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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길 위에서 만나다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44호 입력 2026/08/27 10:08 수정 2026/08/27 10:15

원효의 흔적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원효는 머물렀던 곳, 또는 지나간 곳에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흔적이 남아있다. 사찰은 물론 산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문학, 사학, 철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등 예술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원효가 걸어갔던 길은 원효를 추모하듯 길 이름이 만들어졌다. 큰길은 큰길대로 작은 길은 작은 길대로 원효의 이름을 되새기고 있다.

우리나라 도시에 ‘원효로’라는 도로명을 가진 도시는 경주를 비롯해 서울, 경산 세 도시이다. 이외에도 원효와 인연이 닿았던 곳에 원효의 이름을 가진 크고 작은 길들이 있다. 그를 기리는 길들이 조성되고 있다.


경주시 원효로


경주의 원효로는 성건동에서 시작해 구황동 분황사에서 끝나는 도로이다.

시가지 중심가 한가운데를 직선으로 관통하는 2.9㎞의 거리다. 지금은 많이 쇠퇴하고 희석이 되었지만, 대왕극장과 중앙파출소 앞은 최고의 중심지였다. 중파는 예전이 없어졌고 그 자리에 스타벅스가 들어왔지만, 어느 순간 이마저 없어졌다. 경주에서 초중고를 다녔다면 이곳 언저리에 추억이 없는 중년들은 없을 것이다. 역도산 빵집, 부산 아이스케키, 평양냉면, 무아 음악감상실, 대왕극장, 대왕탁구장, 태극당 빵집, 텍사스 골목의 술집과 분식집, 목로주점, 명보극장, 청기와다방, 간판을 바꿔 달던 수많은 옷 가게들은 경주 사람들에게 추억이 가득한 거리였다.

성건동에서 걸어 올라와 보면 유림회관, 노인종합복지관, 월성초등학교, 청기와다방, 신라고분정보센터, 봉황대, 메가박스(구, 대왕극장), 경고 지하도(매립), 철도관사, 농어촌공사 경주지사, 경주중·고교, 화랑초등학교, 분황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경주의 동·서를 잇는 중심거리 역할을 했다. 한때 도시의 중심 역할을 했던 구도심 지역 쇠락은 경주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모든 도시가 비슷한 실정이다.

분황사. <사진=분황사>확대
분황사. <사진=분황사>
분황사는 설명이 필요 없는 원효와 관련된 첫 번째 절이다. 선덕여왕 3년(634년)에 지어진 절로서, 원효대사가 거주하면서 화엄경소를 비롯해 여러 경전을 쓴 곳이다. 절을 올리는 설총을 뒤돌아보았다는 원효 소조상,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경덕왕 때 만든 약사여래상이 있었다. 국보인 모전석탑, 용이 사는 우물 변룡어정 등의 유적들이 있다. 선덕여왕의 권유로 자장 법사도 오래 머물기도 했다. 눈이 먼 희명의 눈을 뜨게 한 도천수대비가, 광덕과 염장 이야기를 비롯해서 분황사 이야기는 끝없이 많다. 대각국사 의천이 다녀가고, 추사 김정희가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다.

분황사 앞으로 난 길은 지금은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숲머리마을을 지나 감포로 가는 옛날 길이 있었다. 분황사 동쪽은 원효가 고선사, 오어사, 기림사로 걸어 다니던 그야말로 원효의 길이었다.


경산시 원효로


원효 탄생지 경산시의 원효로 또한 경산 시내 최고 중심가를 지나간다. 중방동 오거리에서 시작해 자인면을 거쳐 용성면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농협 경산시지부, 한전 경산지사, 경산시청, 경산교육지원청, 경산경찰서, 경산중·고교 등 경산시의 거의 모든 관공서를 지나가는 핵심 도로이다. 시가지를 벗어나면 자인면 소재지를 거쳐 용성면 소재지를 지나 원효로 길은 끝이 난다.

특히 자인면 면소재지에는 제석사가 있다. 제석사는 원효 탄생지에 지어진 절이다. 원효의 어머니가 유성에 안기는 꿈을 꾸고 원효를 잉태했다. 밤나무골을 지나다 산통이 와서 남편 옷을 밤나무에 걸쳐 산실을 만든 다음 원효를 낳았다. 이때 오색구름이 내려와 땅을 덮었다 한다. 옷을 걸쳤던 나무를 ‘사라수(沙羅樹)’라 불렀다. 그 자리에 원효가 지은 절이 사라사(沙羅寺)이다.

 

사라사가 폐사된 후 400여 년 지나 밭 갈던 농부가 불상과 탑신을 발견하고 절을 복원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의 제석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좌불과 탑신, 연화대석 등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제석사가 사라사의 후신임을 짐작하게 한다. 제석사에는 원효를 기리기 위해 원효 팔상탱화를 봉안했고, 매년 5월 4일이 되면 다례제를 지내며 원효를 추모하고 있다. 2026년 4월 원효를 기리는 사라탑을 조성하였는데, 경주 남산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경주 고선사지 탑을 모델로 해서 건립했다. 경산시가 원효로로 명명한 것도 보면 제석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산 제석사. <사진=경산 제석사>확대
경산 제석사. <사진=경산 제석사>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원효와 서울 용산구는 무슨 인연이 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별한 인연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효로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을 일본식 모토모치(元町)로, 한국식으로 원정(元町)이었다.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 명칭을 우리말로 정리할 때 신라 고승 원효대사의 이름인 ‘원효로’로 변경했다. 같은 시기에 충무로, 을지로, 퇴계로 같은 서울을 대표하는 도로명들이 만들어졌다.

원효로는 남영역 사거리에서 청암동 나들목까지 총연장 2.7km 거리이다. 용산과 여의도를 잇는 원효대교는 1981년에 준공한 13번째 한강의 교량이다. 다리가 놓임에 따라 대방역 지하도에서 청파동을 지나 서부역에 이르는 길을 ‘원효대로’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기존 원효로와 혼선을 피하기 위해 1984년 다시 ‘용호로’로 변경하였다.

원효 동상. <사진=서울데이터서비스>확대
원효 동상. <사진=서울데이터서비스>
용산구 효창 공원에는 원효대사 동상이 있다.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가 공동주관으로 1969년 8월16일 건립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애국심 고취를 위해 15기의 동상을 건립했는데, 그 두 번째 순서로 세워졌다. 원효 동상은 대한항공 조중훈 전 회장이 헌액했고, 동상 전면의 글씨도 조중훈 회장의 글씨다. 조중훈 회장은 원효 동상 건립 외에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월정사 복원에도 크게 기여할 만큼 불교와 인연이 많다.

원효와 직접적 인연이 없는 서울 한가운데 원효로 거리가 생겨나면서 ‘원효대교’라는 다리가 생겨났고, 인근 효창공원에는 국내 유일의 원효대사 동상까지 세워진 셈이다.


서울 원효대교. <사진=서울데이터서비스>확대
서울 원효대교. <사진=서울데이터서비스>


크고 작은 원효의 길들


2011년 경상북도는 원효대사 설화와 유적을 홍보함과 동시에 구도의 길을 조성했다. 원효와 관련된 곳곳에 ‘원효가 다녀간 그 길 위에 서다’라는 안내판을 세워두고 있다.

경주지역에서 원효와 관련된 길은 많다. 대표적으로 월정교 근처 원효가 물에 빠져 요석공주와의 인연의 자리가 된 교촌마을 입구에는 ‘둘이 하나 되는 사랑길’이란 푯말이 서 있다. 여기서부터 요석궁, 월정교, 계림, 첨성대, 월지, 황룡사지, 분황사까지 걸어 가면 원효의 걸어간 일생의 절반쯤은 보인다.


경주 월정교 둘이 하나되는 사랑길. <사진=전인식 제공>확대
경주 월정교 둘이 하나되는 사랑길. <사진=전인식 제공>

팔공산에는 ‘원효 구도의 길’이 있다. 원효가 득도했다는 대구시 군위군 부계면 오도암을 중심으로 팔공산 하늘정원까지 약 2km 정도 팔공산 등산을 겸할 수 있는 곳이다.

충남 가야산 일대는 국가 숲길로 지정된 내포 문화 숲길이 있다. 숲길의 일환으로 내포 불교 순례길 가운데 ‘원효 깨달음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경기도 평택시에 산책로 코스 평택 섶길 4코스를 원효길로 정하고 있다. 평택항 혜초 비에서 시작해 수도사까지 이어진 길이다.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이 절 근처에서 해골 물을 마시고 득도했다고 한다. 경기 화성시에서도 화성문화원을 중심으로 원효 깨달음의 길 사업과 연계한 걷기 순례길과 원효 콘텐츠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

경남 양산시에서도 홍룡폭포와 천성산을 중심으로 원효 로드를 만들기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콘텐츠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 원효와 연결되는 지역마다 원효의 길 조성과 아울러 콘텐츠 발굴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길이란 이곳에서 저곳으로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만은 하지 않는다. 그 길 위로 사람이 지나가면서 문화가 바뀌고, 인류와 역사가 바뀌었다. 삶의 진리마저 바뀌었다.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우리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 선지식인 원효가 걸어간 길을 후대의 우리도 따라 걸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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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식 시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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