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15일. 당시 경주공업중학교 학도병 18명은 경주중, 문화중학교 학도병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가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펜 대신 총을 들었다. 애석하게도 이들 중 4명을 제외한 14명의 경주공업중 학도병들은 장렬히 산화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983년, 경주공업중·고등학교 동창회는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변변한 위령탑 하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고, 동문들의 넋을 달래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각 지역 동문들의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참전 학도병 동문 기수가 주축이 돼 조국을 위해 몸 바친 학도병들을 기억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동문들이 모금에 참여한 결과 이듬해인 1984년 11월 제막식을 갖게 됐다. 한편, 경주공고에서는 매년 6월 25일이면 동문과 유족들, 학생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를 지내고 있으며, 경주공고 총동창회는 학교 측과 함께 동문 학도병들의 뜻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민족의 비극 6.25사변이 일어남에 모교의 선후배 학도 320명이 출정하여 애처롭게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이가 139명이어라, 그 가운데 39명은 전사한 것으로 확인되고 100명은 행방이 묘연하다. 아! 슬프고도 그리운 정이 사무쳐 1954년 3월 1일 동창회와 참전 동지들이 추념비를 세우고자 뜻을 모으니 이 뜻에 호응한 후배 학생들이 정성어린 성금을 모으고 동창회와 사친회 및 재단의 협조로 비석을 다듬어서 그 해 11월에 제막식을 가지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님들을 추모하는 정도 엷어지는 듯하여 동창회에서는 가신 님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추념하는 마음을 다시금 높이고자 개교 6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사업으로 국가보훈처의 협조를 받아 새 추념비를 건립하고 옛 비석은 보존하다. -전몰학도병추념비 확장건립문 6.25전쟁 발발한 1950년. 전국 각지에서 ‘나라의 위기를 우리가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학도병들이 출전했다. 당시 경주중학교는 7월 7일 170명의 1차 출전을 시작으로 2차에 50명, 3차에 100명 등 총 320명이 출전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도병들이 전쟁터로 향했다. 이들은 포화가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펜 대신 총을 잡고 오로지 ‘구국’의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다. 낙동강 싸움, 포항과 안강 전투에서 공산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경주중의 학도병들 중 48명의 어린 넋들은 애석하게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1954년 3월 1일, 경주중·고 동창회와 참전자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학도병들을 위해 뜻을 모아 전몰학도병 추도식을 올리고 추념비를 건립할 것을 결의했다. 당해 11월 5일 제막식을 가진 ‘전몰학도병 추념비’는 1961년 4월 반공애국 유적으로 지정됐고 1998년에 개교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추념비가 건립돼 경주중·고 교정에 자리잡고 있다. 한편, 경주중·고에서는 1973년까지 매년 학생의 날인 11월 3일 추념식을 거행해 오다가 1974년부터는 ‘6.25’를 상기하고 호국의식을 고취시키는 의미로 6월 25일에 추념식을 가지고 있다.
‘이 땅 이 하늘이 알리라’ 가장 큰 어머님 조국의 부름 앞에 오직 뜨거운 마음뿐 계급도 군번도 없이 피 비린 포연 속으로 사라져 간 님이여! 어느 들녘 어느 산기슭 혹은 어느 강가에서 피 흘려 장렬하게 푸른 숨을 거두던 날 아무도 부릅뜬 그 눈 감겨주지 못했었네 오! 이땅이 하늘이 아는 그대 의로운 죽음 영원한 자유 평화 통일의 그날까지 우리들 무디니 가슴 속에 불잉걸로 타리라 -교산 조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