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사랑합니다. 경주 시민을 존경합니다. 시민 소통의 매체인 경주신문을 아낍니다. 경주제일교회는 이 땅을 사랑하고, 복되기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는 경주시민의 이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밤일지라도, 아프더라도, 희망의 빛을 발하며 승리하시기를!
저는 경주의 자연을 사랑합니다. 그 자연 속에 있는 많은 유산들을 사랑합니다. 종교, 이념, 문화, 시대를 넘어서 사랑합니다. 마음에 있는 아쉬움은 정말 유산을 인식하고, 찾아내고, 보존하고, 알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유산도시의 품위를 위해 경주인이 참고, 불편해하고, 감내해야 합니다. 잠시의 편리, 개발, 발전 때문에 유산이 파괴되거나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경주! 정말 좋은 터전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참 ‘날’은 많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지갑이 얇아지는 달이라고 합니다. 지갑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이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진정성이 있는 사랑을 전해 행복합시다.
국회는 말 그대로 국가의 일을 위해 회의를 열어 최선의 법을 결정하는 곳 아닌가요? 그런데, 왜? 국회를 여는 조건이 필요한가요? 국회를 열어 찬·반을 토론하고 국민을 위한 더 좋은 의견을 결정하면 안 되나요? 이참에 국회 해산하고 세비는 모아서 통일비용으로 쓰면 어떨까요? 오죽하면 이런 마음이 들겠습니까? 힘없는 국민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바쳐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남.북 정상회담 이후 말이 많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진정 통일이라면 모두가 더 겸손히 희망을 갖고 기도합시다. 기대합시다. 그리고 기다립시다.
사월! T.S. 엘리엇은 왜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일반적으로 그의 긴 시 “황무지”에서 나왔음을 압니다. 그것은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두는 “믿음 없음”, “생산 없음”, “재생이 거부됨”으로 인한 서로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신적 공허로 인한 황무지화는 없는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과거보러 떠나는 아들을 보내고 새벽이슬 맞으면서 정화수 떠놓고 비시던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으로 빕니다. 기도합니다. 기대합니다. 남·북의 정상의 만남이 두 분만의 만남이 아니고, 모두의 만남이 되도록! 모두의 하나가 되도록! 모두의 이룸이 되도록!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그렇다면 거기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남이 북쪽에, 북이 남쪽에 그렇게 오가며 하나이며는 우리는 노래하고 춤추겠습니다. 아무리 멀게 느끼고 낯설게 느꼈어도, 때론 증오와 혐오가 있어도, 이제는 정말 꽃 피게 합시다. 사철 아름다운 꽃밭이 될 수 있는 통일을 꽃 피게 하는 남과 북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인만이 ‘부활’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리스도에게서 기인된 것입니다.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예고했고, 억울하고, 부당하고, 참혹하게 십자가 처형을 받았습니다. 그 죽음 속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논쟁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부활’ 개념이 인간의 가슴 속에 살아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새로움이며, 새생명이며, 치료이며, 화해이며, 정의로움이며, 진리의 승리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그 부활의 진정성으로 인간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공격에 익숙해져있고 비난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격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격수’!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그것을 사람에 빗대어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패턴을 바꾸어 갑시다, ‘위로’, ‘위로자’, ‘위로의 사람’. 그래야 ‘동행’, ‘동역’이 가능합니다.
묻고, 묻고, 묻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하겠습니까? 분단은 우리가 극복해야 합니다. 일본이 물러가고, 소련이 오고, 미국이 왔어도, 그래서 선이 그어지고 편이 갈라지게 해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분단 될 수 없습니다.” 하면서 서로 끌어안았다면..... 남·북 회담과 화해를 두고 여러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합니다.” 이 외침, 이 신념으로 통일을 이룹시다.
생각보다 가짜뉴스가 많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믿고 악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뉴스를 대할 때마다 “사실인가?” “필요한가?” “유익되는가?” 스스로 묻고 팩트 체크 합시다.
남북한 하키선수들의 이별 모습! 지금도 생각해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통일에 대한 이론이나 이념을 수백 번 논한 것보다도 더 애절하고 간절하게 체감이 된 것이 남북 하키팀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통일을 위한 더 큰 마음, 더 큰 포옹,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붉은색이니 하얀 색이니 하는 색깔 논쟁보다 더 중요합니다.
역사의 증언 속에는 한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모든 길은 정치로 통한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 돈, 부정, 부패가 정치권으로부터 주어지고 있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니 정치를 잘 해야지요. 정말, 바르게, 양심적으로, 정정당당하게.... 평창올림픽의 선수들처럼 말입니다. 정치 페어플레이 하시면서 올림픽을 말하고, 경기장을 찾았으면..... 한 국민의 마음입니다.
사랑과 평화! 듣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고, 따뜻하고, 만족한 말입니다. 사랑과 평화! 무엇이 이 아름다운 것을 방해할까요? 왜 편 가르기와 비난이 있어야하나요? 참석하고, 오고가고, 경기하고, 우정 나누면 그것으로만 보면 안 되나요? 평창올림픽이 시작되어 진행 중입니다. 모두에게 사랑과 평화이기를! 날마다 일상적으로 평화이기를! 정말 간절하게 소원합니다.
우리부모님은 교육에 목숨을 걸었고 지금도 걸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말 내 자녀가 반듯한 인간됨을 갖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흔히 말하는 출세를 위한 것일까요? 그 출세로 인해 무엇을 누리고자 함인가요? 바른 사람 되지 않고 출세하고 돈벌어봐야 결국 동물만도 못한 인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정신을 차립시다. 그리고 정말 사람 되는 교육에 최선을 다합시다. 그것이 빨리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교과목 가운데 음악, 미술, 체육 소위 예체능 과목은 수업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어느 학년이 되면 아예 배정된 시간도 없습니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이것들만이 교육인가요? 우리 같이 생각합시다. 교육개혁, 인성교육은 예,체,능 시간부터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교육에 관한 논란도 많고, 대책도 많습니다. 교육은 무엇입니까? “교육은 인간을 지배하는 폭군이고 교육은 더욱 똑똑한 악마를 만든다.”고도 합니다. 사회의 병리 현상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이 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가정이며 부모입니다. 부모는 품고, 안고, 업어 아이를 키웁니다. 사실, 그 속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의 정책과 방법에 앞서 부모의 일차적 책임을 통한 인간됨의 사랑의 교육이 급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감동받았다.” 그때가 어떤 때입니까? 작은 일입니까? 큰 일입니까? 감동은 상대가 나에게 해준 아주 작은 친절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자기편리대로가 많습니다. 그것이 곧 남에게 불평이 되고, 짜증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할 때 감동이 됩니다. 새해! 우리의 삶 사이사이에, 감동의 물결이 흐르고 넘치게 합시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매일매일 24시간이 주어집니다. 24시간은 1440분입니다. 매일매일 1440만원씩 통장에 입금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게 맡겨진 24시간, 1440분은 1440만원보다 귀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선한 청지기, 충성된 청지기로 인생의 통장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