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송(封送), 오랜 기억이다. 멀리 떨어진 친척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인편을 통해 보내 온 제사음식. 짚 두어 줄기로 정성스레 동여맨 한지포장을 풀면, 제사상에 오른 음식의 조각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대추, 밤, 곶감, 깨강정, 유과, 구들구들해진 상어 돔베기와 콩고물 묻은 인절미, 시루떡 조각 등등. 먹을 게 귀했던 시절 봉송은 특별한 ‘택배’였다. 먼 곳에서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즉시 보내준 특별택배. ‘아이고, 안강댁이 제수 장만하느라 욕 봤데이’ 어머니는 음식맛보다 손아래 당숙모의 수고를 먼저 그려내셨다. 서울에서 받아보는 경주신문은 고마운 봉송이다. 고향소식이 활자로 알알이 박힌 특별택배다. 말만 들어도 머릿속에 풍광이 떠오르는, 경주 어느 동네 어느 골짜기이야기가 소복이 담겨있다. 기사 한 꼭지 한 꼭지가 신문을 만드는 이의 따뜻한 정성을 느끼게 한다. 사설과 기명 칼럼은 뜨끈한 국대접이다. 경주를 관통하고 있는 여론의 저류(底流)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전국 어느 큰 신문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깊이와 넓이를 두루 갖춘 내용들이다. 경주의 현안과 미래 전망(why & next)이 잘 정리되어 멀리 있는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전해진다. 지방신문의 풀뿌리 여론전달자(grassroots opinion messenger)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수고를 30년 해 온 거다. 시집와서 30년 넘게 제사음식을 차려 낸 당숙모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라고 허리춤을 짚으시지만, 친척 모두 안다. 그 신산(辛酸)과 자부심을! 세계적으로 미디어환경은 격랑을 맞고 있다. 인터넷과 IT기술혁명의 파고(波高)는 언론환경에 가장 격렬하게 불어 닥치고 있다. 정보습득의 채널이 다양화됨으로써 전통의 종이신문이 설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경주시와 경주관련 단체는 물론, 언론진흥재단 및 국내 대기업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 경주를, 경주답게 이끌고 길 밝혀주는 경주신문에 대한 애정이 절실하다. 오랜 세월 고향을 지키며 봉송하시는 당숙모께 안부 여쭙듯, 우리의 사랑을 싸서 보낼 때다. 경주신문 30주년을 축하합니다.
경주신문창간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 지역에서 지역신문이 만들어지고 30년이 지났다는 것은 그 언론사가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흔들리지 않는 위상을 다졌다는 완연한 증거일 것입니다. 특히나 언론통폐합이 사실상 해지된 1989년 당해에 전국에서도 가장 먼저 창간된 지역 신문이 경주신문이란 점은 신문창간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지역의 정치·경제·문화를 선도하고 개선하려는 선진적 시민의식이 가장 먼저 발현되었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그간 경주신문은 경주는 물론이려니와 경상북도의 중추적 언론으로서 사명을 다해 왔습니다. 지역신문의 주요 기능인 비판과 보완을 충실히 이행하며 시민들의 각종 민원과 요구를 대변하는 소통창구로서의 역할도 잘 수행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출향인이 밀집한 서울·경기권 출향인판을 대폭 보강해 경주와 수도권 출향인 간 간극을 크게 좁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주를 경주답게 보존하려는 의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온 지역신문이기에 그 가치관의 발현이 저희 경주고도보존회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믿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종이신문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경주신문도 그 시대적 변화에 초연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중요한 것이 경주신문만의 개성을 살리고 더욱 시민들과 독자들의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이라 믿습니다. 차제에 경주신문이 경주신문만의 것이 아닌 경주시민이 함께 만들고 지켜가야 하는 신문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출향인들도 이 점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경주신문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신문구독에 적극 참여하고 좋은 의견을 기고하는 한편 신문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30년 동안 경주의 파수꾼 노릇을 해온 경주신문에 대한 시민들의 가장 현명한 선택이자 역할이라 강조합니다. 이러한 각성이야말로 신문을 초월하여 경주와 경주시민의 권익을 지키는 일이기에 다시 한 번 독자제현의 참여를 촉구하며 창간 30주년의 축하에 가름합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늘 가슴에 품고 있는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애향의 신문, 경주신문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경주신문은 좋지 못한 언론환경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동안 변함없이 고향경주를 지켜와 경주시민들을 비롯한 출향인들에게도 항상 든든하고 정다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경주는 우리나라의 정신문화와 역사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이며 우리가 자긍심을 갖고 소중하게 가꾸고 지켜야 할 명품도시입니다. 경주신문은 오랜 시간동안 경주의 정체성과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소중한 자산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언론환경은 더욱 어려울 것이며 특히 신문의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진단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문이 아무리 큰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철학과 비전을 갖고 언론 본연의 책무에 변함없이 매진한다면 어려운 상황도 잘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주신문과 같은 지역을 지키는 언론의 경우 지역발전이라는 대승적 역할을 지향하면서 시민복리증진을 위해 지역문제에 더욱 심도 있게 접근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우리 경주의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경주시민들 뿐만 아니라 많은 출향인들은 앞으로도 경주신문이 경주를 굳건히 지켜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묵묵히, 굳건히 경주를 지켜온 전통과 역량을 갖춘 경주신문이라면 충분히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발전하는 경주신문의 모습을 진심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경주신문 창간 30주년을 축하드리며 정학구 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기자여러분의 노고에 큰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항상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경주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준 경주신문의 창간30주년을 축하하며 그 동안의 역할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경주발전을 위해 건강하고 바른 신문을 만들기 위해 애쓰시는 정학구 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격려를 보냅니다. 경주신문은 지난 30년 간 척박한 지역 언론 환경 속에서도 시민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고향 경주와 서울을 비롯한 경향각지의 출향인들을 소통하게 만든 유일한 창구로서 역할을 다해와 많은 출향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신문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경주신문과 같은 지역에서 튼튼한 뿌리를 내린 신문의 경우 지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경주신문은 지난 30년 간 올바른 길을 걸으며 그 역할을 훌륭히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경주신문이 지난 30년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직 경주발전과 경주사회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은 매우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써 경주신문이 서울을 비롯한 경향각지 많은 출향인들에게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기 많은 출향인사들이경주신문을 통해 고향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경주에서는 경주신문을 통해 출향인들의 소식을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매년 고향발전을 위해 ‘경주천년나들이’와 같은 뜻있는 행사를 마련해 고향경주와 출향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역할은 경주신문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경주신문은 30년 역사와 저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도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경향각지 출향인들도 경주신문의 역할을 더 기대하며 큰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경주신문 창간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고 사랑받는 신문으로 더욱 뻗어 나가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지역의 대표 언론사로서 지역 발전을 위해 의지를 밝히며 출범한 경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경주시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열정을 쏟아오신 정학구 대표님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동안 경주신문은 정론직필이라는 한결같은 사명으로 지역의 소식과 삶의 현장을 전하는 것은 물론 우리 경주의 여러 가지 비전을 제시하는 등, 지역의 언론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해왔습니다. 창간 이후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경주신문은 창간 정신에 부합하는 보도 기조를 유지해오면서 지역의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언론사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시민과 소통하는 언론사로 영원하기를 바라며 시민들의 사랑과 믿음이 충만한 지역신문으로 발전하기를 기원드립니다. 경주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다시 한번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경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동안 지역발전과 지역민들의 이익 대변을 위해 노력해주신 경주신문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주신문은 경주지역의 대표 언론으로서 무려 30년 동안 지역의 경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뉴스를 신속하고 깊이 있게 전달해왔습니다. 특히, 지역의 동향과 차별화된 정보들을 보도하며 이슈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과 이해를 도모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의 성장,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 수력, 양수 발전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국내 최대 발전회사이자 경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지역기업입니다. 또한 ‘종합에너지기업으로의 재도약’이라는 목표 아래 신재생, 해외사업 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구성원 간 소통·공감 및 화합을 바탕으로 일하는 직원이 대우 받는 조직 문화를 조성하고, 안전하고 투명한 원전 건설과 운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역과 함께 종합에너지기업으로 도약하는 한국수력원자력에 많은 사랑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경주신문>도 창간을 맞아 높이 도약해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더 큰 신뢰와 사랑을 받는 언론이 되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경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임직원과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무한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경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경주신문은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으로 지역 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책임감 있는 자세로 짚어내며 전해왔습니다. 특히 다른 무엇보다도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사업을 펼치며 지역 문화의 발전과 성숙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난 30년간 경주시의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활성화와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뉴스와 정보를 전달해 온 경주신문 임직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찬란한 천년신라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경주가 올바르고 성숙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효과적으로 문화를 다루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경북도와 경주시, 경주엑스포는 올해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열며 경주와 신라의 유구한 역사 문화유산을 대한민국의 발전된 첨단 기술과 접목해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경주신문도 지금과 같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다양한 문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지역 문화의 인프라 확대를 이끄는 언론으로 위상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할 것을 기대합니다. 문화로 앞서가는 선진 도시 건설에 경주신문의 지속적인 관심과 뜨거운 성원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경주신문이 시민들의 알권리를 추구하며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언론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창간 30주년을 축하드리며, 경주신문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한결같이 그리고 묵묵하게 경주시민의 권익 신장과 지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역사와 전통의 경주신문 창간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경주신문은 1989년 12월 15일 창간호 발행 이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추구하며 지역사회의 참언론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또한 지역대표 언론사로서 그동안 공정하고 진실한 보도와 균형 잡힌 비판을 통해 지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등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경주신문은 우리가 사는 경주의 소식을 풍성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지역 언론으로서 지역 곳곳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전했습니다. 때로 우리 지역에 예기치 못한 재해나 각종 사고와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는 지역의 중심에 서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든든한 등불이 되었습니다. 지방자치와 분권의 시대에 지역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참여와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경제, 문화, 산업,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욕구와 여론이 혼재하기 때문에 이를 바르게 대변하고 참여와 소통을 이끄는 언론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정보의 양이 증가하고 다양해짐에 따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된 지역 밀착 정보는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주신문의 성장과 발전은 경주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발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 언론의 푯대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정학구 대표님을 비롯한 경주신문의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달려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정론직필의 초심을 지키며 경주시민의 희망과 꿈 그리고 애환을 같이 나누고 지역 발전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지역 정론지로서 지금처럼 늘 우리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창간이래 지난 30년간 묵묵히 땀과 열정으로 올바른 여론 선도에 앞장서 온 정학구 발행인을 포함한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격려의 말씀을 드리며, 경주신문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경주신문은 지역의 대표 주간지로써 독자의 알권리를 위해 균형 잡힌 시각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건전한 지역 언론으로써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지역 현안의 문제를 발굴하여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여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의 꾸준한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언론매체의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더 해가는 시기에 경주지역의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고, 창조적인 언론 문화의 확립을 위해 노력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균형 있는 시각으로 진실을 소신 있게 전달하는 언론, 우리 사회의 성숙한 여론형성에 노력하는 언론, 단순히 뉴스 공급자가 아닌, 시민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건강한 언론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참된 지역 언론지로 행복한 사회 구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줄 것을 부탁드리며, 희망찬 미래를 열어갈 경주신문 창간 30주년을 다시 한 번축하드립니다. 임직원과 애독자 여러분 모두의 무궁한 발전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989년 지방자치와 지역민주주의의 실현과 시민권익의 신장을 위한 정론직필로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이루고자 창간된 경주신문은 30년이란 짧지 않는 세월동안 지역발전과 시민 권리를 수호하는데 그 공로가 지대했으며, 지역민의 대변지로서 언론창달의 역할을 다해온데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기로 접어든 30년 역사와 전통에 걸맞게 앞으로도 지역문화를 선도자로서, 경주의 발전과 시민의 권익을 위한 감시자로서, 보호자로서의 그 역할을 다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역 언론은 지방자치시대에 꼭 있어야 할 소금과 같은 존재로 지역민주정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할 것입니다. 토크빌은「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지방자치가 대중민주주의와 자유를 보장하고 지역의 주민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형평성을 확보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복지의 배분에 있어서의 효율적 배분수단의 방법을 제시하고 감시하는데 언론의 역할은 필수적인 사명이라 했습니다. 경주신문은 그 동안 선도자로서 지역실정에 적합한 발전전략을 제시해 왔고, 감시자로서 주민의 생활편익과 복지증진을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소금의 역할을 다해주신데 대해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선도하는 신문으로서의 변함없는 활동으로 참된 지방화가 실현돼 풍요로운 경주가 되고 또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시면 합니다. 새로운 도전으로 지역사회의 풍토를 건전하게 조성하고 올곧은 언론관으로 시민의 권익보호와 지역의 발전을 선도하고 기여하며 그늘진 곳을 두루 살피고 밝혀주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신문으로서 우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기를 기대합니다. 30년 동안 언론의 투철한 사명감으로 변함없는 노력을 경주해 오신 임직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경주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한 세대를 이끌어온 경주신문의 창간30주년을 큰 박수로 축하 드립니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나라다운 민주국가로 존재함은 그 사회의 언론이 제대로 책임과 역할을 자유롭게 다 할수 있는 가에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높고 가진자의 잘못을 용기있게 꾸짖고, 약한자의 소리를 힘있게 대변해 소수의 부정한 자가 다수의 정의를 억압하거나, 다수의 무지가 소수의 진리를 탄압하지 못하도록 대변해 소외된 계층이 없도록 해야 겠습니다. 모든 현상의 차이는 오로지 인식에 의한 차이 이므로 그 인식에 의한 정의를 바르게 인식시키는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좋은 세상을 멀리하고 편리만을 추구하는 극도의 개인적 이기주의 탓으로 에너지 과다소비로 인한 환경문제, 저출산과 빈부격차가 날로 심각해 지고,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으며 섬김에 예절은 무시되고 있어 생산과 복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통제 불능의 전자통신문화의 남용과 오염으로 인간존엄성과 공동번영의 길은 날로 멀어져 가고만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에서 더많이 함께 하도록 하고, 인간중심에서 지구중심으로, 자기중심에서 상대중심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사회의 이익추구는 윤리적 마음에서, 근검절약을 생활화 하고 나눔과 봉사로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도록 이끌어 갔으면 합니다. 특히 천년고도 시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유도해 물려받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시간으로부터 지켜내고, 배우고 익혀 그 가치를 즐기며, 시대와 미래를 위해 새문화창조의 지혜를 열어 가는 참된 역사문화의식을 선도하는 값진 언론의 길로 나아가실 것을 기원 드립니다.
경주의 대표 언론으로서 지역여론을 선도하고 다양한 정보, 지역사회와 지방자치 발전에 앞장서며, 언론문화의 새장을 열어가는 경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먼저 시민들에게 다양하고 알찬 지식과 새로운 생활정보를 제공하고, 지방언론의 참모습을 보여주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계시는 정학구 발행인님과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덧 창간 30돌을 맞이한 경주신문은 지난 30년간 공정한 보도와 진정한 비판의식으로 시민의 눈과 귀가 되어 민의를 정확히 대변하고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등 지역의 생생한 소식지로서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신문으로 그 역할을 다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며, 우리 경주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희망찬 정론지로 각광 받아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주민의 친근한 벗이 되어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주민의 참여와 관심을 유도함으로써 지역신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경주신문은 진정한 언론봉사를 통해 지방화시대를 선도함으로써 애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우리 사회의 정의와 양심을 대변하는 언론으로서 우리 시민들에게 큰 위안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서로가 소통하고 열린 마음으로 더욱 다가설 수 있도록 다양한 목소리와 이슈들을 올곧게 전달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경주신문이 우리 경주의 희망찬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애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수준 높은 정보를 가득 담아 제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경주시의회도 시민만 바라보고 시민을 위하여 현장을 발로 뛰는 의회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어린 격려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경주신문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귀사의 무궁한 발전과 임직원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 드리고, 창간 정신처럼 새로운 도전을 통해 건전한 지역사회 풍토를 조성하고 올바른 언론관으로 시민의 권익보호와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신문이 되도록 항상 옆에서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국회의원 김석기입니다. 지역의 민심을 대변하며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왔던 경주신문이 창간한지도 어언 30주년을 맞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경주신문은 지방화, 주민자치시대 도래의 한 가운데서 창간돼 오늘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발자취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주신문의 30년은 지역의 가치를 계승·발전시키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증언해 온 경주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에 앞장서며, 시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사회의 미래를 밝히면서 언론이 가져야할 사명감을 충실히 이행해왔습니다. 경주신문의 30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정학구 대표님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 경주는 신라천년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재건하며 대한민국 대표 관광도시로의 재도약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지역 발전과 시민 행복을 추구해야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한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약과 변혁을 이루고 웅비하는 새천년 역사를 희망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경주의 모든 부문, 계층 간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결집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도약과 변혁으로 경주의 잠재력을 경쟁력으로 바꾸어 나가는 길에 경주신문이 앞으로도 크게 기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경주신문이 시민들의 믿음과 신뢰 속에서 언론이 가져야 할 본연의 사명을 지키며, 경주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정론지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 번 경주신문의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임직원 모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정론지 경주신문이 창간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올곧은 신문으로 지역민에게 한층 다가서는 경주신문에 대한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정리=이성주 기자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정리=이성주 기자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정리=이성주 기자 경주신문보도 이슈 -지방자치시대 개막 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선거 실시, 경주시 17개 동지역 시의원 17명, 경주군 12개 읍면지역 13명(안강읍 2명) 탄생/1991년 6월 20일 광역의원(도의원)선거 실시, 경주시 3개 지구 3명(임창구, 김경오, 손경호), 경주군 3개 지구 3명(이해길, 최원병, 우영길)/1995년 6월 27일 경주시장선거 이원식 후보 당선, 백상승 후보 477표로 석패. 통합 제2대 경주시의회 박재우 의장, 이영식 부의장 체제 출범. -태풍 글래디스 강타, 안강읍 침수, 산내면 등 대부분 지역 큰 피해 1991년 8월 25일 동해안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글래디스로 인해 형산강 하류지역인 안강읍 소재지 일대와 농경지 등이 모두 침수되는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설계당선작 논란 1992년 현재 모습의 경주실내체육관 설계 당선작이 발표돼 논란이 심했다. 예산과 장소, 상징성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1997년 6월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지역 교수들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강하며 반발하며 ‘황성공원 살리기 발대식’을 갖고 맞섰다. -경북도청 경주 유치전 1992년부터 공론화된 경북도청 이전과 관련 경주에 유치하자는 시민들의 열망은 대단했다. 당시 경주시민과 경주군민 보문단지 육부촌에서 ‘경주권 도청유치 범시군민 결의대회’와 세미나를 열고 대대적인 경북도청 유치에 나섰다. 당시 경주신문은 경북도청 경주유치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전문가 릴레이 지상토론을 실시했다. -경마장 유치운동과 무산 1992년 2월 28일 경주시와 ㈜마사회가 보문단지 주변에 경마장 신설을 발표했으나 사업이 지연되며 결국 무산됐다. 경마장 부지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다. -천군동 쓰레기매립장 착공 1993년 3월 난항을 겪던 광역쓰레기매립장이 착공에 들어갔다. 천군동 피막마을 일대 10만5000평 규모의 쓰레기매립장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1년 이상을 줄다리기를 하다 마침내 공사에 들어갔다. -경주시 시청사 군부대 부지, 황성공원 옆 이전 백지화 1989년부터 동천동 군부대부지로 경주시 청사 이전이 추진됐다. 그러나 부대부지 매입을 두고 육군본부와 경북도 등 관련기관에 논의를 거듭했으나 경주시가 포기함으로써 1993년 10월 백지화됐다. 경주시는 당초 경주시 묘목장 일대, 황성공원 남편 및 비행장터, 동천청사 및 노동청사 확장 등의 계획을 세웠었다. 1995년 경주시가 황성공원 동편 묘목장 일대에 통합시청사를 추진했으나 1996년 지역시민사회단체와 각계인사들이 황성공원을 지켜야한다며 강하게 반발해 무산됐다. 당시 경주시의회는 경주시의 안건을 의결해 시민사회의 반발을 쌌다. -경주시·군 통합시대 1995년 1월 1일부터 경주시와 경주군 통합행정이 시작됐다. 1월 3일 박광희 통합경주시장 취임식, 5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통합시 발족행사를 가졌다. -최악의 가뭄, 그리고 남산산불 발생 1996년 1월부터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덕동댐을 비롯해 경주지역 대부분의 저수지들이 계속되는 가뭄으로 메말랐다. 경주시는 그해 1월 덕동댐 저수지는 22.8%에 불과해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가뭄으로 인한 대형 산불도 발생했다. 1996년 3월 4일 낮 1시 20분경 충효동 뒷산에 불이나 김유신장군묘가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1997년 2월 20일 낮 12시35분경 문화유적의 보고인 경주 남산에 대형 산불이 발생해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산불감시초소에서 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주민이 폐기물을 태우다 산불로 이어졌다. 1997년 4월 28일에는 안강읍 산대1리 어래산 일대에 산불이 발생해 산불을 진압하던 경주시 공무원 박모씨가 숨지고 일부 공무원들이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이변과 초접전의 총선, 14대 민주당 이상두, 15대 무소속 김일윤, 임진출 당선 기염 제14대 8.2 보궐선거 민주당 당선 고 서수종 국회의원의 안타까운 타계로 실시된 1994년 8월 2일 경주시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경주신문이 지역신문으로서는 처음으로 후보자 초청 대담토론회를 개최해 큰 반향을 불러왔다. 당시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이상두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1996년 4.11총선에서는 기존정당의 불신 속에 무소속이 돌풍을 일으켰다. 지역에서 유리한 당시 여권이었던 신한국당 공천을 받은 갑선거구 황윤기 후보가 무소속 김일윤 후보에게, 을선거구 신한국당 백상승 후보는 임진출 무소속 후보에게 패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경주신문은 지역신문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제14대 총선 때부터 후보자초청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고속철 ‘건천-화천-내남’ 노선 결정과 백지화 논란 1996년 6월 8일 정부는 4년 동안 논란을 벌여온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노선이 도심통과노선인 정부안을 철회하고 우회노선인 새로운 제3안을 채택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7년 1월 29일 정부는 건천읍 화천리 역사를 중심으로 화천리 노선을 결정 발표했다.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부고속철이 경주를 거치지 않고 서울~부산 직선화 계획을 결정지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경주사회는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노선사수 범 시민단체협의회’를 조직해 강력히 반발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출발 1997년 5월 27일 ‘98경주세계문화엑스포’ 선포식을 갖고 상징인 ‘신라천년의 미소’를 선보였다. 1998년 9월 11일 98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개막돼 2개월 동안 304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오성상호신용금고 무너지고 신라백화점 부도 처리 1997년 6월 16일 경주지역 제2금융기관인 오성상호신용금고가 불법 부실대출을 과다하게 보유한 사실이 적발돼 재정경제원의 경영관리에 들어갔다. 당시 오성금고는 총자산이 40억원에 불과했으나 당시 경주상공회의소 김정수 회장에게 600억원을 불법 대출, 이중 4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해 전격 경영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1997년 6월 26일 경주최대의 백화점인 신라백화점이 당일 당좌거래정지로 부도처리 됐다. 신라백화점은 4억8000만원의 어음을 결재하지 못했다. -경주시장, 경주시의회 의장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1998년 6.4지방선거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경주시장과 광역의원이 모두 압도적인 표로 당선됐지만 8월 21일 이원식 경주시장과 이장수 경주시의회 의장 등 8명의 시의원들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지역 정가는 큰 파문이 일었다. -천군동 쓰레기소각장 설치 반발 1998년 경주시가 찬군동 광역쓰레기 매립장 내에 소각장 건설을 추진하자 인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다이옥신 문제의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소각장이 보문관광단지와 인접해 있어 논란이 됐다. -경주의 큰 별 고청 윤경렬 선생 타계 1999년 11월 30일 오후 10시 15분 20세기 마지막 신라인, 신라문화의 대명사로 존경 받던 고청 윤경렬 선생이 타계했다. 1916년 함북 주흘에서 태어난 선생은 신라문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1949년 경주에 정착한 후 박물관학교 설립, 신라문화동인회 창립, 새벌향연의 밤 개최 등 많은 문화 활동을 펼쳤으며 신라이야기, 신라의 아름다움, 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등 많은 저술로 신라문화를 재조명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정리=이성주 기자 경주신문보도 이슈 -지방자치시대 개막 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선거 실시, 경주시 17개 동지역 시의원 17명, 경주군 12개 읍면지역 13명(안강읍 2명) 탄생/1991년 6월 20일 광역의원(도의원)선거 실시, 경주시 3개 지구 3명(임창구, 김경오, 손경호), 경주군 3개 지구 3명(이해길, 최원병, 우영길)/1995년 6월 27일 경주시장선거 이원식 후보 당선, 백상승 후보 477표로 석패. 통합 제2대 경주시의회 박재우 의장, 이영식 부의장 체제 출범. -태풍 글래디스 강타, 안강읍 침수, 산내면 등 대부분 지역 큰 피해 1991년 8월 25일 동해안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글래디스로 인해 형산강 하류지역인 안강읍 소재지 일대와 농경지 등이 모두 침수되는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설계당선작 논란 1992년 현재 모습의 경주실내체육관 설계 당선작이 발표돼 논란이 심했다. 예산과 장소, 상징성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1997년 6월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지역 교수들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강하며 반발하며 ‘황성공원 살리기 발대식’을 갖고 맞섰다. -경북도청 경주 유치전 1992년부터 공론화된 경북도청 이전과 관련 경주에 유치하자는 시민들의 열망은 대단했다. 당시 경주시민과 경주군민 보문단지 육부촌에서 ‘경주권 도청유치 범시군민 결의대회’와 세미나를 열고 대대적인 경북도청 유치에 나섰다. 당시 경주신문은 경북도청 경주유치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전문가 릴레이 지상토론을 실시했다. -경마장 유치운동과 무산 1992년 2월 28일 경주시와 ㈜마사회가 보문단지 주변에 경마장 신설을 발표했으나 사업이 지연되며 결국 무산됐다. 경마장 부지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다. -천군동 쓰레기매립장 착공 1993년 3월 난항을 겪던 광역쓰레기매립장이 착공에 들어갔다. 천군동 피막마을 일대 10만5000평 규모의 쓰레기매립장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1년 이상을 줄다리기를 하다 마침내 공사에 들어갔다. -경주시 시청사 군부대 부지, 황성공원 옆 이전 백지화 1989년부터 동천동 군부대부지로 경주시 청사 이전이 추진됐다. 그러나 부대부지 매입을 두고 육군본부와 경북도 등 관련기관에 논의를 거듭했으나 경주시가 포기함으로써 1993년 10월 백지화됐다. 경주시는 당초 경주시 묘목장 일대, 황성공원 남편 및 비행장터, 동천청사 및 노동청사 확장 등의 계획을 세웠었다. 1995년 경주시가 황성공원 동편 묘목장 일대에 통합시청사를 추진했으나 1996년 지역시민사회단체와 각계인사들이 황성공원을 지켜야한다며 강하게 반발해 무산됐다. 당시 경주시의회는 경주시의 안건을 의결해 시민사회의 반발을 쌌다. -경주시·군 통합시대 1995년 1월 1일부터 경주시와 경주군 통합행정이 시작됐다. 1월 3일 박광희 통합경주시장 취임식, 5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통합시 발족행사를 가졌다. -최악의 가뭄, 그리고 남산산불 발생 1996년 1월부터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덕동댐을 비롯해 경주지역 대부분의 저수지들이 계속되는 가뭄으로 메말랐다. 경주시는 그해 1월 덕동댐 저수지는 22.8%에 불과해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가뭄으로 인한 대형 산불도 발생했다. 1996년 3월 4일 낮 1시 20분경 충효동 뒷산에 불이나 김유신장군묘가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1997년 2월 20일 낮 12시35분경 문화유적의 보고인 경주 남산에 대형 산불이 발생해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산불감시초소에서 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주민이 폐기물을 태우다 산불로 이어졌다. 1997년 4월 28일에는 안강읍 산대1리 어래산 일대에 산불이 발생해 산불을 진압하던 경주시 공무원 박모씨가 숨지고 일부 공무원들이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이변과 초접전의 총선, 14대 민주당 이상두, 15대 무소속 김일윤, 임진출 당선 기염 제14대 8.2 보궐선거 민주당 당선 고 서수종 국회의원의 안타까운 타계로 실시된 1994년 8월 2일 경주시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경주신문이 지역신문으로서는 처음으로 후보자 초청 대담토론회를 개최해 큰 반향을 불러왔다. 당시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이상두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1996년 4.11총선에서는 기존정당의 불신 속에 무소속이 돌풍을 일으켰다. 지역에서 유리한 당시 여권이었던 신한국당 공천을 받은 갑선거구 황윤기 후보가 무소속 김일윤 후보에게, 을선거구 신한국당 백상승 후보는 임진출 무소속 후보에게 패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경주신문은 지역신문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제14대 총선 때부터 후보자초청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고속철 ‘건천-화천-내남’ 노선 결정과 백지화 논란 1996년 6월 8일 정부는 4년 동안 논란을 벌여온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노선이 도심통과노선인 정부안을 철회하고 우회노선인 새로운 제3안을 채택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7년 1월 29일 정부는 건천읍 화천리 역사를 중심으로 화천리 노선을 결정 발표했다.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부고속철이 경주를 거치지 않고 서울~부산 직선화 계획을 결정지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경주사회는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노선사수 범 시민단체협의회’를 조직해 강력히 반발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출발 1997년 5월 27일 ‘98경주세계문화엑스포’ 선포식을 갖고 상징인 ‘신라천년의 미소’를 선보였다. 1998년 9월 11일 98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개막돼 2개월 동안 304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오성상호신용금고 무너지고 신라백화점 부도 처리 1997년 6월 16일 경주지역 제2금융기관인 오성상호신용금고가 불법 부실대출을 과다하게 보유한 사실이 적발돼 재정경제원의 경영관리에 들어갔다. 당시 오성금고는 총자산이 40억원에 불과했으나 당시 경주상공회의소 김정수 회장에게 600억원을 불법 대출, 이중 4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해 전격 경영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1997년 6월 26일 경주최대의 백화점인 신라백화점이 당일 당좌거래정지로 부도처리 됐다. 신라백화점은 4억8000만원의 어음을 결재하지 못했다. -경주시장, 경주시의회 의장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1998년 6.4지방선거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경주시장과 광역의원이 모두 압도적인 표로 당선됐지만 8월 21일 이원식 경주시장과 이장수 경주시의회 의장 등 8명의 시의원들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지역 정가는 큰 파문이 일었다. -천군동 쓰레기소각장 설치 반발 1998년 경주시가 찬군동 광역쓰레기 매립장 내에 소각장 건설을 추진하자 인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다이옥신 문제의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소각장이 보문관광단지와 인접해 있어 논란이 됐다. -경주의 큰 별 고청 윤경렬 선생 타계 1999년 11월 30일 오후 10시 15분 20세기 마지막 신라인, 신라문화의 대명사로 존경 받던 고청 윤경렬 선생이 타계했다. 1916년 함북 주흘에서 태어난 선생은 신라문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1949년 경주에 정착한 후 박물관학교 설립, 신라문화동인회 창립, 새벌향연의 밤 개최 등 많은 문화 활동을 펼쳤으며 신라이야기, 신라의 아름다움, 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등 많은 저술로 신라문화를 재조명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1989년 12월 15일 첫 창간호를 발행한 경주신문은 30년 동안 지역의 정치와 행정, 역사문화예술, 교육 등 각 분야에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경주의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 인재발굴을 주도했으며 경주시민이 지역사회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며 자치의식을 높이는 정책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또한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지역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경주신문 30년 역사는 굴곡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역신문으로서 지향해야할 지역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은 앞으로 계속된다. 정리=이성주 기자 경주신문보도 이슈 -지방자치시대 개막 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선거 실시, 경주시 17개 동지역 시의원 17명, 경주군 12개 읍면지역 13명(안강읍 2명) 탄생/1991년 6월 20일 광역의원(도의원)선거 실시, 경주시 3개 지구 3명(임창구, 김경오, 손경호), 경주군 3개 지구 3명(이해길, 최원병, 우영길)/1995년 6월 27일 경주시장선거 이원식 후보 당선, 백상승 후보 477표로 석패. 통합 제2대 경주시의회 박재우 의장, 이영식 부의장 체제 출범. -태풍 글래디스 강타, 안강읍 침수, 산내면 등 대부분 지역 큰 피해 1991년 8월 25일 동해안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글래디스로 인해 형산강 하류지역인 안강읍 소재지 일대와 농경지 등이 모두 침수되는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설계당선작 논란 1992년 현재 모습의 경주실내체육관 설계 당선작이 발표돼 논란이 심했다. 예산과 장소, 상징성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1997년 6월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지역 교수들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강하며 반발하며 ‘황성공원 살리기 발대식’을 갖고 맞섰다. -경북도청 경주 유치전 1992년부터 공론화된 경북도청 이전과 관련 경주에 유치하자는 시민들의 열망은 대단했다. 당시 경주시민과 경주군민 보문단지 육부촌에서 ‘경주권 도청유치 범시군민 결의대회’와 세미나를 열고 대대적인 경북도청 유치에 나섰다. 당시 경주신문은 경북도청 경주유치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전문가 릴레이 지상토론을 실시했다. -경마장 유치운동과 무산 1992년 2월 28일 경주시와 ㈜마사회가 보문단지 주변에 경마장 신설을 발표했으나 사업이 지연되며 결국 무산됐다. 경마장 부지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다. -천군동 쓰레기매립장 착공 1993년 3월 난항을 겪던 광역쓰레기매립장이 착공에 들어갔다. 천군동 피막마을 일대 10만5000평 규모의 쓰레기매립장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1년 이상을 줄다리기를 하다 마침내 공사에 들어갔다. -경주시 시청사 군부대 부지, 황성공원 옆 이전 백지화 1989년부터 동천동 군부대부지로 경주시 청사 이전이 추진됐다. 그러나 부대부지 매입을 두고 육군본부와 경북도 등 관련기관에 논의를 거듭했으나 경주시가 포기함으로써 1993년 10월 백지화됐다. 경주시는 당초 경주시 묘목장 일대, 황성공원 남편 및 비행장터, 동천청사 및 노동청사 확장 등의 계획을 세웠었다. 1995년 경주시가 황성공원 동편 묘목장 일대에 통합시청사를 추진했으나 1996년 지역시민사회단체와 각계인사들이 황성공원을 지켜야한다며 강하게 반발해 무산됐다. 당시 경주시의회는 경주시의 안건을 의결해 시민사회의 반발을 쌌다. -경주시·군 통합시대 1995년 1월 1일부터 경주시와 경주군 통합행정이 시작됐다. 1월 3일 박광희 통합경주시장 취임식, 5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통합시 발족행사를 가졌다. -최악의 가뭄, 그리고 남산산불 발생 1996년 1월부터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덕동댐을 비롯해 경주지역 대부분의 저수지들이 계속되는 가뭄으로 메말랐다. 경주시는 그해 1월 덕동댐 저수지는 22.8%에 불과해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가뭄으로 인한 대형 산불도 발생했다. 1996년 3월 4일 낮 1시 20분경 충효동 뒷산에 불이나 김유신장군묘가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1997년 2월 20일 낮 12시35분경 문화유적의 보고인 경주 남산에 대형 산불이 발생해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산불감시초소에서 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주민이 폐기물을 태우다 산불로 이어졌다. 1997년 4월 28일에는 안강읍 산대1리 어래산 일대에 산불이 발생해 산불을 진압하던 경주시 공무원 박모씨가 숨지고 일부 공무원들이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이변과 초접전의 총선, 14대 민주당 이상두, 15대 무소속 김일윤, 임진출 당선 기염 제14대 8.2 보궐선거 민주당 당선 고 서수종 국회의원의 안타까운 타계로 실시된 1994년 8월 2일 경주시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경주신문이 지역신문으로서는 처음으로 후보자 초청 대담토론회를 개최해 큰 반향을 불러왔다. 당시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이상두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1996년 4.11총선에서는 기존정당의 불신 속에 무소속이 돌풍을 일으켰다. 지역에서 유리한 당시 여권이었던 신한국당 공천을 받은 갑선거구 황윤기 후보가 무소속 김일윤 후보에게, 을선거구 신한국당 백상승 후보는 임진출 무소속 후보에게 패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경주신문은 지역신문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제14대 총선 때부터 후보자초청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고속철 ‘건천-화천-내남’ 노선 결정과 백지화 논란 1996년 6월 8일 정부는 4년 동안 논란을 벌여온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노선이 도심통과노선인 정부안을 철회하고 우회노선인 새로운 제3안을 채택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7년 1월 29일 정부는 건천읍 화천리 역사를 중심으로 화천리 노선을 결정 발표했다.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부고속철이 경주를 거치지 않고 서울~부산 직선화 계획을 결정지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경주사회는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노선사수 범 시민단체협의회’를 조직해 강력히 반발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출발 1997년 5월 27일 ‘98경주세계문화엑스포’ 선포식을 갖고 상징인 ‘신라천년의 미소’를 선보였다. 1998년 9월 11일 98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개막돼 2개월 동안 304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오성상호신용금고 무너지고 신라백화점 부도 처리 1997년 6월 16일 경주지역 제2금융기관인 오성상호신용금고가 불법 부실대출을 과다하게 보유한 사실이 적발돼 재정경제원의 경영관리에 들어갔다. 당시 오성금고는 총자산이 40억원에 불과했으나 당시 경주상공회의소 김정수 회장에게 600억원을 불법 대출, 이중 4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해 전격 경영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1997년 6월 26일 경주최대의 백화점인 신라백화점이 당일 당좌거래정지로 부도처리 됐다. 신라백화점은 4억8000만원의 어음을 결재하지 못했다. -경주시장, 경주시의회 의장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1998년 6.4지방선거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경주시장과 광역의원이 모두 압도적인 표로 당선됐지만 8월 21일 이원식 경주시장과 이장수 경주시의회 의장 등 8명의 시의원들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지역 정가는 큰 파문이 일었다. -천군동 쓰레기소각장 설치 반발 1998년 경주시가 찬군동 광역쓰레기 매립장 내에 소각장 건설을 추진하자 인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다이옥신 문제의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소각장이 보문관광단지와 인접해 있어 논란이 됐다. -경주의 큰 별 고청 윤경렬 선생 타계 1999년 11월 30일 오후 10시 15분 20세기 마지막 신라인, 신라문화의 대명사로 존경 받던 고청 윤경렬 선생이 타계했다. 1916년 함북 주흘에서 태어난 선생은 신라문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1949년 경주에 정착한 후 박물관학교 설립, 신라문화동인회 창립, 새벌향연의 밤 개최 등 많은 문화 활동을 펼쳤으며 신라이야기, 신라의 아름다움, 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등 많은 저술로 신라문화를 재조명하는데 일생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