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1915~1978) 시인의 시비는 시인의 명성을 말해주듯 전국 곳곳에 세워져 있다. 지금도 세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고향 경주에는 모량리 목월 생가터, 모교인 건천초등학교 교정, 황성공원, 보문관광단지 목월공원, 보문호수 둘레길에서 시비를 찾아볼 수 있다.
박목월생가와 건천초등학교 「윤사월」
모량리 목월생가와 모교인 건천초등학교 교정에는 시비 「윤사월」이 세워져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목월의 시이다.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목월은 건천초등학교 6회 졸업생이다. 목월의 장남인 박동규 교수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윤사월이면 늦봄이거나 초여름에 가깝다. 아지랑이 건너편 단석산에서 뻐꾸기 우는 봄날에 읽으면 제맛이다. 윤사월이라서, 외딴집 눈먼 처녀라서, 더 아름다운 파동으로 다가온다. 7.5조의 3음보의 선경(先景)과 후정(後情)의 구조이다. 꾀꼬리 울음소리 듣는 눈먼 처녀의 애틋한 이미지의 절제된 언어가 절묘하다. 선시(禪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량에서 건천가는 길은 어린 목월이 자주 지나다녔던 길이다. 단석산과 들판을 보며 사유하며 상상했던 시인의 길이다. 국도변에는 수십기의 금척 고분군을 만날 수가 있다. 병이 낫고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금척(金尺)은 현대사회에도 유효할까?
황성공원 노래비 「얼룩송아지」
경주에서 제일 오래된 목월의 노래비이다. 1968년 5월 30일 노래비가 세워지는 날 목월은 서울에서 직접 내려오기도 했다. 시비 앞에는 매년 목월백일장이 열린다. 전국 각지에서 문학 재능들이 몰려오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백일장행사를 경주문인협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목월백일장을 거쳐간 유명 시인들이 많다.황성공원 솔숲에는 봄날에는 후투티가 둥지를 트는 모습과 여름에는 맥문동 보라색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소나무 숲속에서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는 전국 최고의 공원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곳이다. 독산 높은 곳엔 북쪽을 향해 김유신 장군 동상이 말을 달리고 있다. 그 아래 작은 노래비가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
보문호수 목월공원 「낮달」과 호수 둘레길 「나그네」
보문관광단지 목월공원에는 보문관광단지와 역사를 같이 하는 시비 「달」이 세워져 있다.도화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경주군 내동면/ 혹은 외동면/ 불국사 터를 잡은/ 그 언저리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1972년 세워진 시비 뒷면의 시비건립추진위원들 명단을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인들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호수 건너편 둘레길 중간에도 「나그네」 시비가 새겨져 있다. 걷기에 전념하는 사람들 대신 가끔 명활산 산그늘이 내려와 시를 읽고 가기도 한다.
포항시 기계면 「기계장날」
2014년 3월 8일 박목월 시인의 「기계장날」 시비가 세워졌다. 기계 장날(1일·6일)이다. 삶의 냄새와 인정이 물씬 묻어나는 시이기에 장터 가까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과 달리 조금 벗어난 외곽에 시비가 세워져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1906년 행정구역 변경이 되기 전까지 경주군 강서면 기계리였다.목월이 선보러 갔던 곳 청하면에도 이름만큼이나 이쁜 시를 남긴 곳이다. 미역냄새 살짝 날 것 같은 시비 하나 정도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전국에 산재한 목월 시비
[ 서울 ]목월 시비가 제일 많은 곳이 서울이다. 1946년 서울로 올라와 1978년까지 살며 작품활동을 했던 용산구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의 뜻을 모아 목월공원을 조성하고 「청노루」 시비를 비롯하여 「나그네」, 「모일(某日)」, 「달무리」, 「구름밭에서」 등의 시를 새겨두고 있다.1993년 3월 사망할 때까지 19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한양대 교정에는 커다란 바위에 시비 「산도화」가 세워져 있다. 이외에도 특이하게 창동역 공용주차장에도 시비 「나그네」, 광화문 로얄빌딩 사옥에 시비 「나그네」가 있는데 어떤 이유로 세워졌는지 궁금하다.[ 부산 ]부산 어린이 대공원 「나그네」 시비는 2008년 초읍동 주민들이, 부산 지하철 1호선 부전역에 「청노루」 시비는 2007년 전포2동 주민들이 세웠다. 두 곳 모두 지역 주민들이 세웠다는 점이 특이하다. 강서구 낙동강 제방 위에는 조지훈의 「완화삼」과 이에 화답한 「나그네」 시비가 짝을 이룬 시비가 있다.현재는 수명이 다한 고리원자력발전소에는 1호기 건설을 기념하는 박목월의 시비가 있다.‘최초의 불이 켜지고/(중략) 북녘까지// 환하게 불밝힐 것이다’라는 내용의 시가 1978년 4월 국내 첫 원자력을 가동한 것을 기념하며 원자력 발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대구 ]대구에는 세 곳에 목월의 시비가 있다. 서구 중리동 근린공원에 시비 「나그네」,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앞에 시비 「사투리」, 동구 도동 시비동산에 시비 「청노루」가 세워져 있다. 특별한 인연이나 사연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경기도 용인 ]2015년 박목월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인의 아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고인이 안장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공원에 시비(詩碑) 8개를 갖춘 ‘박목월 시 정원’을 마련했다. 예상대로 시 「가정」을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임을 엿볼 수 있다. 멀지 않은 용인자연휴양림에도 「나그네」 시비가 있다[ 제주 그리고 기타 지역 ]올레길 6코스 칠십리 시공원에는 제주와 관련된 시비들이 여럿 조성되어 있는데 제주 서귀포와 인연이 닿았던 목월의 「밤구름」이 세워져 있다. 목월은 잠시 제주도에 살기도 했다.목월과 인연이 닿는 경남 고성 남산공원에도 「나그네」 시비가 있다. 이외에도 많은 곳에 존재하지만 세세하게 모두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곳에 시비가 있었으면 ....
이외에도 시비가 세워졌으면 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몇 군데 추천하자면 경주향교와 옛 동부금융조합 건물터, 그리고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를 대표적으로 꼽고 싶다.여기는 경주/ 신라 천년..../ 타는 노을 //(중략) 석탑한 채 돌아서/ 향교 문 하나/ 단청이 낡은 대로/ 닫혀있다.시 「춘일(春日)」의 배경이 된 곳이 교동 경주향교이다. 이곳은 반월성과 계림, 월정교, 교촌마을 등과 이어져 있어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금융조합 재직시절 전표 뒤에 시 「임」을 썼다. 옛 동부금융조합 터는 현재 경주상공회의소 근처이지만 건물은 지금 없다. 시인이라는 꿈을 가졌던 의미 있는 곳이라 아쉬움이 크다.「산이 날 에워싸고」를 쓴 외동읍 녹동리 정도에는 시비 하나 있어도 좋을 것 같다.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이 시는 1941년 가을 동부금융조합 재직시절 경주에서 동으로 20여km에 입실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 남으로 8km 남짓한 산골인 녹동에 출장갔다가 돌아오는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쉬며 지은 시이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겨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자의 노래로 들리지만 목월은 아니라고 했다. 일제말기의 막다른 골목에서 부모 형제 친척과 이웃 혈연적 유대와 친분 그것에 대한 신뢰 속에서만 가냘픈 삶의 소망을 발견이라고 자평(自評)하기도 했다.
목월 시비가 많은 이유
경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이렇게 목월 시비가 많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가 어렵지 않다. 긴 시보다는 짧은 시가 많고, 친숙한 정서적 공감 그리고 운율과 리듬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문화재를 찾는 여행과 곁들여 한 번쯤 목월 시비를 찾아 나서는 여행도 유익한 일이 아닐까 싶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계절이 바뀌면 바뀌는대로 동서 남북으로 목월의 시비를 찾아보는 일도 좋은 경주여행이라고 생각된다. 시비 속에는 또 다른 경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가 있고 새로운 것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전인식 시인(전문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