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참여기관들은 하나같이 파견교사들에 대해 ‘장애아동들이 활동하는 곳에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장 많은 인원이 파견 나가 있는 경희학교에서는 ‘파견교사들이 학교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아주 중요하며, 현직 교사들만큼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희학교의 경우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특수학교로 1학급에 6~7명으로 구성해 총 22학급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중 4학급에 4명의 파견교사가 학생들의 학교생활(화장실, 급식지도 등)을 보조해주고 있다. 경희학교 이난희 교무부장은 “경희학교는 중증장애학생들이 교육받는 교육기관으로 올바른 교육활동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년 일자리에 참여하신 분들께서는 경력이 풍부하시고,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이분들은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많은 경험치를 쌓아서 오신 분들이라 현장에 금방 적응했고,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상황별 지원이 필요한데 개별적 학습활동에 참여할 때는 개별적 지원을 통한 협조를 해주시고, 급식이나 일과 중 일상생활 지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해주시기에 원활히 학교의 일상이 운영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또,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파견교사들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경희학교는 사업이 지역에서 실시하는 동안은 지속적인 참여를 바라며, 사업이 제대로 지역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보완되어야 할 점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난희 교무부장은 “이 사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경희학교에서는 지속적으로 참여를 할 것입니다. 비단 저희뿐만 아니라 장애아동이 지내는 모든 기관에서는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운영상 모든 참여 기관은 위탁 사업장이 됩니다. 따라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부득이하게 파견교사분들이 상해를 입거나 손해가 생기는 경우 지원해드릴 방법이 없어 답답합니다. 이런 부분을 해결할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경희학교는 자체적으로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번 경력형 일자리 사업 진행시 파견교사분들을 대상으로 선행교육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고 말했다. 한편,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사업은 고용노동부 공모사업으로 만50세~70세 미만 퇴직 전문 인력에게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민간 일자리로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다. 2019년부터 시행, 지역은 올해 처음 시행했으며 가경사회서비스지원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 오는 2024년부터는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힘들었는데, 짧게나마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학원 강사 15년, 방과 후 수업 강사로 6년을 근무했던 이란희 씨.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서 잠시 휴식을 위해 일을 손에서 놓았던 것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재취업이 어려워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탓에 다시 일을 쉬게 됐다. “방과 후 수업은 제가 로봇과 드론으로 진행했었는데, 대회에서 상도 타고, 좋은 성적을 냈지만, 아무래도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학부모들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학부모들의 눈이 높아진 만큼, 재취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다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거란 기대감이 낮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재취업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질 즈음에 그는 고용센터에서 진행하는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으로 장애아동 돌봄 보조교사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 걱정도 됐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있기에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업무적인 부분은 다르지만, 항상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해왔었고, 그 중에는 장애아동들도 있었기에 이곳에서의 일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제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중간에 투입이 된 것이라 정해진 업무가 아니라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문제긴 합니다(웃음)” 이어 그는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이 중년들에게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제도지만 보완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고 했다. 지원할 수 있는 업종의 다양화와 지속성, 참여자들에 대한 교육이 바로 그것.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은 연속으로 2회까지 가능하지만, 사업에 다시 신청하고 선정되어야 가능하다. “파견교사들이 나가는 곳이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곳이고 특히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다 보니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적어도 기관에서 파견교사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통해 우선권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파견기관이 조금 더 다양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퇴직 중년들의 다양한 경험치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업무가 다양해져야 각 분야의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이 제도가 우리 지역에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 것이 먼저겠죠(웃음). 중년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주는 제도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으면 합니다”
“파견 교사 모두가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협업이 잘되고, 현장 적응이 빠르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많이 느낍니다.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업무로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가정폭력상담, 재가노인복지센터 등에서 사회복지사로 경력을 쌓아온 최연임 씨는 최근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으로 장애아동 돌봄 교사에 도전했다. 사회복지 업무 중에서도 장애인 쪽은 처음이라 경험을 해보고 싶어 지원하게 됐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걱정은 많이 됐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상담 쪽 일을 오래 해서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돌보는 일 자체는 처음 이었습니다. 저는 2명을 전담해서 돌보는 중인데,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덩치는 성인과 같은데 정신연령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돌봐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금방 익숙해져 지금은 잘 돌보고 있습니다”, “특히나 장애아동 돌봄 같은 사회복지현장에서 퇴직 중년들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파견 교사 10명 중 제가 가장 젊지만, 제 눈에도 일이 수월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입니다” 연임 씨는 새로운 일을 경험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경력형 일자리 사업을 퇴직 중년들의 경력을 살리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디딤돌과 같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큰 장점은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같이 취업하기가 어려운 시기에 퇴직자들이 다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경력은 다르지만 지금껏 해온 경험치가 현장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직장생활을 관두면 사람을 사귈 기회가 줄어드는데 이렇게 다시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새로운 인연과 도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보완이 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고 강조했다. “너무 좋은 제도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파견 교사들의 안전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가끔 현장에서 아이들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다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근무 중 발생하는 부상에 대한 대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지역에서 시행하는 것이라 참여 기관이 많지 않아, 파견 교사들 대부분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교통비의 부분이 지원이 된다면, 거리가 멀더라도 더 많은 곳이 참여하게 될 것이고 참여자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고령화 사회인 만큼 사람들이 이 좋은 제도를 많이 이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60대와 지금의 60대는 너무 다르잖아요. 하지만 퇴직 시기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죠. 많은 사람들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아동 돌봄교사로 제2의 삶을 시작한 김정숙 씨. 그는 예전부터 관심 있었던 사회복지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결혼 전 사회복지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시험을 보고 사회복지사자격을 취득하게 됐습니다. 그 기회로 국가에서 실시하는 사회복지 7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나이 제한. 그것도 1개월 차이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많이 허탈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아깝게 응시하지 못하고, 그는 다시 대학에 들어가 유아교육을 전공해 어린이집에서 10여년간 근무했다. “어린이집에 근무하게 된 이유는 제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 육아도 자연스레 늘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었지요”, “작은 사심으로 시작했지만,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웃어도 예쁘고, 울어도 예쁜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지낸 시간을 돌아보니, 느긋한 제 성격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10년을 함께하고, 더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었지만 부친의 간병을 위해 일을 관두게 된다. 이후 다시 직장을 구하려 했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 병환을 간호하느라 몇 개월 쉬었다가 다시 직장을 알아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막막한 기분으로 지내는 때에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으로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매번 나이의 문턱을 넘지 못했는데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이 정말 반가웠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은 오래전 취득했지만, 사용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처음 일을 시작하는 정숙 씨. 아이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 장애아동돌봄 온라인 강의도 신청해 공부할 만큼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열정적이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어린아이들과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도 있습니다. 10년간 아이들을 돌봐왔지만 장애아동은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상황에 더 잘 대응하고, 아이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잘 보살피기 위해 강의를 신청했는데, 공부는 늘 어렵습니다.(웃음)”, “아이가 홀로 남았을 때를 걱정하는 부모, 자식보다 늦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홀로 남은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인 장치가 빨리 마련되어 부모의 걱정을 덜 수 있는 지역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어 시인대학도 다니고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시인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었죠. 머리로는 장애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에 대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장애아동 돌봄 보조교사로 일을 다시 시작한 김현숙 씨.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해왔다. 지금은 없어진 놀이방, 미술학원, 어린이집, 교회에서 아동들을 돌보는 일을 해오며, 항상 아이들과 함께 했다. “결혼과 동시에 경주로 내려와서도 꾸준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해왔어요. 대략 2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큰 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손자를 봐주고 쉬는 시간도 가질 겸해서 퇴직하게 됐습니다” 1년 정도 휴식시간을 가지면서도 그는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에 지원하면서 장애아동 돌봄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해왔기에 다시 일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았습니다. 단지 아이들의 정신은 어리지만 몸은 성인과도 같기에 그런 부분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첫날 출근했을 때는 ‘과연 내가 계속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반응만 보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이 되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만 앞서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에 현숙 씨의 가족들은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잘 돌볼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지금은 아이들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 “큰애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힘든 일을 하는 엄마 모습이 안쓰러웠나 봅니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장애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이들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이 나이에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또,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이들이 많이 순수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마음을 주는 만큼 아이들도 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느껴집니다” 또, 현숙 씨는 장애아동과 함께한 지난 시간이 보람되고 즐거운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아직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낄수 있어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아직 저는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 아직 나는 사회에 쓰임을 받는다는 사실이 저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은 바빠서 죽고, 나이 많은 사람은 심심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현역이라고 들었습니다. 제 나이 70~80세가 되어도 현역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영례 씨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왔다. 넉넉하지 못했던 형편에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그는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살림을 맡아했다. “제가 1957년생인데 그때는 우리나라가 매우 가난했던 시대였습니다. 더군다나 저의 부모님은 1.4 후퇴 때 피난을 내려오신 분으로 여자인 저까지 공부를 시키기는 어려워 어려서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만큼 결혼도 빨랐던 그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하며 지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공부를 하고 싶었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결혼한 저는 결혼해서도 생활이 힘든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하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물론 저도 남들처럼 공부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돈을 버는 일에만 급급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잠시 내려놓은 그는, 아들 둘을 결혼시키고, 하고 싶던 공부를 시작하려고 할 즈음에 손자들을 돌봐주기 시작했다. 더 늦으면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영례 씨는 손자들을 돌봐주면서도 틈틈이 공부해 검정고시를 치렀다. 이후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가정복지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그 어렵다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다.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며 사셨습니다. 어려웠던 형편에도 밥 동냥하러 오는 사람들을 빈손으로 보낸 적이 없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라서인지 저도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라는 것을 공부하게 됐고, 이제야 그 목표의 출발선에 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한 영례 씨. 그의 복지사로서 첫걸음은 장애아동 돌봄으로 시작하게 됐다. “두 아들과 손자들을 돌봐왔던 경험과 풍부한 사회경험이 장애아동 돌봄 역할을 하는데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돌보는 아이들이 손자들과 연령대가 비슷하기에 더욱 애정이 갑니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지 아이들 역시 잘 따라주고, 할머니인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이쁘다고 말해줄 때마다 행복감을 느낍니다”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면서 그는 많은 것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사회복지는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닌 함께 상생하는 것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선배 시민으로서 후배 시민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사회복지를 선택했으나, 그것은 나의 오만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돕는 것이 아니라 같이 상생하며 성장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느끼는 하루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나이도 많은 제가 사회복지사로서 시작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사업이 지역에 자리 잡아, 100세 시대에 우리와 같은 인재들을 많이 활용해 사회에 기여할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아이일 때 돌보던 아이들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경험을 살려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신경희 씨의 말이다. 그는 1995년부터 지역의 어린이집에서 첫 근무를 시작해 지난 2022년 27년의 경력을 뒤로하고 퇴직했다. 퇴직 후 1년 정도의 휴식을 하는 동안에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고, 때마침 고용노동부의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을 통해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손에서 놓게 되니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텅 빈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새롭게 다시 일을 시작하기도 쉽지도 않고, 많은 고민을 하던 중에 고용노동부의 경력형 일자리 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서류접수 마감 하루 전날 알게 돼 부랴부랴 이력서를 준비해 신청했죠. 사업에 선정되어서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됐을 때는 너무 기뻤습니다” 장애아동 돌봄교사로 그가 활동하게 된 곳은 지역의 특수학교다.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이지만 늘 해왔던 일이라 어려움 없이 적응했다는 경희 씨. 그는 파견을 나간 곳에서 과거 돌보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 감회가 새로웠다고 강조했다. “예전에 돌보던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저는 현재 초등부 아이 3명을 돌보고 있는데 예전의 경험이 있어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큰 거부감 없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장애아동 돌봄을 시작한지 5개월,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사회복지분야 중에서도 장애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서 새롭게 공부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사람은 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장애아동들을 돌보는 일을 하니 장애에 대해서 없던 관심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의 종류, 장애에 따라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 등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새롭게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직 배울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많이 실감이 됩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공부를 하는 이 생활이 저는 몹시 만족스럽습니다. 하루를 아주 알차게 보낸다는 뿌듯함 마저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함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하루가 즐겁다는 신경희 씨. 그는 고령화 되어가는 지역에 신중년들의 새로운 도전이 지속되는 것이 지역을 활성화 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하던 일을 손에서 놓으면서 허무함이 들었고, 새로운 도전은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력을 인정해 주면서 새롭게 도전을 시작하는 것을 도와주는 이런 국가사업이 지역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많이 느꼈습니다”, “기초수명이 늘어나면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시간도 늘어났는데, 정년퇴직의 기준은 그대로기 때문에 이런 제도들을 통해 지역의 많은 중년들이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이 처음이어서 두렵고 떨렸지만, 현장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배려해줘서 지금은 장애아동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최진순(53) 씨는 경력형 일자리 사업으로 장애아동돌봄 보조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린이집으로 취업을 하면서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일해오고 있었다. “당시에는 어린이집은 일단 많지 않았기도 했고, 같이 유아교육을 전공한 친구들은 대부분 유치원으로 취업을 많이 나갔어요. 저는 어린이집으로 취업이 됐는데,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국공립어린이집이라는 개념이 막 들어서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아요” 어린이집에 취업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막상 자신이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능력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땐 어린 마음에 그런 마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유치원으로 취업한 친구들에 비해 스스로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죠. 그런 마음에 괴로웠는데, 그래도 아이들을 보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표정을 다 알기 때문에 제 기분을 그대로 보일 수는 없어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일했죠” 이후, 어린이집 일을 그만두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던 최진순 씨가 장애아동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시조카를 돌봐주면서 시작됐다. “시작은 시조카를 돌봐주면서 였습니다. 조카를 돌봐주면서 장애아동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에 장애아동돌봄 보조교사라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지역에는 보조교사를 채용하는 곳이 없어서 인근 지역으로 알아봤지만 여건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역에서 경력형 일자리 사업으로 보조교사를 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어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는 장애아동돌봄을 직접 해보니 현실은 생각과는 달랐고, 아이들을 잘 돌봐주기만 하면 됐던 일과 장애아동을 돌봐주는 일은 그 무게감이 달랐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과는 질적으로 많이 달랐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선생님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줘서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저는 제가 ‘주’가 되는 일을 해왔던 반면에 지금은 ‘보조’의 역할로 아이들을 돌봐주면 되기에 마음에서 오는 부담감이 적어서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쉬웠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아직 배울것이 더 남아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기쁘다는 최진순 씨. 그는 퇴직한 중년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과감히 도전하라고 했다. “퇴직을 하고 다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 역시 새롭게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이 많이 됐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신중년들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업무 난이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직접 일을 해보니 남성들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보람된 일이라고 많이 느낍니다” 강순중(60) 씨는 지난해 30년 공무원 생활을 퇴직하고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으로 장애아동 돌봄 보조교사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사회복지와 자원봉사활동에 관심이 생겼고, 2017년 퇴직을 몇 년 앞두고 사이버 대학을 통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다음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평소에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격증은 하나 있어야 다시 도전할 기회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퇴직 후 바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난 2월 지역의 특수학교로 장애아동돌봄 보조교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보조교사로 활동하는 지난 5개월간 현장에서 일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장애아동들이 홀로 남겨졌을 때를 걱정했다. “비록 오래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장애아동을 돌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과 이들을 돌보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됐죠” “제가 일하는 곳은 아동들부터 성인까지 있는 곳이라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의 정신연령은 어리지만, 힘과 몸은 성인과도 같아서 남자 보조교사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 홀로 남겨졌을 때 이들을 지속적으로 돌봐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가 현장에서 느낀점입니다” 또, 아이들의 장애정도에 따라 일의 강도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비록 보조교사이지만 시기별로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증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필요하듯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도록 전문적 교육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소수의 보조교사가 아이들을 모두 돌볼 수 없지만 적어도 보조교사가 맡은 1명의 아이만이라도 제대로 돌볼 수 있도록 교육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이 지역에 자리 잡아 장애아동들을 위한 보조교사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랐다. “퇴직자에게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도 덕분에 퇴직자들이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고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퇴직 후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복지의 일환이 아닐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