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진행한 기획취재를 통해 일본의 문화유산 복원과 다양한 관광요소를 살펴볼 수 있었다. 또 일본 각 마을의 전통문화와 지역 축제에서 그들만의 장인 문화를 알 수 있었다. 한국 관광이 서울 등 대도시에 한정돼있는 현실에서 지방
일본의 관광정책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면서 다양한 정책들이 관광청 등의 주도로 수립·시행되고 있다. 그 중 역사적 건물 등 문화유산을 활용해 독특한 숙박형 콘텐츠를 개발해 관광상품화한 사례들이 눈에 띄었다. 이번 호는 일본 간사이국제대학 교수진들의 협조를 얻어 일본의 관광정책과 성공사례를 살펴봤다./편집자주 코로나 엔데믹 이후 일본의 관광정책은 양적성장에 질적성장으로 전환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난해 2월 관광 진흥 추진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5년까지 방일 외래객 1인당 소비액 20만엔을 목표로 잡았다. 또 해외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통해 체류 기간을 연장하는 등 질적 성장을 위한 관광정책을 제시했다. 또 일본 관광청은 2030년 방일 외래객 6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는 한편, 이를 위해 비자심사 요건 완화, 전자결제시스템 보급, 관광 매력을 발신하는 콘텐츠 개발 및 홍보 지원, 각 지역의 역사자원 활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내 변화된 관광정책과 더불어 코로나 엔데믹 이후 여행 제한이 풀리고 엔저 현상까지 겹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2506만6100명. 25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여행 지출 금액은 5조2923억원엔(한화 약 49조2469억엔)으로 처음으로 5조엔대를 돌파했다. 국적별로는 대만이 7786억엔(14.7%)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 7599억엔(14.4%), 한국 7444억엔(14.1%), 미국 6062억엔(11.5%), 홍콩 4795억엔(9.1%) 등의 순이었다. 이들 상위 5개국의 소비 지출금액이 전체의 약 64%를 차지했다. 1인당 평균 소비액은 21만2000엔(한화 약 193만원)으로 2019년보다 5만3000엔이 늘어났다. 엔화 약세로 일본 국내의 서비스와 상품 가격이 저렴하게 느껴져 체류 일수가 크게 늘어나고, 숙박과 레저에 많은 비용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독특한 숙박형 콘텐츠 개발 주력 일본의 관광정책이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내건 가운데, 특히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객 유치 전략이 눈에 띈다. 일본 관광청은 일본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성이나 신사, 사원, 고택 등을 활용한 독특한 숙박형 콘텐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머무는 관광객을 유치해 관광 소비 지출을 확대하며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것. 실제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지출 중 숙박 비용은 2019년 29.4%에서 지난해 34.6%로 늘었다. 쇼핑비용은 같은 기간 34.7%에서 26.4%로 감소했고, 음식 비용은 21.6%에서 22.6%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친 것. 일본이 숙박형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유산 활용 관광콘텐츠 개발 ‘신중’ 일본은 문화유산을 활용해 관광 콘텐츠를 개발할 때 4대 원칙을 적용해 신중하게 결정한다. 4대 원칙은 △문화유산 활용에 앞서 보존을 최우선 검토 △문화유산의 본질적 가치 활용 △문화유산이 안고 있는 과제 해결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등이다. 이에 대해 나라문화재연구소 니시다 노리코 상석연구원은 “문화유산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함께 해온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 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다”면서 “이 때문에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보존을 최우선으로 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유산의 본질적 가치와 규모, 디자인, 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의 역사·문화에 주목해 특유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면서 “또 문화유산의 활용을 통해 그 매력과 가치를 알리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소비하는 등의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문화유산은 지역의 상징이며 지역을 특정 짓는 귀중한 자원으로서 이를 활용한 관광자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소유자·관리자뿐만 아니라 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합의 형성 과정을 중요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소멸도시에서 관광도시로 변신 ‘오즈시’ 일본이 문화유산 활용과 독특한 숙박형 콘텐츠 개발 등의 관광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곳은 에히메(愛媛)현의 소도시 오즈(大洲)시다. 간사이국제대학 교수진들은 일본의 관광정책 전환에 따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오즈시를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았다. 이들에 따르면 오즈시는 과거 인구감소로 경관보전지구 거리가 해마다 사라지고 마을의 황폐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인구는 연간 700명씩 감소했고, 빈집까지 늘며 400년 이상된 가옥들이 사라지는 등 지역소멸 우려까지 나왔다. 이에 오즈시는 지난 2018년 민간사업자, 금융기관과 연계해 주민 동의를 받아 거리를 재생하고, 역사적인 건물을 유지·보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오즈시와 역사적 건조물 재생을 담당하는 일반사단법인 ‘노오토’, 호텔 운영을 담당하는 밸류매니지먼트(주), 그리고 현지 금융기관인 ‘(주)이요 은행’ 등이 연계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 아래 오즈시는 지역 DMO인 일반사단법인 키타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또 (주)NOTE, 이요은행그룹과 공동출자해 주식회사 KITA를 설립했고, 옛 민가의 보전 활동을 하던 단체 ‘YATSUGI’와 인근 주민들도 참여했다. 이후 KITA는 마을 경관을 형성하는 역사적 건축물을 임차 및 매입하기 시작해 그 문화성과 가치를 보전하면서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주)이요은행은 전체 사업의 자금조달원으로 ‘오즈마치 조성 펀드’를 조성해 이곳에 창업·출점을 희망하는 사업자가 진출하기 쉬운 환경도 만들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오즈성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무라이 저택과 연립 주택도 숙박 시설로 개조하면서 도시가 부활했다. 이와 함께 KITA가 리모델링을 통해 호텔사업자에게 임대를 제공함으로써 역사적 건축물 자체가 유지되고,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완성된 점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특히 이를 계기로 유턴 창업, 제2창업, 시외기업 유치, 지역 기업에 의한 사업전환, ITA창업, 지역 기업의 사업 확장 등도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이 오즈시는 사라져가는 고가옥의 활성화를 중심으로 한 지역 참여형 마을만들기에 성공하며 그린 데스티네이션(Green Destinations)으로부터 ‘세계 지속 가능한 관광지 톱 100’에 2022년, 2023년 연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루 숙박비 100만엔 ‘오즈성 캐슬 스테이’ 오즈시의 독특한 숙박형 콘텐츠 개발의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것은 바로 ‘오즈성 캐슬 스테이’다. 오즈시 밸류매니지먼트는 지난 2020년 7월부터 ‘오즈성 캐슬 스테이’를 본격 운영했다. 이는 오즈성을 이용, 천수(天守. 성의 중심부인 아성(牙城) 중앙에 3층 또는 5층으로 제일 높게 만든 망루)에 국내외 관광객이 숙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의 고성을 빌려 하루 동안 성주로 지낼 수 있는 특별 서비스가 제공된다. 1박에 비용은 무려 100만엔이지만 예약이 줄을 선다. 프리미엄 제품과 서비스를 찾는 국내외 부유층들이 주요 이용객이 되면서 보다 높은 경제효과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 오즈시 일반사단법인 키타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2023년 법인이 운영하는 오즈성과 가류산장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수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비해 거의 2배로 증가했다”면서 “국가별로는 한국(9556명)이 가장 많았고, 대만(3193명), 미국(391명), 중국(344명), 프랑스(272명) 등의 순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일본의 성은 보존이 전부였지만, 오즈시는 민간과 연계해 보존하고 유효하게 활용해 사람들이 마을을 찾는 기회를 만들어나갔다”면서 “역사적 자원을 관광 자원화하면 지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일본 교토시는 한 해 5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국제관광도시다. 일본 천년의 수도로 수많은 문화유산과 역사적 건물 등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매력을 품고 있다. 본지는 지난 9월 25일 일본 교토시와 니덱교토타워, 기요미즈데라 등을 찾아 교토의 관광 현황과 정책 등을 살펴봤다./편집자주 일본 교토시는 역사도시다. 794년부터 1869년 도쿄로 천도할 때까지 1075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교토시는 오랜 세월을 지켜온 역사적 건물들이 자연경관과 어울리며 고풍스러운 도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도심의 동·서·북쪽 세 방향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에다 남북으로 두 줄기의 강과 역사적인 건물이 어우러진 고도의 경관은 가장 큰 매력이다. 옛 왕궁을 비롯해 헤이안신궁, 기요미즈데라 등 1000년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볼거리가 많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과 신사만 해도 17곳에 달한다. 교토시에 따르면 이 같은 경관과 문화유산 덕분에 지난해만 관광객 5028만1000명이 찾는 등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토시는 ‘시간을 초월한 빛나는 경관 만들기’를 위해 1930년대부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고풍스러운 경관을 지키기 위해 1930년 풍치지구 지정을 시작으로 시가지경관 조례 제정, 시가지 대부분을 고도지구(고도제한)로 지정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수립해 시행해왔다. 그러나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변화, 경제성·효율성 등으로 인해 역사적 건조물이 상실되는 등 문제점도 속출했다. 이에 교토시는 지난 2007년 9월부터 교토의 미래를 내다보고 역사도시 경관 보존을 위한 정책을 본격화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고도지구 내 건물의 높이를 최고 45m에서 31m로 낮추는 대신, 높이의 최고 제한을 역사적인 시가지, 산기슭의 주택지, 공업지역 등 지역 특성에 맞춰 세분화했다. 건물 등의 디자인도 경관지구, 건조물수경지구, 풍치지구 등으로 세분해 디자인 기준을 명확하게 규정했다. 또 옥외광고물 역시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 품격 있는 아름다운 도시 경관 형성을 도모했다. 실제 교토시내 전역에는 건물 간판이 돌출되지 않고 입갑판과 같이 미관을 저해하는 요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현재 교토시 곳곳에는 역사적인 거리에서 지역주민의 생활과 생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고, 전통문화가 유지되는 도시공간을 간직하고 있다. 높이 131m 교토타워 설립은? 교토시의 경관 정책이 본격화되기 전 큰 이슈가 일어난다. 지난 1964년 최고 높이 131m의 교토타워가 건립된 것. 지난 4월 1일부터 이 타워의 공식명칭은 니덱교토타워로 변경됐다. 타워 건립 당시는 고도제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도시 경관 등의 문제로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는 것이 교토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교토타워 건립 이후인 1966년 고도보존법 제정, 1972년 시가지 거대공작물 규제구역 지정, 1973년 시가지 대부분을 고도지구로 지정해 건물 높이 45m 이내의 제한 등이 이뤄진 것을 미뤄보면 당시 일었던 당시 논란을 짐작케하고 있다. 니덱교토타워 관계자에 따르면 “교토타워는 건립 당시 항공법에 의한 항공기의 안전 운항을 돕기 위한 항공 보안 시설로서의 기능으로 지어졌다”고 말했다. 교토타워 건설은 1958년 교토 중앙우체국 유적지 활용과 관련한 교토상공회의소 주최 간담회에서 신회사 설립을 결정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어 1959년 교토 중앙우체국 부지를 양도받아 주식회사 교토산업관광센터(현 교토타워주식회사)가 설립됐고, 사옥 건설이 계획됐다. 1961년엔 건설위원회가 설치돼 다음 해 건설계획의 기초가 마련됐다. 이 때만해도 타워 건립은 계획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관계자들에 의해 타워 건설 가능성이 제기됐고, 전문가 등이 참여해 건립 계획을 수립하면서 현재의 타워가 건립됐다는 것이다. 니덱교토타워의 높이는 피뢰침 부분까지 포함하면 총 131m로 교토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00m 높이에 위치한 전망대에서는 교토 전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교토가 자랑하는 세계유산을 비롯해 사찰, 유적지 등 문화유산과 시가지 등을 360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전망실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 타워 빌딩 내에는 호텔, 레스토랑, 스카이라운지, 쇼핑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니덱교토타워 관계자는 “타워 외관은 등대를 모티브로 해 시가지 옛집들의 기와지붕을 파도에 비유해 바다가 없는 교토 거리를 밝히고 있는 의미가 있다”면서 “오랜 역사를 지닌 타워는 쿄토의 상징으로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교토시의 매력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 높이 제한 폐지 이유는? 교토시가 그동안 유지해 온 경관 정책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교토시는 지난 2007년부터 시행해 온 건물 최고 높이 31m 제한을 폐지한다고 지난해 4월 발표했다. 본보의 이번 취재에서 교토시는 높이 제한 폐지와 관련한 규정 변경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높이 제한을 폐지하게 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고도 제한에 아파트 공급이 줄면서 주택 가격이 올랐고, 높은 주거 비용으로 젊은 층이 교토를 떠나고 있어 그 대응책을 마련하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교토가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아파트 부지가 적은데 높이 제한 규제까지 있어 신규 공급이 대폭 감소한 게 주택 가격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보고 있다. 또 교토 인구는 2021년 한 해 동안 1만1900명이 줄었고, 일본에서 감소 폭이 가장 컸다. 교토시의 2021년 인구는 145만4000명 선으로 지난 2016년 147만1000명에서 매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교토시의 출산율 감소보다는 30~40대 젊은 세대 전출이 인구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고도 제한 폐지라는 정책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오버투어리즘 대응정책 ‘눈에 띄네’ 지난 2022년 4월 기준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시의 중요문화재는 1898건으로 전국의 14%, 그 중 국보는 216건으로 전국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도시였던 교토는 사찰 건축이나 불상 등 불교미술, 정원 등 세계에서 유례 없는 독자적인 문화가 꽃피었다. 이와 함께 교회나 무덕전 등 근대건축이 상존하는 것도 매력이다. 이 같은 매력은 연간 50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 끌어들이고 있는 반면, 과도한 관광객으로 인해 지역 주민과 갈등을 초래하는 ‘오버투어리즘’ 현상은 고민거리 중 하나다. 교토 시민들에게는 교통 대란과 주요 관광지 주변 혼잡 등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마냥 반갑지만 않다는 것. 실제 기자가 지난 9월 25일 돌아본 교토 기요미즈데라(清水寺, 청수사)와 전통 가옥이 군락을 이룬 기온 거리는 평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과 관광버스 등이 몰려 혼잡했다. 청수사 인근에서 근무하는 요시다 아키라(56) 씨는 “버스에 관광객들이 많아 출퇴근이나 등하교하는 시민들의 어려움이 있다”면서 “사찰 인근 주차장은 만차가 돼 관광버스가 도로 위에 관광객을 내려주는 일도 허다하고, 좁은 도로는 차들로 뒤엉켜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오버투어리즘에 대응하기 위한 교토시의 대응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먼저 관광지 혼잡도 예측 시스템이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 데이터와 날씨 정보 등을 결합해 청수사, 교토역, 아라시야마 등 주요 관광지의 혼잡도를 5단계로 예측·분석해 관광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사람들이 몰려 혼잡한 곳을 우회하거나 시간차를 두고 방문하라는 메시지다. 또 시내 일부 지역의 주차장 위치 및 실시간 공실 정보와 도로 교통정보 및 교통 혼잡 등의 상황도 제공하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위주로 특정 계절이나 시간에 관광객들이 몰리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분산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비수기 고객 캠페인 진행, 아침·저녁 관광 콘텐츠 조성, 유명 지역 외 다양한 지역의 관광 매력을 전하고 있다. 일례로 하루 중 아침 관광으로 ‘걷기 좋은 자갈길’을 소개하거나 관광 비수기인 겨울철엔 평소 출입할 수 없는 신사 공개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또 관광객들이 캐리어를 끄는 소리를 줄이기 위한 세세한 해결방안도 시행 중이다. ‘빈손으로 하는 관광 정보’ 제공으로, 임시 수하물 보관 서비스 및 택배 서비스 센터 등의 위치를 홍보하고 있다. 이는 교토역 등 주요 장소에 1000엔을 내면 호텔까지 캐리어를 옮겨 주는 ‘핸즈프리 서비스’다. 교토시 관광정책국 관계자는 “시민 생활과 관광의 조화 아래 시민 삶의 향상으로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교토관광’ 실현을 위해 일부 관광지 혼잡 등의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 “교토 관광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는 정책적인 대응을 추진해 관광·문화·경제의 선순환 창출로 연결시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오사카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나라시로 들어서면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도시 풍경이 경주와 닮았다. 평성궁을 지나 나라시청까지 도심으로 가는 길에 고층 건물이 없고, 곳곳에 전통가옥들이 자리 하고 있는 모습도 어쩌면 유사하다. 고대의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를 떠올리며 바라본 나라시는 푸근하기 그지 없었다. 지난 9월 24일 본지 기자는 나라시청을 찾아 나라시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정책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나라시 관광전략과 타데이시 켄지(立石堅志) 학예원, 문화재과 이케다 히로히데(池田裕英) 계장을 비롯해 부서별 담당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편집자주 [인터뷰] 일본 나라시 관광전략과 ‘타데이시 켄지’ 학예원 “1300년 전 역사 알리며 머무는 관광정책 수립에 주력” 일본 고도(古都) 나라시의 올해 3월 기준 지정문화유산은 총 978건. 이중 국보 121건, 중요문화유산 495건, 기념물 41건 등 국가지정문화유산만 총 661건에 이른다. 또 나라현 지정문화유산 154건, 나라시 지정은 163건으로, 말 그대로 유적의 보고다. 1300년 전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시의 역사적 가치가 지정문화재 수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특히 나라시는 지난 1998년 헤이조쿄(平城京), 동대사, 약사사 등 8개 문화유산이 하나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에 따라 나라시는 세계유산을 중심으로 한 관광 활성화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으며, 현재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인접한 오사카시와 교토시에 비해 부족한 숙박 관광객수 증가를 위한 정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나라시 매력 발신 “나라시를 찾은 관광객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즐길 수 있도록 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관광프로그램을 개발·시행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자 사명이다” 나라시 관광전략과 타데이시 켄지 학예원은 나라시 문화재 활용 관광정책의 목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나라시청에서 문화재와 관광 등 관련 부서에서 업무를 두루 거친 베테랑 공무원이다. 타데이시 학예원은 “나라시의 문화재 활용 관광정책으로는 먼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등 나라시의 관광자산을 홍보하는 팜플릿과 SNS, 홈페이지를 활용해 그 매력을 전 세계에 발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민간단체인 나라시 관광협회와 손을 잡고 세계유산과 연계한 여행루트와 상품 등을 개발해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머무는 관광 위해 다양한 정책 개발·시행 타데이시 학예원은 나라시 관광의 현황과 향후 과제도 언급했다. 나라시 ‘관광입객수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3년 나라시를 찾은 관광객은 1219만9000명. 이중 숙박객수는 174만8000명으로 전체 방문객의 14.3%였다. 타데이시 학예원은 “현재 나라시의 가장 큰 문제는 매력적인 문화유산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인접 도시인 교토, 오사카에 비해 숙박 관광객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철도회사, 여행사, 관광협회가 협력해 8개 세계유산을 야간에 즐길 수 있는 이벤트, 그리고 이른 아침에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또 나라현과 협력해 수준급의 호텔을 유치해 숙박 여행객을 늘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나라시는 야간 관광프로그램으로 ‘조용한 체험 관광’과 ‘야간 즐길거리’ 등 투트랙으로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민간단체와 지역 주민, 그리고 사원의 협조를 얻어 등불축제, 야간점등, 이벤트 등을 열고 있다. 맛집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나라시의 식당 개업과 영업 지원 덕분에 관광객 취향에 적합한 식당이 늘고 있다는 것이 타데이시 학예원의 설명이다. 그는 “번화가와 즐거운 분위기가 많은 오사카와 경쟁하기보다는 나라시 특유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식당에서 관광객들이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또 나라시는 관광객들이 숙박 뒤 이른 아침 사찰 등지에서 참배하는 프로그램, 새벽 운치가 아름다운 동대사와 나라공원의 사슴 등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킬 계획이다. 8개 세계유산 투어를 통해서는 1300년 전 나라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문화유산 관람을 위해 나라시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그 문화유산의 역사적인 배경과 가치를 제대로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전반적인 관광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것. 타데이시 학예원은 “나라시가 일본의 도읍이었던 시기가 1300년 전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점을 어필하기 위한 관광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나라시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관광객들에게 흥미도 유발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개발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나라시대 이외의 시대 어필 ‘주력’ 나라시는 1300년 전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시대 이외의 시대도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8세기 말 일본 에도시대 이후의 역사적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나라마치’다. 과거 나라의 상인들이 주로 머물렀던 이곳은 음식점, 카페, 갤러리, 잡화점,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타데이시 학예원은 “나라마치는 에도시대, 18세기 말쯤에 세워진 건물들이 지금까지도 남아 가장 일본다운 거리로 보존되고 있다”면서 “나라시대 뿐만 아니라 일본 역사 속에서 여러 시대의 모습을 어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관광객수가 코로나19 펜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한국, 중국, 특히 대만에서도 많이 오고, 또 유럽 관광객들은 장기간 숙박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나라시는 오래 머무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긴 시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고 하나씩 시도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나라시 문화재과 ‘이케다 히로히데 ‘계장 “문화유산 활용해 다양한 관광프로그램 개발” 나라시 문화재과는 문화유산의 발굴과 정비 등 고유 업무와 함께 발굴·정비·복원현장 공개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하나의 사례로 나라시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특별사적·특별명승 ‘궁터정원(宮跡庭園)’이다. 이 정원은 나라시대 대규모 정원으로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귀중한 유구다. 나라시대 뛰어난 정원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설계와 정원 축조방법 등을 알 수 있는 극히 드문 사례로, 1978년 특별사적, 1992년에는 특별명승으로 지정됐다. 특히 돌을 깔아서 만든 연못은 양호한 상태로 발굴돼 진품을 그대로 공개하고 있다. 1980년 발굴을 시작해 정비·복원을 거쳐 1985년 공개된 이 정원은 열화 현상으로 2014년부터 6년간에 걸쳐 재정비했고, 그 현장을 공개했다. 이케다 히로히데(池田裕英) 나라시 문화재과 계장은 “당시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전통 방식으로 궁터정원을 정비했다”면서 “현장을 공개함에 따라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정비 과정의 어려움을 시민들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화재과 차원의 문화유산 활용 방안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이케다 계장은 “나라시대 조성된 평성궁 내 동원정원, 사찰 내 정원 등 고대 정원 투어를 개발해 시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또 이들 정원을 활용해 국화전시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의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과 같이 나라시대에 실제 행해졌던 행사들을 재현하고 있다. 특히 평성궁의 위사대 의식 등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문화재를 활용한 다양한 관광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시도들을 지속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일본 나라시의 헤이조쿄(平城京)는 710년부터 784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헤이조쿄의 도성 영역은 남북 4.8km, 동서 4.3km의 남북으로 긴 방형을 띤다. 이곳은 지난 1998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헤이조쿄는 일본 고대 왕궁인 헤이조큐(平城宮·평성궁), 주작문, 동원정원 등 유적을 포함한 방대한 왕궁터다. 이 왕궁터에서 발굴·복원된 문화유산들은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경주 월성 등 핵심유적 발굴·복원 사업에서 참고해야 할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일본 당국은 이곳 유적의 발굴과 복원을 위해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며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실천해왔다. 헤이조큐 옆에 자리한 나라문화재연구소는 도성과 왕궁터에 대한 방대한 역사적 근거를 하나씩 쌓아가며 지난 1952년 설립 이후부터 기획발굴을 해오고 있다. 나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왕궁터에 대한 첫 조사는 19세기 중반에 이뤄졌고, 이후 주춤하던 학술발굴조사는 1950년대 본격화됐다. 대규모 발굴을 시작한 계기는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시작된 개발과 관련 깊다. 먼저 1953년 11월 헤이조큐 동쪽 부지에 미군 캠프의 요청으로 농로 확장공사 중 대형주혈 등 대규모의 유구가 발견됐다. 1959년에는 당시 사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던 부지에 킨키철도주식회사의 조차장 건설 소식이 전해지자 학자와 민간인 등에 의해 전국적인 헤이조큐 보존운동이 전개됐다. 이어 논의 끝에 1963년 헤이조큐 전역이 사적으로 지정되고, 이곳의 보존과 발굴조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64년엔 국도24호선 우회도로 건설계획이 입안돼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동원이 발견됐다. 이 같이 큼직한 이슈를 거치면서 헤이조큐의 보존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어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됐다. 이즈음 나라문화재연구소는 1963년 헤이조큐 발굴조사부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나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을 위한 계획과 시행은 치밀하게 이뤄졌다. 20세기 초 헤이조큐 전체 유적군 분포지도를 작성했고, 1980년대에는 헤이조큐를 포함한 도읍 전체 유적들의 항공사진과 유물지도화 작업도 마쳤다. 지도 하나로 전체 발굴 현황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작업과 발굴, 고증연구 등을 거쳐 헤이조큐 내에는 1990년대 이래 남쪽 정문 주작문을 비롯해 관청터, 동원터 등이 복원됐다. 이들 유적은 50~60년대 그 실체를 확인하고, 수차례 가상 모형실험 등을 하면서 10~20년간의 복원 과정을 거쳤다. 2010년 복원된 정전인 대극전의 경우 원래 유적터 흔적을 보존하고 그 위쪽에 기단을 만들었으며, 지진에 대비한 내진 설계까지 갖췄다. 2022년엔 주작문과 대극전 사이 왕궁으로 들어가는 대극문(大極門)을 복원했다. 발굴과 복원 방식을 두고 학계와 주민들 간 논의도 수십년간 끊임없이 이뤄졌다. 1852년 헤이조쿄 유적의 복원연구가 처음 진행된 이래 메이지시대 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 기다 사다키치 등의 논쟁이 있었고, 숱한 주민과 전문가 토론회 등을 통해 궁궐터의 복원 범위와 활용 등에 대한 원칙을 공유해왔다. 또 어떠한 경우든 발굴조사를 통해 얻어진 유적 정보는 조속히 상세하게 공개돼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주민들과 소통해왔다. 나라문화재연구소 우치다 카즈노부(井上 雅博) 박사는 “과거에는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렸고, 지금은 복원 현장을 공개하고, 동영상을 제작해 공개하는 등 소통을 지속해오고 있다”면서 “헤이조쿄는 50~100년 단위의 장기 발굴계획을 수립·추진해 세계유산 등재 전 이미 복원 계획이 수립됐고, 이들 계획을 일괄적으로 추진해 현재의 복원까지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나라시대 중심 건축물 대극전 복원 나라시대 궁궐의 중심 건축물인 대극전은 지난 2010년 4월 복원을 완료했다. 대극전은 일본 천황의 즉위 등 국가의식을 행할 때 천황이 출어(出御)하는 고대 왕궁의 중심 시설이다. 현재 복원된 대극전은 제1차 대극전으로 나라시대 전반의 건물이다. 나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대극전은 1970년, 1971년, 1980년 발굴조사를 실시한 뒤 1982년 복원 초안을 완성했다. 1992년부터 대극전 복원 연구에 들어가 1/100, 1/10 모형을 제작했고, 기본 설계와 시설 설계 등을 거쳐 2001년 복원공사를 시작해 2010년 준공했다. 복원된 대극전은 정면 44m, 측면 20m, 높이 27m로 평성궁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나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대극전 복원은 유구와 기와, 석재 등 발굴된 유물이 가장 큰 근거가 됐다. 이를 토대로 기단 형태와 건물의 평면, 규모를 고증연구를 통해 복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문헌 사료나 회화 자료도 근거가 됐다는 것. 다만, 목조건물은 형태를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가 한정돼있어, 일본 내 현존하는 고대 건축물을 연구해 복원된 기단과 건물 평면에 일치하는 건물을 추정해 복원했다. 특히 중층 건축의 기본 구조는 현재 유일한 중층인 호류지(法隆寺, 법륭사) 금당을 토대로 했고, 건물의 공포나 처마 등의 형태는 시대가 비슷한 야쿠시지 동탑을 근거로 했다. 연구소가 대극전 건물의 근거로 삼은 ‘호류지’는 나라현에 있는 고찰로, 일본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이다. 요메이천황(用明天皇)의 아들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601∼607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대극전 복원에는 현존하는 고대 건축의 구조, 의장, 기법을 철저히 재분석하고, 기술의 원리를 지키면서 유구에 맞는 형태를 갖춰나갔다는 것이 연구소측의 설명이다. 평성궁 위용 짐작케하는 주작문 복원 나라시의 평성궁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1998년 복원된 주작문이다. 평성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주작문은 폭 25m. 측면 10m, 높이 22m 규모로, 나라시대 당시 평성궁의 위용을 짐작케하고 있다. 주작문의 위치와 규모는 1964년 발굴조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후 수차례의 조사를 거쳐 1989년 복원·정비를 앞두고 전면 재발굴해 기둥 중심 간 거리 5m, 정면 5칸(약 25m), 측면 2칸(약 10m)임을 밝혀냈다. 주작문의 복원은 반다이나곤에코토바(伴大納言絵詞)에 그려진 헤이안궁의 주작문이 이중문인 점을 근거로 했다. 또 주작문의 기본 구조는 호류지 중문을, 주작문의 부재 크기와 비례 관계 등은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지 데가이몬(東大寺 轉害門·전해문) 등을 참고했다. 또 주작문은 나라시대 전기의 건축물로, 양식은 같은 연대인 야쿠시지 동탑의 기법과 의장을 참고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연회의 의식 행해진 ‘동원정원’ 복원 평성궁 동쪽에 위치한 동원정원은 10여년에 걸친 발굴과 고증연구를 거쳐 지난 1995년 10월 복원됐다. 동원정원의 특징은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전기 연못에는 물가를 따라 못 아래로 큰 옥석을 띠 모양으로 빈틈없이 깔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후기는 못 아래부터 기슭까지 전면에 걸쳐 자갈돌을 깐 얕은 연못 모습이다. 연회와 의식 등이 행해진 장소로 이용된 동원정원에는 중앙건물과 북동건물, 누각, 정문, 평교, 반교 등 목조 다리 등이 복원됐다. 이들 건물 역시 호류지 등의 고대 건축물을 근거로 삼았다. 미래 세대에 물려줄 프로젝트 연구도 병행 195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한 헤이조쿄는 현재까지도 발굴과 고증,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2026년 복원 예정인 동루(東樓)에 이어 향후 서루(西樓)와 성벽 및 회랑(回廊) 등의 복원도 추진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당국은 복원된 문화유산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체계적인 유지 관리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나라문화재연구소 니시다 노리코(西田 紀子) 상석연구원은 “근래 들어 복원에만 치중하지 않고, 주작문 등 복원 후 상당 시간이 지난 문화유산들을 보존하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면서 “복원 유산들을 유지하고, 미래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프로젝트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백제는 우리나라 고대국가 중 하나다. 기원전 18년 건국돼 660년 멸망할 때까지 약 700년 동안 31명의 왕이 재위했다.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해 63년(475~538),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해 약 122년(538~660년)을 영위하는 등 두 차례 천도했다. 부여군은 웅진성에서 천도한 백제 왕조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 있던 곳이다. 관북리유적서 사비성 실체 하나씩 베일 벗어 사비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는 부여 관북리유적은 지난 40여년 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대형건물지(35m×18.5m)를 비롯한 왕궁 주요 시설과 토성 등이 확인됐다. 1983년 9월 충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돼 있다가 2001년 2월 사적으로 승격됐다. 지난 2015년 7월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1982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해 1983년 방형석축연지, 1988년 ‘북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발견, 1992년 백제시대 도로유적과 배수시설 등이 확인됐다. 특히 중심건물로 추정되는 대형건물지는 정전건물로 왕궁의 일부 시설인 것으로 보고 있다. 부여국립문화유산연구소와 부여군은 관북리유적 발굴 1단계 사업을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완료했다. 올해부터 2028년까지 2단계, 2038년까지 3단계 사업으로 나눠 발굴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관북리유적 16차 발굴지에서 백제 멸망 직전 마지막 전투 흔적으로 여겨진 칠피갑옷들과 함께 왕이 정무·의례를 주관하던 건물터와 연화문전 등이 확인됐다. 발굴된 건물 규모는 남북 방향으로 60m에 이르는데, 주변에선 폭 8~9m의 도로와 교차로, 상수도 유적도 발견됐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2028년 2단계 발굴 사업을 완료하면 사비왕궁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왕이 정사를 처리하던 정전 발굴이 머지 않았음을 시사한 것. 연구소측은 정전이 확인되고 왕의 사적 공간인 내조가 발굴되면 6세기 중반 이래의 백제 관직제도인 22부사의 실체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북리유적 뒤쪽은 사비시대 왕궁의 배후산성인 ‘부소산성’이다. 평소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전쟁 등으로 위급할 때는 방어시설로 이용된 중요한 산성이다. 지금도 백제시대 축조했던 성벽(토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서쪽으로 백마강을 끼고 있는 부소산성 내에는 낙화암과 고란사 등 백제의 전설과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완벽한 균형미·비례미 자랑 ‘부여 정림사지’ 세계유산인 정림사지는 사비도성 중앙에 위치한 절터다. 이곳에는 백제인들의 뛰어난 감성과 기술을 보여주는 국보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높이 8.9m의 석탑은 탑의 원형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탑의 구조적 특징과 함께 완벽한 균형미와 비례미를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역사의 아픔도 탑신에 남아 있다. 백제 사비성을 침공한 당라나 장수 소정방이 탑의 1층 탑신에 승전기공문인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새겨놓았다. 이 때문에 과거 정림사지오층석탑은 평제탑(平濟塔)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발굴조사에서 ‘태평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라고 쓰여진 명문기와가 출토된 이후로 절터는 정림사지,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불리우게 됐다. 이외에도 부여군에는 사비도성 동쪽에 위치한 성벽인 ‘부여 나성’과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있는 ‘부여 왕릉원’이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복원에 준하는 재현 ‘백제문화단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백제문화단지’가 지난 2010년 9월 문을 열면서 당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위치한 이 단지는 1993년 백제문화권 특정지역으로 지정된 지 17년, 1998년 기공식 이후 12년 만에 이뤄진 대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329만4000㎡의 터에 역사재현촌 등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설은 물론 위락, 쇼핑, 숙박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투입 예산만 8077억원(국비 1709억원, 지방비 2145억원, 민자 4223억원)이다. 이 단지는 크게 △역사재현촌(148만4000㎡) △연구교육촌(16만㎡) △민자구역(롯데리조트·165만㎡) 등으로 나뉜다. 역사재현촌에는 왕궁과 능사(陵寺), 개국촌(開國村), 민속촌(民俗村), 군사통신촌(軍事通信村), 장제묘지촌(葬祭墓地村), 백제역사문화관 등이 들어섰다. 연구교육촌에는 2000년 3월 개교한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입주해 있다. 특히 사비궁은 백제역사문화의 절정을 이룬 사비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 궁궐의 가장 중심이 되는 천정전과 동쪽의 문사전, 서쪽의 무덕전 등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형태로 모두 14개동으로 이뤄졌다. 백제의 사찰 능사는 부여 능산리사지를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또 높이 38m에 달하는 능사 오층 목탑은 국내 최초로 재현된 백제시대 목탑이다. 롯데그룹이 투자하는 민자구역에는 객실 322개를 갖춘 콘도미니엄과 아울렛, 골프장(18홀)이 조성돼있다. 당초 롯데그룹이 2017년까지 조성할 계획이었던 스파빌리지, 에코파크 등의 시설은 중국과의 문제와 코로나19 펜데믹 등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충남도와 롯데그룹 간의 협의를 통해 1200억원 규모의 잔여 민자사업 투자계획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단지 내 루지, 미디어아트갤러리, 한옥빌리지, 글램핑장 등을 2026년 완공 목표로 추진 중이다. 충남도에 따르면 백제문화단지는 연간 25만~29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또 민자시설인 콘도미니엄과 아울렛 등의 방문객은 연간 15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어 부여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인터뷰] 이강복 충남도 학예연구사 “백제문화단지 복원에 준하는 재현으로 보편적 가치 높여” “백제문화단지는 철저한 고증연구를 통해 백제 역사문화의 절정을 이룬 사비시대 왕궁을 복원에 가깝게 재현한 역사와 문화의 복합공간이다” 이강복 충남도 문화유산과 학예연구사는 백제문화단지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백제문화단지의 착공부터 현재까지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지켜온 산증인이기도 하다. 백제문화단지를 재현하면서 백제 시대 건축양식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런 논쟁에 대해 그는 “490회 이상의 전문가 자문을 거쳐 백제의 유구 및 유물에 대한 고증연구를 진행했다”면서 “당시 수많았던 논쟁이 지금의 단지 재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조성 과정에서도 모든 건축물에 대해 고증을 거쳤고, 대목장 등 장인들이 투입돼 전통방식으로 건축했다”면서 “당시 참여했던 장인들을 비롯해 자문 및 고증팀들이 경주 월정교 복원 사업에도 투입됐다”고 밝혔다. 백제문화단지 조성 예산과 관련해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시작해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준공한 국책사업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며 “국가사업으로 추진해 예산 지원의 연속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지 운영과 관련해 “준공 직후에는 충남도에서 직영해오다 2018년부터 민간위탁방식으로 전환됐다”면서 “현재 운영은 롯데그룹, 관리는 충남도에서 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 시설 개선·보수가 용이하고, 예산면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문화유산의 복원에 대해서는 “보존이냐 복원이냐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역사성과 진실성이 보장되면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복원 후 추후 역사적인 사실이 더 밝혀지면 그때 수정해 나가면 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백제문화단지 준공 이후 국내에서 문화유산 복원에 대한 개념도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지를 조성하면서 고증연구와 건축물 축조한 기술 등 쌓인 경험은 복원 및 재현 사업의 기본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면서 “고대시대 건축물들에 대한 복원이 단지 재현 이후 충분히 가능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제문화단지는 현재도 복잡하게 평가되고 있지만 백제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민간시설에서 휴양도 할 수 있다”면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공유·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천년고도 경주의 핵심유적에 대한 정비·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문화유산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크다. 이번 호에서는 국내 고도 중 하나인 공주시의 문화유산 복원·정비 현황과 활용 정책 등을 살펴본다. 본보 기자의 현지 취재는 지난 8월 29일 진행됐다. /편집자주 백제의 대표적 문화유산은 공주, 부여, 익산 등 3개 도시에 걸쳐 있는 백제역사유적지구 8곳으로 크게 압축된다. 백제 후기(475~660년) 문화를 대표하는 왕성, 사찰, 왕릉, 외곽성 등 8개 문화유산으로, 지난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공주의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왕릉원, 그리고 익산의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등 8곳이다. 이들 문화유산을 통해 1400여년 전 찬란했던 백제문화와 백제가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으로 활약한 국제성도 엿볼 수 있었다. 4대 문 모두 복원 완료 ‘공주 공산성’ 공주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중 하나인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년)를 대표하는 왕성이다. 공주시에 따르면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인조 이후 석성으로 개축했다. 백제 때는 웅진성, 고려시대 공주산성·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현재는 동쪽 735m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석성이다. 공산성은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475년) 후 성왕 16년(538년)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다. 북쪽으로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총 2660m 길이의 성벽을 쌓은 공산성은 금강을 접한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산성 내 왕궁지와 왕궁부속시설지 등에서는 10칸, 20칸 등의 큰 건물터와 연못터가 확인됐고, 백제의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됐다. 특히 공산성의 4대 문은 모두 복원됐다. 동쪽에는 영동루, 남쪽에는 진남루, 북쪽에는 공북루가 있으며, 서쪽에는 현재 공산성 출입문으로 사용되는 금서루다. 그중 터만 남아 있던 영동루와 금서루는 공산지(公山誌)의 기록을 근거로 1993년 복원을 완료했다. 진남루와 공북루는 조선시대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건립한 문으로, 진남루는 1971년 모두 해체하고 원래대로 복원했고, 공북루는 1964년 보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총 7기 복원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이다. 현재 무령왕릉을 포함해 왕릉원 1~6호분까지 총 7기가 복원됐다. 1~5호분은 돌로 방과 통로를 만들고 흙을 덮어 만든 굴식돌방무덤이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을 터널 형태로 쌓아 만든 벽돌무덤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시대 제25대 왕과 왕비를 합장한 무덤으로, 1971년 발굴 당시 1500년 전의 화려한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는 상태로 발굴돼 세간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문화유산 활용 관광프로그램은? 공산성 금서루에는 대표적인 상설 문화관광 프로그램인 ‘웅진성 수문병 근무교대식’이 매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공주시에 따르면 백제 왕성 성곽을 지키는 수문병 모습을 재현하는 것으로, 올해는 혹서기를 제외하고 매주 토·일요일과 공휴일마다 총 5회씩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매회 1000명 이상 관람객들이 관람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 활용 관광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공주시의 설명이다. 공산성 서문인 금서루 앞 회전 교차로에 지난 2021년 9월 모습을 드러낸 무령왕 동상도 눈길을 끈다. 무령왕 동상은 높이 9.47m에 무령왕이 중국(양나라)에 ‘갱위강국’(更爲强國) 선포 국서를 보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좌대 안에 구동부를 설치해 동상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무령왕릉 발굴 50년, 갱위강국 선포 15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무령왕 동상을 건립했다. 회전할 수 있는 동상은 바라보는 방향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쪽을 바라보면 무령왕릉이 있고, 북쪽은 고구려를 격파하고 갱위강국을 선포한 대왕의 위엄, 남쪽은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군주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공주시 관계자는 “무령왕은 백제의 가장 위대한 준주이자 공주의 자긍심 그 자체이다”며 “무령왕 동상은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역사도시로서 공주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상징물”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공주시는 다양한 관광프로그램을 개발·시행하고 있다. 공산성과 무령왕릉 사이를 도보로 이동하며 백미고을, 회랑, 황새바위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지난 2022년부터 추진되고 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길로 유명한 ‘한옥마을 둘레길’은 공산성과 국립공주박물관, 고마나루 솔밭길 등을 거닐며 백제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백제 문화유산 활용 백미 ‘백제문화제’ 백제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프로그램의 백미로 손꼽히는 축제는 올해 제70회를 맞은 ‘백제문화제’다. 백제문화제는 백제의 왕도인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에서 같은 일정으로 각각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28일부터 10월 6일까지 9일간 공주시에서는 금강신관공원과 공산성, 제민천 일원에서 열렸다. 부여군은 백제문화단지, 구드래, 정림사지 일원에서 개최됐다. 70년 전통을 지닌 백제문화제가 백제역사유적지구와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고 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재)백제문화제재단에 따르면 백제문화제는 지난 1955년 부여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백제대제집행위원회를 구성해 ‘백제대제’를 거행하며 시작됐다. 11회째인 1965년까지는 부여군이 단독 개최해왔고, 행사 주체가 충청남도로 이양된 1966년부터는 행사 규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공주시가 백제문화제에 참여해 부여군과 동시에 진행했고, 부수적인 문화행사가 증가했다. 1975년(제21회)부터 4년간은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백제문화제가 공주와 부여 이외에 대전에까지 확대 개최한 것. 충남 도내 전 지역으로 백제문화제의 열기를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백제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부족했던 대전의 백제문화제는 전시 위주의 행사로 진행됐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1978년을 마지막으로 대전 개최방식은 중단됐다. 이후 1979년부터 2006년까지는 홀수년에 공주, 짝수년에는 부여에서 대제(大祭)와 소제(小祭)의 개념으로 번갈아 개최했다. 백제문화제가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지난 2007년부터다. 당시 ‘통합개최’를 주관하는 조직으로 재단법인 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현 백제문화제재단)를 설립해 관주도형에서 민간주도형 축제로 전환했다. 이 시기에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확대되면서 새로운 발전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 재단 측의 설명이다. 특히 2010년(56회) 9월 18일부터 10월 17일까지 30일간 정부공인 국제행사로 열렸던 ‘2010세계대백제전’은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공주시에 따르면 당시 369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2499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뒀다. 또 백제문화제는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가 국내에서 12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고,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널리 각인시키는 축제로 성장해오고 있다. 공주시 관계자는 “백제문화제는 축제를 넘어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세계적인 축제로 도약하도록 민관이 힘을 모아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욱 기자 lsw8621@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천년고도 경주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문화유산의 특성상 추진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복원을 두고 시각차가 분명한 가운데 발굴과 연구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핵심유적의 복원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경주의 문화유산에 대한 복원·정비 방향과 이를 활용한 관광정책 등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은 경주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근간이 되는 사업으로 정의된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되살려 새로운 문화융성 시대를 열어가는 국가사업인 것이다. 하지만 천년을 뛰어넘은 신라문화를 부활하는 것으로, 발굴과 고증을 거쳐 복원까지 가는 과정은 만만찮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고증을 거쳐 복원해야 하는 문화유산의 특성상 오랜 시일이 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역사 신라왕경 핵심유적의 정비가 거론되고 추진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경주를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면서다. 이 계획에 따라 연차적으로 경주지역 사적지 정비와 대규모 숙박단지, 보문관광단지 건립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1979년 10월 박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대부분의 사업은 중단되고 만다.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2007년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 기본계획과 2011년 경주고도보존계획 수립 등에 따라 신라왕경에 대한 발굴과 정비가 재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큰 진전을 이루진 못했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당시 2025년까지 9450억원을 투입해 경주 월성과 황룡사 등 8대 핵심유적에 대한 발굴과 정비·복원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 수립됐고,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또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추진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전기를 맞은 것은 2019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신라왕경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이듬해 시행되면서다. 2020년 신라왕경법 시행령까지 제정되면서 사업비는 기존 9450억원에서 1조53억원으로 증가했다. 또 신라왕경 핵심유적의 범위도 기존 8곳에서 14곳으로 확대했다. 기존 사업 대상은 월성, 황룡사지, 동궁과 월지, 첨성대, 대릉원 일원, 동부사적지, 춘양교지와 월정교지 등 8개 유적이었다. 여기에 인왕동 사지, 천관사지, 낭산 일원, 사천왕사지, 분황사지, 미탄사지 삼층석탑 등 6곳이 추가되며, 총 14개 유적에 대한 발굴·정비·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복원된 월정교·금관총, 관광명소로 자리매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 중 가장 먼저 완료된 것은 월정교다. 지난 2008년 월정교 복원을 위한 첫 삽을 뜬 이후 10여년 만인 2018년 9월 완공됐다. 월정교는 신라왕궁인 월성과 남산을 잇는 대표적 다리로 신라왕경의 규모와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고대 교량 건축기술의 백미로 교각 자체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한다. 야간경관조명은 주변과 어우러져 경주의 야간 명소로 떠오르며 경주 관광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신라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과 신라고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신라고분정보센터’도 완공돼 지난해 6월 30일 정식 개관했다. 두 곳 모두 2023년 5월까지 내부 정보화 구축사업을 거쳐 건축면적 1641.32㎡(금관총 617.32㎡, 고분정보센터 575.90㎡), 연면적 1555.9㎡(금관총 575.9㎡, 고분정보센터 980㎡) 규모로 조성됐다. 금관총과 신라고분정보센터는 신라고분의 우수성을 알리고,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과 도심을 잇는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실물복원 보다 디지털 복원에 집중 복원 등의 사업이 완료된 월정교와 금관총·신라고분정보센터를 제외한 나머지 핵심유적들은 현재 발굴과 고증연구에 치중돼있다. 국가유산청이 지난 2021년 3월 내놓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5개년(2021~2025) 종합계획에 따르면 핵심유적의 실물복원 보다는 디지털 복원계획안이 대거 포함됐다. 이 종합계획은 신라왕경특별법에 따라 국가유산청이 신라왕경 핵심유적의 복원·정비를 위해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특별법 시행 후 처음으로 수립된 계획이다. 종합계획에는 신라왕궁과 황룡사구층목탑 등 대형 핵심유적의 실물복원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다. 실물복원을 위한 고증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반면 디지털 재현사업과 XR(확장현실) 등 디지털 복원안이 대거 포함됐다. 첨단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일부 핵심유적을 재현하고, 복원 활용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핵심 중 핵심 ‘월성·황룡사’ 복원·정비 현황은? 신라왕궁(월성)의 경우 지난 2012년부터 중·장기 계획으로 월성복원 연구, 월성 경관 복원 연구, 성벽 축조공법 복원 연구 등을 중심으로 사업이 추진 중이다. 신라왕궁 실물복원은 이 같은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고, 원형 고증이 이뤄진 이후에나 진행할 방침이다. 대신 지난 2022년 3월 경주 월성해자 재현·정비사업이 완료됐다. 또 월성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연구하는 시설인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崇文臺)’가 지난 6월 13일 준공식을 가졌다. 숭문대는 지난해 연구동과 전시동 준공에 이어 고환경(古環境) 연구동과 관람객 주차장을 완공하면서 조성사업을 마무리했다. 숭문대는 월성에서 발굴된 유물의 ‘분석-보존처리-보관’에 이르는 과정이 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특히 지난해 완공된 전시동에는 ‘실감 월성해자’ 전시로 현재까지 3만여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가면서 또 다른 명소로 자리매김 중이다. 신라의 궁궐이었던 월성을 소개하는 ‘신라왕궁영상관’도 새단장을 완료하고 지난 5월 1일 재개관했다. 또 다른 핵심사업으로 황룡사지 9층 목탑 실물복원 역시 2025년까지 진행되는 종합계획에는 들지 못했다. 대신 황룡사 중금당 디지털 콘텐츠 제작과 중문 및 남회랑 AR(증강현실) 서비스 등 디지털 복원안이 포함됐다. 지난 2021년 12월 황룡사 중문·남회랑 증강현실 콘텐츠를 완성해 체험이 가능하다. 또 황룡사 9층 목탑 증강현실 콘텐츠를 개발한 상황이다. 현재 실물 복원사업으로는 황룡사지 진입부 기단정비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추가된 핵심유적은? 신라왕경특별법 시행령으로 추가된 7개 유적의 일부는 복원계획이 수립돼 추진 중이다. 먼저 분황사지는 모전석탑 구조안정과 원형연구를 시작으로 심화연구를 거쳐 중·장기 계획으로 석축배수로와 담장 복원, 창건금당지, 강당지, 동서회랑지, 문지 등을 순차적으로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인왕동사지는 석탑과 연지·우물을 2025년까지 복원하고, 장기적으로는 금당지, 강당지 등도 복원할 계획이다. 낭산일원은 먼저 황복사지 정비와 중기 계획으로 능지탑소조상 3D 복원, 능지탑 등을 복원할 계획이다. 또 사천왕사지는 서탑지 기단이 복원됐고, 2025년까지 금당지 기단 복원에 이어 중·장기 계획으로 귀부 주변과 강당지·회랑지를 복원키로 했다. 문화유산 연계한 관광정책 개발 ‘절실’ 지난 2021년 수립한 종합계획에 따라 일부 핵심유적이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를 토대로 복원·정비되면서 더디지만 하나씩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발굴·복원 중이거나 복원을 완료한 문화유산을 연계한 관광프로그램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천마총, 쪽샘유적발굴관, 금관총과 고분정보센터는 신라시대 고분으로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3개 고분을 연계하는 탐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월성과 숭문대, 도심과 경주읍성 등지의 문화유산을 연계해 관광 자원화할 수 있는 소재가 경주만큼 풍부한 곳도 없는데도 이를 연계한 관광프로그램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각각의 문화유산에 대한 홍보에만 치중되다 보니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신라 천년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 얕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대해 경주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재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주요 문화유산을 찾지만 고도 경주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기존 핵심 문화유산과 발굴 또는 복원된 문화유산을 연계한 관광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스토리텔링해야 국제적인 관광도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계획의 차질 없는 추진을 통해 핵심유적의 원형 복원과 관광자원을 확대하고,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신라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며 “핵심유적 공간 내에서의 문화유산들을 가시화시키고 이를 연계한 관광정책들을 수립해 천년고도의 면모를 되살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