료가 많이 남아있지만, 지금도 경주유람 자료가 계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이들의 기행문을 통해 옛 경주의 모습, 선비의 교유, 불교와 유학 등 시대와 문화상황을 미뤄볼 수가 있다. 고창오씨 괴석(槐石) 오경..
경주읍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많이 파손되었고, 여러 부윤이 고을을 다스리며 조금씩 중수하며 복원하려 애썼다. 부윤 전식(재임1631.12~1633.4)은 읍성의 남문을 중수, 차례로 삼문을 보수. 부윤 정홍제(재임1744.10~1746.03)는 성을 개축하고, 남문의 ..
경지정(敬止亭)은 경주시 강동면 호명리 37 높은 곳에 위치한다. 1885년에 광주안씨 안교현(安敎鉉,자 聖和·聖化)이 『시경』「소변(小弁)」의 “어버이가 심어 놓으신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러러볼 분으로는 아버지 말고 다른..
남원윤씨 기천(沂川) 윤효전(尹孝全,1563~1619)은 고조 윤취(就)-증조 삼휴자(三休子) 윤관(寬)-조부 눌헌(訥軒) 윤호(虎)-부친 정재(靜齋) 윤희손(喜孫)의 가계를 이룬다. 1605년(선조38)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왕자사부(王子師傅), 충청도 관찰사, 16..
여강이씨 의은(依隱) 이원상(李元祥,1762~1814)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9대손으로, 이응인(應仁) - 무첨공 이의윤(宜潤) - 이주(皗) - 이돈(墩) - 고조부 이덕종(德種) - 증조부 이성중(誠中) - 조부 이헌조(憲祖)의 가계를 이루고, 부친 이정상(李鼎象)..
남산 고위산(高位山) 천룡골에는 신라 때 사찰인 천룡사(天龍寺)가 언제 폐허가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무너진 석탑만이 겨우 복원된 소박한 모습으로 지난날의 위상을 이어오고 있다. 노곡리에서 백운암을 거쳐 오르고, 틈수골에서 와룡사를 거쳐 오르는 등 등산로가 다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