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소조상
가장 실물에 가까운 작품은 설총이 만들어 분황사에 봉안한 소조상일 것이다.
원효가 686년 70세 나이로 경주 인근 혈사에서 입적하자 화장한 뼛가루를 갈아서 물로 반죽하여 소상(燒像)을 만들어 분황사에 봉안했는데 절을 올릴 때마다 소조상이 뒤돌아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원효 소조상은 사찰에 널리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일례로 일본에 다녀온 원효의 손자 손중업도 원효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선사에 서당화상비를 세움과 동시에 원효 소조상을 만들어 봉안하기도 했다. 분황사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소조상은 고려 시대까지 전해지다 몽고 침략으로 소실되었다.
흥륜사 금당에 신라 10대 성인 상을 조성하였는데 그곳에도 원효의 소조상을 만들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소조상과는 달리 원효대사 영정은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화쟁국사’로 봉해진 이후 원효의 영정이 널리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존하는 것은 없다. 현재 국내에 전해지는 진영들은 모두 19세기 이후에 그려진 것들이지만, 국내와는 달리 일본에는 오래된 진영이 존재한다.
일본 「화엄연기」 두루마기 그림 속 원효
일본 교토 고잔지(高山寺)에는 가장 오래된 원효와 의상대사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1206년 원효와 의상 스님을 흠모한 묘에(明惠, 1173-1232)가 제자를 시켜 두 스님의 행적과 구도에 관한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화엄종조사회전」을 만들었다. 「화엄종조사회전」은 줄여서 통상 「화엄연기」로 부른다. 「화엄연기」속 그림들은 송나라 찬녕이 편찬한 『송고승전』의 내용을 참고하여 그렸다. 신라 스님을 중국 사람이 책으로 엮었고, 책의 내용을 토대로 일본인이 그림을 그렸으니 동아시아 3개국이 직·간접으로 연결된 그림이다. 「화엄연기」 두루마리 그림에는 원효와 의상 그림이 각각 전해지고 있다. 원효에 관한 그림은 영정 그림과 토굴에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의 그림과 스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그림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아도 익히 아는 내용이다.
고잔지의 원효와 의상 두 스님의 그림은 대조적이다. 원효는 거무스름한 피부색에 더부룩한 수염, 누추한 행상인 반면에 의상은 하얀 피부와 단정한 승복으로 그려져 있다. 원효와 의상이 구분되는 대표적 그림이다.
일본인이 그렸다고는 하나 한국인이 그린 그림을 보고 베낀 이모 작품으로 일본풍이 아닌 한국풍이다. 원본이 된 그림이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 그림은 가장 오래된 원효 진영이자, 원효의 실물과 가장 가까운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래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는 교토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2010년 9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화엄종사회전-의상, 원효, 그리고 묘에> 라는 주제로 두루마기 그림에 대한 강연회가 개최된 적 있다. 두루마기 그림 속 등장하는 원효와 의상의 모습과 행적, 제작 배경, 두 고승이 일본에 끼친 영향에 대한 강연이 있었다. 일본에 가지 않고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있었으면 좋겠다.
■ 국내 영정 그림
부산 금정산 범어사 영정
국내에 전해지는 원효 영정 그림은 범어사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세기 이후에 원본을 보고 베껴 그려진 것으로 이모(移模) 작품이다. 의자에 앉아 몸을 틀어 좌측을 향하고 있으나, 거의 정면에 가깝다. 군청색 장삼과 승복 끝단의 복잡한 곡선 처리가 다소 기교적이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옷의 장식들이 원효 본연의 구도적 모습과 동떨어진 그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상단 좌측에는 ‘해동초조화엄강사원효대화상지진영(海東初祖華嚴講師元曉大和尙之眞影)’이라는 그림 제목을 쓴 글씨가 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는 원효대사 외에도 의상대사 영정, 사명대사 영정도 만나볼 수 있다.
경주 분황사 보광전 원효 영정
경주 출신 박봉수 화백이 그린 그림이다. 1956년 경주 남산 칠불암에서 100일 기도 후 얻은 영감으로 원효대사 영정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가는 「청태반가사유상」 같은 불교적 색채와 신라와 고도 경주와 어울리는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분황사 영정 그림은 다른 영정에 비해 비교적 심플하다. 왼손에는 긴 주장자를 들었고, 오른손에는 경전을 펼치고 있다. 탁상 위에는 여러 권의 경전이 놓여있다. 아마도 경전 강의를 하는 모습을 비단에 그린 그림이다. 분황사 보광전 약사여래불 뒤에 가면 만나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표준 영정
정부의 위인들 영정 표준화 사업의 일환으로 유명 작가들이 참여했다. 원효 표준 영정은 1978년 이종상 화가가 그렸다. 반신상으로 좌측 방향으로 보고 있다. 다소 긴 얼굴에 회색 장삼과 주황색 가사를 걸쳤다. 삭발이지만 머리 앞부분의 머리가 없이 표현했다. 원효가 지닌 강인하고 야성적 이미지와는 거리감이 있다. 왠지 힘과 에너지가 없어 보인다. 세로 17㎝, 가로 84㎝의 크지 않은 그림이다. 이종상 화가가 그린 영정은 원효 이외에도 광개토대왕, 장보고 등이 있다. 우리나라 지폐 5000원권과 5만원권 지폐의 영정도 그렸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은 원효 그림
원효에 대한 그림은 전해지는 것이 많지 않다. 의미가 있는 그림이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전해지는 것이 다소 아쉽지만, 그래도 이웃 나라에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뻐할 일이다. 이마저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허허로울까? 그림 유물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원효의 명성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원효대사의 실물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엿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원효가 원하는 것은 그림 자체보다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하나 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화쟁과 통섭, 원융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어수선한 시대일수록 원효의 그림이 또렷해질 것도 같다. 하지만 원효 그림에는 형체가 없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전인식 시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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