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거나 절을 찾아 여행하다 보면 원효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도대체 원효라는 이름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원효봉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어떤 형태로든 원효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원효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를 너무 쉽게, 무감각하게, 무의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산은 우리에게 물을 주고, 그 아래 사람들을 살게 하고,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형성하게 한다. 형이상학적으로 산은 단순히 높은 곳이 아닌 신성한 영적 공간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이름이 봉우리가 됐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넘어선 초월의 의미로 볼 수밖에 없다.
천성산 원효봉
제1봉인 원효봉(922m)과 제2봉인 비로봉(855m)을 합쳐 2000년 5월부터 천성산이라 부르고 있다. 천성산의 유래는 당나라에서 건너온 일천명에게 원효가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원효봉 아래 원효암은 646년 원효가 창건했고, 1905년 효은이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수도하며 중국에서 건너온 1000명에게 화엄을 가르쳐 득도에 이르게 했다는 유서가 깊은 곳이다. 암자 동쪽 바위에는 마애여래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화엄벌은 원효가 화엄경을 강독한 곳이라 한다. 원효봉 오른쪽에 펼쳐진 약 25만평 억새밭 군락지 평원이다. 지금도 풀이 자라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원효가 경전을 강독한 자리라 한다. 이곳 습지인 화엄늪은 도룡뇽 스님으로 알려진 천성산 내원사 지율스님이 경부고속철 구간 노선 변경을 요구하며 시위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룡뇽도 도룡뇽이지만, 천성산의 내력을 살펴보면, 원효의 존재를 알고 나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현재 이곳은 습지 보존지역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이외에도 천성산 일대에 칡덩굴은 다른 데 비해 짧은데 그 이유는 원효가 이곳에서 수도할 당시 제자가 마을로 동냥 나갔다가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쌀과 밥을 쏟아버린 일이 있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원효대사가 흰 종이 한 장을 제자에게 건네주며 그 자리에 가서 두고 오라 했는데, 이후 이곳 주변 칡넝쿨은 길게 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원효의 도력에 관한 일화는 이외에 많이 있다.
금정산 원효봉
최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정산은 산 정상에 마르지 않는 금샘과 관련있다. 『삼국유사』 4 「의상전교(義湘傳敎)」편에 ‘금정지범어(金井之梵魚)’가 등장한다. 금정산과 범어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산이 되고 절이 될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금정산 동문과 북문 사이로 오르면 의상봉과 원효봉을 만날 수 있다.
원효봉(687m)은 해골바가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원효암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원효암은 범어사 산내 암자로 원효대사가 창건해 왜병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해지나, 창건연대가 자세히 전하지는 않는다. 원효암에는 법당과 심검당, 요사채 그리고 동편과 서편에 3층 석탑이 있다. 암자로는 규모가 있는 편이다. 원효암에 모시고 있던 보살상이 도둑을 맞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보살상의 현몽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한편 이곳 우물에서 원효대사의 것으로 알려진 옥돌 도장이 발견됐는데 현재 범어사에서 보관 중이다. 암자 뒤편에는 수직의 가파른 절벽에는 원효가 참선하던 원효대(元曉臺)가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양산 천성산 원효암이 보인다. 금정산에는 원효봉과 의상봉이 있고 원효대도 있고 의상대도 있다.
무등산 원효봉(광주)
광주 무등산 북쪽 기슭에 원효봉(567m)이 있다. 원효봉 아래에는 원효사가 있고, 원효사 아래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원효계곡이 있다.
원효사는 6세기 초기 무렵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여러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신라창건설에 부정적 의견이 있었으나 1980년대 발굴 결과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이 다량 발굴된 바가 있어 통일신라 창건을 받아들이고 있다. 『조선사찰사요』에 의하면 원효가 산자 수려한 이곳을 좋아해서 암자를 짓고 수행 정진하며 살았다고 한다.
원효사 주변 아름다운 여덟 풍경을 정하여 ‘원효 8경’이라 적고 있다. 그 첫째가 무등명월(無等明月)이다. 원효사에서 무등산 정상에 솟아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운치라고 한다. 시가 저절로 지어질 것 같다. 참고로 고은, 문병란, 김규동 등 많은 시인이 무등산을 노래했다. 이곳에 온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도 마찬가지로 많다. 이곳에서는 건너편 의상봉(546.6m)을 마주하며 무등산의 자랑인 서석대도 바라볼 수 있다. 원효사는 템플스테이도 가능한 곳이다.
무등산 무등(無等)은 불교의 무등등(無等等)에서 유래됐다. 비할 데 없이 높고 등급을 매길 수 없다는 뜻으로, 가장 높아 견줄 수 없는 이를 칭한다. 천수경과 반야심경에서 엿볼 수 있다.
북한산 원효봉(경기 고양, 서울)
북한산성 축성 이후 원효와 의상을 기리기 위해 봉우리 이름을 지었다. 축성 당시 원효 능선 6봉(원효·염초·시자·백운·만경·용암)은 훈련도감이 담당했고, 의상 능선 7봉(의상·용출·용혈·증취·나월·나한·문수)은 어영청이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효봉(510m)은 소재지는 고양시 덕양구에 속하지만 통상 북한산은 서울 사람들이 주로 오르다 보니 서울의 산으로 인식된다.
원효암은 신라 때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조선 숙종 때 승병장 선능이 원효를 기리기 위해 창건했다는 것을 정설로 여기고 있다. 이후 북한산성을 지키는 승병들이 주로 머무는 사찰로 유지돼 오다가, 1734년 실화로 소실되어 중건했고, 6.25 전쟁으로 불탄 뒤 비구니 월해 스님이 중건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암자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원효가 좌선했다는 원효대가 있다. 원효대에서는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장군봉 등 북한산 여러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다.
가야산 원효봉(충남 예산)
원효봉(604.7m)이 있는 가야산은 충남 예산시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읍에 걸쳐 있으며 덕산 도립공원 권역에 속한 지역이다.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날 때 경유했던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원효봉 아래에는 원효암 터가 있고 은술샘이 있다. 664년 원효와 의상이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갈증에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 물임을 알고 심한 구토를 하던 중 크게 깨달아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민중들에게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전파했다는 안내판이 있다. 이곳에서 600미터 떨어진 의상암 터에는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색깔의 금술샘 있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가야산에는 한 때는 10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가야산 원효봉과 원효암 터 등을 경유하는 원효대사 발자취를 따라 걷는 ‘원효대사의 길’ 트레킹 코스도 조성돼있다.
가야산은 말 그대로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인도 부다가야에서 이름을 가져온 산이다. 우리나라에는 가야산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마다 가야산이 있다. 통상 가야산에는 절이 많다고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원효와 관련된 산
언급한 산 외에도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에는 원효와 요석공주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자재암을 비롯해 원효폭포, 원효굴, 공주봉 등이 있다.
경북 봉화 청량산에도 조선시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유교식으로 봉우리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모두 불교식 봉우리 이름을 가졌었다. 그 가운데 원효봉도 있고 의상봉도 있었다. 지금도 청량산에는 원효대, 원효굴이 있다.
전북 부안 변산에는 원효가 머물며 수도와 강의를 했던 원효방으로 불리는 원효굴이 있고, 팔공산에도 원효가 수행했다는 오도암과 원효굴이 있고 충북 괴산 군자산에도 원효굴이 있다.
공통적 사실은 모두 원효가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원효의 존재감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곳
원효의 이름이 붙은 산과 봉우리를 중심으로 찾아가 보았다. 원효봉 아래에는 원효암이라는 암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원효가 창건했거나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원효봉이 있는 곳에는 의상봉도 있고 원효암이 있으면 의상암이 있다. 원효와 의상이 한 세트처럼 같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효봉이라는 봉우리를 가진 천성산, 금정산, 무등산, 가야산 등은 모두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곳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고 있다. 원효봉이 있는 곳은 서울, 부산, 광주 같은 대도시를 끼고 있는 공통점도 있다.
이처럼 이 땅 구석구석 원효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원효의 흔적은 방방곡곡에 어디서나 존재한다. 원효가 주로 생활한 서라벌과 가까운 곳과 먼 곳 가릴 것 없이 한반도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신과의 만남이다. 도심 속의 나와 산속의 내가 만나는 일이다. 탐욕의 나와 무욕의 내가 만나는 일이다. 어리석은 나와 지혜로운 내가 만나는 일이다. 내면의 나를 만나다 보면 원효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인식 시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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