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북산 서쪽 고개에 장사 지냈다. 나인(內人)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땅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고 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부처를 받들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얻게 되고, 사람마다 불도(佛道)를 행하면 이내 불교의 이익을 얻게 되었다.”..
경주는 1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로 번성하며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됐다. 그 흔적은 지금도 경주 곳곳에 남아 있다. 그 흔적은 신라에 살았던 이들을 떠올릴 수 있는 타임머신이다. 경주에 남은 고대 유적을 둘러보며 옛 신라인을 만난다. /편집자 주 ‘삼국유사’와 ..
경주는 1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로 번성하며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됐다. 그 흔적은 지금도 경주 곳곳에 남아 있다. 그 흔적은 신라에 살았던 이들을 떠올릴 수 있는 타임머신이다. 경주에 남은 고대 유적을 둘러보며 옛 신라인을 만난다. /편집자 주 법흥왕이 통치하..
문무왕은 당의 침략을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룩한 5년 뒤인 681년(문무왕 21) 7월 1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후 태자 김정명이 새 왕으로 즉위하는데 그가 31대 신문왕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무왕은 죽음을 목전에 둔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
국보 제25호인 ‘태종무열왕릉비’는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고 백제를 멸망시킨 뒤 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난 태종 무열왕의 능비다. 이 비는 통일신라 석비를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석비의 형식이나 비액(碑額)의 새김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으로, 이후 이를 ..
‘동궁(東宮)과 월지(月池)’는 대중들에게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유적이다. 안압지는 신라 때 명칭이 아니라,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신라가 멸망한 이후 연못은 웅덩이..
사천왕사의 정확한 폐사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실록, 매월당 김시습의 시집 등을 근거로 조선 건국 직후인 1400년대 초반까지는 절이 있었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경역 안쪽까지 민가가 들어서고 곳곳에 잡풀이 무성했던 사천왕사 터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은 일제..
흔히들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영웅으로 김춘추(제29대 무열왕)와 김유신을 꼽는다. 그러나 두 영웅은 통일전쟁 중에 세상을 떠났고, 그들의 유업을 이어 삼국통일을 마무리한 이는 무열왕의 맏아들 문무왕(제30대, 재위 661~681년)이었다. 문무왕은 무열왕이 재위 7년..
신라의 마지막 여왕인 진성여왕은 제48대 경문왕(재위 861~875)의 딸이다. 오빠는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이었다. 정강왕이 재위 1년여 만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되자 진성여왕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현재 경
대당(大唐)이 위대한 왕업을 여니 / 높고 큰 황제의 포부 창성하여라 / 전쟁이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 문치를 닦으니 백왕(百王)이 잇는다 / (중략) / 나부끼는 깃발은 어찌 그리 빛나며 / 징과 북소리는 어찌 그리 웅장한가 / 황명을 거스른 변방 오랑캐는 / 베..
“내가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그날이 오면 도리천(忉利天)에 묻어 달라.” 신라 최초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이 유언을 했다. 신하들은 도리천이 어디인지 몰라 당황했다.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이상 세계. 선덕여..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조금은 과도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첨성대(瞻星臺)도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첨성대는 천문관측으로 날씨나 운세를 예측하고 여왕의 권위를 높여 신라의 중흥을 도모하려는 의도로 선덕여왕이 세웠다고 인식돼왔다..
‘삼국사기’는 황룡사 창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4년(553) 봄 2월에 왕이 담당 관청에 명하여 월성(月城)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게 하였는데, 황룡(黃龍)이 그곳에서 나타났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서, 바꾸어 절로 만들고 이름을 ‘황룡’이라고 하..
경주는 1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로 번성하며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됐다. 그 흔적은 지금도 경주 곳곳에 남아 있다. 그 흔적은 신라에 살았던 이들을 떠올릴 수 있는 타임머신이다. 경주에 남은 고대 유적을 둘러보며 옛 신라인을 만난다. /편집자 주 선덕여왕은 우리..
경주는 1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로 번성하며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됐다. 그 흔적은 지금도 경주 곳곳에 남아 있다. 그 흔적은 신라에 살았던 이들을 떠올릴 수 있는 타임머신이다. 경주에 남은 고대 유적을 둘러보며 옛 신라인을 만난다.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