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지만, 원효에 관한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원효를 이해하고 알기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단순히 기행이나 설화적 요소 이외에 불교의 깊이와 넓이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2006년, 화남출판사), 한승원의 『소설 원효』(2006년, 비채), 김선우의 『발원 : 요석 그리고 원효』(2015년, 민음사) 등 세 작가의 소설 7권을 두 달에 걸쳐 열독을 했다.
‘작가들은 과연 원효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생각하고 있을까?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원효와 작가들이 그린 원효의 그림은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이 독서의 출발점이었다. 하나의 사물을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듯 원효를 보는 모습도 비슷한 듯 다르다. 원효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지다 보니 세 작가의 소설은 형과 색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원효는 신화적이고 설화적인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사람이다.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원효에 대한 소설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편집자 주
이광수 『원효대사』
1941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원효대사를 다룬 소설이다. 1948년 경진사, 1952년 삼성사, 1956년 광진사 등 여러 출판사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재발간되었고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원효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최초의 소설이다.
초판본을 구해 읽고 싶었으나, 구할 수가 없어 알라딘에서 2006년 화남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을 구입해 읽었다. 소설의 서두에는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를 재출간하는 출판사의 입장문과 한승원 작가와의 출판에 관한 논쟁에 대한 글도 실려 있다. 출판의 자유, 원효는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책 말미에는 김준태 시인과 국문학자 이병주 두 분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소설은 춘원의 불교적 사유가 가득하다. 경전의 문장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며 소설을 끌고 나가는 해박한 불교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춘원은 불교에 조예가 깊고, 한때 금강산에서 출가를 꿈꾸었던 작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우리 언어의 유래와 풍속, 화랑정신, 풍류도를 아울러 곁들이고 있다. 소설 책머리에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나」의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원효는 우리 민족의 특징을 가장 많이 구비하고 있다. 원효를 그릴 때 그가 속한 환경인 신라를 그렸다. 원효는 작가 본인과의 불가분한 관계로 우리 민족의 정신과 생활 이상 태도를,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원효를 빙자하여 한민족 자체를 인격화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원효를 죽이려 한 도적들이 원효에게 감화되어 전쟁터로 나가 삼국통일의 큰 공을 세운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점이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전쟁 참여로 애국의 길로 이끈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다. 여하간 한 작품을 읽고 느끼는 소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작가의 상상력에 독자의 상상력도 더해지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원효를 만나는 것도 독자의 고유 영역이다.
여러모로 친일 행적이 아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북한에서조차 그의 친일에 관해 관용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 춘원의 문학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이 실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승원 『소설 원효』
한승원 작가는 불교적 소설을 많이 쓰는 대표적 작가이다. 잘 아시다시피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필자 또한 오래전부터 한승원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팬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랜 구상과 집필 과정을 거쳤다. 원효가 태어난 경산을 비롯해 경주 남산과 왕경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현장을 답사했다.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 같은 원효의 저서와 불교 경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 원효 연구가들의 저서와 연구물 등 수많은 자료를 두루 섭렵했다.
참고한 저서로는 장휘옥 교수의 『자, 떠나자 원효 찾으러』, 김상현 교수의 『역사로 읽는 원효』, 김용옥 교수의 『나는 한국 불교를 이렇게 본다』, 김성철 교수의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연구』, 김상일 교수의 『괴델의 불안정성 정리로 풀어본 원효의 판비량론』, 법정스님이 역주한 『화엄경』과 『선가귀감』, 이원섭 역 『법화경』, 고영섭 교수의 『원효 탐색』, 김삼룡의 『한국 미륵신앙연구』, 이외에도 『오국사기』, 위작 논란이 일고 있는 『화랑세기』 저자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책 서두 작가의 말 「원효, 우리들 삶의 원형 혹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이란 글에서 “지금까지 오독한 원효의 제 얼굴을 찾아주는데 가장 힘을 쏟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잘못 읽은 사람으로 먼저 『삼국유사』의 일연과 『삼국사기』의 김부식의 예를 들었다. 일연은 원효를 너무 신화나 전설 속 인물로 뭇사람들이 인용하는 그대로 기록했다면, 김부식은 사대주의자로 꼽았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이광수가 쓴 『원효대사』는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몬 무책임한 오독이었다고 주장했다.
소설 뒷편에 원효와의 가상 인터뷰 「핏빛 노을로 타오르고 있었다」를 통해 원효와 독자의 거리를 좁힘과 동시에 작가와의 거리를 좁혔다. 친절하게 책 뒤편 용어 풀이를 통해 사전을 뒤지거나 검색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문 몇 가지를 들어 본다. 요석과의 만남은 어린 나이에 죽은 의붓동생 달이의 환생으로 연결시킨 점이다. 원효는 동생 달이 몫의 젖을 뺏어 먹고 성장했고, 소꿉놀이 부부였다.
그리고 원효와 의상의 불교에 대한 토의 논쟁이 인상 깊었다. 특히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로 대표하는 의상의 불교가 난해한 시라면, 원효는 글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도록 풀어쓴 산문으로 비교했다. 요석과의 만남을 서정주 시인의 시를 차용하며 ‘연꽃 다녀가는 바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김춘추와 김유신 등 삼국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에 반대하는 반전주의자 한가운데 원효와 요석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석궁에서의 생활도 원효의 반전 시위를 막기 위한 고의적 감금으로 보고 있다.
원효와 관련된 많은 기록과 설화로 서사가 가득한 역사 소설, 전기소설로 여겨질 만큼 원효의 태생과 삶의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우주의 씨앗’과 ‘관세음보살’인 만큼 불교에 대한 작가의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으로 2015년 제9회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작가는 김동리와 인연도 깊다. 김동리는 서라벌예대 문창과 지도교수였고, 신춘문예 당선작 「목선」의 심사자이기도 했다.
김선우 『발원 : 요석 그리고 원효』
좋아하는 여류 시인이 쓰는 소설은 어떨까? 문체는 어떨까? 시처럼 소설도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2012년 《불교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을 2015년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라는 제목으로 민음사에서 출간했다.
2015년 실크로드 사전 행사의 일환으로 소설 『발원』 출판기념 강연회를 경주엑스포공원 문화센터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소설 가운데 인상적으로 다가온 몇 장면이 있다. 소녀 단이의 죽은 돌무덤에서 하늘 우물, 즉 첨성대로 세워지는 장면과 요석과 원효의 키스를 나누는 사랑의 장면은 한 권의 경전이었다. 황룡사와 대척점에 있는 이상적 공동체 아미타림의 설정은 시사한 바가 크고 신선했다. 누구나 골고루 화평한 아미타림(아미타불+林)의 공간은 원효가 꿈꾸던 세상이었을까?
먼 신라시대의 사람인 원효와 요석을 현재의 사람처럼 불러낸 듯하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불국토 또는 민주주의, 평등사회는 선덕여왕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누구나 염원하는 세상이다. 소설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본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부처를 사랑하는 길이 아니라 부처가 필요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먹장구름을 쪼개는 뇌우처럼 들이닥쳤다. 부처를 사랑하는 것과 부처가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일불이로 현현하고 종내는 서로 통하여 어우러질 것이라는 생각 역시 순식간에 지나갔다. 부처가 돼야 한다는 일념이 집착에 기인한 허욕임을 인정하자 마음의 안팎을 연결하는 굴 같은 것이 삽시간에 뻥 뚫리는 듯했다.”
소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중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원효의 입전수수(入廛垂手)’일 것이다. 원효와 요석의 사랑을 통한 구도의 소설로만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설을 쓴 철학가 강신주의 글도 소설만큼 재미있다. 의상 대 원효, 의상의 여인 선묘와 원효의 여인 요석 그리고 선묘의 죽음과 요석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대조적 비교가 가슴팍에 화살 꽂히듯 강렬하게 다가왔다.
시인의 맛깔난 시를 먼저 맛본 탓일까. 책을 덮고 나니 갑자기 그녀의 시가 읽고 싶어진다. 숙취 다음 날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처럼···
원효에 대한 여러 소설들
세 작가 작품 이외에도 읽고 싶은 원효에 관한 소설이 많다. 헌법학자인 저자가 원효의 『판비량론』을 읽고 난 뒤 소설을 쓰기를 작심했다는 이지현의 『원효』(불광출판사, 2021년), 박흥민의 『원효대사』(정문사,1963), 남정희의 『원효』(도서출판 장원, 1992년), 신종석의 『원효』 (청어, 2016년) 등이 있다. 이외에도 원효를 다루었거나, 소재로 한 소설은 많이 있을 것이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 같은 예언서인 김중태의 『원효결서』(화산문화, 1997)를 호기심 가득했던 젊은 시절에 읽은 바 있다. 1967년 수중릉 대왕암에서 발견되었다는 원효대사의 비결서를 해석한 책이다. 책에는 당시 경주시청 공무원의 실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원효의 사상은 물론 우리나라 운명에 대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은 책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원효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씌여진 가상의 시공간이다. 세 작가의 소설은 각자의 활발한 사유를 바탕으로 그려낸 원효를 만날 수 있었다. 세 작가가 만난 원효는 같은 사람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책을 통해 민족주의자 원효, 반전주의자 원효, 평등주의자 원효 등 다양한 원효를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원효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재해석과 재창조가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원효를 기다려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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