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결정은 여러 번 있었다. 2017년 경주시는 부적합 통보를 했고, 행정심판위원회는 사업자의 청구를 기각했으며, 2019년 대법원은 시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확정했다. 그러나 사업자는 자진 철회 뒤 사명을 바꿔 다시 신청했고, 2024년 경북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시의 두 번째 부적합 통보를 취소하는 인용 재결을 내렸다. 2025년 도시계획위원회의 ‘수용 불가’ 자문은 결정 직전 사업자의 자진 취하로 효력을 잃었다. 판단이 나올 때마다 갈등은 끝나지 않고 다음 국면으로 넘어갔다.
필자는 박사학위논문에서 경주의 공공갈등을 추적하며 안강 사례를 ‘환경부정의형’ 갈등으로 분석했다. 안강 주민이 문제 삼는 것은 매립장 하나의 위험성만이 아니다. 의료폐기물 소각장과 수십 곳의 자원순환 업체가 이미 들어선 지역에 또다시 부담이 누적된다는 분배의 불공정, 그리고 그 피해를 호소하고 인정받을 통로가 없었다는 절차의 불공정이 겹쳐 있다. 경주시는 자체 발생량의 약 6.4배에 이르는 산업폐기물을 매립 처리하는 전국 1위 지역이며, 그 부담은 안강을 비롯한 외곽지역에 몰려 있다. 2015년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선 뒤 이어진 악취 민원이 사실상 방치되었던 경험은 행정에 대한 불신의 뿌리가 되었다.
경주의 공공갈등에서 갈등의 향방을 가른 것은 사업의 위험성이 아니었다. 유림로 지하차도 갈등은 합의의 통로가 열리면서 완화되었고, 월성원전 맥스터 갈등은 형식적 수습으로 봉합되었다가 다시 불거졌다. 안강에서는 그런 수습의 자리조차 한 번도 마련되지 않았다. 분배만의 문제였다면 협상의 여지라도 남았겠지만, 피해를 인정받을 절차가 없으니 협상의 입구조차 열리지 않았다. 올해 의견 수렴 기간에 주민들이 서면 공고 대신 현장 설명회와 공개 질의응답을 요구한 것도 이 공백을 보여 준다.
도시계획위원회의 재심의 결과가 어느 쪽이든 끝이 아닐 공산이 크다. 가결되면 주민 반발과 소송이, 부결되면 사업자의 법적 대응이 예고되어 있다. 행정심판이나 위원회 심의 같은 제도적 결정은 법적 분쟁을 일단락 지을 수는 있어도, 갈등의 지배적 쟁점에 대한 상호 이해로 이어지지 않으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 안강의 지난 9년이 그 증거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주민의 일상과 행정에 대한 신뢰가 치르는 비용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결정이 아니라 공론의 장이다. 찬반 주민, 사업자, 경주시, 독립된 전문가가 같은 자료를 놓고 마주 앉아야 한다. 경주로 반입되는 외부 폐기물의 규모와 ‘관내 폐기물 자체 처리’라는 추진 사유의 관계, 침출수 처리 방식, 사업 종료 뒤 사후관리의 책임은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사실을 함께 검증하면 다툼의 범위가 좁아지고, 남는 문제를 ‘무엇이 공정한가’라는 물음으로 정직하게 다룰 수 있다. 상생기구를 요구하는 조건부 찬성 주민의 목소리도 그 자리에서 함께 들어야 한다. 지난 9월처럼 두 목소리가 시청 앞 집회에서만 맞서면, 결론과 상관없이 지역 공동체에 오래 남을 상처가 생긴다. 보상과 상생의 논의는 누적된 정주환경 악화 부담에 대한 인정과 함께 다뤄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공론의 장은 경주시 혼자서는 풀 수 없는 숙제도 드러낼 것이다. 산업폐기물에는 생활폐기물과 달리 발생지 책임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인허가만 받으면 전국의 폐기물을 들여올 수 있다. 행정심판의 인용 재결에 대해서는 시가 불복할 길도 없다. 이런 제도의 빈틈은 지역의 공론으로 정리해 국회와 정부에 개선을 요구해야 할 과제다. 안강의 문제가 안강만의 문제가 아닌 까닭이다.
이 자리는 이해당사자가 아닌 중립적 시민사회가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허가권자인 시는 이미 당사자로 인식되고, 정치권이 주도하면 정치적 해석을 피하기 어렵다. 공론화는 법정 절차를 대신하지 않는다. 표결로 결론을 내는 자리가 아니라 쟁점을 정리해 시와 도시계획위원회에 전달하는 자리다. 의제와 참여자를 양측과 미리 합의하고 모든 과정을 공개해야 사업 정당화의 수순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있다.
안강의 갈등은 결론을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함께 이야기할 자리가 없어서 길어졌다. 재심의에 앞서 그 자리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9년에 걸친 갈등의 교착을 푸는 첫걸음이다. 결론을 서두르기 전에, 먼저 마주 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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