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힘든 휴전선에서 오늘도 나라를 지키고 있을 OO이 보아라. OO아. 며칠 전에 보낸 니 편지 잘 받았다. 집에는 너거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식구들이 별 탈 없이 잘 지낸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이 문장은 내 어머니가 동네 ‘아지매’ 중 한 분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초반부다. 어머니는 올해 88세 되시는 고령이다. 그러나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중학교까지 나오신 고학력(?) 출신이다. 내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정실태 조사를 한답시고 집안의 재산상태, 부모님의 학력, 직업 같은 것을 내놓고 조사하곤 했는데 70명 가까운 반에서 그때 어머니가 대학교 나온 친구들은 거의 없었고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 한둘, 중학교 나온 사람이 네댓쯤이 고작이었다. 초등학교 나온 사람도 열 손가락 미만이었다. 이를테면 어머니는 그 시대 신식 교육을 받은 흔치 않은 여성이었던 셈이다. 요즘 석사 학위 가진 여성의 비율보다 어머니 시대 중학교 나온 여성이 훨씬 귀했을 것이다. 어릴 때 내가 자란 경주 교촌은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큰 기와집 대부분은 경주최부자댁 후손들이 살던 곳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오랫동안 최부자댁과 관련되어 일하던 집안의 후손들이거나 새로 이사와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최부자댁 사람들은 자신들끼리는 자주 섞였는지 몰라도 동네의 이런저런 행사와는 거의 무관하게 지냈다. 최부자댁 여성들 중에는 고학력자들이 많았는데 동네 아지매들과 거의 내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부녀 회장하시던 채모 할머니가 최부자댁 후손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동네 부녀회 일을 보지만 거의 상징적인 역할이었다. 그럴 때, 어머니가 부회장을 맡아 오래 활동하시면서 실질적으로 회장 노릇을 했기에 동네 아지매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집으로 달려와 어머니와 상의하곤 했다. 어머니는 이를테면 교촌 아지매들의 온갖 해결사 노릇을 다 하신 셈이다. 동네 아지매 대부분이 글자조차 모르는 무학(無學)들이다 보니 가장 긴요한 것이 읽고 쓰는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거나 먼 공장에 딸을 보낸 아지매들은 대문이 닳도록 우리집을 드나들었다. 편지를 읽어 달라거나 써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이고 근여이 어무이요. 이거 쫌 읽어 주소. 우리 OO이가 펜지를 또 보냈데이...!” 내 이름을 넣어 ‘근여이 어무이’로 통하던 어머니는 이럴 때면 열일을 제쳐 두고 편지를 받아 읽기 시작하고 가급적 즉석에서 답장을 써주시곤 했다. 이렇다 보니 어머니는 동네 자녀들 중 어느 집 아들은 어디서 복무하고 있고 어느 집 딸은 또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깨알처럼 알고 계셨다. 당연히 해당 집안의 대소사도 꿰고 계셨다. 어머니가 답장을 쓸 때는 가급적 집안 근황을 꼬치꼬치 묻고나서 쓰셨다. 그래야 멀리 가 있는 아들딸들이 집안 소식을 두루 알고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누구네 집 딸은 어디에 취직되어 갔고 누구네 집 맏이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누구네 집 암소가 숫송아지를 낳았지 암송아지를 낳았는지 손바닥 보듯 알고 계셨던 것이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전화가 흔치 않을 때이고 군대나 공장과의 소통은 편지가 유일했다. 그만큼 자식들 편지는 반갑고 귀했다. 어머니가 편지를 읽을라치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연신 눈물을 닦거나 코를 훌쩍였다. 어머니가 ‘부모님 전상서’라는 첫 글을 읽을라치면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눈물부터 찔끔 흘리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편지를 다 읽고 마칠 즈음에는 어느새 눈물 콧물이 범벅된 아주머니들 얼굴을 보곤 했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편지 읽는 소리는 더욱 낭랑하고 한 줄 한 줄 읽을수록 감정이 충만해졌다. 또 다 쓴 답장을 아지매들에게 읽어줄 때면 ‘우예 그래 내 마음을 잘 알아서 씨는기요?’라는 인사를 으레 듣곤 했다. 어머니의 편지 쓰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내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것을 직접 경험해본 것은 내가 대학에 가서였다. 학보사 기자 시절 대학 친구 하나가 연애편지를 대신 써달라 한 적 있었다. 소개팅에서 만난 여대생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었던 그 친구는 자기를 좀 유식하게 포장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마침 그 무렵 니체의 무슨 책을 ‘폼 삼아’ 읽고 있었는데 되먹지 않게 그 편지에 니체와 관련된 내용을 넣어서 써주었다. 솔직히 그때 읽던 니체는 어렵기가 이만저만 아니어서 책을 반 가깝게 붙들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무슨 소린지 가늠하지도 못한 채였다. 그런 상태에서 터무니없는 자만심으로 쓴 연애편지가 온전하게 보였을리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편지가 가고 나서 그 여학생으로부터 답장이 없었다는 친구의 푸념을 들었을 때 그게 내가 쓴 편지 탓이 아니고 친구가 여학생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애써 주장했지만 속으로 뜨끔한 것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이를 데 없고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따지자면 어머니가 대신 쓴 편지는 철저히 부탁한 아지매의 마음과 아지매 집의 진실한 소식이 담겼을 뿐이지만 내가 대신 쓴 편지에는 오만과 허세가 잔뜩 들어있었던 셈이다. 똑똑한 여대생이었다면 그런 편지를 받고도 좋아서 해실거릴 리 없을 것이다. 대필이라고 하면 아버지 역시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가지고 계신다.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면서기 출신이시다. 고향인 내남면에서 수년간 면서기로 근무하셨고 뒤에는 그런 이력을 바탕으로 행정서사 업무, 대서방을 열고 오래 일하시기도 했다. 대서는 서류를 대신 써주는 일인데 그 역시 워낙 글자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라 생긴 직업일 것이다. 내가 대학 진학 후 군 문제를 해결하고 일 년 남짓, 아버지 사무실에서 잡무를 도와드린 일이 있었다. 그때 가끔씩 아버지를 찾아와 고소장을 쓰달라거나 청원서를 써달라는 분들이 있었다. 원래 그런 일들은 사법서사(법무사)들의 고유업무인데 아버지 지인들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아버지를 찾아와 이런 일을 부탁했던 것이다. 이럴 때 아버지는 업무영역을 굳이 따지지 않고 가급적 그 부탁을 들어주곤 하셨다. 어차피 고소장이나 청원서가 특정 양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리에 맞게 정리를 잘해 주면 되는 일이었고 사법서사 사무소에 가도 특별히 잘 써줄 것이란 보장도 없으니 지인들의 부탁을 들어주신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아버지 지인들은 점심을 사기도 하고 막걸리를 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나에게 한 번 보고 고칠 곳이 있는지를 보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대학 다니면서 학보사 기자까지 지냈으니 아들이 한 번 봐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셨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쓰신 고소장이나 청원서는 적어도 내용을 쉽게 파악하거나 사실을 적시하는 부분에서는 굉장히 조리 있고 문장 구성도 잘 되어 있었다. 특히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내용만 쏙쏙 뽑아 써놓으시는 것은 그때 나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실력이었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일기를 쓰셨는데 아마도 아버지의 대서 실력은 일기 쓰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 번은 아버지 대신 내가 고소장을 써본 적도 있는데 우선 부탁하신 분의 장황한 이야기를 끊는 것이 힘들었고 그 많은 푸념 중에서 핵심적으로 무얼 골라야 할지 선택하기 어려웠다. 푸념하는 내용이 하나같이 다 억울하고 중요해 보였는데 그게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학생의 한계였다고 지금 생각된다. 돌이켜 보면 내가 대필작가가 된 이면에는 어렸을 때부터 봐오던 어머니의 편지 써주기와 아버지의 대서 유전자가 나도 모르게 깃든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 대필은 어머니의 편지 쓰기와 아버지의 대서 업무와 하등 다를 게 없다. 꼼꼼히 내용을 듣고 핵심을 잡아 쓰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 사람의 마음을 움켜잡는 것은 도도한 지식과 화려한 문장이 아닌 진심을 파고드는 솔직함이란 것이다. 그게 어머니의 편지 쓰기와 아버지 대서업무의 가장 큰 힘이었다.
코로나19가 감기쯤의 위험도로 인식되면서 몰라보게 대규모 행사들이 늘어났다. 특히 연말이 되면서 그간 3년쯤 치르지 않았던 각종 단체들의 송년회가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다. 이런 행사들이 성행하면서 다시금 말잔치도 늘어나게 됐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그래서 더 바빠졌다. 이곳저곳에서 연설문을 대신 써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농담 삼아 이렇게 묻곤 한다. “선진국형 인사와 후진국형 인사, 어떤 게 필요하신가요?” 기자는 25년 넘게 해외여행업을 하면서 많은 나라를 다녔고 이런저런 해외 행사에도 자주 참여하거나 직접 기획하게 됐다. 그러면서 선진국형 행사와 후진국형 행사를 나눠서 생각해볼 계기를 자주 만났고 선진국형 인사말과 후진국형 인사말을 비교해 볼 기회도 얻었다. 먼저 후진국형 행사를 보자. 이 경우는 일단 마이크 잡은 사람들이 많다. 행사를 주최하는 관계자들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유력 인사들을 무대 위로 올려서 그 사람들에게 점수를 따는 것이냐에 달려 있다. 요컨대 행사를 지켜보는 청중이나 참석자들은 그냥 들러리일 뿐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 잡는 사람들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축사1, 2, 3은 기본이고 격려사 1, 2, 3도 기본이다. 이렇게 하고 난 뒤 대회 주최측에서 회장 부회장 할 것 없이 올라가 또 인사한다. 그 사이사이 어떤 유력인사가 행사장에 왔는지를 꾸준히 알려준다. 그런 유력인사들은 시간관념이 없어서 결코 제때 도착하지 않지만 희한하게 도착할 때마다 여지없이 참석자를 알려주는 성의를 발휘한다. 후진국형 인사말은 기본적으로 10분 이상 주절거린다. 일일이 해당 외국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우리 같으면 공자왈 맹자왈 같은 고문헌부터 시작해 그럴싸한 사례나 명언 같은 것들을 늘어놓는 것이 틀림없다. 다음 사람 역시 최소한 10분,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절거리다 내려간다. 이때 객석을 보면 청중 대부분은 전혀 행사에 귀 기울이는 표정이 아니다. 7~90년 대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하던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장면과 흡사하다. 후진국형 행사는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영혼 없는 행사다. 행사시간은 유력인사가 많이 참가하면 길어지는 고무줄이다. 심지어 유력인사가 늦게 도착하면 대놓고 행사 시간을 연기해 행사하기 일쑤다. 오직 그 한 사람, 혹은 그들만을 위한 행사다. 선진국형 행사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우선 행사시간을 엄격히 지킨다. 누가 뭐라고 해도 칼같이 시간을 맞춘다. 행사가 시작되면 행사 관계자가 자신을 포함해 행사를 치르는 주요 인사들과 이 행사를 위해 참석한 주요 내빈을 소개한다. 내빈으로 불린 사람들은 행사를 치르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다음으로 역시 축사와 인사말이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인사말은 대표적으로 축사자 한 명 아무리 많아도 두 명 선에서 그친다. 그런 다음 대회를 주관하는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나서 바로 중요한 실무 행사로 돌입한다. 인사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축사는 보통 1~2분이 기본이다. 센스 있는 축사자는 30초쯤으로 압축해서 말한다. 아무리 길어도 3분 이내다. 대신 행사를 주관하는 회장 같은 사람도 최대한 실무를 전달하는 선에서 다소 길게 발언한다. 그래도 길어야 5분쯤이다. 역시 유머는 기본이고 센스있는 회장은 1~2분 이내에 말을 끝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아직도 후진국형에 훨씬 가깝다. 무슨 행사에 가건 축사 1, 2, 3과 격려사 1, 2는 기본이고 시간도 인사 하나당 5분 이상 10분이 대부분이다. 그러는 사이 객석은 인사말을 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온통 자기 테이블 사람들과 내놓고 대화하느라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런 모습은 특히 수직적 구조를 가진 동창회나 향우회, 지자체 행사에서 가장 흔하게 연출된다. 층층시하 내려오는 나이 많은 선배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동창회나 향우회, 높은 직책의 공직자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지자체 의회, 각종 단체장들이 득실거리는 지자체 행사에서는 누군가는 체면치레를 위해서, 누군가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인사말에 나선다. 인사말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행사를 치르느라 수고한다’는 말을 달아놓고 하고, 자신보다 유력한 사람이나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 일일이 호명하며 인사하기를 잊지 않는다. 심지어는 마치 자신이 행사장의 주인인 것처럼 제2, 제3의 인물을 무대에 올려 인사를 시키기도 한다. 이런 것이 주최측에 실례되고 시간을 빼앗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알아도 개의치 않는 눈치다. 내가 아는 어떤 인사는 행사측이 미리 3분 이내로 인사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더니 마이크를 잡고는 ‘행사 주최측에서 3분으로 인사를 부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안 될 것 같다’며 오히려 대놓고 더 길게 한 인사도 있었다. 안하무인을 넘어 행사를 대놓고 방해한 것을 그 자신만 모르는 것이다. 그런 인사말이 끝나고 나면 대회를 치르는 회장이라는 사람이 다시 무대에 올라 지금까지 나와서 인사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일일이 고마움을 표하고 객석에 앉은 또 다른 유력인사를 소개하기 시작하고 고마움을 표한다. 이러면서 또 2~3분이 훌쩍 지나버린다. 역시 객석의 회원들은 자기 이야기들에 골몰하느라 대충 흘려들을 뿐인데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부분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사꾼들이 있다. 바로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 단체장, 지자체 의회 의장과 의원들이다. 동창회, 향우회, 지자체 행사 담당자들에 부탁하노니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의 의장·의원들에게 제발 인사시키지 말기 바란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 행사를 좌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나 선진국형 행사를 못 보고 못 경험한 탓에다 지나치게 오랜 기간 상명하복의 문화에 젖어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 의장·의원을 으레 상전으로 알고 굽신거리는 것이 습관화되었을 뿐 그들이 실상 우리 말을 듣고 따라야 할 종복이라는 생각은 못하기에 이런 후진국형 행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 의장·의원들에게도 부탁하노니 행사에 나가 인사하는 시간에 국민을 위해, 시민을 위해 고칠 법안을 찾고 불합리한 제도를 없애고 잘못되고 불편한 곳을 찾아 고치시라.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 의장·의원이 인사말 하라고 뽑은 자리가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표를 의식해 꼭 인사를 하고 싶다면 그 자리가 국정보고나 시정보고의 자리가 아니고 남의 집 잔치 장소라는 사실을 제발 깨닫기 바란다. 그걸 착각해 10분 넘게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 동안 행사는 똥이 되고 그런 행사에 나와 한두 번 지린 경험을 한 젊은이들은 두 번 다시 동창회, 향우회, 지자체 행사에는 근처에 조차 가지 않는다. 행사가 선진국형인가 후진국형인가는 인사말의 수와 그 말의 시간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 최상위의 선진국으로 도약했는데 아직도 행사의 수준은 빈곤하던 70년대에 머물러 있다. 그런 차원에서 기자가 지금까지 여러 행사장에서 본 인사말 중 가장 인상적인 인사말 하나를 꼽자면 이것이다. 어느 향우회 회장이 최근 모 행사에서 한 인사말이다. “지금까지 제 앞에서 훌륭한 분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저까지 좋은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OOO회 회원여러분,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자, 이제 앞으로 닥칠 송년회와 신년회는 선진국형으로 치를 것인가 후진국형으로 치를 것인가? 지금 이 기사를 본 당신은 선진국형 연설가인가 후진국형 연설가인가? 멋진 연설을 하고 싶다면 이제 전문가에게 슬쩍 조언을 들어보는 것은 또 어떨까? 물론 요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대필 전문가에게 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지상강의 제 5장에서 사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장에서는 사진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을 말했지만 이번에는 자서전에서 사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자서전에서 사진은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근래 기업가들이나 정치인들의 자서전들은 억지로 글을 보여주기보다 사진을 통해 시각적인 발자취를 알려주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책 읽는 습관이 급속히 떨어진 탓도 있고 반대로 스마트폰 일반화 이후 글자보다는 시각적인 전달방식을 선호하는 대중의 습성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례로 경주의 어느 전국단위 직능단체 회장은 자신이 그 협회의 장으로 재직할 동안의 활동을 화보로 찍어 퇴임하면서 지인들에게 배포했는데 이것이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회장 재임시 어떤 일을 했고 그 내용은 어떠어떠했다고 이야기해 봐야 읽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는 그 회장은 그간의 활동상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내용을 배열해 활동과 업적을 동시에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 화보에는 자신의 취임식부터 시작해 국내 협회원들과의 다양한 행사가 일일이 수록되었고 국내외 활동도 빠짐없이 소개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일들은 큰 사진을 이용해 시원시원하게 화보로 제작한 것이다. 대통령을 수행해 해외에 나간 모습이나 해외의 유력 인사들과의 회의나 개별적인 만남, 각종 수상 모습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화보는 글씨로 만들어진 어떤 자서전보다 효과적이고 강력한 전달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펴낸 책은 아니지만 서울의 모 구청장이 펴낸 자서전에서도 이런 시도를 볼 수 있었다. 그 구청장은 자신의 재임 기간 활동을 간략한 해설과 함께 실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구청장의 경우는 글와 사진을 30:70쯤으로 실어 업적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는데 조금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궁극적으로 내용의 전달은 사진에 맞춘 형식이었다. 정치인들의 자서전을 받는 즉시 책장의 후미진 곳에 꽂히거나 분리수거 1순위라고 볼 때 그나마 이 구청장의 자서전은 한번쯤 훑어볼 만한 여지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진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 기능으로 자서전 속에 사용된다. 가장 흔하게는 단락을 나누어주는 도구로서의 기능이다. 어떤 책이건 몇 개의 큰 단락이 있다. 자서전에도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의 단락이 있거나 학생기, 직장기, 사업기, 퇴임 이후 같은 단락이 있다. 그런 단락과 단락 사이를 나누어주는 판막음 역할로 사진을 쓰는 예가 그것이다. 대개의 자서전에서는 사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년기의 판막음에는 유년기 사진을 쓰고 청소년기의 판막음 사진에는 청소년기 사진을 쓰는 식으로 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판막음 사진을 현재 모습만으로 넣기도 한다. 경주의 모 변호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판막음 사진을 일부러 현재의 사진으로 써서 비록 이야기는 오래전의 이야기를 쓰지만 현재의 사진을 중간중간 부각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흘러간 추억과 시간들이 모두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위한 자양분이었음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또 하나의 기능은 ‘양념’으로서의 기능이다. 대부분의 자서전이 그렇듯 남의 이야기에 대단한 관심을 가져줄 만한 사람이 드물다. 특히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의 경우 그 주변 사람들과 이익관계자들이 읽는 경우가 많고 아무리 흥미진진하게 썼다고 해도 대충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책을 훑어보다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으면 습관적으로나 호기심으로 그 장면에 눈길이 머문다. 때문에 이런 사진 배열은 생각보다 훨씬 전략적이어야 한다. 너무 적게 넣어두면 책 읽는 관심이 멀어지고 너무 많이 넣어두면 식상해서 눈길을 끌지 못한다. 책을 편집해놓고 보면 흔히 여러 사람들로부터 사진이 좀 더 들어가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실제로 효과면에서 사진을 지나치게 많이 넣어두면 안 넣느니만 못하다. 그 이유는 사진이 많으면 그 사진 역시 깨알 같은 문장과 다름없이 그냥 흔한 사진으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로 든 직능단체장이나 구청장의 사진들도 나처럼 꼼꼼히 보는 사람은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냥 사진으로 만든 화보집이거나 사진과 설명이 섞인 자서전쯤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으로 도배된 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로 도배된 책과 하등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들어간 큰 사진은 글자로 치면 굵은 글씨가 들어가 있는 페이지와 같은 느낌이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사진을 따로 뒷부분 혹은 앞부분에 몰아서 편집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할 경우 본문을 대충 스쳐 지나간 사람이 화보를 통해 그 책의 내용을 일부나마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도 사진이 열 페이지 미만이라야지 무턱대고 사진을 많이 실어두면 역시 식상한 사진들이라 여겨 보지도 않고 덮어버리기 일쑤다. 앞에서 사진은 양념이라고 표현했다. 이 양념은 과하게 쓰면 음식의 맛을 버리게 되고 너무 적게 쓰면 양념을 넣는 효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사진은 적절히 시선을 유도하는 양념이어야 한다. 화보집처럼 내놓고 사진 중심의 책을 만들게 아니라면 사진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단체사진은 금기, 누구라도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2꼭지 당 한 장이 적절 자서전에 쓰는 사진에서 금기시되는 사진도 있다. 그것은 단체 사진이다. 단체라는 말은 10명 이상이 섞여 있는 사진을 말한다. 어릴 때 수학여행 단체 사진처럼 60명이 넘는 인원이 들어간 사진은 그냥 남의 사진을 넣어도 상관없을 만큼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족들이라면 주인공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려고 애를 쓰겠지만 가뜩이나 책에 쓰는 사진은 종이로 아트지를 따로 쓰지 않는 한 재질상 사진이 흐려 보이는 게 당연한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는가? 자서전 사진은 개인의 사진이 중심이 되어야 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사진이 함께 실릴 경우 자신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명이 함께 있는 사진을 택해도 자신이 중심에 있는 사진을 쓰는 것이 중요하고 누가 봐도 자신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이어야 한다. 또 하나 주의점,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사진을 사용할 때 지인이라고 해서 동의 없이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이나 가수, 배우 등 유명 인사들은 일일이 따로 허락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공인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얼굴이 언제 어디에서건 노출되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고 법적으로도 특별한 거부 의사나 사유가 없는 한 쓰는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공인 아닌 지인들의 사진을 친하다고 동의 없이 사용하면 자칫 법적인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동의를 구하고 사용해야 한다. 다만 공적인 행사에서 보도용 등으로 공개적으로 함께 찍은 사진은 그 사진을 함께 찍을 때 이미 자신의 초상권을 사용해도 좋다는 묵시적 동의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동의 없이 사용해도 무방하다. 전체적으로 자서전은 30~50개, 많으면 60개쯤의 꼭지를 가지고 제작된다. 두 꼭지쯤에 한 장의 사진 정도면 비교적 비율이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보다 많으면 식상하고 그보다 적으면 양념의 맛이 떨어진다. 물론 최대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꼭지에 그에 합당한 사진을 선택해야 한다. 자서전을 내고자 하는 사람은 미리 책 속에 들어갈 사진을 잘 정리해두고 적절히 본문에 녹일 준비를 하자. 그래야 문장과 사진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자서전을 낼 수 있다.
바야흐로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쓸 시기가 찾아왔다. 취업과 입시 또 다른 도전들에서 자소는 개인을 누군가에게 특정지어 설명하는 첫 관문이자 실험대다. 대필 작가로 활동하다 보면 자소서 첨삭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는다. 마침 SNS상에는 자소서 첨삭 고수로 활동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 동영상이나 문서들도 자주 올라온다. 글 좀 쓴다는 분들이라면 솔깃해지는 제안일 것이다. 그러나 자소서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영역이다. 나는 대학에서 마케팅 강의를 듣기도 하고 광고기획사를 하면서 다양한 홍보관련 작업들을 해왔다. 광고란 것이 기업이나 개인을 부각시키고 알리는 작업인데 이런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효과적인 개인 마케팅에 대해 노하우가 생긴다. 어쩌면 내가 대필작가로 활동하게 된 이유도 광고기획사 업무를 한 것이 인연이었을 것이다. 그런 한편 나 자신 오랜 기간 기업을 경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검토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호에서는 자소서 바로 쓰는 방법을 잠깐 이야기해 본다. 지금은 자소서 관련 지침서나 작성요령에 대해 많은 정보들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어서 무턱대고 자소서 쓰는 사람이 덜 있겠지만 예전에는 자소서 볼 때 가장 자주, 가장 첫 머리에 등장하는 내용이 있었다. “저는 19OO년 어디에서 아버지 OOO씨와 어머니 OOO씨의 몇 째 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무슨무슨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엄격하지만 자상하셨고 어머니는 다정하고 온화하게 저를 보살펴...” 나는 이런 글귀가 나오면 더 이상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취업은 전쟁이다. 자소서는 그 전쟁터의 총이다. 최대한 전략과 전술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그 첫머리를 자기 이야기는 쏙 빼고 아버지 어머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더 이상 볼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자소서만 보면 대한민국 아버지는 죄다 엄하고 어머니는 다 자상하다. 자기 이야기 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이런 엉뚱한 시작으로 소중한 기회를 날리는가?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문구가 저는 어느 학교로 무슨 과를 나왔고 하는 학력이나 어디에서 일했고 어디에서 근무했고 하는 경력이다. 이런 것도 역시 밀쳐 버렸다. 자소서와 함께 반드시 첨부되는 것이 이력서다. 이력서에 학력과 경력이 멀쩡히 붙어 있는데도 굳이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나왔고 어디에서 일했다고 다시 쓴 것은 자소서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요컨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동반자를 뽑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개성 있는 자기소개서와 일에 대한 적합성, 그 일에 느끼는 비전 등을 기준으로 자소서를 살펴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자소서에서 반드시 들어가야 할 요소들이 있다. 이것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목표한 학교(학과)나 기업에 대한 분명한 신념 자신이 왜 이 학교나 학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가 왜 이 기업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보여야 한다. 지원한 학과나 기업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미리 충분한 자료조사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의 경우 사훈이나 신문이나 방송에 나온 CEO의 기사 등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그와 대비한 자신의 신념을 쓰는 것도 요령이다. 2. 목표를 위한 노력이나 적합성 목표한 학과나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실질적을 공부를 하고 노력을 했는지가 분명히 강조되어야 한다. 자격증이나 각종 교육 이수, 해당분야에 대해 공부한 책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3. 학과 혹은 시장에 대한 전문성 2번과 유사한 서술이 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과의 현황이나 업계의 현황, 비전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면 이 자체로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주의할 것은 섣불리 이런 내용을 썼다가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틀리거나 엉뚱한 것을 쓰면 그 자체로 끝이다. 분명한 통계나 전망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기술한다면 우호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4. 관계에 대한 가치관 특히 기업들은 직원 한 사람을 잘못 뽑아 해당 부서나 팀의 분위기를 망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화합의지와 실천력이 있는지를 알리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가족 관계에 대해 먼저 언급하지 말라고 했는데 만약 형제나 자매가 많은 집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관계에 대해서 말할 때 이런 점을 장점으로 부각시켜 말하는 것은 좋다. 기본적으로 위의 요소들을 제대로 갖춘 자소서라면 어느 곳에서건 환영받을 것이다. 이 내용들을 기본으로 얼마나 요령 있게 쓰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학교에 내는 자소서나 기업에 내는 자소서들이 일정한 형식을 갖춘 경우도 많다. 자소서를 엉터리로 쓰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학교건 기업이건 자신들이 원하는 질문을 해놓고 그에 맞춰서 답변해 달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합성을 판단하는데 다른 것은 다 볼 필요 없이 해당 질의에 대한 답변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나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답변도 위의 네 가지다. 신념과 노력과정, 학과(일)에 대한 전문성, 관계에 대한 가치관은 학교건 기업이건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기업의 정형화된 자소서 형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란이 있는데 그것이 장점과 단점을 쓰라는 것이다. 장점이라고 하면 당연히 자소서에 들어갈 만한 항목이지만 굳이 단점까지 써라고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이것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정말 단점을 쓰는 바보는 없을 테지만 노파심에서 이 질문의 함정에 대해 말해 둔다. 단점을 쓰라고 하는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해석하면 장점은 장점으로 쓰면 되고 단점으로는 감추어진 장점을 하나 더 써라는 말이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장점이 사교적이다 치자. 이 사교성은 좋은 측면에서는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고 인맥을 넓히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치게 하고 관계로 인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게 만든다. 단점으로 우유부단한 면이 있다고 치자.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신중하다는 말이다. 사교적인 게 장점이자 단점이고 우유부단이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소서에 쓸 때 장점으로는 그냥 자신이 생각하는 장점을 쓰고 단점으로는 자신의 다른 장점 하나를 끌어다가 이것은 부각시키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어려움을 슬쩍 드러내 주면 된다. 만약 사교성이 좋은 장점과 탐구심이 많은 장점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장점 란에는 사교성이 좋은 것을 쓰고 단점으로는 ‘어떤 사안에 빠지면 그것을 제대로 알 때까지 멈추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때때로 자신을 괴롭게 만든다’는 식으로 쓰면 된다. 만약 인사담당자라면 장점으로는 사교성을 볼 것이고 또 하나의 장점으로 탐구심이 강하고 끈기 있는 사람이라 판단할 것이다. 이게 바로 질문의 함정을 뛰어넘는 방법이다. 대필 작가의 입장에서 자소서를 봐달라는 의뢰를 받으면 위의 사항들을 기반으로 자소서를 바로 잡아 준다. 물론 이때도 반드시 대화나 통화를 통해 좀 더 깊은 이야기들 나누어보고 고쳐주거나 써준다. 아무쪼록 이번 호에서 알려준 자소서 쓰기를 바탕으로 올해 진학과 취업에서 좋은 결실을 맺기 바란다. 자소서 첨삭이 필요한 분들은 이메일로 의뢰하면 된다.
대필작업을 하다보면 의뢰자의 주변을 취재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작업은 당연히 의뢰자의 동의를 받아 실행하는 일로 의뢰자의 기억을 보충하거나 좀 더 다양한 자료들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주변 취재는 기본적으로 신문, 방송 등의 자료를 이용하지만 이런 것은 이미 작업과정에서 드러나 있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는 주로 사람에 대한 보충 취재다. 의뢰자의 부인과 자녀, 부모 등 가족일 경우와 의뢰자에게 있었던 기억이나 사건들을 증언해 줄 친구, 친인척, 직장 동료, 사건 관계자 등의 주변인물들이 다양하게 포함된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의뢰자가 콕 찍어서 만나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대상을 찾아 헤메는 어려움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를 시작해보면 대개가 의뢰자가 말한 내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덜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의뢰자에 대해 지나치게 칭찬일색이거나 사실보다 과장되게 성격이나 실력을 부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주변 취재가 쓸 만한 것은 의외로 의뢰자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기억하고는 있어도 ‘그게 뭐 대수라고’ 하는 식으로 소홀하게 여기는 사건을 기억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뢰자 본인이 특별하게 여기지 않은 사건이 오히려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훨씬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부간에 있었던 일은 의뢰자보다 배우자의 기억이 더 재미나고 감동적일 수 있다. 내가 대필했던 어느 기업체 회장님의 경우 수천억원 자산을 가지고 있는데도 검소하기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검소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와이셔츠 깃이 헤져서 보풀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입고 있었고 양복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로 한 계절을 다 버티는 분이었다. 사무실에서 신는 슬리퍼도 시장에서 파는 가장 싼 슬리퍼를 신었다. 이 분은 보석 관련 사업으로 기업을 일으킨 분이었는데 70대임에도 30대 시절에 산 루페(보석을 감정하기 위해 눈에 쓰는 확대경)를 40년 넘게 써오는 분이기도 했다. 얼핏 보면 아니, 자세히 봐도 수천억 자산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검소한 분이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더한 분이었다. 댁으로 가 사모님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니 집에서 쓰는 모든 전자제품들이 대부분 10년 이상 된 오래된 것들이었고 탁자나 소파 등은 숫제 20년 이상씩 지나 귀퉁이가 낡거나 가운데가 눈에 뛸 만큼 움푹 들어가 있었다. 사모님은 그 회장님을 노랭이 구두쇠 영감이라고 머리를 절절 흔들었다. 더구나 보석과 귀금속 사업으로 재력을 얻은 분의 사모님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사모님 주변에는 보석이나 귀금속, 명품이라고 할 만한 장식품이나 장신구가 거의 없었다. 사모님이 끼고 있는 반지는 결혼하면서 예물로 받은 금반지일 뿐이었다. 그때 사모님의 한탄과 푸념은 회장님의 검소함을 밀도 있게 쓰기 위해서 아주 좋은 재료가 돼 주었다. 특히 사모님이 회장님을 향해 수전노니 노랭이니 짠돌이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에서 그 회장님에 대한 진실성이 느껴져 더 좋았다. 사업체 종사자들과 만나서는 숨겨진 미담을 듣기도 했다. 어느 직원분 아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는데 자녀가 많다 보니 대학 등록금 문제가 만만치 않아 고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흔연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거나, 직원의 가족이 교통사고가 나 만만치 않은 병원비가 들었는데 그것을 몰래 내주었다는 등의 미담들이 사업체 내에 떠돌고 있었다. 물론 그 회장님이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들이어서 즐겨 이 내용들을 취재하고 이야기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주변을 취재하다 보면 꼭 좋은 일만 듣는 것은 아니다. 뜻밖에 불만이나 흉을 듣기도 한다. 예의 그 회장님도 평소 지나치게 짠 기업 운영 탓에 사내 복지가 소홀하다거나 임금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도 들었다. 특히 그 회장님은 수백억원의 자산을 들여 해당 업계의 디딤돌이 될 만한 연구재단을 설립하고 꾸준히 그 재단을 후원해왔는데 직원들 입장에서는 우선 자신들의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나서 그런 연구재단을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불만을 공공연하게 토로했다. 그 기업이 동종업계에서는 최고 수준의 급여를 준다고 들었는데 취재하면서 보니 그 업계의 급여 수준이 다른 업계 수준에 못 미쳐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에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내용까지 자서전에 기록될 리는 없다. 말했다시피 자서전은 철저히 의뢰자가 자신의 인생을 미화하고 자랑하기 위해 쓰는 것이 대부분 아닌가?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사실이 드러나면 글을 쓰는 대필자 입장에서는 몰라보게 의욕이 떨어져 좋은 글을 쓰기가 거북해진다. 그러나 이런 일쯤은 오히려 약과다. 내가 아는 어느 대필 작가는 어느 정치인의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다가 그가 내놓고 의뢰자인 정치인을 성토하는 상황을 만났다고 했다. 도대체 왜 그분을 인터뷰하라고 말했는지 이해되지 않을 만큼 당혹스러웠다며 들려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당 정치인과 우정이 깊은 그 친구라는 분은 ‘자서전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신뢰를 먼저 회복하는 것’이라며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치가로 성공하면서 이전에 걸었던 공약이나 정책을 이행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오로지 표를 유지하고 모으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정치를 왜 하느냐?’며 강경하게 인터뷰 거부의사를 밝힌 분 앞에서 입맛이 썼다고 한다. 엉뚱하게도 차라리 그분을 취재해 쓰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날 정도였다나? 이런 엉뚱한 일을 겪고 나니 대필을 의뢰한 정치인이 갑자기 표에 정신이 빠진 정치꾼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필하는 동안 무슨 말이건 크게 신뢰가 가지 않더라고 하는 그 작가의 말이 백 번 공감되었다. 당연히 그 친구분에 대한 인터뷰는 취소되었고 그와 관련된 일도 책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작가에게 그래도 그 정치인은 그만한 친구가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말을 나누며 웃었다. 상당수 정치인들 주변에는 이권에 눈 어두운 사람들이 진 치고 있기 십상이라 바른말 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고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쯤, 대필 작가라면 자주 겪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일들조차 미화해 내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남의 책을 맡은 대필작가들의 의무다. 유감스럽게도 대필작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심판자가 아니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정의의 사도도 아니다. 오히려 최대한 의뢰한 사실을 중심으로 추억에 살을 붙이고 과거의 사건을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사실의 정확성이나 진실성, 제3자의 주관은 다만 장식품들일 뿐이다. 의뢰자가 바라는 것도 대부분 포장과 미화다.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을 피알(PR)이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는 대필작가들의 금과옥조다. 때문에 주변 취재를 시작할 때는 의뢰자에 대해 좋은 이야기들을 채집하러 나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된다. 그러다 의뢰자조차 알지 못했던 미담이나 보석처럼 숨겨진 이야기를 찾게 된다면 그 자체로 감사하면 된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자서전쯤 내려는 사람들은 그런 대로 자신이나 자신의 주변들과 원만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부정적인 요인이 드러나 신바람을 꺾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설혹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 의뢰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대필 작가가 골머리 썩거나 심리적을 타격 받을 일도 아니다. 대필 계약이 성립되는 순간부터 대필 작가에게 의뢰자는 그 자체로 정의롭고 아름답다. 주변의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그저 주변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대필자가 그저 무턱대고 좋게만 기록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음 호에서는 대필 작가의 또 다른 역할에 대해 짚어 보겠다.
자서전 대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뢰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하는 일이다. 이 기록이 정확히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라도 사실과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아무리 짧은 이야기라도 세부적인 년도나 날짜, 미세한 사실 등에 대해서 정확히 기록해 놓아야 할 부분들이 생긴다. 그런 기록을 하려면 다양한 도구들을 활용해야 한다. 지금은 기록의 방법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이런 것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각각의 쓰임에 맞는 활용법을 알아야 한다. 가장 원시적인 기록은 일일이 펜으로 받아 적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속기가 안 되는 대필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겨우 중요한 부분을 메모하는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할 경우 일정 부분 시간이 지나버리면 원래의 이야기를 잊어먹기 쉽다. 때문에 이런 경우 최대한 기억이 선명할 때 메모한 내용을 명문화 시켜 글로 남겨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때에 글로 남긴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워 자칫 소홀히 다루었다 사실을 잊어먹고 난감해 할 수 있다. 따라서 메모할 때 하더라도 그와 함께 녹음이나 녹화의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전에는 인터뷰 때 녹음기를 가져가거나 캠코더를 가져가는 것이 매우 유익했다. 메모를 바탕으로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나 의뢰자가 말한 정확한 인용이 필요할 때는 녹음기나 캠코더를 돌려보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캠코더는 영상자료의 중요성이 커지고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높아지면서 더욱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자서전을 낸 이후 별도의 영상물로 남기거나 출판기념회를 할 때 사용할 수도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때문에 녹화할 때 대충 육성을 담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의뢰자의 위치와 인터뷰 환경, 카메라의 각도까지 고려해 성의 있게 찍어두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대필을 오래 한 작가들의 경우 소형 녹음기나 성능 좋은 캠코더를 완비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경우 마치 007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초소형 녹음기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번에 5시간까지 녹음이 되고 생긴 것이 USB처럼 생긴 데다 실제로 USB단자가 달려 있어 녹음한 내용을 컴퓨터에 꽂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렇게 초소형 녹음기를 가지고 다녔던 이유는 의뢰자를 갑자기 만나거나 뜻밖의 장소에서 녹음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를테면 함께 점심 먹으러 가서 의뢰자가 마침 떠오른 내용이라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녹음하는 등의 상황에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녹음기와 캠코더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초소형 녹음기도 당연히 필요 없어졌다. 스마트폰에 녹음기도 있고 카메라도 있고 카메라에 딸린 동영상 촬영 기능까지 다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의뢰자의 말을 현장에서 녹음하거나 녹화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대필작가들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기록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들은 저장공간까지 넉넉한 것은 물론 기종에 따라 메모리를 늘일 수도 있어 무한대로 녹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녹화나 녹음을 진행하는 한편 노트북 컴퓨터를 켜 놓고 의뢰자와 인터뷰하면 훨씬 작업이 쉽다. 내 경우 인터뷰하면서 어지간한 의뢰자의 말은 노트북으로 직접 받아칠 만큼 자판 두드리는 속도를 맞출 수 있는데 이렇게 메모 겸 육성을 노트북으로 치면서 스마트폰으로 녹음이나 녹화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법을 오래 써왔다. 그러나 이렇게 녹음하고 녹화하고 나서도 막상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 해당 대목을 찾을 때는 번거롭기 이를 데 없다. 영화촬영에서처럼 일일이 슬레이트를 치면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막상 원하는 해당 부분을 찾으려면 영상을 돌려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녹음이건 녹화건, 그 자체가 거의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인물이 진행하는 녹음이나 영상이므로 일일이 해당 장면을 찾은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아주 획기적인 어플 하나를 알고 나서 내 인터뷰 작업이 아주 쉬워졌다. 사실 앞에 쓴 이야기 모두는 이 어플을 이야기하려는 서론에 불과했다. 앞에서 말한 메모와 녹음, 녹화, 노트북 컴퓨터 기록 등은 인터뷰의 기록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도구들일 뿐이다. 그런데 이 어플을 쓰면 이 모든 것이 동시에 간단하게 이뤄진다. 삼성에서 개발한 ‘클로바노트’라는 어플이 그것이다. 이 어플은 기본적으로 녹음과 동시에 녹음한 내용을 텍스트로 전환해준다는 가공할 만한 기술을 담고 있다. ‘가공할 만한’이라고 표현한 것은 평소 다양한 인터뷰를 하거나 행사를 녹취하거나 연설문을 받아쓰거나 수많은 메모를 해야 하는 내 직업상 이게 보통 편리한 어플이 아니기 때문에 붙인 찬사다. 이 어플은 녹음한 내용을 텍스트로 전환할 뿐만 아니라 녹음 당시 참석한 사람들의 수를 입력하면 AI가 일일이 목소리를 분류해 각각의 인원들이 말한 내용을 따로 떼서 텍스트로 나타내준다. 또 녹음하다 중요한 부분을 체크해 두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글씨를 부각시켜 찾아보고자 하는 부분을 쉽게 보여주는 기특한 센서도 장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화 통화를 녹음해 두고 해당 파일을 찾아서 기능을 실행하면 즉시 통화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해 준다. 한 번 인터뷰를 시작하면 최소한 2시간 이상 작업해야 하는 대필 작가에게 이만큼 유용하고 중요한 어플이 없을 것이다. 이 어플을 실전에서 아주 유용하게 쓴 적이 있다. 올해 초 어느 지자체 단체장이 자서전을 내면서 나에게 대필을 의뢰했는데 급하게 진행된 그 자서전 기획을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데는 이 어플이 절대적으로 효과 있었다. 특히 그 지자체 단체장은 여러 가지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있었고 해당 지자체에 아주 많은 업적을 남긴 분으로 일일이 그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느라 짧은 시간에 아주 밀도 높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연히 인터뷰 분량이 많아졌고 단기간에 그 많은 양의 인터뷰를 텍스트로 만들려고 했다면 정리하는 자체로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클로바노트를 써오던 나는 인터뷰 내내 이 어플을 활용했고 덕분에 많은 분량의 인터뷰를 클릭 몇 번으로 전부 텍스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일의 강도로 치면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작업이 실제로 이전 작업들보다 훨씬 쉬웠던 것은 오로지 이 어플의 편리함 덕분이었다. 이 어플은 평소 취재나 다른 인터뷰에도 자주 사용한다. 이전처럼 일일이 메모하겠다고 신경 곤두세우지 않아도 어플만 가동시켜 놓으면 연설이나 대담을 쉽게 녹음하고 텍스트로 전환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이런 장점 때문에 이 어플을 주변 사람들, 특히 강연이나 강의를 듣는 학자나 학생들에게 자주 권해준다. 나처럼 취재 현장을 뛰는 기자들에게도 물론 추천해 준다. 요즘은 책이나 인쇄물을 사진으로 찍으면 역시 텍스트로 전환해주는 어플도 있는데 이런 어플 역시 책을 인용하거나 대량의 자료를 복사해서 사용할 때는 매우 유용하다. 바야흐로 기술의 발전이 생활전반을 쉽고 편하게 해주는 것과 비례해 글쓰기 세상도 눈만 크게 뜨면 훨씬 쉽게 글 쓰는 시대가 활짝 열려 있다. 문자 그대로 스마트한 세상이 전분야에서 열려 있는 셈이다. 대필 세상에서 일일이 메모하고 녹음하고 녹화하는 번거로움이 어플 하나라고 쉽게 해결된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우선 당장 강의노트를 만들어야 할 자녀들에게 방금 소개한 어플을 적극 추천해 보시라. 어쩌면 이미 그들은 다 알아서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자서전 이야기에서 잠깐 벗어나 대필의 좀 더 다양한 영역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성싶다. 대필의 범주는 매우 넓어서 비단 자서전뿐 아니라 크게는 학술 논문이나 강연문, 작게는 인사말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대필이 이뤄진다. 이런 경우의 대필 역시 당연히 금전적인 계약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경우에 따라 자서전보다 더 큰 금액이 대필료로 책정되는 것도 다반사다. 논문 대필은 전문가 집단에서 더 자주 일어나는데 이것은 전문가가 비전문적인 개인에게 어떤 이유에서건 개인의 실력이나 연구와 상관없이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벌이는 일탈 행위다. 최근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표절 시비가 붙었는데 이것은 대필을 자주 해본 내 입장에서 보면 표절이 아니고 대필이라 추정한다. 만약 김건희 여사가 그 논문을 직접 썼다면 ‘YUJI’라는 단어는 아무리 남의 논문을 베껴서 썼다고 해도 바보가 아닌 이상 발견하지 못할 리 없는 너무나 뻔한 오류다. 그럼에도 유지가 YUJI로 쓰였다는 것은 김건희 여사가 대필논문을 받은 후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다. 아마도 그 논문을 대필한 사람은 대필 의뢰자가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했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만 알아보도록 YUJI라는 간단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논문은 합격이 떼논 당상이었기 때문에 논문을 제출한 김건희 여사도 논문을 심사한 교수진도 YUJI가 붙은 제목은 물론 논문 전체를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많은 대학의 많은 석박사 학위 논문들이 이런 엉터리 같은 방법으로 복사기로 복사하듯 표절된 예는 지금까지 방송·언론이 보도한 것으로만 해도 과할 정도로 많다. 단언하건데 그것은 표절이 아니라 대필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니 그런 논문이 제대로 쓰여질 리 없고 그것이 제대로 심사될 리 또한 없다. 이런 현상은 쉽게 돈으로 학위를 사려는 자와 그만큼 쉽게 돈을 벌고 지식도 아닌 ‘수법’을 팔려는 자들의 속 검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 표절자 한쪽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중요 인사들의 논문 표절이 끊임없이 횡행하는 이유는 그만큼 대학의 논문 검증 기능이 형편없었다는 반증이며 한편으로는 논문 심사 속에 도사린 범죄를 묵과해왔다는 증거일 수 있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이렇게 부실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무언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하려고 나섰을 때 반드시 ‘검증’이라는 도마에 오르게 되고 지금의 온갖 명쾌한 시스템들이 그 허구적 실체를 가차 없이 밝혀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엉터리 학위를 받았거든 딱 그 엉터리가 통할 만큼의 일에만 써먹어야지 더 이상 욕심내면 안 된다. 일순간 심사는 속일 수 있어도 철저한 시스템과 도도한 국민의 눈은 절대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논문 대필이 불법적인 것이고 양심의 문제와도 결부된 것이라면 연설문 대필은 법과 상관도 없을뿐더러 양심과도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연설문은 단지 연설문일 뿐 대필자를 써서라도 잘 쓰는 것은 훨씬 중요한 일이다. 때문에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공직자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단체의 수장들은 연설문 대필에 익숙하다. 특히 경험이 얕거나 글에 자신 없는 정치가들은 중요한 연설문을 대체적으로 보좌진이나 대필자에게 의뢰해서 작성하는 것이 상례다. 내 경우에도 무수히 많은 연설문을 대필해서 썼고 그것이 해당 연설자의 이름으로 명문화된 것도 많다. 그렇다면 이런 연설문을 쓸 때는 어떤 관점에서 써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연설문을 매우 가볍게 생각해서 아무 행사 아무 때나 ‘인사말 하나 써줘’ 하면 뚝딱 나오는 줄 안다. 물론 일반적인 행사의 연설이라는 것이 판에 박아서 경험 많은 대필자들은 행사가 어떤 행사인지만 알면 무난하게 연설문을 써줄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연설문을 쓰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가장 큰 3대 요건은 1)연설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2)연설할 곳은 어떤 곳인가? 3)연설자의 연설할 곳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이다. 이것만 알면 기본적인 연설문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연설이 좀 더 감명 깊거나 설득력을 얻으려면 반드시 취재가 필요하다. 내 경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연설문을 쓸 때는 반드시 연설할 사람과 통화부터 한다. 그래서 연설할 사람과 연설할 곳의 특징과 성격, 연설을 들을 사람들의 현황 등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연설문을 작성한다. 그래야 리드미컬하고 가치 있는 연설문을 쓸 수 있다. 한번은 어떤 선배가 연락해 자기가 아는 지인의 연설문을 써달라고는 부탁했다. 문제는 그 선배가 연설할 사람의 정보를 전혀 주지 않고 무턱대고 대충 하나 써달라고 떼를 쓴 것이다. 당연히 그 부탁을 사양했다. 대충 쓰는 것은 잘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대충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고 그런 연설문은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연설할 사람과 연설할 대상 양쪽을 다 아는 경우라면 연설문 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왜냐하면 연설자의 평소 소신과 그 단체에 대한 태도는 물론 연설자의 어투까지 잘 알고 있는데다 연설할 대상이 필요로 하는 사항과 그 대상의 현재 상태까지 상세하게 알기 때문이다. 영광스럽게도 나는 한때 내가 속한 모 단체의 역대 회장님들의 연설문을 6년이나 썼었다. 2년마다 회장님이 바뀌어도 그 단체의 범주 안에서 평소 잘 알던 분들끼리 바꾸는 일이라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심지어 정확하게 그 회장님들의 어투까지 글 속에 표현해 놓아서 회장님들이 연설하고 나서 연설문이 입에 잘 붙어서 매우 자연스러웠다는 공치사를 듣기도 했다. 좋은 연설문에 아주 중요한 수칙이 있다. 반드시 짧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쓰는 연설문은 아무리 길어도 5분을 넘기지 않고 보통은 3분 이내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권위와 품격 모두를 지키기 위함이다. 대신 ‘취임사’는 소신과 정책을 넣어서 7분에서 길게는 10분 정도로 꾸민다. 그것은 향후 그 연설문이 해당 단체나 조직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인사말은 3분에서 ±10초 오차범위로 쓴다. 이때 3분의 기준은 연설하는 분의 어투와 말 속도를 고려한 시간이다. 3분의 이유도 분명히 있다. 대한민국 행사는 아직도 후진국형을 벗어나지 못해 인사하는 사람들이 마이크 붙들고 온갖 너저분한 말을 길게 해야 잘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마이크 잡는 분들이 일일이 행사장에 나온 누구누구에게 인사하고 어떤어떤 일에 축하하는 것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본론에 들어가서도 뼈대 있는 말은 없이 공자왈 맹자왈, ‘누구의 말씀에 따르면~’ 식으로 끝없이 떠든다. 그러다 보면 ‘끝으로~’ 할 때까지 8분, 10분 막 넘어간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데 자기만 신나서 떠드는 것이다. 이런 인사말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3분 이내에 핵심적인 사항을 이야기하고 상황에 따라 그 안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슬쩍 끼워서 쓴다. 이렇게 하면 듣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짧고 강력하게 연설할 수 있다. 내가 대필해준 연설문 중에는 우레와 같은 환호성으로 연설자가 영웅이 된 일이 있었다. 내가 나온 대학의 어느 선배가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 동창회장으로 추대돼 모교 졸업식에서 한 연설문이었다. 그 내용이 파격적으로 ‘이 문을 나가는 즉시 마음껏 놀아라’는 것이었다. 물론 논다는 것은 새로운 창의력을 전제한 것이었지만 그 마음껏 놀아라는 말에 졸업생들이 열렬히 환호했다며 아주 만족해서 답례했다. 궁극적으로 대필 연설문은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의 철학과 신념이 근간이 되겠지만 상단 부분 대필하는 사람의 철학과 신념도 중요하게 반영된다. 의뢰자와 대필자의 이상이 들어맞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대필한 인사말의 주인공들은 그런 면에서 나와 참 조화로운 분들이었다. 덕분에 참 행복하게 인사말을 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대필작가 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자료를 찾지 못해 애먹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특정 사건이나 특정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나 인물의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야 하는데 막상 자료라고 할 만한 게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가장 쉬운 자료 조사대상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이곳은 문자 그대로 ‘도서관의 도서관’이라 할 만큼 없는 동서고금을 망라해 책과 문헌과 기사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문서로 이루어진 모든 자료는 국립도서관이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젊었을 시절 무언가 자료를 찾다가 막히면 종종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다. 실례로 대학 4학년 때 L여행사 인바운드 부서에서 잠시 실습한 적 있는데 당시 학생인 나에게 자료조사를 자주 시켰다. 일본 관광객들 중 기술적인 방문이 필요하거나 학문적인 방문이 필요한 여행단체들은 사전에 자료부터 찾아주길 원했다. 당시 L여행사는 날마다 이런 자료를 찾는데 하급 사원들을 투입했지만 속 시원하게 자료를 가져다주는 직원들이 흔치 않은 듯했다. 문서 찾기에 경험 없는 직원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가 학보사 출신이란 걸 기억하고는 취재에 능한 나에게 그 자료검색을 맡긴 적이 있었다. 나는 군말 없이 국립도서관에서 가서 자료를 찾아 신속하게 대령했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쉽게 한 일이지만 일을 시킨 상급자들은 깜짝 놀랐다. 자료의 내용도 좋았지만 시간도 누구보다 빨리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자주 자료조사를 맡았었고 그런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실습을 마치고 정사원으로 내정되는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직원들의 차이는 단순히 자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지 아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는데 그것을 안 나는 특별한 대우를 받은 셈이었다. 그 당시 국립도서관을 찾을 때는 컴퓨터 시스템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일일이 검색대에서 하나하나 색인 카드를 뒤져가며 자료를 찾아야 했다. 책 따로 신문 따로 논문 따로 식이었다. 분야별로 긴 사각통에 들어가 빽빽이 꽂힌 수천만 장의 카드를 제목을 유추하면서 가나다순으로 헤집다 보면 눈이 팽팽 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 자료검색 역할은 L여행사에 입사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잊혔다. 내가 다시 자료를 찾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20년이나 더 지나 본격적으로 남의 책을 써주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거의 20년 만에 다시 국립도서관을 찾은 셈이었다. 오랜만에 국립도서관을 찾은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많던 종이 검색대는 어느 사이엔가 다 없어지고 검색대가 컴퓨터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자료를 찾는 것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편해졌다. 원하는 자료를 치면 컴퓨터에서 책이나 자료가 있는 위치를 딱 찍어서 알려주었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컴퓨터의 힘에 놀란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국립도서관 자료는 그때와도 비교할 수 없이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어지간한 책과 논문은 디지털로 전환되어 있어서 국립도서관 검색대에서 ‘디지털화자료’를 클릭하고 원하는 책이나 논문을 치면 순식간에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아주 많은 자료들이 전자책이나 전자 문서로 전환되어 있어 굳이 국립도서관까지 가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검색해서 다운받을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놀라운 자료 활용법이 있다는 것은 자료를 찾아 글을 써야 할 작가들에게는 축복과 같은 일이다. 국립도서관에는 각종 주요 언론사들의 신문들이 날짜별로 다 보관되어 있어 내 젊은 시절에는 오래된 신문 기사를 찾기 위해서도 국립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역시도 그럴 필요가 거의 없게 되었다. 네이버에서 만든 ‘네이버뉴스라이버러리’는 내가 중요한 기사를 검색하는 만능창구다. 이 사이트는 1920년 이후 경향, 동아, 매일경제, 동아일보, 한겨례 신문의 모든 신문이 전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 엄청나게 놀랍다. 모든 신문이 디지털 화면으로 복사되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게 날짜별, 면별로 한 장도 빠짐없이 다 복사되어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기사를 일일이 텍스트로 전환해서 다운받을 수 있게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가히 기상천외하다 못해 기절복통할 만한 일이다. 네이버뉴스라이버러리에서 기사를 검색하고자 한다면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서 검색창에 사건이나 인물을 치기만 하면 된다. 불과 2초도 지나지 않아 해당 검색어에 대해 5개 일간지 전체의 기사가 뜬다. 해당 신문을 클릭한 후 다시 해당 기사를 마우스로 누르면 순식간에 텍스트로 변환시켜준다. 이런 방법을 통해 필요한 사건과 사고, 인물에 대한 신문 기사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면 우리가 아는 우리나라 역사서 전부가 해석과 함께 실려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물론 고려사 고려사절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것을 안방에 앉아서는 물론, 스마트폰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너무나 간단하게 열람할 수 있다. 그냥 열람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 사료의 원본은 원본대로 보면서 국내 최고의 석학들이 번역한 번역자료까지 동시에 볼 수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는 해외에 보관되어 있거나 발간된 한국사 자료들, 외국에서 발간한 자료들도 번역해서 볼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다. 이렇게 신나는 자료들의 바다가 열려 있다는 것은 자료를 찾는 시간을 단축해주는 것은 물론 믿을 수 있는 자료를 구하는 데도 놀랄 만큼 획기적이다. 몇 해 전 한국관광학회에서 주관한 어떤 행사에서 ‘소설 목민심서’를 쓴 황인경 작가를 만난 적 있다. 당시 나는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를 써놓고 책 제목을 결정하지 못해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소설 목민심서’는 부럽기 이를 데 없는 걸작이었고 당연히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런 내게 황인경 작가는 목민심서를 쓰기 위해 10년 가깝게 자료를 찾아 헤맸다고 말하면서 책 쓰는데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내가 4년 걸렸다고 대답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썼느냐고 반문했다. 방금 위에서 나열한 내용들을 알려드렸더니 당신이 오히려 탄복했다. 황인경 작가가 ‘소설 목민심서’를 쓸 당시에는 이런 자료들이 이렇게 방대하게 컴퓨터에 들어 있지 않을 때였다. 책을 쓰기 위해 일일이 문헌을 찾아 헤매고 답사했을 황인경 작가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황인경 작가는 그런 어려움을 토로한 뒤에 ‘지금처럼 자료가 풍성한 시절이었다면 고생도 덜 했겠지만 책도 훨씬 빨리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부럽다!’며 자신의 시대는 책 쓰기 어려운 시대였다며 아쉬워했다. 실제로 나는 자료를 찾을 때나 고증을 위해서 위에서 예로 든 디지털 사이트들을 자주 이용한다. 그때마다 이 광범위하고 깨알같은 자료들을 이렇게 친절하게 올려놓은 대한민국에 감탄하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인문학이란 것이 자료가 없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데 적어도 디지털 자료들이 이처럼 꼼꼼히 갖추어진 것은 대한민국 인문학의 미래를 밝히는 근원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료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런 자료들을 활용할 줄 모른 체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 없는 글이나 검증되지 않은 블로그의 글을 무턱대고 퍼서 인용하는 것은 책임 있는 글을 쓰는 자세도 아닐뿐더러 그래서는 좋은 글이나 책도 나올 수 없다. 대필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의뢰자의 기억이 생각보다 허술하거나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 회고가 대강의 큰 줄기에서 그치고 세부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때가 바로 대필작가의 역량이 발휘될 때다. 디지털 정보의 바다에서 캐낸 주옥 같은 자료들이 의뢰자가 놓친 중요한 단서들을 꿰어 멋진 보배를 만들어줄 것이다.
인터뷰할 때 가장 힘든 유형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어떤 대답에건 ‘예’나 ‘아니오’식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유형은 인터뷰하기가 무척 어렵다. 충분한 취재를 하고나서 인터뷰를 시작해도 막상 무얼 물으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거나 ‘취재를 잘 해 왔으니 그걸 바탕으로 대충 써주세요’라고 말하면 갑자기 기가 탁 막힌다. 취재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기본 자료일 뿐이다. 이를테면 겨우 뼈대를 갖춘 정도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야 하는데 대답이 ‘알아서 대충 하슈’ 정도가 되고 나면 코가 맥맥해지는 것이다. 그만큼은 아니라도 의뢰자들이 친절하게 상세한 내용을 일일이 다 기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전개과정을 선연히 기억하기도 힘들거니와 설혹 기억하고 있어도 제대로 표현해내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대필하는 과정에서 내가 만든 용어가 하나 있다. ‘인지적 유추(認知的 類推)’라는 것으로 약간의 단서를 가지고 상황 전체를 찾아낸다는 의미로 쓴 용어다. 이것은 그야말로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한 작법이다. 내가 책을 써드린 어느 의뢰인이 나에게 이렇게 기술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시장에 좌판을 깔고 해삼과 멍게를 팔았어요. 그걸 돕다가 칼에 손가락을 베었어. 피가 철철 났지. 그때 이걸 엄마가 알면 얼마나 걱정하실까 생각되는 거야. 그래서 끝내 말씀드리지 않고 혼자 치료하고 숨겼어요. 그때 내가 철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야”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의뢰인의 표정이 얼마나 숙연해보였던지 인터뷰하는 내 가슴이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을 정도였다. 며칠 후 이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글이 완성돼 그분에게 보여드렸다. 그 분이 글을 다 읽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감탄했다. “아니 박 작가님은 어떻게 그때 그 상황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써놓았어요. 마치 그 상황을 직접 보신 듯 상세하게 꾸며 놓았어요!” 나는 달랑 1분도 안 되는 재료를 가지고 한 편의 드라마를 써야 했다. 그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우선 해당 시장의 모습을 내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다행히 내 머릿속에는 70년 대 좌판시장의 모습이 잘 저장되어 있어서 그런 류의 시장 모습을 쉽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좌판에서 부지런히 손님들 상대하고 있을 어머니를 한 쪽에 두고 그 어머니와 말을 주고 받거나 서로 술잔을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도 그려졌다. 이런 배경을 두고 내 상상력이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의 바쁜 모습 한쪽으로 소년이 칼로 멍게를 손질한다. 날씨는 춥고 손은 얼었다. 자연히 감각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시린 손끝을 새파란 칼날이 지나간다. 그때의 섬뜩함이 가슴을 파고 든다. 순간 빨갛게 흐르는 피가 멍게에서 나온 체액과 썪인다. 이어 전해 오는 짜릿하고 날카로운 아픔. 놀라 손가락을 움켜쥐고 순간 어찌할 바 모른다. 어머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일에 여념이 없다. 그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스치는 생각. ‘이걸 보시면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실까?’ 소년은 말없이 손가락을 움켜쥐고 그 자리를 떠나 우선 약국으로 달려간다. 상처를 보고 약사가 빨간 소독약과 붕대, 반창고를 내주고는 직접 응급처치까지 해준다. 그런채로 다시 돌아와 멍게를 손질한다. 붕대가 젖을까봐 조심하는 것이 성가신 한편 혹시라도 어머니가 손가락 처맨 붕대를 보실까봐 몸을 한쪽으로 틀어서 멍게를 손질한다. 이런 내용을 찬찬히 기술해 나갔다. 위에서 유추한 내용들을 하나씩 간추려 묘사하고 그때의 감정을 글로 표현했다. 그 글을 본 의뢰인이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 자신이 처한 여러 가지 정황과 감정이 그 글 속에 그대로 되살아나서였다. 또 한 명의 의뢰인은 어린 시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중학교 갈 때, 아버지가 ‘농사나 짓지, 중학교는 말라꼬 가노?’ 카면서 입을 딱 닫아뿌시는 기라. 학교 가서 선생님께 말a씀드렸더니 그 선샘이 집으로 와가 맻매칠이나 아버지를 설득했어. 그래가 내가 중학교에 갈 수 있었다 카이” 딱 요 정도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썼다. 우선 그 의뢰인의 마을을 가본 나는 전체적인 동네의 배경을 머릿속에 스케치하고 의뢰인의 집 구조도 그려보았다. 아버지와 이야기 할 때의 초등학교 6학년을 내 마음속에 등장시켰다. 매일 일손 바쁜 아버지의 모습 한편으로 가난한 아버지의 어쩔 수 없이 완고해진 심정도 살펴보았다. 아이의 조심스런 부탁과 그것을 단숨에 잘라야 했던 아버지의 심정, 그 표정이 어떠했을지를 그려 보았다. 이튿날 학교에서 풀 죽은 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야 했던 아이의 심정과 똑똑한 아이에게서 진학을 포기한다는 말을 들은 선생님의 표정, 두 사람 사이에 흘렀을 처연한 마음들을 다시 그려보았다. 그로부터 매일 가정방문을 오는 선생님과 아버지의 실랑이를 그렸다. 선생님의 집요한 설득과 생활형편으로 인해 차마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것을 뒤쪽에 숨어 숨죽이고 듣는 아이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차곡차곡 그려보았다. 그정도 되면 아들이 영특하고 공부에도 남다른 재질이 있었을 것이 뻔하니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장학혜택 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런 며칠의 과정이 주변 정황과 시골의 풍경과 세 사람 사이에 오고간 대화, 표정 등으로 묘사됐다. 이윽고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을 때 아이의 환희와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을 선생님의 미소, 자신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아들을 속 시원히 진학시키지 못한 미안함에 허락은 하면서도 끝내 시선을 다 주지 못했을 아버지의 표정도 포함됐다. 결국 그 대목을 읽은 의뢰인도 눈물을 ‘뚝’ 흘렸다. 나중에 그 의뢰인이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대중들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시를 한편 읽었는데 도중에 왈칵 눈물을 흘려 좌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눈물을 쏟은 적도 있었다. 그 상황들을 내 가슴에서 고스란히 유추하고 세세히 묘사한 결과가 그렇게 드러난 것이다. 그런 성공적인 사례들도 많았지만 전혀 엉뚱하게 유추해 글 전체를 확 드러내고 다시 쓴 적도 있다. 어느 의뢰인이 아주 큰 음식점을 경영했는데 그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지 않아 혼자서 상상의 날개를 폈는데 그게 보기 좋게 어긋나버렸기 때문이다. 그 의뢰인은 한강의 어느 멋진 강변에 건물을 빌려 카페 겸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주 대박나게 잘 되어 2호점을 다시 냈고 급기야 자기 자신이 직접 집을 지어 유명한 한정식 식당을 다시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그 의뢰인이 하도 급하게 일을 의뢰하느라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그분의 평소 신념과 이력 등을 고려하고 잘 되는 식당의 일반적인 모습들을 유추해서 글을 썼다. 위생관념, 직원들과의 화합, 고객에 대한 응대요령, 식자재에 대한 청결도 등 내 전공의 한 분야이기도 한 식음료 부분의 잣대를 일괄적으로 적용해 글을 쓴 것이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의뢰인이 고개를 절절 흔들더니 급히 자기 부인을 만나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다른 내용은 다 그만두고 그 큰 음식점을 오로지 부인이 혼자서 다 감당해낸 것이었다. 직원도 없이 오로지 부인의 솜씨와 차포상마 다 뗀, 한 마디로 엄청난 노력으로 꾸려진 식당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전혀 뜻밖의 반전이었다. 유추의 한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어이없는 반동이기도 했다. 글을 고쳐 쓰면서 나는 그 의뢰인의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의뢰인은 마침 내 선배이기도 했다. “형수님은 일반의 한계를 뛰어넘은 내조자이십니다. 이 책은 차라리 형수님 책으로 내시지요!”
이 지상강의를 시작하면서 3번째 ‘인터뷰’란에서 자신에게 스스로 하는 인터뷰에 대해 소개했다, 이런 방식은 의뢰자에 대한 인터뷰에도 똑같이 적용할 만한 기본적인 방법이다. 더구나 앞 강의에서 말한 ‘취재’가 잘 되어 있다면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취재가 잘 되어 있더라도 마냥 인터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인터뷰는 다분히 작가가 전체적인 틀을 고려하고 그 속에서 진행되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취재 자료가 많거나 세세한 부분에 들어가다 보면 자칫 불필요한 곁가지로 인터뷰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의뢰자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질문의 의도와 상관없이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전개되기 쉽다. 적절한 타이밍에 끊어주지 못하면 시간만 허비할 뿐 얻고자 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다. 이번 호는 대필을 의뢰한 사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가의 의도대로 이끌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악력이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연히 의뢰자다. 최대한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뢰자를 효과적으로 장악하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많은 대필작가들이 의뢰자에 대해 장악력을 가지지 못해 무턱대고 끌려다니다 대필을 포기하거나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뢰자는 보통 자기 분야에 성공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사회적으로 유명인사 혹은 정치적으로 꽤나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반면 대필작가는 ‘겨우’ 대필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의뢰자를 장악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언젠가 내가 대필했던 모 정치인의 경우도 딱 이런 경우에 속했다. 그 정치인은 대단한 달변가이고 이론가다. 글도 꽤 잘 써서 충분히 스스로 자서전을 낼 만큼 역량 있는 분이었다, 더구나 탄탄한 기획력에 시민들을 위해 이루어 놓은 업적도 많아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빠듯한 시정 때문에 그 자신 느긋하게 앉아서 자서전을 쓸 만큼 여유 있지 않았고 내놓고 책을 쓰자니 선뜻 자신감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럴 무렵 모 유명 출판사가 내놓고 그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자며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나섰다. 정치가 입장에서야 그렇지 않아도 자서전이 필요한 마당에 출판사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나섰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출판사와 일정을 조절해 출판사에서 추천한 대필작가와 만났다. 하루종일 인터뷰하고 나서 대필작가가 돌아갔는데 며칠후 출판사에서 대필작가가 도저히 더 이상 인터뷰를 못하겠더라며 다른 대필작가를 보내겠다고 연락했단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대필작가가 정해져 또 인터뷰를 했는데 이번에도 또 작가가 난색을 표하며 손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결국 그 출판사는 자서전 작업을 유야무야 어정쩡하게 끝내버렸다고 한다. 내가 그 정치인을 만나 보니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익히 알 수 있을 듯했다. 그 정치인은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디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만큼 여간한 입심을 가진 분이 아니었다. 나를 만나서도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봇물 터지듯 온갖 이야기를 다 꺼내 놓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분의 자서전을 맡아서 써보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그렇게 약속하자 비서진들이 근처에서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 정치인도 미리 두 번이나 작가들이 왔다가 포기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자서전 대필을 수락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내가 처음 꺼낸 말이 이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 질문에만 답하시고 혹여 말씀 중에 제가 멈추라고 말씀드리면 반드시 그 지점에서 말씀을 멈추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책을 내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게 약속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마 첫 인터뷰에서 내가 멈추라고 하거나 ‘그만’이나 ‘됐고요’라고 한 말이 한 시간에 스무 번쯤 되었을 것이다. 멈추라고 할 때마다 그 정치인이 입이 근질거린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그 시점은 정확하게 그 정치인이 내가 물은 질문에 답하다 엉뚱한 곳으로 새는 시점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심지어 그 정치인이 ‘아, 제가 또 엉뚱한 길로 샜나 보죠?’라며 어색해하기도 했다. 첫 미팅이 끝나고 나니 배석했던 비서가 나를 배웅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 정치인을 그렇게 사정없이 윽바지르는 사람을 처음 본다는 말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정치인의 책은 약속한 기한 내에 잘 출판되었고 그 일로 그 정치인과 흉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에도 그 분은 나와 이야기나누다 삼천포로 빠진다 싶으면 문득 ‘아, 제가 또 엉뚱한 수다를 떨었지요?’라며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내가 대필해드린 분들이 대부분 사회적으로 매우 명망 있는 분들이었지만 그분들 중 누구도 위의 범주를 벗어난 적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일반적인 대필작가들과 어떤 점이 달랐을까? 대부분 대필작가들은 대체적으로 의뢰자보다 젊고 사회적으로는 경험이 적고 경륜 역시 얕다. 그에 반해 의뢰자들은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 부를 가진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대필작가가 의뢰자를 끌고 가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 대필작가들에 비해 내 경우는 어린 시절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고 유명한 사람들에 대한 내성이 강했다. 나는 6남매 중 막내인 아버지의 다섯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내 주변은 온통 열 살에서 스무 살 많은 사촌 형님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아버지만큼 나이 많은 사촌들도 몇이나 있었다. 심지어 5촌 조카들 중에 나보다 나이 많은 조카들이 열 명쯤 있었다. 이렇다 보니 나이 많은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대학에 가서는 학보사 기자를 한답시고 학내 교수님들과 학교 관계자들, 유명한 사회인사들을 쫓아다녔다. 더구나 그 시절은 학내에 최루탄이 난무하고 허구한 날 경찰들이 학내외를 감시하던 시절이었다. 고작해야 스물두어 살의 학보사 기자가 그 엄혹한 세상에서 대학신문기자랍시고 쫓아다닌 자체로 배짱에 대한 훈련이 되었다. 그러다 여행사에 입사하고 나서, 특히 젊어서부터 여행사를 경영하면서 지위 높거나 부유한 고객들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 내가 일주일 혹은 열흘씩 인솔하고 다닌 고객 중에는 유명 작가와 예술가, 명망 있는 학자, 유명 기업가들이 즐비했다. 정치적으로는 국회의장을 지낸 분도 있었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분도 있었다. 군에서 군단장과 사령관을 지낸 분, 경찰에서는 광역시나 도단위 경찰정장 출신도 여러 명 있었다. 유명 법관이나 검찰총장 출신, 국회의원 출신의 고객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쟁쟁한 분들도 여행지에서는 결국 내가 돌봐야 할 다 똑같은 고객들이었다. 명성과 부나 지위는 한때 잘 입은 옷일 뿐 그 자체로 사람이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다 보니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나에게는 대등한 한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이 없다 보니 누구를 만나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그것은 거꾸로 의뢰인이 나를 편하게 대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젊은 대필작가들을 만나면 반드시 해주는 말이 ‘쫄지말라’는 말이었다. ‘자신이 의뢰인에게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대필을 나올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들려준다. 여기에 또 하나, ‘적어도 글만큼은 의뢰인보다 작가인 당신이 훨씬 고수라는 사실을 늘 자부하라’고 일깨운다. 설혹 그게 어쭙잖은 똥배짱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만한 기세 없이 백전노장이라 할 수 있는 의뢰인들을 장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계약이 이뤄진 다음부터는 당연히 인터뷰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한 가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의뢰자에 대한 취재다. 초보 대필작가들이 종종 겪는 실수가 인터뷰할 때 무턱대고 의뢰자의 이야기만 듣고 쓰면 되는 줄 아는 것이다. 이것은 대필의 기본을 모르는 일이다. 여러 번 지적했듯 의뢰자는 자기의 기억을 과신하지만 따지고 보면 많아야 30개 안팎의 사건을 기억할 뿐이다. 50~60개의 소재가 있어야 책 한 권의 분량이 나온다고 했을 때 나머지 20~30개를 보충하는 것을 결국 대필자의 몫이고 당연한 역할이다. 그 20~30개의 소재는 결국 취재에서 나온다. 보통의 경우 자서전을 쓰겠다는 사람은 그런대로 자기의 인생에 자신감을 가진 인물이다. 예술인, 경제인, 체육인, 종교인, 공직자, 정치인 등 누구라도 자기 나름의 발자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일일이 자기의 업적이나 과거의 행적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대필작가는 이런 것들을 인터뷰 전에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인터넷상에 많은 뉴스와 정보가 공개된 요즘 같은 시대에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의뢰자가 SNS를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취재하기에 더 좋다. 그러나 이런 일을 소홀히 하고 인터뷰에 임하면 그 인터뷰는 의뢰자 중심의 매우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진행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처음 대필 세상에 뛰어든 이유도 사실은 이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나의 경우 오랜 기간 지방신문 서울 취재본부장을 맡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인터뷰를 단 한 번도 아무 준비 없이 진행한 적이 없다. 비록 200자 원고지 12~13매 내외의 간단한 인터뷰일망정 해당 인물에 대해 미리 다각도로 조사한 뒤에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런 준비는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물론 인터뷰 대상자로부터 보다 세부적인 사항을 끌어내는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인터뷰할 기자가 자신을 잘 알고 찾아왔다고 생각하면 인터뷰 대상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편하고 안심이 된다. 자신을 잘 알고 온 만큼 마음을 여는 것도 훨씬 쉽고 할 이야기도 많아진다. 대필작가로 활동하던 초기, 내가 대필한 어느 정치인은 이런 점에서 나에게 무척 호감을 가지기도 했다. 경제통이었던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초적인 경제학 공부를 좀 해야겠다 싶어 당시의 국내외 경제 상황을 일일이 체크하고 용어들도 최대한 숙지했다. 그 의뢰인이 국가예산을 다루던 분이라 일부러 국회에서 예산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따로 공부했다. 대학시절 경제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원론 수준에 그쳤던 나에게 그 당시 한 달 남짓 익힌 경제공부는 그 대필 작업에서뿐만 아니고 내 인생의 경제지식에 크게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그분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지식에 대해 깜짝 놀랐다. 자신이 무엇을 말해도 척척 알아듣고 그에 관해 세부적으로 질문하니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해주었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장면들을 또 찾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그분의 작업은 내 대필인생에 매우 큰 전환점이었으며 책의 수준도 굉장히 높았다. 당연히 책이 나온 후 그분의 만족도도 최상급이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매달린 작업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취재를 제대로 하고 나서 인터뷰를 하면 기존의 취재에서 만날 수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므로 인물을 훨씬 더 자세하고 품격있게 보도할 수 있는 구실도 생긴다. 이런 취재 작업은 기사를 쓸 때 방향성을 미리 잡을 수 있도록 해주고 기사를 쉽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 인터뷰는 취재한 사실을 확인하고 첨가하는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 취재만 잘 해도 쓸 이야기가 넘친다는 뜻이다. 취재를 잘해 놓으면 의외로 의뢰인조차 잊어버리고 있거나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거꾸로 강조해줄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보석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내가 대필해드린 어느 지자체단체장 후보는 자신이 그 지자체의 부구청장을 지내면서 시행했던 다양한 일들에 대해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보다 단순히 자신이 재임 기간에 일어났던 일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었다. 부구청장이라는 위치가 구청장이 시행하는 많은 사업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데 더 역점이 있어서였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결재를 거쳐 진행한 일인 만큼 무관한 일은 아닐 것이고 더구나 실무적인 차원에서는 부구청장의 역할이 구청장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점을 중시한 나는 해당 사항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당시 기술적으로 필요했던 일들에 대해 일일이 질문했다. 그러자 그 의뢰인의 말문이 술술 열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상세히 열거한 것이다.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고도 남았다. “아, 박작가님, 이런 일까지 조사해 오셨을 줄 몰랐습니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걸 찾아오시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그 의뢰인인 진심으로 나를 인정해서 한 말이었다. 당시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취재를 열심히 하고 다녔던지 그 지역의 경제, 문화, 노동, 교육, 환경 등에 대해 훤해졌다. 책 속에 그런 이야기들이 온전히 반영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분의 경우 인터뷰할 때 무엇을 물으면 ‘예’ 혹은 ‘아니오’식으로 대답하는 매우 어려운 스타일이었는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도 ‘취재’였다. 묻는 사람이 철저히 준비돼있으니 답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그 수준에 근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책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도 철저히 취재에 기반한 책이었다. 그 책은 기본적으로 경주최부자댁 종손이신 최염 회장님과의 대화를 기초로 했지만 그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취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다섯 살 때 이사 가서 살았던 교촌의 집이 경주최부자의 후손이 살던 ‘구세댁’이었고 그때부터 경주최부자댁 주변에서 맴돌며 살았던 나는 경주최부자댁에 관한 한 타고난 취재자였다. 어렸을 때 보았던 온갖 모습들은 내 질문의 중요한 자료였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서 여쭈어보았던 다양한 질문들, 이를테면 무엇을 먹고 무슨 옷을 입었고, 함께 산 사람들은 누구였고, 과객은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노비들은 몇이었고 어떻게 소통했고 최부자댁의 주산물은 무엇이었고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들은 그 이전에 출판 된 수십 종의 경주최부자 관련 책에서는 단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새롭고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그때도 최염 회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 사장은 내가 다 잊어버렸던 일들을 기억하게 해주었네. 그간에 누구도 이런 이야기들을 물어본 적 없었으니 나도 대답할 기회가 없었거든. 이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도 다 잊어버리고 있었지” 내가 최염 회장님께 미주알고주알 여쭈었던 말씀들은 어렸을 때부터 ‘저 담장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내 의문의 원초적인 물음이었고 회장님이 대답해 주신 많은 이야기들은 다시 그 시대의 사회상에 대한 보충 취재를 더해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이 장에 들어서는 순간 여러분은 드디어 작가의 타이틀을 달게 된다. 물론 작가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신문이나 잡지 등의 추천이나 경연을 거쳐 문단에 데뷔하는 것이 상례지만 요즘처럼 신문사 문예 경선의 가치가 떨어지고 우후죽순, 온갖 잡지들이 난립하면서 남발하는 작가의 타이틀보다는 남의 책일망정 제대로 된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이 훨씬 프로다운 작가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전문적인 대필작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지만 사실 일반인의 자서전 쓰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사항이 주인공 1인칭 시점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객체에 대한 3인칭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훨씬 까다로운 과정이 수반될 뿐이다. 쉽게 말해서 지금까지는 자기 머릿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찾아서 쓰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남의 머리에 들어 있는 남의 이야기를 마치 자기의 것처럼 꺼내서 써야 한다. 자서전 자체는 비록 대필작가가 쓰지만 대필작가는 글 쓰는 동안은 그 자신이 아닌 의뢰자의 생각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남의 머릿속에서 꺼낸 글들로 책 한 권을 엮는다는 것은 실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버거워할 필요도 없다. 이전, 자신의 책을 쓸 때처럼 남의 책을 쓴다고 해서 남의 인생 전체를 미주알고주알 써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의 손을 빌어 책을 내겠다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나름대로 세상을 열심히 살아서 무언가 할 이야기가 넘쳐날 듯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떤 이야기를 중요하게 내세울지 망설이게 된다. 250~300P정도의 책 한 권 엮어낼 분량의 이야기가 되려면 적어도 50~60개 정도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대부분 20개도 못 가서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 그러니 인생 전반을 체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정리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어지간한 글쯤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기량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굳이 대필작가가 나서서 책을 써주지 않더라도 이미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책으로 펴낼 만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어떤 소중한 보석이 들어있는지 잊어버린 채 세상을 살아왔을 것이다. 사실 대필작가의 기능은 바로 이런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의 기억을 헤집고 들어가 형형색색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오는 데서 제대로 빛을 낸다. 따라서 의뢰자의 기억을 파고드는 무기, 즉 이야기를 끌어내는 기술이 많은 작가일수록 좋은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기술은 자신의 자서전을 써봄으로써 단련된다. 자신의 책을 써보지 않았거나 최소한 자신을 소재로 혹은 남이나 특정 소재나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써보지 않은 사람은 대필작가의 기술을 가지기 힘들다. 왜냐하면 자신에게서나 특정 사안에서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추려내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경험이 없다면 남의 인생에 들어가서 그것을 퍼낼 만큼의 기술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장 이후의 자서전 쓰기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자서전을 써본 사람 혹은 책을 한두 권 써본 사람들이 남의 자서전을 대필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했다. 따라서 이 글을 탐독할 사람들이라면 기본적인 글쓰기 실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라도 역시 남의 책을 쓴다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 만큼 교본으로 삼을 만한 지침서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부터 그것을 체계적으로 알려 드리겠다. -대필의 시작 ‘계약’, 솔직하고 세부적으로 명시해야 가장 먼저 대필은 정확한 계약이 필요하다. 계약이란 게 달리 있을 게 없다. 대필료를 어떻게 책정하고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책을 내겠다는 상호간의 약속을 미리 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데 대필 초보자들이 흔히 일으키는 대부분의 실수가 비용을 정확하게 책정하지 않고 대충 두루뭉술하게 합의하고 책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주요 일간지나 방송사 베테랑 기자 출신들이 이런 일을 자주 저지른다. 이들은 탁월한 취재 능력을 가지고 있고 문장력도 수준급이다. 더구나 보통 자신과 관련된 취재원들의 책을 대필하다 보니 의뢰자의 재력이나 평소의 관계 등을 과신해서 무턱대고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쉽다. 특히 기자라는 신분상 자신을 ‘갑’이라 생각하고 ‘이 정도는 받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필을 의뢰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다가다 한 번쯤은 대필시장을 탐문해 보았을 것이므로 자신이 생각하는 비용이 기자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이 책정한 비용을 기자에게 함부로 이야기하지도 않는 것이 의뢰자 역시 거꾸로 기자가 대필시장을 어느 정도 알 것이라 혼자서 단정하고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의뢰자는 기자가 이전에 이미 대필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기도 한다. 거기서부터 삐걱댄다면 대필작가를 고용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계약은 대필작가가 더 명료하게 선을 긋고 시작해야 하는 작업이다. 적어도 대필 시장에서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쪽은 기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느 기자가 이런 일로 낭패 본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어느 일간지 기자가 은퇴 후 유명한 프로 골퍼의 자서전을 대필했는데 자신이 생각한 비용과 골퍼가 제시한 비용 사이의 차이가 심해 소송을 벌였다는 것이다. 기자는 골퍼의 경력이나 경기 이력 등을 조사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 취재하는 등 나름대로 열성을 다했다. 그렇게 책을 완성한 후 억대의 대필료를 요구했는데 여기서 서로 간의 입장차이가 생긴 것이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일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글 쓴 자신만의 노력과 노하우를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뢰자의 입장에서는 시장에 나와 있는 대필료에 취재에 필요한 실경비 정도만 더 책정했을 것이다. 당연히 하늘과 땅 차이의 대필료 논쟁이 일어났을 것이고. 웃기는 것은 나 역시 처음 쓴 대필에서 이 부분을 분명히 하지 않아 곤란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가 제시했던 대필료가 시장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의뢰자와 불편한 마찰을 빚을 뻔했다. 대필 세상에 대해 거의 몰랐던 초보 대필작가였으니 당연히 겪어야 했을 성장통이었을 것이다. 대필료 계약에는 반드시 명시해야 할 것이 있다. 대필작가와 의뢰인 모두의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항목은 대필료, 대필료 지급 방법, 대필기한, 인터뷰 시간, 원고의 량 등이 구체적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이 외에 특별한 취재, 예를 들어 위 기자의 경우에서 말한 외부 취재나 탐문 경비 같은 것을 별개의 항목으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서 생각보다 중요한 항목이 대필기한이다. 상당히 많은 자서전이 지방자치단체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목표로 쓰여지는 현실에 빗대어볼 때 대필기한은 더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미리 느긋하게 책 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어 부랴부랴 책을 펴내기 일쑤다. 그러다보면 생각 외로 작업이 촉박해 책이 날림으로 만들어지기 쉽다. 이것은 대필작가에게나 의뢰인이 정말 냉정하게 지켜야 할 항목이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마찰을 빚을 일이 없어진다. 대필 시장의 구체적인 비용에 대해서는 전장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대필작가와 의뢰자간에 어느 정도의 선에서 자서전을 쓸지를 결정하고 대필료를 결정하면 된다.
대필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대부분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대필 작가가 될 수 있느냐와 그게 돈이 되느냐에 쏠린다. 대필이란 것이 남의 글을 대신 써준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어떤 글쓰기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또 한편, 자기 글 써서도 밥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어떻게 남의 이야기를 대신 써서 돈을 벌 수 있겠나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대필 작가들의 기량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치밀하고 넓고 월등히 높다. 일반 작가들은 자기 머릿속의 글을 꺼내 다듬는 작업을 하지만 대필 작가들은 자기 머릿속이 아닌 남의 머리와 가슴에 든 재료들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공감력과 분석력, 재구성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대필 작가가 되려면 일반 작가를 뛰어 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전에 내 페이스북에 대필과 출판에 대한 글을 썼더니 어느 선배 한 분이 부쩍 관심을 드러내며 대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실제로 자신이 쓴 글을 보내며 출판이 되겠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 분은 글을 꽤 잘 쓰는 분이고 비록 작가로 데뷔하거나 스스로 책을 낸 적은 없지만 장문의 글쓰기에 익숙한 분이어서 보낸 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힘이 대단히 좋았다. 글 쓰는 힘이 좋다는 말은 남의 글을 어지간한 책 반 권 분량 가깝게 쓴 것으로 증명됐다. 그러나 대필 작품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요소로 미루어 그 자체로 책을 낼 정도는 아니어서 정중하고 솔직하게 더 보강해야 할 부분을 조언해 드렸다. 그 후 그 선배는 더 이상의 작품을 보내는 대신 언젠가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써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가끔씩 들어가 보면 회가 거듭될수록 문장이 탄탄해짐을 느낀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문제이지만 대필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순발력이다. 언제 어떤 순간에도 글의 재료가 주어지면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정도의 글쓰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대필 작가로 행세할 생각을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한다. 대필 작가는 남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글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남의 말을 글로 옮기는 정도가 아니고 그것을 자신의 것인 양 체화시켜 보다 문학적이고 재미있게 표현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도의 순발력과 분석력, 추리력 같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작은 실마리 하나를 붙들고 늘어져 그것을 완벽한 하나의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는 판단력과 확장력도 가져야 한다. 대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화(同化)능력인데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처럼 감정이입하는 것이다. 사실 정말 중요한 대필능력은 바로 이 마지막 감정이입이 절대적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필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 없다. 이런 능력은 타고난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꾸준한 글쓰기 연습을 통해서 얻어진다. 그런 연습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는 자신이다. 자기 속에 있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글로 표현하는 것만큼 좋은 연습은 없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대필작가로 활동하기 이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이야기로 꾸미면서 차츰 대필작가로 확장됐다. -유명 작가들도 대필 세상 참여 많아, 유명도나 글쓰기 능력에 따라 억대까지 원고료 다양 자,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필작가가 돈을 벌 수 있느냐는 물음을 다시 꺼내 보자.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당연히 그렇다. 이처럼 대필 작업이 까다롭고 치밀한데 왜 돈을 벌지 못하겠는가? 당연히 돈을 벌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필 세상도 엄청난 등급의 차이가 있다. 이 역시 냉정한 경쟁 세상이므로 어지간해서는 돈 벌기 힘들고 실제 이곳도 기존의 유명 작가들이 은근슬쩍 장악하고 있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아는 유명 작가들 중 재벌 그룹 총수나 유명한 정치인의 자서전을 대필해 준 작가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떠돈다. 당연히 그게 나쁜 일도 아니고 흉보거나 비아냥댈 일도 아니다. 서구의 연대기 작가들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겠지만 어지간한 책으로 인세 받는 것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이득일 경우가 많으므로 작가에게도 좋은 일이다. 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도전해볼 만한 시장이 이 자서전 시장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만하게 보고 접근해서는 절대로 벌 수 없지만 사생결단하고 달려들면 어지간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부럽지 않다. 그렇다면 보다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대필작가 수입은 어느 정도 될까? 대필료는 작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많게는 억대도 되고 유명도에 따라 수천만 원도 된다. 위에서 말한 재벌 총수가 고용한 유명 작가는 1억원 이상을 받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책을 내본 사람이라면 인세로 1억원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다. 탑 클래스의 작가들이 가끔씩 남의 책을 대필해주는데 이 당연한 수익을 포기할 만한 작가가 몇이나 될까? 대필료는 작가의 능력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자서전을 내고자 하는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물론 이 둘은 상관관계가 분명해서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어느 정도의 작가를 투입할지가 결정되고 거기에 맞추어 대필료가 결정된다. 흔히 우리가 아는 책 사이즈, 다시 말해 신국판 250페이지 기준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대필료는 7~800만원이다. 이 경우 수요자가 불러 주는 대로 대충 정리만 해주면 된다. 인터뷰 시간은 대체로 30시간. 하루에 2시간씩 15번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 하면 이걸 받아적어서 책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좀 놀랍겠지만 이런 경우 시작하고 한 달 안에 책을 낼 수 있다. 즉 한 달에 800만원의 대필료가 책정된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많아 보이지만 전문성이나 작가의 노고에서 볼 때 큰 돈이 결코 아니다.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대의 원고료가 나간다면 보다 전문적인 대필이 요구된다. 보통 국회의원이나 시장 혹은 구청장급 정치인이나 좀 규모가 있는 기업의 대표쯤 되는 분들은 최소한 이 정도는 지불해야 책다운 책을 얻을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은 자신들이 지나온 일을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취재가 필요하다. 또 이들이 책 내는 목적도 분명해 정치인의 경우 자신의 업적을 꼼꼼하고 재미있게 구성하기 바라고 기업인의 경우 마케팅까지 고려한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 투입되는 작가들도 베테랑급이다. 이 경우 일반적인 문과대학 출신보다 취재력이 있는 기자 출신 작가나 경험 많은 대필작가들이 이런 시장을 장악한다. 3000만원 이상의 원고료를 받는 경우는 5~6개월 인터뷰 기간을 설정하고 주도면밀하게 인터뷰하고 취재해서 그 자체로 베스트셀러를 낼 만한 책을 만들 때다. 관록 있는 정치인, 광역지자체 단체장, 중견기업 이상 기업 총수 등에 해당한다. 내 경우 모 업계에서 그 분야 최고로 불린 분의 책을 1년 동안 주 1회 인터뷰하고 주변 지인들까지 전부 취재하고 고향까지 답사하는 등 정성을 들인 적 있는데 12~3년 전에 3000만원의 원고료를 받았다. 대필작가의 수입은 원고료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느냐의 문제다. 이것이 대필작가의 수명을 연장하는 관건이다.
책 표지 디자인까지 끝났다면 책을 만드는 것은 이제 완전히 마무리된 셈이다. 이제 인쇄만 하면 책을 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만약 책을 유통하고자 한다면 아직도 남은 절차가 있다. 물론 혼자서 찍어 지인들에게 판매하거나 나누어 주는 데는 지금까지의 과정만 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식으로 인정받고 서점에서 팔 수 있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그것은 책이 자신의 고유성을 가지는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동사무소 가서 출생신고부터 하는데 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서점에서 책을 팔 수가 없다. 책의 출생신고는 ISBN신청이라고 한다. ISBN이란 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의 약자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국제표준도서번호’다. 즉 책을 분류할 때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방법에 의해 책의 종류에 따라 붙이는 고유한 식별기호다. 여기에는 국명, 출판사, 도서 코드 등이 세분화되어 모두 13개의 숫자로 표시된다. 책에 보면 책 뒤표지에 바코드 표시가 있고 그 밑에 깨알 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ISBN이다. ISBN은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한다. ISBN이 중요한 이유는 책을 어떤 도서 종류에 포함 시킬지를 세부적으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서전을 써놓고 과학서적 분류에 넣었다면 책을 찾은 사람들이 해당 책을 못 찾게 될 것이다. 서점의 책들도 모두 ISBN의 분류에 의해 진열하는 것이므로 ISBN을 신청할 때는 책의 성격을 분명히 규명할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한다. ISBN은 신청하면 보통 5일 이내에 바코드를 받게 된다. 최근에는 빠를 경우 3일 이내에 바코드를 받을 수도 있다. 급하게 책을 낼 때 이 기간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ISBN과 함께 지적소유권을 주장할 만한 책이면 저작권 신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 신청은 전문적인 서적에 해당하는 일로 일반 자서전에서는 거의 필요 없는 일이다. 자신의 인생을 쓰는 일인 만큼 누가 일부러 베낄 염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 일반 자서전이라도 내용상 중요한 기록 사항이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주장, 명문장 등을 썼다고 생각하면 저작권을 신청하는 것도 무방하다. 저작권은 한국저작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등록할 수 있다. ISBN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자서전을 내면서 꼭 ISBN을 등록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만하다. 대부분 자서전이 자비출판, 즉 자기가 돈을 내어 책을 출판하는 경우이고 서점에 유통시킬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 자서전 저자들이 ISBN을 마치 무슨 명예라도 되는 것처럼 등록하려고 한다. ISBN이 책을 서점에서 판매할 때 필요한 정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마치 ISBN이 없으면 책이 아닌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서 책을 내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볼 정도의 책을 냈다면 굳이 ISBN을 신청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책을 유통하되 서점에 풀지 않고 특정 출판사에서 책을 배송하는 식으로 출판할 때도 굳이 ISBN을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ISBN은 책을 분류하는 수단이지 책을 꾸미거나 가꾸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ISBN을 신청하려고 애쓰는 것은 혹시라도 책이 인기 있어서 유통시킬 가능성을 고려해서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ISBN쯤 따 놓아야 제대로 책의 구색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참고로 우리 출판사에서 펴낸 대부분의 자서전들이 모두 ISBN에 등록했지만 서점에 판매되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대부분 정치인들의 책이었는데 그 책들이 어떤 내용이건 독자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출판기념회에 직접 와서 친분을 과시하거나 지지를 표명하는 수단으로 책을 사고 사진을 찍고 싸인을 받아 갔지만 그 책을 블로그에 올리거나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우습게도 이런 책들 대부분이 출판기념회를 먼저 잡아놓고 펴낸 책들인데 유명한 정치인일수록 이런저런 추가 내용이나 요구가 많아 책이 다 제작되기까지 일정이 급해질 대로 급해지기 일쑤다. 그런데도 아무 필요 없는 ISBN을 따가며 출판 막판까지 시간이 모자라 피를 말리게 하곤 했다. 자비출판이고 서점에 유통도 하지 않을 책이지만 ISBN을 달아야 책이 책답게 보인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출판사의 입장에서야 빤하게 보이는 필요 없는 일이지만 책을 내는 저자의 입장에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의 형식도 그만큼 중요하게 보일 것은 이해되지만 말이다. -색인은 일종의 주민등록증과 같다 ISBN코드가 발행되고 저작권 등록까지 되었다면 이제 정말 마지막 책을 꾸미는 마무리를 하면 된다. 그 마무리는 ‘색인’을 만드는 것이다. ISBN이 책의 출생신고서라면 색인은 책의 주민등록증인 셈이다. 색인은 오래전에는 별도의 색인표를 만들어 책 맨 뒤쪽 페이지에 붙였지만 지금은 그냥 맨 뒤쪽 페이지에 인쇄하는 정도로 만든다. 근래에는 색인을 꼭 뒤쪽에 넣지 않고 앞쪽으로 내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뒤쪽에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색인에는 책을 만든 실질적인 참여자들이 들어간다. 지은이, 발행인, 출판사, ISBN번호, 책 출판 연월일, 책을 인쇄한 이력, 책값 등이 들어간다. 자서전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대형 출판사의 기획 서적의 경우에는 책에 따라 책을 기획한 기획자와 디자이너, 인쇄소를 넣어줄 때도 있다. 보통 자서전에서는 기본적인 사항만 들어간다. 내 경우 책을 펴내면 반드시 우리 출판사와 함께 인쇄소의 이름과 디자이너의 이름까지 책에 넣어주곤 한다. 책을 혼자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오래 함께 일해 온 인쇄소의 노고와 마지막까지 책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공을 인정해서다. 이때 디자이너에게는 색인에 이름 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이력에 관련되는 일이라 의미가 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만큼 훨씬 신경 써서 책을 디자인하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입장에서야 색인에 디자이너 이름쯤 넣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이게 작은 배려가 될 수 있다. 특히 유명 정치인이나 기타 이름 있는 인사의 자서전들은 비록 서점에 유통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누구의 자서전을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자서전을 왜 써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또 책의 구조를 알아보고 자서전을 낼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지도 알아보았다. 지금까지 모두 스물 한 번의 지상강연을 했는데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자서전을 계획하고 쓰는데 작게나마 도움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서전 쓰기 강의는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직접 쓴다는 차원에서 살펴본 내용들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글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지만 제대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들을 위한 강의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글을 전혀 쓸 줄 모르거나 글 쓰기에 도통 자신이 없는 분들은 어떻게 자서전을 내면 되는지에 대한 설명과 반대로 한 단계 올려서 적어도 글을 자기 마음대로 쓸 줄 아는 준 프로 이상의 글 고수들이 남의 자서전을 써줄 수 있도록 강의해 볼 예정이다. 이것을 ‘대필(代筆)’이라고 하거니와 만약 대필작가의 세상이 궁금하거나 아르바이트나 직업으로 대필작가가 되고자 하는 글 고수들이 있다면 앞으로의 강의에 관심을 가져 보기 바란다.
드디어 자서전의 막바지 작업에 왔다. 본문과 목차, 추천서, 각 면에 들어갈 모든 작업이 끝났다. 이제 표지를 디자인하고 책 인쇄 작업에 들어가면 된다. 그렇다면 표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재미있는 것은 책을 대하는 사람들이 일생을 통해 최소한 수백 권에서 수천 권씩, 많게는 수만 권씩 책을 대하면서도 표지에 매우 둔감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책을 일상적으로 대해왔을 뿐 책의 구조 자체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책 표지는 앞면과 뒷면 그리고 이면에 따른 날개와 책등이 있다. 표지는 지난 주에 설명했듯 앞면과 뒷면이 있는데 앞면은 제목과 제목을 총체적으로 설명할 만한 부제, 저자, 출판사 등이 등재된다. 당연하게 표지는 그야말로 책의 얼굴이므로 혼신을 다해 책을 알릴 수 있도록 특별한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동원해 디자인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표4 즉 책의 뒷면에는 단평 혹은 추천서. 책의 하이라이트 등이 들어갈 수 있고 책값, ISBN 등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ISBN은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다음으로 날개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책에도 날개 있다’고 하면 퍼뜩 수긍하지 않는다. ‘책에 날개가 있다고 무슨 말뼈다귀 같은 소리야?’라고 반응한다. 책 표지에는 대체로 잡지류의 표지, 도서 표지가 있고 도서표지에는 일반 표지와 양장본 표지가 있다. 책에 날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일반 도서표지의 경우를 일컫는다. 우리가 서점에서 일반적인 책을 사면 표지 앞과 뒤에 표지면의 반 정도를 연장해 안쪽으로 접어 놓는데 그것을 날개라고 한다. 한자식 용어로는 ‘접지면’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이 날개는 표1 즉 앞면 접지의 경우에는 보통 저자에 대한 정보를 싣는 것이 일상적이다.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연구를 했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상을 받았다는 내용을 주로 쓴다. 이 날개에 들어 있는 저자 소개를 통해 책을 구입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저자에 대한 신뢰를 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 앞면 날개를 활용하는 셈이다. 책의 어느 곳 하나 중요하지 않을까만 이 날개 역시 책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마케팅 요소이므로 절대 소홀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 경우 정치인들은 이 날개에 경력과 학력, 상훈 등을 써넣는다. 그게 가장 만만하다고 판단해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기반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이와 비슷하다. 요컨대 자신이 쓴 책이 충분히 자격 있는 사람이 썼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런 학력, 경력을 쓰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참고로 자서전이 아닌 일정 경지에 이르렀거나 유명한 문필가라면 날개도 상당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세상이 다 알만한 소설가나 시인, 만화가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 굳이 책 날개에 자기를 미주알고주알 소개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날개에조차 작품을 설명하거나 제대로 드러내는 데 할애할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라면 새로 내는 책에 자신의 전작(前作)들을 나열해 둠으로써 독자들이 놓치고 있을 법한 책을 사보게 할 것이다. 일정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가지 자신이 이미 하나의 간판이고 하나의 광고판임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사회적인 경력, 하격, 상훈 등의 잣대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다. 자서전의 경우 책 뒷면 날개는 책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란으로 쓰인다. 보통 300~400자 정도로 책을 요약해 책의 정보를 전달하고 반드시 보아야 할 독자층을 겨냥해 책을 마지막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자서전이 아닌 경우이거나 자비 출판이 아닌 경우에는 보통 출판사들이 자기 회사의 다른 책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많이 쓴다. 해당 출판사에서 책을 자주 낸 저자라면 당연히 자신의 다른 책들을 배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날개는 이렇듯 저자를 알리고 작품을 알리고 저자나 출판사의 다른 책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치인 것이다. 내 경우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를 펴낸 후 날개를 만들 때 고심이 많았다. 생각 같아서는 책의 내용에 맞게 저자 소개를 조금 추상적으로 하고 싶었다. 그 책의 날개에는 저자로 최염 회장과 나를 모두 내세웠다. 책의 내용을 최염 회장이 회고하는 형식으로 꾸몄고 실제로 책을 내는데 최염 회장의 회고와 증언이 절대적으로 컸으므로 최염 회장을 표시해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최염 회장은 최부자댁 종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의 명사이셨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비록 인터넷상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유명 블로그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온라인의 특정부분에 대한 일이고 오프라인 상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내가 12대 400년의 책을 썼다고 한다면 누구건 책에 신빙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필력이 있는지 취재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보여 주기 위해 알량한 지역 신문사 경력에 다음 블로그에서 얻은 명성 등을 미주알고주알 실었다. 심지어 내가 대필 작가로 오래 활동했다는 표시도 일부러 해놓았다. 어떤 필생의 각오가 실린 듯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뒤에 책이 나오고 나서 보니 차라리 경주최부자댁에 가지고 있었던 내 열정을 있는 그대로 표시해 두는 것이 나았을 것이란 후회가 들었다. 이렇게 했던 이유가 앞면에 ‘남의 책만 써오든 박근영 찾고 쓰다’라고 써놓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함이었는데 이것 역시 뻘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주최부자 정신에 탐닉해 4년 동안 혼신을 다해 취재했고 더구나 경주최부자의 종손이신 최염 회장을 모시고 그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경주최부자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어 책으로 썼으니 그 자체로 자랑스럽고 명예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억지스럽게 나를 내세우려 했다는 생각이 때늦은 아쉬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 표지의 구조에 ‘책등’이 있다. 책등은 문자 그대로 등이다.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때 책꽂이에 꽂힌 책 뒤쪽, 등을 보고 책을 고른다. 여기에도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 로고 등이 들어간다. 제목이 길 경우 그것만 들어가기도 한다. 서점에 가면 표지로 책을 만나기보다 책등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책이 절대다수다. 표지를 드러내고 판매대에 깔려 있는 책들은 유망한 신간이거나 베스트셀러 혹은 스터디셀러라는 이름을 단 책들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책들은 책꽂이 꽂힌 채 독자들을 기다린다. 이때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책등이다. 그러니 책등을 돋보이게 디자인하는 것은 책을 내는 모두가 바라는 일이지만 그 좁은 공간에 할 수 있는 게 사실은 거의 없다. 이 앞장에서 제목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책등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제목이니 그런 만큼 제목이라도 눈에 띄고 마음에 닿게 뽑으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이렇게 표지를 만들고 나면 책을 내기 위한 기본적인 작업은 마무리 되었다. 이제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족보에 올리는 일만 남았다. 그것이 ISBN과 색인 작업이다. 다음 호에는 이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아보겠다.
이제 책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 내용을 간추려 썼고 목차를 정하고 관련 글을 한 데 묶었고 추천서와 추천사도 확정했다. 이제 표지를 만들고 색인을 붙이면 이 책에 필요한 모든 작업이 끝난다. 그러나 그 전에 하나 더, 책을 좀 더 재미있게 다듬어서 내 놓으면 좋지 않을까? 사실 자서전은 굉장이 재미 없는 책이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거나 이슈의 중심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책이 자서전이다. 소설이나 희곡, 시나리오 같은 재미있는 책이나 전문인들의 보는 전문 서적들이 아니라면 이런 자서전은 대부분 자기 만족으로 내는 책이다. 그래서라도 더 관심 끌 만한 자료들이 필요하다. 아니면 이 책을 가져 간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읽게 하거나 최소한 읽은 척 할 수 있는 근거라도 남겨두는 것이 어쩌면 재미없는 책을 가져간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작은 트릭들이 책 속의 좋은 내용들, 재미있는 부분들을 책 앞에 요약해 꺼내 놓는 것이다. ‘명장면 베스트 20’ 혹은 ‘미리 보는 책 속의 책’ 같은 제목을 걸고 책의 중요한 내용 일부를 앞쪽으로 뽑아서 정리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3~4줄자리로 20여 개의 요약글을 꺼내 앞쪽에 배치해 놓고 그 글을 떼온 페이지를 붙여 주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독자들이 우선 그 내용에 끌려 본문을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는 읽지 않아도 상당부분 본문을 들여다 보게도 된다. 또 하나의 장치가 갈 글의 단락에 앞서 본문의 핵심 내용이나 재미있는 내용을 뽑아 글 앞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것을 머리글이나 리드 글쯤으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인데 이렇게 해 놓으면 독자들이 일부러 책을 읽지 않고도 책 본문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또 이 머리글로 인해 관심이 생겨 본문을 읽게도 된다. 이 방법은 내가 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때 처음 써먹던 방법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한때 daum의 매우 각광 받는 우수 블로그였다. 내 글은 매일 1~2만 명이 찾아왔고 어떤 때는 하루 10만 명 이상이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 쓴 대부분의 글들은 200자 원고지로 치면 대부분 20장 이상 되는 긴 원고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칫 내 글이 길어 지레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고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본문을 간략히 요약해 글 머리에 다른 색 글씨로 올려놓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머리글은 본문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켜 댓글 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글을 읽고 난 후 댓글을 달곤 했다. 그렇게 쓴 글들이 1500편이 넘었는데 그중 일부를 책으로 내면서 자연스럽게 책에도 본문 앞에 머리글을 붙여 출판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내가 뒤에 대필작가로 활동하면서 써준 대부분의 책이나 우리 출판사에 펴낸 모든 책은 반드시 머리글이 들어가도록 편집했다. 우리 출판사가 펴낸 책은 대부분 정치인들의 자서전인데 정치인들의 책이런 면에서도 이런 머리글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치인들 자서전은 그냥 단순히 인사로 사주는 책들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유명한 정치가가 써도 그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책을 사주는 것은 그야말로 인사 삼아 사주거나 유력한 정치인에게 줄 서기 위해 사줄 뿐이다. 그러니 책을 사는 즉시 어디 처박아 둘 뿐 제대로 읽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좀 다르다. 해당 정치인에게 최소한 책 읽은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책을 일일이 다 읽기는 따분하고 벅차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고안한 이 머리글은 최고의 히트작이었다. “아이고 의원님. 책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어요!!” 실제로 어느 국회의원 출판 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고 책을 펴내고 난 뒤 그 국회의원이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정말 읽었을까 싶어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느냐고 물어보니 본문의 내용을 콕콕 짚어가면서 이야기 해 주더란다. 책의 구성상 앞쪽의 명장면 베스트20이나 본문 앞의 머리글만 읽어도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편집해 놓았으니 이런 효과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 국회의원이 처음 책을 펴낼 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소한의 페이지로 책을 내자고 했는데 뒤에 책을 다 써놓고 이런 내용을 보강하자고 했을 때 군말없이 동의했다. 그 효과를 제대로 본 셈이다. 정치인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자신이 정성스럽게 쓴 글을 꼭꼭 씹어서 읽고 기억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한 번은 어느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 대놓고 정말 책을 읽었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내가 책 펴낸 출판사 대표인데 정말 책을 읽었냐?’며 조심스럽게 답해달라고 묻자 책 앞에 발췌해 놓은 ‘명작20선’을 보고 책 내용을 알았다거나 머리말을 보고 책 내용을 짐작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아가 그것을 보고 내가 의도한 대로 실제 몇 대목을 읽어보았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책을 출판한 입장에서는 책을 정말 읽었나 읽지 않았나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획 의도가 적중했느냐 하는 게 더 큰 관심 사항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훌륭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어 그 뒤로 이 트릭을 꾸준히 적용해서 책을 펴냈다. 단순히 목차를 둔 것보다 목차 앞 혹은 목차에 이어 ‘명장면 베스트 20’ 같은 것을 두면 열독률이 훨씬 증가하고 본문에 단락마다 일일이 머리글을 올리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글과 책에 대한 반응이 좋았으니 당연히 이를 따를 수밖에! 특히 이런 트릭은 책을 펴내는 해당 정치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대강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면 100이면 100 모두 그렇게 하자고 찬성한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든 자신의 공을 시민들이나 유권자들이 제발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치인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자신이 정성스럽게 쓴 글을 꼭꼭 씹어서 읽고 기억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사실 이렇게 하면 책의 내용에 따라 최소한 8p에서 16p는 쉽게 늘어난다. 4p단위로 올라가는 것은 책을 묶는 방법 상 종이를 접어서 철하게 되어 무조건 4p씩 늘어난다. 결국 이렇게 늘어난 분량은 인쇄비에서 그 만큼의 비용이 올라간다. 그러나 일생에 한 번 내는 책에 이 정도를 아낄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의 글을 읽게 만들기 위해서 늘어나는 책의 페이지가 더 있더라도 기꺼이 비용으로 감당했다. 물론 내가 쓰고 펴낸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도 이런 트릭을 충실히 배치했다. 이 책에는 경주최부자에 대해 내가 새로 발굴한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숨겨져 있던 놀라운 이야기들 - 명장면 20선’이라는 제목으로 단락을 따로 꺼내 나열했고 본문 모두에 머리글을 붙였다. 그리고 이 트릭은 어느새 어떤 출판사에도 없는 ‘두두리 출판사’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추천서까지 받고 나면 또 하나 추천서 못지 않은 비중 있는 작업이 남았다. 바로 표4 추천글을 받는 것이다. 책을 편집하는 전문가들은 책을 편집하거나 디자인 하는 작업과정에서 표지를 그냥 ‘표지’라고 하지 않고 표1, 표2, 표3, 표4로 나누어서 부르는 습관이 있다. 일반인들은 단순히 표지라고 표시하지만 세부적인 작업이 각각 나누어지는 표지의 특성상 기획자와 디자이너, 작가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이렇게 나눠 부르는 것이다. 표1은 우리가 제일 쉽게 먼저 보는 표지 앞면이다. 제목이 있고 지은이와 출판사, 기타 책을 특정할 디자인이 되어 있는 곳이다. 표2는 일반 서적보다 잡지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앞 표지의 안쪽을 말한다. 표4는 책의 뒷면이고 표3은 뒷표지의 안쪽 면이다. 표4, 쉽게 말해서 뒷표지는 표지 다음으로 책의 드러나 있는 면을 보는 매유 중요한 부분이므로 이곳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비록 좁은 면이지만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공간이므로 이곳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가장 흔하게 쓰는 방법은 이곳에 짧은 추천의 글, 촌평을 넣는 것이다. 촌평은 문자 그대로 짧은 평가다. 보통 2~3줄 정도, 단어로는 30개 안팎에서 쓰는 것이 대부분으로 책이 어떤 가치와 재미를 지녔고 누가 읽으면 좋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집약적으로 담겨야 한다. 때문에 이 촌평은 무언가를 평가할 수 있는, 저자의 책 내용과 관련한 저자의 직업이나 삶의 궤적을 잘 이해하는 그 방면의 권위자나 평론가들의 쓰는 것이 가장 좋다. 해당 분야의 기자들도 좋고 학생들이 대상 독자라 판단되면 학교 선생님들이 쓰는 것도 좋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자서전이라도 마케팅을 전제로 했다면 이것은 철저히 전략적이고 전술적이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활용할 인적 자산이 있다면 총동원해야 하는데 이 표4 추천서도 바로 그런 곳이다. 표4의 추천서라고 해서 꼭 따로 받지 않아도 된다. 이미 받아 놓은 내지 추천서 중에서 핵심적인 곳을 요약해 표4에 실어도 좋다. 단 표4는 공간상 적게는 4개에서 5개, 혹은 그 이상까지도 촌평을 넣을 수 있으므로 다양한 사람들의 촌평을 실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촌평 대신 책 내용에서 눈길을 끌만한 내용을 표4 촌평 대신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때로는 제3자의 평가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보석 같은 문장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책을 출판하기 전에 방송이나 신문 등에 인터뷰를 했거나 책 내용에 대해 보도된 것이 있다면 그 기사의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 올리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SNS의 발달과 인터넷의 대중화로 방송과 신문이 가지는 권위나 전달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방송과 신문의 권위는 아직도 신뢰를 담보하는 어떤 상징성 같은 것이 남아 있다. 방송과 신문에서 보도한 내용이라면 책이 가지는 권위와 내용에서 최소한의 품격을 갖추었다 짐작하는 것이 대중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내가 펴낸 책들도 이런 고민이 여실히 반영됐다. 어떤 경우에는 유명인의 촌평을 받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책의 내용을 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책에는 촌평과 책 내용을 함께 올리기도 했다. 책의 성격을 알리고 책을 가치를 알리는 데는 ‘이것이다’라고 정해진 것이 있을 수 없으니 최대한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두루 활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이 모두를 모두 활용한 경우였다. 촌평으로 경주최부자 종손인 최염 회장의 본문 글을 요약해 올렸고 책의 내용에서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들을 요약해 올렸다. 그러면서 유명인을 활용해 관심을 끌려는 시도도 해봤다. 최염 회장을 첫 번째 촌평자로 올린 것은 이 책의 상징성과 진실성을 최대한 확대시키기 위한 일이었다. 경주최부자 12대를 망라한 책에서 경주최부자 종손의 평가 이상 가치 있는 것이 달리 무엇이겠는가? 이어 활용한 ‘누구나 퍼갈 수 있는 쌀뒤주와 과메기’ 이야기, ‘노비에게 올리는 제사’ 등은 책의 핵심 내용이었다. 당시 마침 대한항공 땅콩 회항이니 군 사령관 갑질 이야기 등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갑질에 대한 경계와 상생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증폭되어 있었다. 당연히 이 만큼 좋은 소재는 없었다. 유명인을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두 명의 인물을 올렸다. 먼저 본문에 있는 삼성 이병철 회장과의 숨겨진 이야기를 인용해 ‘삼성 이병철 회장의 부끄러움’이란 제목으로 활용했다. 이병철 회장에게 마지막 경주최부자이신 최준 선생이 단 한 푼의 대가 없이 대구대학을 넘기는 과정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가 그 아래 올라가 있다. 다음으로 김어준 총수와의 에피소드를 올렸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김어준 총수의 초대로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던 ‘파파이스’라는 프로그램에 최염 회장이 출현한 적 있다. 그때 김어준 총수가 경주최부자 이야기와 최염 회장에게 크게 감동해 ‘회장님 바보!’라며 안아드린 장면이 있었는데 그 사연을 책 내용에 실었다. 표4 마지막 촌평에 촌평 대신 그 부분을 요역해 ‘김어준 총수의 감동과 바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4줄의 소개글을 올렸는데 뒤에 이 부분을 보고 책을 사봤다고 하는 독자들이 꽤 있었다. 자서전 출간의 절대다수인 정치인들은 당연히 자신의 업적을 요약해서 표4에 올리는 것을 선호한다. 정치에서 국민 또는 시민이 공감할 만한 업적은 그 정치인을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임 기간에 어떤 업적을 남겼고 어떤 법안을 통과 시켰는가 하는 이야기는 최고의 자랑거리이자 그 다음 선거를 위한 알찬 포석이다. 본능적으로 표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은 그래서 자기 업적에 대한 애착이 무엇보다 크고 그것은 매우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면 자신보다 훨씬 높은 레벨의 정치인들의 촌평을 즐겨 활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소속한 당 대표나 공천권을 장악한 정치인, 전현직 대통령의 촌평 또는 그들과 얽힌 일화를 요약해 표4에 올린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내세우는 한편 상위의 유력 정치인과의 유대를 끈끈히 키우겠다는 정치적 판단이 그 속에 들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해당 지역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의 촌평이나 일화를 요약하기도 한다. 다분히 전략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거나 정치적 욕심 없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액면 그대로의 회고적 자서전을 쓰는 일반적인 자서전들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 가장 기억될 만한 이야기들을 모아 촌평 대신 올리기도 한다. 자서전의 성격상 사실 개인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쓰는 것이고 그럴 바에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추억을 가장 중요한 곳에 놓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닐까? 촌평은 단지 그것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는 작은 시도일 뿐이다.
책을 다 쓰고 나면 또 하나 고민되는 것이 있다. 바로 추천서다. 이것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책의 무게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게감이란 것은 헛되게 폼이나 잡자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책이 가치 있는지를 그에 걸맞은 사람에게 진실감 있게 인증받자는 것이다. 추천서는 결혼식 주례사와도 비슷하다. 요즘 결혼식은 형식적인 주례를 과감히 생략하고 축제처럼 꾸미는가 하면 신랑신부를 가장 잘 아는 양가 어른들이 주례 대신 당부하고 인사하는 순서들로 채워지곤 하는데 확실히 보기 좋은 모습이다. 2000년대 이전, 과거 주례사는 주로 신랑 쪽 아버지가 친분 있는 지역 정치인이나 영향력 있는 사업가들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신랑이 나온 학교 교수나 고교 은사님에게 부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신랑과 관련 있는 교수·선생님이라면 정겨움이나 친근함이라도 있지, 정치인이나 사업가라면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고 그 틈에서 진심 어린 주례사가 될 턱도 없다. 추천서도 이런 것이다. 기본적으로 책을 쓴 저자 및 책 내용과 관련 있는 인사가 책을 제대로 읽고 추천서를 써야 한다. 만약 그 관련자가 사회적인 유명세나 권위가 있으면 더욱 좋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추천인이 유명하거나 권력이 많다고 추천서를 쓰게 하면 추천서에 진실성이 떨어지고 빈축만 살 뿐이다. 다시 나의 첫 책 ‘니, 꼬치 있나?’를 들먹이면 이 책의 추천서는 만화가 이현세 화백님이 써주셨다. 이현세 화백, 아니 현세 형님은 나의 경주고 선배님으로 동창회를 통해 이미 자주 만나 뵈었다. 이 책을 낼 때는 10년 넘게 집도 가까이 있어서 수시로 형님의 단골 술집에서 만나 담소도 나누었다. 더구나 형님은 온갖 만화작품에 경주 이야기를 녹여 내셔서 누구보다 경주 홍보에 열심인 분이셨다. 100% 경주 이야기인 내 책이 나왔을 때 책 전부를 읽고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셨다. 또 한 분, 나와 경주 고등학교 동기생인 YTN 김용섭 기자가 추천서를 써주었다. 친구와는 가족 간에도 잘 알던 막역한 사이였고 동기회 인터넷 카페에 올린 내 글을 거의 다 읽었으니 추천서가 술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특별히 자신이 근무하는 YTN에 일부러 내 책을 소개하는 보도도 내주었다. 이를테면 ‘니, 꼬치 있나?’는 진심과 권위와 홍보까지 환상의 조합을 이룬 추천서를 받은 셈이다. 그에 비해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추천인을 일부러 전부 뺐다. 당시 최염 회장님이 정치계의 유력 인사들을 몇 분 거론하시며 추천서를 받자고 하셨지만 조심스럽게 그럴 일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경주최부자 정신이 부침 심한 정치인들 추천서로 인해 혹여라도 정치적인 색깔을 띠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현시대 어떤 정치인도 12대 경주 최부자를 제대로 알고 추천서를 써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반면 이 책에 반드시 추천서를 받고 싶었던 분들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물들이고 경주최부자와도 인연이 있었던 분들인데 공교롭게도 그분들의 공통점이 세상 어느 책에도 추천서를 써본 적 없다는 것이었다. 뒤에 몇몇 문화계 인사들과 학계 인사들을 떠올렸지만 경주최부자 정신은 경주최부자 자체로 숭고하다는 판단에서 추천서 없이 책을 내자고 결론지었다. 자서전은 아무래도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쓰다 보니 그들이 어떤 추천인을 선택하는지도 관심이 갈 것이다. 참고로 내가 출간한 대부분 정치인들의 자서전은 오히려 정치계 인사들의 추천서를 받지 않고 출간했다. 책을 낸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에 영향을 줄 만한 상위의 정치인들을 추천했지만 역시 ‘진실성’ 면에서 끝까지 주장하지 않았다. 지역구 유력 인사라는 이유로 끝내 정치인들을 추천서로 넣자고 한 어느 광역의회 의원은 아예 정치인들로 일괄 추천서를 받은 경우였는데 이것은 다분히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대신 내 입장에서 저자들의 초등학교 선생님과 고교 은사님 같은 분들의 추천서를 즐겨 받았다. 이분들 대부분은 실제로 자서전에 등장하는 분들이어서 저자들의 성장과정에 매우 깊은 영향을 주신 분들이다. 그만큼 진실된 추천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인의 책에서 추천서를 대놓고 많이 받은 경우도 있었다. 어느 지방도시 시장의 책에서는 무려 100명 가까운 분들의 추천서를 받아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시장에게 그렇게 많은 추천서를 주문한 이유는 그가 그만큼 많은 분들과 진심으로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100명이나 추천서를 받다 보니 거기에는 전직 국무총리에 모당 대표를 지낸 인물도 있었고 어느 모로 보나 막강한 정치력을 가진 정치인들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일체 가나다순에 의해 배열했다. 그러다 보니 동네 할머니 밑에 전직 국무총리가 들어가고 고명한 스님과 유명한 목사님이 부녀회 회원과 체육회 아저씨 밑에 들어가는 ‘대단히 멋진’ 상황이 자연스럽게 나열됐다. 그래도 대표할 만한 추천서 한 분은 따로 올려야지 싶어 원고 하나를 골랐는데 그것은 그 시장에게 항의해 단식을 감행했던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쓴 편지였다. 그 할머니가 단식할 때 그 시장 역시 할머니 옆에서 굶으면서 사흘 동안 대화를 나눈 끝에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그 일로 할머니는 그 시장의 열렬한 지원자가 됐던 것이다. 편지에는 바로 그 사연이 마치 일부러 부탁이라도 한 듯 정성스럽게 쓰여있었다. 드라마...,! 그 편지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것이어서 그 추천서를 메인 추천서로 올리겠다고 주장했을 때 그 시장은 물론 누구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뒤에 출판 기념회를 하면서 보니 그때 추천서를 보내주신 분들이 모두 자랑스럽게 자신의 추천서를 찾아 읽으며 책에 참여한 것을 뜻깊게 생각했다. 편지 쓴 할머니도 오셨는데 마치 내가 그 정치인이라도 된 듯 반가웠다. 추천인이 결정되고 나면 경우에 따라 추천인이 저자에게 추천서를 대신 써서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대필했던 어느 정치인도 그랬다. 그런데 그 추천서 당사자가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한 시인이었다. 정치인과 어릴 때 한 동네에 산, 정치인의 누나와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어렸을 때 헤어진 이후 자주 만나지 못해 감정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할지 모르겠고 마침 몸도 불편해 정신을 집중해서 무얼 쓸 만한 사정이 못 된다며 필요한 내용을 써서 거꾸로 보내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정치인의 책을 대신 썼으니 당연히 추천서도 대신 쓸 수밖에... 급히 그 시인과 정치인의 관계, 정치인과의 어렸을 적 에피소드, 그 뒤의 인연 등을 상세히 조사한 후 그 시인이 쓴 여러 편의 수필까지 읽어본 다음 추천서를 써서 보내드렸다. 시인의 수필을 읽은 것은 그 시인의 글쓰기 패턴과 습성 등을 최대한 고려해서 쓰기 위함이었다. 며칠 후 그 시인이 놀라운 답장을 보내왔다. 누가 이렇게 자기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썼느냐는 것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두어 줄의 수정만 거친 후 그 원고가 그대로 추천서로 올라갔다. 글 쓰는 작업할 때 이런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프로 작가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상에서 보듯 추천서의 제일 관건은 책의 진정성이고 책을 소개하는 중요한 단초다. 위의 다른 예에서 보듯 정치인들에게는 또 다른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추천서는 저자 대신 책을 소개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자 몇 안 되는 마케팅 도구이다. 책을 쓰신 분들은 자신의 책을 열렬히 알려줄 특별한 지인이 있는지 찾아보자. 친할수록 좋고 유명할수록 좋고 책을 알릴 힘이 있으면 더더욱 좋다!
자서전을 쓰고 단원을 나누고 제목까지 잡고 나면 책을 다 끝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가 써야 할 글 중 본문만 어느 정도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본격적으로 지금부터 책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첫 번째가 머리말과 맺음말을 쓰는 것이다. 영어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고도 많이 쓰는데 그냥 머리말과 맺음말이라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머리말을 ‘책을 내면서’로 맺음말을 ‘책을 낸 후’라고 바꿔서 써도 좋고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가치관에 비추어 별도의 제목으로 꾸며서 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주 단순한 작업 같지만 이 머리말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주 많은 독자들이 책을 구입할 때 책 내용을 먼저 보지 않고 머리말과 목차를 먼저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머리말부터 눈길을 끌어오는 ‘한 방’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써먹는 나의 첫 책 ‘니, 꼬치 있나?’의 경우 머리말을 ‘마지막 남자들을 위하여’로 썼다. 책 제목이 ‘니, 꼬치 있나?’로 썼으니 책 제목만 보면 마치 남성성을 굉장히 부각시킨 듯 보인다. 실제로 타겟 독자층도 그렇게 잡은 것이니 머리말도 그와 상관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지막 남자들을 위하여’는 지금 생각해도 방향을 잘 잡은 머리말 제목이었다. 그러나 머리말의 내용은 다소 욕심스럽게도 이 책을 볼 독자층들이 전방위의 세대임을 강조하기 위해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야 할 시대 이야기와 추억담이라고 주절거렸다. 그때 처음 내는 책이어서 책 머리말에 대해 중요한 것은 인식한 반면 타겟을 더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못한 셈이다. 조금 대조적이었던 책이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였는데 여기서는 머리말을 두 개로 나누었다. 책을 내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최염 회장님의 소감과 저자인 내 소감을 따로 적은 것이다. 제목으로 최염 회장님 소감을 적은 머리말은 ‘최부자 주손의 세 가지 소원’이라고 썼고 내 소감의 머리말 제목으로는 ‘최부자 정신의 세계화를 위하여’라고 달았다. 최염 회장님의 소원은 후손으로서 당대에 12대에 걸친 경주최부자 정신을 책으로 남기는 것과 할아버지이신 문파 최준 선생의 행적을 제대로 기록하는 일, 영남대학교 재단을 최부자 정신에 맞게 회복하는 것이었다.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이중 12대에 걸친 교훈을 정리한 것이고 문파 선생님에 대한 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발간하지 않고 한글파일로만 남아 있다. 내가 주창한 최부자 정신의 세계화는 당시로서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자 숙제로 여겨졌으나 역시 이런저런 여건으로 추가로 책을 발간하지 않음으로 인해 중단된 상태다. 자서전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머리말을 대부분 소통과 화합, 감사, 공감 같은 것으로 꾸미기를 원한다. 정치의 기본 덕목이 소통과 화합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게 먹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펴낸 대부분 정치인들의 책 머리말 역시 이런 단어들로 나열되었다. 정치인들의 책이 천편일률 밋밋한 자기 자랑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머리말 제목으로나마 공감을 확대하려는 간절함이 깃든 결과일 것이다. 머리말 내용은 위에서 말했듯 책을 특정하는 소개라고 해도 좋다. 특히 최근 들어서 마케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머리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책의 향방이 달라질 정도다. 책을 왜 썼는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사회 전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해 쓰는 것은 마케팅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여기에 책을 쓰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넣어도 좋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인상적인 대목의 언급 등을 넣어도 좋다. 책 머리말을 떠올릴 때마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이 떠오른다. 일반적인 저자들이 머리말을 작게는 한두 페이지, 많게는 서너 페이지쯤 쓰는 반면 김용옥 선생은 머리말을 원고지 100매 이상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자신의 초기 명저인 ‘여자란 무엇인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책들은 머리말이 깨알 같은 당시 책의 글씨로 4~50페이지나 될 정도였다. ‘노자와 21세기’ 같은 책도 머리말만 십수 페이지고 ‘도올 논어’는 숫제 책 3분의 1일 머리말로 꾸며졌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머리말이 본문만큼 흥미로웠던 것이, 당시 대한민국이 격변기였고 특히 김용옥 선생의 경우 그 시대 화제의 중심인물이었기 때문에, 책 발간을 전후한 일련의 사회적 분위기와 자신에게 닥쳤던 여러 가지 주변 환경들에 대한 설명이 여간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사회현상을 통틀어 머리말에 옮겨 놓은 것만으로 그 시대를 단정하는 중요한 저술로 여겨졌다. 책의 발간 경위와 책의 가치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김용옥 선생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김용옥 선생의 독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하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자서전에서 머리말을 쓸 때는 각별히 고려할 일도 있다. 책을 발간하면서 특별히 감사해야 할 대상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이라고 하는 장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지만 사람이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므로 반드시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일 수 있고 그들 모두가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더구나 자서전은 ‘과거’라는 시점에 맞추어진 만큼 지난 세 월동안 소통한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와 은사, 인연을 깊이 나눈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머리글에서 그런 사람들을 언급하는 것은 연말 상 받는 연예인들이 소감에서 누구누구를 언급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말은 없어지지만 글은 오래 남기 때문이다. 때문에 누구에게 고마움을 전할지 미리 정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자서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다른 장르의 책에서는 사족일 뿐이다. 머리말이 다분히 전략적이라면 맺음말은 다소 자기중심적이다. 아마도 독자들이 맺음말까지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많은 경우 맺음말 없이 머리말로 끝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맺음말은 책을 펴낸 후의 소감을 쓰는 것인 만큼 머리말에 쓰지 않았던 후일담을 쓰거나 머리말을 전략적으로 쓰느라 빼놓았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책의 내용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맺음말을 쓸 수도 있다. 다시 돌아가 ‘니, 꼬치 있나?’에서 맺음말 제목은 ‘마지막 원시시대’였다. 내용은 책의 내용을 간추려 최종적으로 우리 세대 남자들이 수렵과 어로와 채취를 마지막으로 경험한 최후의 원시인이라는 것으로 꾸몄고 자연의 혜택을 마지막으로 받은 세대인 만큼 후세들에게 이 자연을 제대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그에 반해 내가 펴낸 많은 책에서 맺음말은 생략했다. 머리말에서 필요한 말을 다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머리말은 책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책을 다 쓴 분이라면 머리말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쓸지 궁리해보자. 어쩌면 이게 더 어렵고 재미있는 작업일 지도 모른다.
책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나면 작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어떤 제목을 붙이면 책이 좀 그럴싸하게 보이고 책 내용을 단숨에 알려줄 수 있을까? 판매를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 이름 지으면 판매에 조금이라도 유리할까 같은 고민이다. 거짓말 좀 보태면 책 제목 정하는 것이 책 쓰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렵게 느껴진다. 자서전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생을 쓰는 것이고 별의별 사람들이 자서전을 펴내는 마당이니 조금이라도 눈에 띄거나 튀어 보이는 제목을 정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런 제목이 쉬운 것도 아니고 자칫 제목을 잘 못 정하면 기껏 낸 책이 성격 구분을 못 해 폭망(폭삭 망함)하는 일도 생긴다. 그 대표적인 폭망이 자서전 쓰기 강좌를 하면서 몇 번 이야기한 나의 첫 자서전 ‘니, 꼬치 있나?’다. 이 책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경주시 교촌에서 뛰어놀며 부대낀 이야기를 쓴 것이다. 말했듯이 그 진행이 재미있어 daum의 메인 화면에 자주 소개되며 내 블로그를 일약 ‘우수블로그’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무려 daum 30대 블로그에 들 정도였으니 글의 재미나 소재의 특별함이 증명되고도 남았다. 이를 관심 가지고 지켜본 ‘금붕어’라는 출판사가 책을 펴내자고 제안해 일사천리로 출판이 진행됐다. 원고는 이미 나와 있고 각각의 원고마다 제목까지 다 정해져 있으니 달리 손댈 게 없었다. 그러나 딱 하나, 가장 중요한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다. 블로그 제목처럼 그냥 ‘386 세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할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 아마도 한 1천 개쯤의 제목을 떠올렸을 것이다. 책의 내용과 추억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삼빡한 제목을 정할지를 책이 디자인되고 편집되는 일주일 넘게 고심했다. 나뿐 아니라 출판사에도 고민했고 내 지인들이 죄다 달려들어 고민했다. 특히 당시에 인터넷 카페가 최고조로 인기 있던 시절이었고 내가 속한 카페마다 일부러 내 글방이 따로 만들어질 만큼 인기 있었기에 카페 멤버들의 기대도 상당했다. 내가 등록된 카페마다 작은 경품을 걸고 제목 정하기 열풍에 불을 붙였다. 그러다 결국 ‘니, 꼬치 있나?’로 결정했다. ‘니, 꼬치 있나?’는 책 속 한 단락의 제목이었다. 표준말로 ‘너 고추 있니?’ 다시 말해 ‘너, 남자냐’, ‘너, 사나이 대장부냐?’라는 말이었다. 그때 교촌 위쪽 반월성 어귀에 ‘문디바우’라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담력 시합을 벌이면서 나온 말이다. 내 블로그에 이 단락이 발표되었을 때 그 글을 보고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어 글이 재미있다고 시쳇말로 난리가 났었다. 김유정의 ‘봄봄’이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김동인의 ‘배따라기’보다 백 배 재미있다는 반응이었었다. 이 결정은 ‘니, 꼬치 있나?’의 뜻을 잘 아는 경상도 사람들이 강력한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예측과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일단 책을 펴볼 다른 지방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황당무계한 속셈이 곁들여진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면 이 결정은 두고두고 후회한 최대의 오판이었다. 마침내 책이 나왔고 전국의 판매대에 올라갔지만 블로그의 엄청난 인기와 달리 책 판매가 영 시원치 않았다. 그나마 블로그와 온갖 카페 펜들의 힘을 입어 잠깐이나마 베스트셀러에도 올랐지만 그 정도로 끝이었다. 내심으로 최소한 10쇄는 찍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3000부 1쇄 찍고 절판됐다. 역시 블로그의 자체의 파워와 온갖 카페 회원들의 성원으로 그해 말 daum에서 개최한 ‘인기 있는 책 순위’에서 무려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판매실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출판사와 나는 제목이 잘 못 되었다고 판단했다. 책 판매가 부진했던 데는 온갖 이유가 있었겠지만 제목이 선명하지 못했다는 점에 최후의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필 책 디자인도 ‘너 사나이 대장부냐?’고 묻는 제목을 하나도 반영하지 못했다. 디자이너가 표지에 꽃을 잔뜩 그려 놓아서 얼핏 보면 그 무렵 유행하던 무슨 도배지나 장판지를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애석하게도 경상도 사람들조차 이미 표준어의 거대한 물결에 밀려 ‘니, 꼬치 있나?’의 꼬치를 무슨 주점의 안주쯤으로 알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은 더더욱 책 익숙하지 않아 책 판매대 가운데를 점령하고 있던 내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제목으로 폭망한 반면 제목이 좋아서 성공한 책들도 엄청 많다. 그런 예는 지나치게 많아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얼핏 떠오르는 제목들이 ‘마시멜로 이야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같은 것들이다. 사실은 책 내용보다는 책을 펴낸 저자들이 더 유명해서 성공한 책이지만 제목만큼은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책들이다. 이들은 원하는 독자층을 정확하게 타켓으로 삼아 그들의 감성을 잘 건드린 최고의 제목들이다. 내가 펴낸 어느 자서전에서 기억나는 제목이 하나 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의 모 구청장 선거에 나가는 분이었는데 책을 다 써놓고 어느 지인으로부터 이 제목을 전달받았다며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선거용 전략으로 딱 좋겠다 싶어 그렇게 제목을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목에 관해 저자와 내 관점이 조금 달랐다. 주인공은 자기를 중심으로 두고 자기 자신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판단한 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저자가 행복하다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내가 크게 웃었다. “아니, 선거에 나가실 분이 이렇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면 어떻게 구민들의 마음을 얻겠습니까? 당연히 구민들이나 유권자들이 있어서 내가 행복한 것이어야 하지요” 내 설득에 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점이 달라지니 똑같은 제목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와닿은 것이다. 결국 타인의 존재로 저자가 행복해진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머리말과 본문해석이 추가되었고 책이 나온 뒤 읽은 분들에게 제목 참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가 하면 내가 경주최부자댁을 집중 취재해 쓴 책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제목 정하는 데만 무려 1년이 걸린 책이었다. 이 책은 경주최부자 종손 최염 회장님을 모시고 무려 3년이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각 내용에 맞추어 오랜 취재를 통해 완성했는데 막상 다 써놓고 나서 제목을 확정하지 못해 애먹은 책이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제목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큰 바보’라는 최고의 경의를 담은 제목이었다. 그러나 책을 내는데 함께 참여하신 경주최부자댁 종손이신 최염 회장님 입장에서는 혹여라도 후손이 조상에 대해 불손하게 비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셨다. 이 일로 최염 회장님이나 나를 통해 의견을 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중에는 독립운동사의 큰 별이신 조동걸 교수님,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이셨고 학술원 회원이셨던 박병호 교수님 같은 석학들도 계셨다. 이런 분들이 경주최부자 가문이야말로 바보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큰 바보’라 해도 좋은 분들이라며 손을 들어주시고서야 비로소 책 제목을 정할 수 있었다. 그러느라 일 년을 넘게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도 그 책 제목을 정하기는 참 잘했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제목 정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물론 제목보다 내용이 좋아야 하지만 때로는 좋은 제목 하나가 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으므로 제목 정하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정글 같은 책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눈길부터 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