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마르세유 항구로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마르세유는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에 있습니다. 오래되고 아름다운 항구로, 무역보다 오히려 관광도시로 더 각광을 받고 있지요. 7/16 스페인에서 이곳으로 와서, 먼저 이 항구의 상징물인 노틀담 드라가르드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 성당을 포함해, 유명 소설, ‘몬테그리스트 백작’의 배경지인 이프섬과 구시가지 풍경이,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 포인트로 꼽히고 있습니다. -마르세유 항구의 상징물 ‘좋은 어머니 성당’ 마르세유 언덕위에 세워진 ‘노틀담 드라가르드 성당’을 일명, ‘좋은 어머니 성당’이라고 부릅니다. 거기로 가는 길은 버스와 꼬마열차가 있는데, 우리는 버스로 성당 아래에 내려, 언덕 계단 길따라 올라갔습니다. 주변 도시와 바다, 선박, 해안선 경치를 보며 가기 위해서입니다. 이 성당은 마르세유에서 가장 높은 언덕(150여미터 높이) ‘가르드 언덕’에 13C경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당초에는 해안선의 선박, 군함을 감시하는 감시성벽이 있던 곳이며, 외적 침입자인 로마, 이슬람세력들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한 망루가 설치되어있던 장소라고 합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리적인 방어력보다는 하느님으로부터의 보호, 즉 영적인 힘의 보호를 받기 위해 여기에 성전을 건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마르세유 사람들뿐 아니라 이 항구를 출입하는 선원들의 안전항해와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의 장소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노틀담은 프랑스어로 ‘우리의 여인’, 즉 성모님(성당)이란 뜻이고, 가르드는 ‘보호’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성당은 우리(마르세유)를 보호해주는 염원이 담긴 성모 마리아의 성당, 즉, ‘좋은 어머니 성당’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성당 위에 오르니 금빛으로 빛나는 10여미터 높이의 성모상이 우뚝 바다를 굽어보고 있고, 무게 8톤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면서 이 항구를 감싸주고 있는듯 했습니다. -마르세유 성당에서 부산항을 생각하며 나는 마르세유 좋은 어머니 성당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부산항’을 생각했습니다. 두 곳 다 항구도시로 서로 닮은 듯, 무슨 연관성이 있는 듯 해서지요. 노틀담 성당이 바로 바다를 향해있고, 높은 언덕 위에 성당과 종이 시가지를 보호하고 있듯이, 부산항도 ‘용두산 공원’위 (해발 190여m)에서 ‘부산 타워’와 ‘시민의 종’이, 선박들의 정박지로 부산 해안과 시민을 보호하듯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용두산 공원의 종은 높이 4m의 구리 무게 25톤으로, 1996년 시민 헌수금으로 부산항의 번영을 위해 만든 종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마르세유는 외세의 침입을 막은 교두보로 요새 지역이었고, 부산 또한 한국 전쟁 때 남단 최후의 보루로서 전쟁의 마지막 피난처 였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마르세유는 서양 신부님들이 이곳 성당을 거쳐 부산항으로 인도되어, 조선 백성을 깨우치고 서양문화를 전파하며 주님의 사랑을 베푸셨으니, 마르세유는 출발지요, 부산은 그들의 도착지였기 때문에 그 유관성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스페인 바로셀로나 민박집 주인 아줌마 7/2일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이튿날 아침 바로셀로나에 도착,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스페인 최고의 관광명소인 ‘람브란스’ 거리 가까운 블록에 한국교민이 운영하는 민박집입니다. 딸의 지인 도움으로 2박 3일 간 지내기로 했습니다. ‘유니크’라는 민박집인데, 방 2개를 우리가 빌렸어요. 자기 집은 따로 있고, 이곳 아파트를 전세 내어 본가에서 왕래하며, 운영하고 있었어요. ‘충북 음성’이 고향인데, 오래전에 여기에 이민 와서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스페인 관광자료, 바로셀로나 여행안내지 등을 비치하여 놓고, 여행 정보도 제공해 주는 친절한 아주머니였어요. 깔끔하고 부지런하고, 상냥한데 매우 근검절약했습니다.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이 없는 짠순이 민박집 7월의 바로셀로나 여름 날씨는 매우 더운데도, 방에 에어컨이 없었어요. ‘아주머니, 에어컨이 없어요?’하고 물으니, ‘낮엔 더워도 밤엔 괜찮아요. 여긴 다들 그렇게 살아요’ 하며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립니다. 아마 절전하기 위해 설치조차 안 한 것으로 평소 생활 습관인 것 같았어요. 더워 잠을 설치지만 불평할 수도 없고 참는 수밖에. 같은 동포로서 알뜰하게 사는 그녀의 생활방식에 맞춰 이해해주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 외 방 청소, 주변 정리, 방범등엔 더욱 신경을 써주며, 애들도 씻어주며 친절하고 곰살맞게 대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아끼며 악착같이 살려고 애쓰니, 다들 자리를 잘 잡아 살구나 하는 부러움을 갖게 합니다. 떠날 때는 애들 간식까지 마련해주는 그녀의 성의에 짙은 동포애를 느끼게 했습니다. (2)바로셀로나(보케리아 시장) 교민 맛집, ’마싯타‘ 식당 바로셀로나에서 가장 으뜸 관광지인 ‘람브란스’ 거리를 가봤습니다. 이 도시는 스페인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이며, 관광도시입니다. 옛날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갈 때, 지나친 마을인데 하도 아름다워, 나중에 자기 가문의 도시로 삼고, ‘바로세로나’라고 한데서 전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람브란스 거리는 1㎞ 쯤 되는데 카타루나 중앙 광장에서 바로셀로나 해안까지 연결되는 도로입니다. 교통 중심지며, 상가, 식당, 꽃가게가 즐비하고, 거리의 화가, 여행객들로 북적대는 곳입니다. 길거리에 ‘삼성전자 갤럭시 로고’도 붙어있어 반갑고 우쭐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거리 중간쯤에 ‘보케리아 시장’이 있어요. ‘산 호셉시장’이라고도 하며, 수백 개의 점포가 들어 차있는 스페인 최대의 시장이지요. 여기를 구경하다 코너에서 우리 한글로 ‘마싯타’라고 쓰여있는 간이 식당을 만났어요. -청사초롱과 한글 메뉴가 걸려있는 우리네 간이 식당 교민이 운영하는 가게라 반가웠어요. 두어 평 정도되는 가게에 청사초롱이 걸려있고, 식당 이름, 메뉴 등이 순 우리 한글로 적혀 있었어요. 메뉴는 라면, 김밥, 잡채, 불고기 등이 있고, 고추장, 된장 등을 우리 교민이나 여행객들에게 식재료로 판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가게를 보고, 손님들이 가판대에서 서서 음식을 먹게되어 있었어요. 내부면적은 작지만, 일종의 맛집으로 깨끗하고 청결하더군요. 수년 전에 바로셀로나에 여행왔다가, 이 식당을 시작했다고 해요. 처음 고생을 했지만 열심히 일하다 보니, 목(위치)이 좋아 지금은 장사가 잘된다고 여유 있게 웃어요. 무엇보다 이곳 교민들이나 동포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주어 고맙다고 합니다. -당당한 우리 한국교민, 스페인 상인과 어깨를 나란히 라면과 김치를 보자 애들이 좋아해서 어쩔줄 몰라 했어요.라면 한 그릇에 6000원 정도인데, 금새 게눈 감추듯 했고, 김밥, 만두 등을 더해서 우리도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이니 손님들이 가게에 들리면서, 우리는 자리를 비켜 주고, 먹든 음식을 손에 들고 쫓기듯이 비껴 서서 먹어야 했습니다. 다른 외국 손님에게 한 그릇이라도 더 많이, 더 편히 팔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유럽 제일 큰 시장에서 스페인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당당하게 삶의 전선에서 선전하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슬로베니아 국경 시골 식당에서 8월 9일 오스트리아에서 크로아티아로 가는 도중, 슬로베니아 국경쪽을 지날 때입니다. 애들이 배가 고프다고 식사를 하자고 합니다. 일찍 출발한다고 아침을 설친 때문이며, 점심때가 가까워가고 간식꺼리가 변변치 않기도 했습니다. 본 도로에서 사이길로 빠져 어느 시골 마을에 들렀어요. 시골 구경도 하고 마을 식당에서 점심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슬로베니아(slovenia)는 발칸 반도 북서쪽 끝자락에 있으며, 우리나라 경상북도 정도의 크기에, 인구 200만명쯤 됩니다. 사방으로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에 둘러 있으며, 나라 전체 모양이 닭의 형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유럽의 치킨’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시골시장 옆에 있는 조촐한 식당에 들렀어요. 희끗한 머리에 텁텁한 식당 주인이 동양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니, ‘어디 있는 나라냐?’고 재차 묻습니다, 큰 손주가 지도를 내보이며, 우리나라를 가르켜 주어서야, ‘와! 멀리서 왔네’라고 하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한국인이 자기 식당에 온 것 감사한 일 한 가족이 유럽여행을 한다고 하니 부러운 듯 여기면서, 우선 배고파하는 애들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드는지 부지런히 요리를 만듭니다. 여섯 명의 식탁이 푸짐합니다. 맛도 있거니와 양도 많아요. 아무래도 식당 아저씨의 후덕한 선심이 많이 보태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여행인데 ‘제대로 먹고 다니겠어?’하는 표정으로 아저씨는 음식 접시를 부지런히 애들 앞으로 갖다 나릅니다. 음식값보다 애들 생각을 먼저 한 것입니다. 푸짐하게 잘 먹었으나, 은근히 걱정이 앞섰어요. 얼마나 나올까? 그러나 결제 시에 주문 가격 외에 추가분은 애들을 위한 서비스로 더 받지 않았습니다.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한국인이 우리 식당에 온 것만이라도 감사한 일인데, 오히려 자기가 더 고맙다고 합니다. 크로아티아로 가는 본 도로로 나와 신나게 달렸어요, ‘세상에는 착하고 고마운 사람들도 많이 있구나, 그래서 세상은 좋게 잘 돌아가는 구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식후 잠든 평온한 두 손주의 얼굴을 보며, 그 식당 주인의 후한 대접에 또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스위스(베른)의 어느 카 정비센터 직원의 서비스 (1)레만호 시옹성 주차장에서 차량유리창 파손 7월 25일 레만호에 있는 시옹성 주차장에서, 집시족으로부터 차량 파손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 후속 조치는 경찰의 현지출동에 이어 해결이 되었지만 유리파손은 내가 알아서 교체를 해야했습니다. 여행 지속은 물론, 차내 보안상 빨리 수리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차 속의 짐이나 취사도구, 기타 식자재 등의 보안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베른시 카 정비회사를 찾아 갔지만 사이즈가 맞는 유리가 없어 다른 업체에 연락을 해보더니, 이틀 후에야 수급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창문없이 다니기로하고 그냥 돌아오려는데, 카센터 아저씨가 “그때까지 유리 대용으로 두꺼운 비닐 가림막을 설치해 주겠다”고 조언을 합니다. (2)차유리 대신에 뚜꺼운 비닐로 커버 두꺼운 비닐로 임시 갈아 끼우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간단한 일이니 돈은 안 받겠다고 해요. 2일 후에야 유리창을 새로 끼었지만, 베른시내 몇 군데 업체를 알아보며 신경을 써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복구비용도 차를 빌린 폴투칼 렌트회사에서, 이곳 스위스 정비업체로 결제를 한다고 합니다. 면식 없는 타국에서, 유리 교체와 비용부담의 편의를 도와준, 그 스위스 카 서비스 센터 직원의 수고와 친절에 대하여 생각날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크로아티아 민박집 주인아저씨 이야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로아티아의 프리드 비체를 구경하기 위해 8월 9일 이곳 국립공원 가까이에 있는 ’메트로 짐멀’이란 마을에 도착했어요. 어르신 부부의 집 방 2개를 3일 동안 130유로에 빌렸는데, 민박집 이름이 ‘zimmer 10’이라고 했습니다. 산촌마을이며 주변에 숲이 우거져, 조용하며 적적하기까지 했어요. 더욱 좋은 것은 주인아저씨가 나와 비슷한 나이였어요.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속마음까지 털어 내지는 못 하지만, 연륜에서 느끼는 ‘정’이란 게 있어 서양인, 동양인을 불문하고 터놓고 지낼 수 있게는 만들어 주더군요. 숙소 뒷밭에 상추, 고추, 호박 등 채소가 있어, 때마다 우리에게 뜯어 먹도록 배려해 주었고, 애들에게 과자랑 과일을 갖다 주며, 자기 손주들처럼 예뻐하기도 했습니다. 아들 둘이 오스트리아에서 사는데, 손주들을 자주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더군요. 그는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때 출전하여 왼손에 부상을 입은 상이용사로 마음이 착하고 온정적이었어요. 동년배인 나를 만나 심심찮게 되었다며, 크로아티아 내전 이야기, 옆 동네에 있는 ‘동화마을’과 국립공원인 ‘프리트 비체’에 대한 비경도,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친절까지 보여 주었어요. 같이 있는 동안 마을 길, 숲길을 돌며, 동부 유럽의 시골 경치를 구경하는 데에 더없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귀국해서 감사의 연락을 한다고 했는데, 여태 그러질 못해 미안할 뿐입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공항 검색대 여직원의 친절 6월 20일 스코트랜드 에든버러 공항에서 아이슬랜드로 출국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공항에나 마찬가지로 이 공항 검색대에서도 몸에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전부 털어 검색함(바구니)에 넣고, 옆 창구(벨트)로 보내고 몸 소지품 검사를 받았습니다. 내 소지품은 여권과 신분증, 그리고 현찰이 들어있는 허리 휴대가방(전대가방) 하나, 이건 허리에 묶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지퍼를 열어 사용하는, 내게 가장 중요한 휴대품입니다. 걸어 다니거나, 비행기 탑승 시나 물건을 살 때, 그리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려 출국장을 지나 공항 출입문쯤에 왔을 때 ‘전대가방’이 허리에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가슴이 철렁, 겁이 났어요. 어디에서 소매치기를 맞았나? 화장실에서 벗어놓고 그냥 나왔나? 별생각이 다 났으나 잃어버린 이유와 그 장소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우리 부부와 손주들의 여권을 포함하여 현찰이 제법 들어있는 여행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실내 루트에서부터 행적을 찬찬히 생각하다가 검색대로 딸과 함께 급히 향했습니다. 아까 검색원이던 흑인 아줌마를 찾았을 때, 그녀는 말없이 싱긋 웃으며 내 전대가방을 보관함에서 꺼내, 내 얼굴과 여권 사진을 힐끗 보고 건네주었습니다. 검은 흑인 여인의 웃는 얼굴이 백합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웠습니다. 흑인에, 곱슬머리지만 주변의 어느 여인들보다 곱고 예쁘게 보였어요. 내 평생 처음으로 흑인 여인한테 받아본 흐뭇한 미소요, 친절이었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스위스 베른대학교 종합병원 할머니 의사 이야기 여행 중 자동차 파손 및 짐 분실 사고, 여권 재발급 등의 악재로, 우리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집사람이 갑자기 몸이 아팠습니다. 7월 29일 스위스 베른시 주변에 있는 베른 야영장에서 몸이 아프다는 집사람을 데리고 베른대 종합병원을 찾았습니다. 생전 처음 당하는 여행국(스위스)에서의 병원 진료라, 이리저리 물어 이곳에서 가까이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간 것입니다. 사위와 애들은 텐트에 남겨두고 딸과 내가 집사람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어요. 어떻게 아픈지? 어떤 처방이 내릴지? 여행 중에 혹시 귀국까지(?). 갖가지 걱정이 앞섭니다. 병원 주차장이 어디 있는지 몰라, 그냥 병원 하얀 선 구역에 차를 세우고, 부랴부랴 진료 수속을 밟았습니다. 여행 중 통역은 딸이 맡아 하고 있지만, 전문의료 용어에 대해서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러나 의사는 우리가 외국인 관광객임을 알고, 친절한 언행에 쉬운 말로 우리를 편하게 해주었어요. -머리가 하얀 노인 의사와 간호사 팀 무엇보다 의사가 머리가 하얀 65세 이상 보이는 할머니임에 놀랐고, 더욱 놀란 것은 그 옆에서 그녀를 보좌하는 간호사 역시 의사와 비슷한 나이로, 의사와 간호사가 동 연배쯤 서로 화이트 칼라 머리여서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진료실 분위기도 좋고, 서로 소통도 잘되며, 우리에게도 할머님처럼 편했습니다. 초음파, 피검사, 기타 증상 등을 종합하여 결과 판단은 ‘뇨도감염’이라고 하며, 5일분 약을 처방해주었습니다. 여행 중 밥 짓고, 빨래하며 애들 돌보느라 과로로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하며 의사가 딸을 대하듯, 주의사항과 약 복용에 대해 조곤조곤 친절하게 말해주었어요. 가벼운 증상이라 우리 마음에 다소 여유가 생기면서 진료실의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어요. 혈압, 조음파 검사, 피검사 등 검사 기능도 한국 같으면, 전문 검사실을 환자가 직접 찾아가서, 체크를 받지만 여기서는 담당 진료실에 전문기사가 관련 의료기구를 가지고 직접 와서 확인하는 게 특이했어요. 즉, 환자는 진료실 한 곳에 편히 두고 전문기사들이 움직입니다. 환자 편의주의 원칙을 잘 실천하는 것 같았어요. 3시간 진료에 900프랑(120만원) 정도였습니다. 진료비는 엄청 비싸지만 친절한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어요. 치료비도 500프랑은 현지 결제하고, 400프랑은 귀국 후 송금했으니, 친절한 할머니 의료진의 고마운 마음씨 덕분이었습니다. -스위스 한국대사관의 친절한 젊은 여직원 스위스 몽테르시 시옹성 관광에서 여권을 도난당해, 베른시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았습니다. 이틀 전 전화로 여권도난과 관련 재발급신청을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스위스 주재 한국 대사관은 1963년 2월 설립되었습니다. 마침 베른시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하여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문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뜰에는 무궁화가 피어 마치 한국 땅에 온 것처럼 가슴이 뭉클, 심란한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 한국 여직원이 우리 여권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오전 한나절 동안 우리들의 신분 조회, 사진입수, 및 관계자료를 검토하고, 그것도 점심시간이 초과했는데도 여권 발급업무를 잘 끝내주었습니다. 공직자로서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훌륭하거니와 동포의 어려움을 친절과 미소로서 감싸주는 그녀의 배려에서 순간 한국인임에 무척 행복했습니다. 여권 4개를 받아 나올 때, 창공에 펄럭이는 태극기는 당당하게 힘차 보였고, 정원에 핀 무궁화는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뮌헨에서 자동차를 반납하고 포르투칼에서 빌린 이 자동차는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을 거쳐, 8월 16일 독일 뮌헨 공항 근처에 있는 자동차 렌트 회사까지 왔습니다. 이제 유럽여행이 끝나가면서 빌렸던 자동차를 반납하기 위해서죠.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든 렌트할 수 있고 또 일정따라 어디서든 반납할 수 있도록 렌트회사끼리 연결이 돼 있어, 관광객은 사용 후 어려움 없이 되돌려 주면 되어 편리합니다. 큰 탈 없이 수십 일 동안 안전하게 잘 달려준 차를 돌려주니, 다행스럽고 고맙지만 한편 섭섭하기도 합니다. 차와 이별하는 순간,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릅니다. 지난 7월 25일 스위스의 호반 도시인 레만호에서, 그곳 집시족의 소행으로 짐이 차에서 도난당한 사건입니다. 호반에 있는 ‘시옹성’을 구경하고 돌아오니,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 한쪽 유리창이 박살이 나고, 여권 4개를 포함한 트렁크가 없어진 일이죠. 순간 황당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곳 경찰서에서 조사도 받고, 우리 스위스 대사관에 가서, 해외에서 여권발급을 받아보는 등 시간이 지나면서 이 차에 묻어있는, 특이한 추억거리로 우리 여행 한 페이지에 영원히 좋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뮌헨의 대형 맥주홀, 아우구스터너(Augustiner) 브로이에서 뮌헨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맥주 양조장이 3개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오래 되고, 큰 맥주홀인 이곳에 들렀어요. 중앙역에서 20여분 동안 걸어 넓은 출입문을 지나, 나무숲 사이로 통과해 대형 홀에 들어섰습니다. 넓은 광장에 둥글게 생긴 반원형의 지붕 아래 펼쳐진 큰 홀이 작은 운동장만큼이나 넓었어요. 손님 좌석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실내가 많은 사람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500CC 퉁겔 4잔에, 안주로 부드러운 돼지족발, 감자와 닭다리를 넉넉하게 주문했어요. 애들에게 우리나라 음식처럼 조리된 눈익은 고기를 넉넉하게 먹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이 맥주 양조장은 1328년 아우쿠스틴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는데, 1829년 바그너 가문에 인수되어, 현재까지 700여년간 이어 온다고 합니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맥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어요. 맛있고, 톡 쏘고, 쓰지 않고 시원한, 그 환상적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으며, 안주 또한 부드러운 식감에 별미 중 특미였습니다. -숲속 야외 대형 공용 화장실 이곳엔 실내 홀도 크고, 많은 손님으로 복잡해서인지, 야외 화장실 또한 특이합니다. 밤에만 이용할 수 있는 이곳은 숲속에다 시멘트로 길게 U자관을 만들어 놓고, 흘러가는 소변기 대용으로 볼일을 봅니다. 실내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 야외에다, 남자들만 서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노천화장실입니다. 어두컴컴한 나무숲 곳곳에, 조명등을 설치해 놓아 손님들이 옆으로 줄을 서서 시원스럽게 배설을 할 수 있도록 편하게 잘 만들어 놓았어요. 이곳 맥주 맛도 기막히지만, 실내 체육관 같은 큰 맥주 홀과 야외 대형 노천화장실!, 독일여행을 생각할 때는 이 두 가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영국 「히드로 공항」 보안요원의 친절 인천공항에서 출발, 13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낸 우리는 지금 막, 영국의 관문인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6명의 가족이 공항 화물터미날에서 우리 짐을 찾기 위하여 돌아가는 화물 회전대로 눈을 집중시키고 있었어요. 60여일의 캠핑여행에 필요한 옷, 취사도구, 식자재, 침구류 등 입니다. 가족 6명이 10여개의 짐을 메고, 끌고 공항 대합실로 빠져나가자니 힘들었습니다. 복잡한 통로를 지나 출입문까지 가려니, 다른 사람들의 눈길도 만만치 않구요. 바로 그때 정복을 입은 공항보안 요원이 나타났습니다. 미리 그는 우리를 도와주려고, 공항 짐수레를 끌고 우리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우리를 도와주려는 의사 표시를 하고, 짐수레에 5-6개의 캐리어를 싣고, 선두에서 우리를 출입문 쪽으로 안내해요. 여행 출발지에서 친절한 도움을 받고 보니 어리둥절, 어찌나 감사한지 사례 정도는 하리라 미리 생각을 해둡니다. 그는 문밖에 나서자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보고, 공항출입문 옆에 있는 지하철(메트로)역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우리가 갈려고 하는 「올드 스티리트」에 있는 「랜드마크 아파트」까지는 몇 정거장 더 가야 하며, 1시간 30여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사례봉투를 줄려고 하니, NO! 자기 할 일을 했다고 하며 친절히 거절하고 돌아서 갑니다. 자기 본연의 직무수행이 아닌데도 관광객에 대한 당연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씨가 더욱 고마웠어요. 근무복을 입고 있었지만, 신사복 차림의 멋진 영국신사로 보여 한참이나 보고 서 있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숙소를 찾아준 아저씨 아이슬란드 제2도시 「아큐레이」는 이 나라 수도 레이크비크에서 북동쪽으로 400여키로 떨어진 항구도시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쯤으로 보면 됩니다. 우리는 6월 28일 아침을 먹고 이 항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도권 지역에서 아이슬란드 본토 중앙도로를 따라 직행한 후, 그곳 주변에서부터 거슬러 해변가를 돌면서 화산, 온천, 빙하 지역을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이곳 6, 7월은 맑은 날씨가 많은 여행하기 좋은 기간이에요. 아큐레이로 가는 길에 상벨리지역과 검은 모래바닷가를 돌아본 관계로, 그곳 항구 도착 때는 오후 4시쯤 되어 어둑해졌어요. 항구 좌우에 산으로 길쭉히 둘러있고 바다 양쪽에는 아름다운 주택들이 있으며 뒷산에는 만년설로 덮혀 있었습니다. 우린 예약해둔 숙소인 ‘아파트’를 찾아야 하는 데 쉽게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집 주소를 두어번 확인을 했는데도 찾지 못하자 마음이 초조해졌어요. 하루 종일 달려, 모두들 피곤해 있고, 저녁 식사도 준비해야 하는 데... 마침 길가 2층 옥상에서 집 수리를 하는 아저씨가 보이길래 큰소리로 상황설명을 하고,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저씨가 일을 중단하고 내려와 우리에게 왔어요. 우리가 찾는 아파트가 여기와는 반대편인데, 좀 멀리 있으니 자기를 따르라고 하고, 그의 차로 천천히 우리 차를 안내했습니다. 30여 분 뒤, 거리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쯤에야 집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땡큐를 연발하고 사례를 하려 하는데, 그는 자기 나라를 찾아주는 외국인에 대하여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하며, 오히려 자기가 감사하다고 하며 차에 오르더군요. 그분 덕분으로 좋은 아파트에서 이틀간 쉬면서 고래사냥, 최북단 식물원, 빙하 등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론다의 투우장 7/11 세비야에서 우리는 이곳 ‘론다’로 왔어요. 론다는 스페인 남부지역에 있는 인구 30여 만 정도의 작은 도시로 펑퍼짐한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도시입니다. 신구 시가지 가운데로 ‘타호 협곡’이 생겨나 있고, 그 위로 ‘누에보 다리’가 연결되어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절벽 도시와 흰색 집들, 누에보 다리, 헤밍웨이가 산책하고 집필하던 길 등으로 많은 관광객의 필수코스로 이름나 있는 곳입니다. 또한, 여기가 스페인 투우의 발상지요,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헤밍웨이가 피카소와 함께 이 투우장의 경기를 즐겨보며 지냈다지요. 이 투우장은 1785년 준공된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입니다. 지름이 66미터, 원형으로 생겼어요. 이곳은 원래 ‘왕림기사양성소’로 기사들의 훈련을 목적으로, 가상의 적을 황소로 삼아, 소들과의 싸움터였다고 해요. 여기에 있는 투우박물관에 가니, 투우장의 역사와 관련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관람 장소는 승마연습장, 마구간, 투우소 대기소, 투우경기장, 투우사 동상 등이 있습니다. 이곳은 6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투우장으로, 현대투우의 개척자인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붉은색 보자기로 소를 흥분시키는 전투적인 투우를 여기서 선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가 6000여마리의 황소를 부상시키지 않고, 쓰러트린 역사적인 현장(투우장)이기도 합니다. 처음 투우는 17C경 왕실의 오락으로 시작되면서 그 후 국민이 즐기는 구경거리로 되었답니다. 소들은 경기가 열리기 전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경기당일 철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빛과 함성에 극도로 흥분되어, 투우사가 흔드는 붉은 천으로 돌진, 그들이 죽음으로써, 투우장을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동물 애호 환경 추세에 따라 사라지는 경기로 무슨 축제일이나 특별한 날에 개장한다고 합니다. -투우장 주변 풍경 헤밍웨이가 론다에 있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고, 그 후 이 영화도 여기서 일부 촬영을 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곳’으로 이 도시를 꼽았다고 하지요. 누에보 다리, 전망대, 무어왕의 집, 주변 공원, 헤밍웨이의 산책길 등 이곳 관광명소를 십 수분이면 걸어가서 볼 수 있는 근접 거리에 있으며, 론다 도시만 해도 짧은 시간에 걸어서 거의 다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투우장 주변에는 오페라 하우스가 있고, 투우장에서 걸어와 전망대에 서면, 절벽 앞 멀리 아늑한 시골길이며, 오렌지, 올리브 단지와 농촌 마을의 푸른색 비유(view)가 관람객의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무어왕’의 집을 지나며 전망대에서 나와, 헤밍웨이 산책길을 지나서, 5분 정도 누에보 다리를 건너면, 길가 좌측 첫 번째 내리막길 끝 집이 무어왕의 집입니다. 14c경 나스르 왕국시대에 지어진 집이라고 해요. 현재 개인 사유 저택으로 항상 관람이 가능한 집은 아닙니다. 협곡으로 내려가면서 눈으로 훔쳐볼 수밖에 없는, 3층 집으로 내부가 365계단으로 되어있으며, 옛날 한때는 무기고와 지하 감옥으로 활용되었다고 가이드가 설명합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산위 석벽위에 위치한 오렌지색 「코러드」 마을 7월의 유럽 여름날은 연일 뜨겁습니다. 몇십 년 만에 처음 나타나는 가뭄과 더위로 도시 사람들은 지쳐있고, 프로방스 지역의 관광객 또한 더위를 먹은 것처럼 힘이 빠져있습니다. 여기는 우리 텐트에서 가까이 있는 남프로방스의 ‘코러더’란 산중 마을입니다. 오랜지 마을이라고도 해요. 산중턱에 석벽을 쌓고, 그 위에 집들이 지어져 있습니다. 집들이 오렌지 색인 황토 언덕에 건축되어 있어 집과 건축물, 석벽 등 거의 모두가 멀리서 보면, 황토색으로 덮힌, 오렌지 마을처럼 보인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산 언덕 위에 중세풍의 벽돌집들이 촘촘히 붙어있고, 도로가 좁고, 주차장이 적어 동네가 갑갑합니다. 그러나 찻집, 가게, 기념품 집, 교회 등 여러 사람이 공동 이용하는 곳은 다 길가에 늘어서 있어요. 마을에서 앞을 건너다보면, 절벽 아래 멀리 올리브 나무, 목축지. 농작물 등의 자연환경들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염천 하의 노란색 집들은 더욱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어 마을이 푹푹 찌는 것만 같아요. -소 목축 고원 「크레테 샤들러」 고지 우리는 오렌지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주변 경관이 좋다는 「크레테 샤들러」 고원에 차를 몰고 올랐습니다. 소, 말 등 가축을 방목하는 초원지대로 한국 같으면 대관령 목축지대 같은 곳입니다. 이곳은 어딜 가나 자연환경이 좋아 고요함과 맑은 공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고, 산야엔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있는 목가적인 산골 마을이에요. 꽤 높은 곳까지 차도가 나 있어 정상 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채소, 옥수수, 감자 등이 있는 밭도 있고, 소들의 집인 우사들도 나란히 줄지어 있습니다. 마구간을 구경하다가 출입문 도어에 꽃다발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이상해 주위 사람에게 물었어요. 송아지가 출산 되면 축하해주는 뜻으로 꽃다발을 크게 만들어 출입문에 걸어준다고 합니다. ‘축 이쁜 송아지 출산’이란 뜻의 화환인 것 같아요. 어미 소가 꽃다발을 핥아주며 좋아한다고 합니다. 가축을 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산골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을 보는 것 같았어요. 방목장을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계곡 쪽에 있는 트레킹 코스를 탔습니다. 깊은 계곡 한쪽에 철제 디딤판을 만들어놓고, 석벽에 조각된 조형물을 보는 것인데, 사냥놀이, 전쟁 흔적, 도시생성 과정을 그려놓거나 새겨놓은 곳입니다. 계곡 아래에는 세찬 물이 흘러가고, 그 위에서 디딤판을 딛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물길과 함께 스릴을 맛보게 하고 있어요. -전설이 있는 이름다운 옛성이야기 계곡을 오르다 안내판이 있는 오래된 성을 만났습니다. 안내판에 칼을 들고 말을 탄 기사가 새겨있고, 깃발을 든 사람들도 있어요. 성 내력과 성주에 대한 설명문인 것 같습니다. 3층짜리 돌집인데, 사각형의 잔디밭에 건물이 우뚝합니다. 울타리는 열려있으나 집안은 굳은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요. 울타리 변에 나무들이 울창하며 잔디는 반듯하게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17C 경, 어느 백작의 집이데, 주인이 전쟁에 나간 사이 부인이 그를 기다리다가 소식이 없자, 남편이 죽은 줄 알고 하인들과 함께 집을 떠났어요. 이곳 성주가 살아 돌아와 부인을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출입문에다 ‘나를 잊지 말라’고 글을 새겨놓고, 그도 이곳을 떠났다는 슬픈 사연이 적혀있었습니다. 잔디밭에서 점심으로 싸간 토스트를 먹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한나절 쉬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나를 잊지 말라’는 글은 성주가 집을 나간 부인에게 남긴 말도 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이 집을 부탁한다는 말도 된다며 지금도 후손들이 옛 성주를 기리며 성을 보살피고 있다고 합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빨간 산악열차 탑승 우리는 잘츠브루크에 있는 샤프베르크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8월 8일 아침, 빨간 기차를탔습니다. 이 기차는 빨간색으로 12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산악열차입니다. 그간 차량 정비는 해 오고 있지만 철로 노선은 물론, 차량 기본 틀은 그대로라고 합니다. 지난 역사를 되새기며, 주변 경관을 천천히 만끽하기 위해 열차제작기술이 좋아진 지금까지도 그 프레임을 바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량 한 칸에 10여 명이 마주 보고 앉는데, 거의 45도 각도로 증기를 뿜어내며 느릿느릿 씩씩하게 올라갑니다. 노선 20여km를 좁은 철길을 따라 30분 정도 주파하는데, 나무숲을 지나고, 좁은 굴도 지나고, 잔디 능선을 지나면서 지그재그로 300여m 오르면, 중간역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잠깐 정차를 하고 나서, 삐이익∼ 기적 소리를 길게 내뱉고는 씩씩거리며 다시 오릅니다. 아래로 「볼브강 호수」와 「잘츠감머굿」 지역 주변의 아름다운 집과 마을 전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승객들은 차창 밖으로 손을 뻗어보기도,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 에서 종착역인 샤프베르크에서 내려, 산 정상까지는 300여m 쯤, 각자 개인별로 가벼운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걸어 올랐습니다. 잔디밭 능선 사이로 펼쳐지는 경관은 여러 가지.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속에 행글라이드 하는 사람들이 새처럼 하늘을 날아, 저 아래 멀리 호수 쪽으로 날아가곤 합니다. 주변 잔디밭에 ‘사운드 오브 뮤직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인, 어린 아이들이 ’ 도레미송‘을 부르던 초원의 촬영지가 나타났습니다. 관람객들이 몰려 촬영을 하고 쉬면서, 산 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에 탄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샤프베르크 산 정상에서 주변 둘러보기 산 정상(해발 1783m)엔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요. 호텔, 식당, 전망대. 테이블 의자 등. 정상 둘레를 트레킹 코스를 따라 산책도 가능하지요. 저 멀리 아래로 7개 호수의 에메랄드색 푸른 강물이며, 볼프강 호수의 아름다운 경관이 보입니다. 그리고 정상 주변의 절벽 간의 아찔한 모습, 아랫마을 숲속에 있는 울긋불긋한 집들, 2시간 구경으로 사방 비유를 둘러보고 나니 가슴도 뻥 뚫리고 머리도 맑아졌습니다. ▼평화스런 볼프강 호수 마을 빨간 기차를 다시 타고 내려와 볼프강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호수 초입에 있는 마을 ‘장크트 길겐’ 에 왔어요. 오래된 중세도시의 낭만적인 모습에 평화가 가득한 듯 보이는 이 마을이, 유명한 음악가인 모짜르트의 외갓집이 있던 마을입니다. 어릴 때 그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거리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동상이 있고, 그가 어릴 때의 악기와 악보 소품들을 전시하는 모차르트 박물관도 있어요. 보트를 빌려 타고 1시간 정도 동네 앞 강변을 둘러보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짜리 손주 녀석의 노젓는 솜씨가 어찌나 의젓한지 칭찬을 해주었어요. 언제 한번 다시 가보고 싶은 잊지 못할, 낭만적인 호수와 그 도시였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프로방스의 「라벤드」꽃 이야기 프로방스 시골 마을 입구에서 한 할아버지에게 큰 도로 쪽으로 나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데, 안심이 안 되는지, 직접 자기 차를 몰아 큰 거리까지 20여분간이나 칸보이해 주셨다. 가는 길 중간중간 야트막한 산길, 들길이 이어지면서 보랏빛 라벤드 꽃 농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7월 이곳에는 보라색 라벤드와 노란색 해바라기 단지가 자주 나타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가 차를 세우고, 조용히 흔들거리는 넓은 라벤드 꽃 들판을 쳐다보았습니다. 보라색 평원 속에 듬성듬성 갈라져 있는 라벤드 꽃길, 여행길의 피곤이 그 속으로 빠져, 쏴∼악 흘러갑니다. 부처꽃이라 불리는 이 꽃은 지중해 주변이 주 생산지이며, 여름에 꽃이 피니 지금이 그 절정 시기입니다. 이 꽃으로 젤리, 아이스크림, 차를 만들고, 꽃을 증유해서 얻은 기름은 향수와 향료, 화장품의 재료가 됩니다. 약용으로 해열, 신경쇠약, 곤충에 물린 데에 쓰이고, 특히 은은한 향기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줍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이 라벤드꽃길 쪽으로 길을 안내해준 데에는, 평생 우리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길 의도적인 의미가 있었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크라이나 국화,「해바라기」꽃 이야기 남 프랑스 여행 중에 해바라기꽃은 라벤드와 함께 들녘에 많이 피어 있습니다. 그것도 산야에 끝이 안 보일 듯이 바다처럼 크게 자리하고 있었고, 특히 ‘아를’지방에 많이 재배되고 있었어요. ‘빈센트 반고흐’가 이 꽃을 극진히 좋아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노란 정열의 해바라기를 자기의 자화상으로 여겨, 평생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하지요. 1888년에 병 속의 해바라기 정물화를 4점이나 그렸다고 해요. 꽃잎 한 장 한 장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묘사되었고, 잎의 붓 자국은 그의 힘찬 정열을 상징하고 있어요. 고흐가 말년에 입원했던 정신병원이나, 그림 그리던 카페 등 기타 ‘아를’지역 여기저기 그가 그림을 그리거나 거처한 곳을 해바라기의 노란색으로 페인팅하여 고흐의 흔적으로 보존하고 있었어요. 이 꽃은 우크라이나의 국화입니다. 1700년대 우크라이나에서 재배되면서 식용유 기름을 얻기 위해 넓은 국토에 대규모로 경작하게 되었어요. 세계에서 해바라기 기름 생산의 1/3을 공급하는 수출 국인데, 지금 러시아의 침략으로 국란을 겪고 있어요, 이 전란으로 세계 각국에는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가격이 급등한다니 이 꽃의 위력이 대단하네요. 러시아 침략에 대한 저항의 상징화로서, 항상 밝은 태양을 향해 우러러보는 이 꽃의 생태처럼, 온 세계와 하늘의 태양은 이 꽃을 지켜줄 것이며, 우크라이나를 구해줄 것이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찰즈브르크에 있는 600년된 전통 호텔에서 잠을 자다 독일로 가는 길에 시간이 지체되면서 날이 어두워 갔습니다. 여행길에 밤의 자동차 주행은 답답하고 불안했어요. 중소도시인 ‘프랭켄 마그트’안내 센터에 들러 겨우 숙소 하나를 잡았습니다. 건축된 지 600년이나 지난 3층 호텔(gasthof-post)인데, 1900년부터 호텔 영업을 하여 오고 있다고 해요. 오스트리아 전통복장을 한 여주인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1층 입구에 들어서니 사방 벽에 오래된 사진들이 쫙 부쳐져 있어 의아해하니까. 여사장이 웃으며 설명을 합니다. 남편을 5년 전에 사별하고 부인 혼자서 운영하고 있어요. 실내 한쪽에는 우물이 있고, 그 위에 두꺼운 유리판을 깔아 놓아, 누구든지 그 위를 걸어 다니며 아래를 내리다 볼 수 있게 지어진 특이한 집입니다. 깊은 우물 위에 집이 있고 그 내벽에는 돌로 둘러싸여 이끼와 풀들이 붙어있었어요. 120여년간 영업을 하여 오고, 지금은 혼자서 운영하다 보니 힘든다고 해요. 그러나 조상과 남편이 가문의 전통을 이어오며, 지켜온 집이라 포기할 순 없다고 합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아이슬란드 어느 해변 마을의 전설 아이슬란드 아큐레이리에서 해안따라 수도 ‘레이크비크’로 오는 도중이었습니다. 만년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작은 폭포 2개를 위아래로 만들며, 바다로 내려오는 해변 마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산봉우리 하나가 초원을 만들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어요.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로 이 산봉우리가 두 폭포를 항상 내려다보고,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폭포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어요. 아주 옛날 홀어머니가 두 아들을 키우며 그들에게 당부를 했는데, ‘절대 어부가 되지 말라’고. 큰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마을이라 남자들은 커서 어부가 되어 가족을 부양하는 게 당연하지만, 어머니가 극구 반대하는 건, 남편이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아들이 장성하여 어머니 몰래 고기잡이배를 타다가 풍랑을 만나 모두 죽고 맙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떴어요. 그 후 마을 근처에 작은 화산이 분출되면서 산봉우리가 생겼고, 잇달아 폭포 2개가 위아래로 만들어졌답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머니가 산이 되어 두 아들(폭포)을 내려다보고 그리워하며, 보호하는 형상이라 여긴다고 합니다. 그들 폭포수(아들)는 초원의 냇물이 되어 그 산봉우리(어머니) 언저리를 돌아 바다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슬란드 ‘타킬 캠프장’ 싱베리아 국립공원을 돌아본 후, 새 숙소를 마련할 캠핑장을 알아보려고 해안 마을 안내소에 들렀습니다. 날씨는 잔뜩 흐려 금방 비가 올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마침 방갈로가 있는 캠핑장이 있다고 해서, 그곳(타킬. Tarkil) 캠핑장을 네비에 맞추고 출발했습니다. 산속 캠핑장이란 것만 알고, 전화번호만 체크했지 거리나 찾아가는 길, 위치는 상세히 물어보지 않았답니다. 차는 네비를 따라 자꾸 산중으로만 달립니다. 나무는 없고 분화구와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인 길은 덜컹덜컹 비포장으로 험난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랑비와 안개로 인해 시야까지 자유롭지 못했어요.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은 없고 좁은 산길은 위험한데, 몇번이나 전화를 해도 캠핑장 주인은 길따라 오라고만 합니다. 안내판이 보이질 않으니 네비가 이끄는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겁이 났어요. 우리 부부는 돌아가자고 했고, 딸과 사위는 그냥 가자고 했어요. 다행히 근처에 ‘Tarkil’이라 쓴 표지판이 나타나고 저지대로 내려와, 30분 뒤에야 그곳 캠핑장에 도착했습니다. 주변은 높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화산 분화구 분지인데, 바닥에는 잔디밭이 넓게 깔려있고, 가운데에 개울따라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캠핑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평원에 방갈로가 몇 채 들어서 있었습니다. 관리자인 젊고 잘생긴 청년이, 우리들의 푸념을 명랑하고 쾌활한 언변으로 잘도 받아넘깁니다. ‘이런 좋은 곳에서 하룻밤 묵는 걸 영광으로 여기며,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농으로 되받습니다. 우리는 텐트를 치지 않고 방갈로를 택하여 짐을 풀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주변에 뜻밖의 풍광이 우리 눈을 의심케 했어요. 우리는 뾰족하고 멋진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있고, 근방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동굴과 계곡이 자연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마치 외계에 온 듯한 신비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이튿날은 맑은 하늘 아래서 그 산길 원 웨이를 거꾸로 기분좋게 내려왔어요. 유럽 여행 중 묵은 20여 곳의 캠핑장 중에서, 가장 멋진 캠핑장으로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아이슬란드 원주민들의 민속촌 도로변에 있는 시골 마을인 ‘그라움베어’라는 곳에 풀이 덮인 이상한 움막 같은 집들이 보여 차를 세웠습니다. 그곳 사람의 말에 의하면 원주민들이 살던 옛날 움막집들이 있는 민속촌이라고 해요. 지붕에 흙을 얹고 풀을 덮어, 자연 그대로 키워 지붕으로 삼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갈대나 볏집으로 엮어 지붕을 입힌 초가지붕이지만, 그들은 풀을 지붕에서 직접 키워 보온을 한 풀집이니, 주거 보온에 대한 원초적 발상은 이곳이나 우리 조상들이 서로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주변에 묘지들이 있고, 낡은 우마차, 녹슨 농기구를 모아놓고 조상들의 옛 주거지로 보존하며, 그것을 민속촌으로 보여주는 게 우리 처지와 비슷했습니다. -「미바톤」노천 온천에서 수영 휴식을 아이슬란드에 온 지가 일주일, 다들 피곤해 있든 터라, 마침 지나는 길에 노천온천이 있다기에 차를 세웠어요. 아이슬란드 온천중 두 번째로 크다고 합니다. 주변에 건물이 없이 사방이 탁 트인 노천탕인데, 운동장 두어 배쯤으로 크게 보입니다. 동전 같은 열쇠를 받아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물에 들어갔어요. 작은 호수처럼 큰 자연탕에 많은 사람이 수영도 하며 즐깁니다. 회색빛 물색에 미지근한 유황 냄새가 피곤을 풀어주더군요. 손자 녀석 둘을 보살피며 주변을 보고 있는 데, 녹색 가운을 입은 안전요원 아가씨들이 500CC들이 생맥주 4~5개씩을 받침대에 들고 나타나더군요. 손님들이 너도나도 사서 마시는데, 그 광경이 좀 어색해 보이더군요. 수상 안전을 보살피는 관리요원이 술을 팔다니, 이상하지만 맥주를 음료수처럼 좋아하는 서구인들의 취향이 이해되기도 했어요. -어느 시골 마을의 멋진 교회 건물 이야기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은 남서쪽 해변가에 이어져 있었습니다. 바다와 푸른 들을 보고, 들에 노는 말, 소, 양들을 보면서, 그리고 폭포와 만년설이 덮인 산을 보는 게 거의 전부라, 운전을 오래 하면서도 쉬이 지치지 않았습니다. 잔디밭에 내려,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는데 언덕 위에 있는 특이한 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어요. 보통 교회 건물은 예배당과 지붕과 십자가가 한 건물로 건축되어있는데, 이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붕 위에 있어야 할 십자가가 별도 뎅그러니 땅에 서 있고, 교회 출입문은 긴 통로로 된 네모 건물에 이어있으며, 교회 본당은 그에 붙어 비스듬히 둥글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교회 울타리는 없고, 사방이 모두 확 트여있었어요. 언덕 위 잔디밭에 건물 구조물이 흩어져 있는 것 같아서 기존 우리가 보아온 건물과는 달리 자유분방한데, 한편으로는 자유스럽고 멋이 있어 좋게 보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남서쪽 땅끝 해변마을 캠핑장을 찾아 이곳을 들렀는데, 땅끝 해안에 있는 ‘스티키스 휼무르’라는 바닷가 마을입니다. 물개들이 많이 서식하는 항구도시라고 하는데, 배들이 선착장에 많이 정박해있고, 해변 집들이 예쁩니다. 언덕에 30여 미터나 되는 계단 따라 트래킹 코스가 있어 타고 올랐어요. 넓은 평원이 전개되면서 잔디밭에 흰 꽃, 노랑꽃이 피어있고, 빨간 등대 하나가 평원의 보초 인양 외롭게 서 있더군요. 바로 앞에 이어지는 바다에 파도가 사납게 넘실거립니다. 대양의 저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큰 바다를 향해 얏호!를 외치는 우리는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주민의 말로는 이곳이 아이슬란드 남서쪽 끝 마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해남 땅끝마을처럼 여기가 그런 외로운 마을인가 봅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바이킹족들의 근거지 국립공원 「싱벨리어」를 돌아보며 이 공원은 수도에서 약 90여km 떨어져 있는 해안가 공원입니다. ‘스토카 포스’ 폭포에서 해변으로 가는 길에는 7월의 맑은 하늘 아래 흐드르지게 핀 루핀 꽃 벌판이 온통 보라색으로 물이 들어 있어요. 넓은 평원에 전망대를 중심으로 몇 군데 트레킹 코스가 있고요. 그중 깎아지른 암석 울타리에 올라서니 멀리 산 위에 만년설이 보이고, 건너편에 폭포수가 흐르며, 그 옆 잔디밭에 「상벨리아」교회 건물과 몇 채의 집이 예쁘게 서 있어요. 이곳 지명은 ‘디트 홀라이’라고 하는데, 서기 900년경 바이킹족들이 처음 들어와 살면서 마을의 중요한 일들을 주민 회의를 거쳐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회 역사 1000년을 가진 세계 최초의 의회제도 발생지로 전해온답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고, 아이슬란드 정부의 중요 관리 지역으로 총리 야외공관이 교회 옆에 있으며, 교회는 중요 행사나 결혼 예식장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검은 모래벌판 「비-크」 마을 해변 이곳 전망대에서 본 또 하나의 특이한 경관은 검은색의 모래 해변과 푸른 바다, 갈매기, 그리고 기암괴석으로 이어진 절벽 평풍이 었습니다. 「비크」 해안마을을 중심으로 길게 이어있는 모래는 검은 모래였고요. 항상 흰 모래만 보아온 우리 눈엔 대단한 이변이 아닐 수 없었어요. 해안에는 코끼리처럼 생긴 바위 2개가 있고, 뒤쪽 끄트머리에 뾰족하게 바위 3개가 사이좋게 서 있었어요. 전설에 의하면 2명의 트롤(신화에 전해오는 요정)이 풍랑에 좌초된, 돛이 3개가 달린 배를 끌고 오다가 침몰하면서 바위로 변했다고 전합니다. -세계최단 북쪽에 있는「 아큐레이리 」식물원 아큐레이리 시내 언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름다운 식물원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식물원이라고 하는 데, 북극지방의 갖가지 식물과 꽃을 볼 수 있어요. 1957년 개장, 수천 종의 희귀한 식물이 살고 있어 시민의 휴식처 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있습니다. 6-9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데, 구내에는 여러 갈래의 숲길이 있고, 분수가 있고, 커피숖도 있으며 특히 시내 거리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은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 -호수에 떠다니는 빙하관광 아큐레이리에서 남서쪽 해안을 따라 수도 레이캬비크로 오는 도로는 넓고 좋아, 운전하기 편합니다. 길가에 차들이 주차해 있으면 좋은 관광지인가 싶어 무턱대고 내리곤 했습니다. 안내판을 보고 언덕을 오르니 큰 빙하 호수인 「요클살론」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아이슬란드 최대 빙하지대인 ‘바트나 요클’에서 떨어져나온 빙산 조각들이 이곳에 모여 둥둥 떠다녀요. 노란색의 수륙양용차인 덕(duk)을 타고, 요리조리 비켜 다니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함성을 지릅니다. 물가 가까이에서 보는 빙하조각은 흰색보다 엷은 초록색에 가까운 태초의 빛을 눈부시게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아이슬란드 북쪽 끝 해변에 있는 항구도시 아이슬란드에는 약 70여개의 큰 폭포와 수만개의 작은 폭포들이 산재해 있는 폭포의 나라입니다. 중앙도로를 횡단하면서 좌우 산맥을 보면 산골을 통해 줄줄 물이 골을 이루며 흐르고 있어요. 이 중 제일 큰 폭포 2-3개 정도만 구경키로 했습니다. 우선 가장 큰 폭포가 (1)굴포스폭포(gullfoss waterfall)인데 레이크비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우리가 찾아갔습니다. 풍부한 수량에 넓게 굴곡을 이루며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인데 세찬 소용돌이 속에서 폭포에 비치는 햇살이 무지개를 이루어 눈이 부십니다. 그 속에서 금빛이 난다고 해서 ‘굴포스(황금폭포)’란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이 폭포 입구에 한 여자의 흉상조각이 있고, 안내판에 ‘I will not sell my friend’제목하에, 대강 이런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이 폭포를 이용하여 수력발전소를 만들려고, 영국을 중심으로 외국 투자가들이 정부에 압력을 넣었어요. 그러나 농민들이 반대하며 정부와 충돌하게 되고, 한 농부의 딸(흉상의 주인공:Sgri gur)이 농민들을 이끌며 반대 운동에 앞장서서 이 폭포를 지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가 아이슬란드의 최초 환경보호자라고도 적혀있고요.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2)‘스코카 포스’라는 폭포가 있어요. 100미터나 되는 낭떠러지에서 길게 떨어지는 낙수가 개천으로 이어져 흘러가는 모습 또한 근사합니다. 물이 흐르는 개울 주변에 푸른 이끼가 융단처럼 깔려있는 것도 보기 좋고, 산 능선과 물보라의 조화로운 경관이 신선하고 너무 멋있었어요. 전설에 의하면 수직으로 하강하는 폭포 뒷면 굴 안에 바이킹들이 보물을 숨겨놨다고 전해와 관람객들이 삐죽삐죽 들여다 보기도 해요. 그러나 폭포는 ‘너희들 눈앞에 보이는 것(폭포)이 바로 보물이니라’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요. 세 번째 찾은 곳이 (3)‘데티포스 폭포’인데 주차장에서 내려, 좌우 500여미터 이상 되는 펀펀한 넓은 절벽을 따라 내리쏟아지는 폭포수가 장관입니다. 이곳은 물줄기 주변 절벽이 계곡 따라 ‘주상절리’로 되어 있어 신기하기 조차해요. -하늘로 치솟는 지열 분화수(간헐천) 아이슬란드의 필수관광 코스로 ‘골든 서클’이 있습니다. 수도(레이크비크) 가까운 곳에 있는 필수 관광명소 3개 지역을 뜻하는 데, 폭포군, 지열 분화구와 싱벨리아 국립공원이 그것들입니다. 우리는 폭포를 먼저 보았고, 그다음 이곳 지열 분화수를 찾아왔어요. 차들이 밀집해 있고, ‘100도 온수, 위험’이라고 쓴 표지판이 넓적한 돌에 붙어있는 곳에 내렸습니다. 개울에 온수가 흘러내리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길가엔 풀과 여름꽃이 피어있어요. 유황 냄새가 진동하고, 솟구치는 온수주위에 관광객들이 둘러서서 떠들썩합니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20여미터 상공으로 뿜어 오르는 온수 물기둥이 장관이며, 많은 사람이 이 모습을 카메라에 잡겠다고 우루루 몰려다니는 것도 재미있는 구경거리 구요. 이곳 ‘케이르관광센터’에서는 주변 공기가 깨끗하고 신선하다고 해서, 이 공기를 깡통 속에 저장하여 ‘아이슬란드 공기’로 상품화하여 팔기도 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공기를 넣은 캔(can) 하나에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를 받으니, 세상은 요지경으로 참 의아스럽고 신기하기도 하군요.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아이슬란드 북쪽 끝 해변에 있는 항구도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약 400여km 떨어져 있는 이곳은 이 나라의 제2 도시로, 5시간 정도 달려온 항구도시입니다. 아이슬란드 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긴 피오르(만)를 안고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서울에서 부산항까지의 거리 정도 되는 곳으로, 나라 중앙을 관통하는 중앙도로를 따라 직행을 하였으며, 나중에 되돌아오면서 해변을 따라 구경할 곳을 들려 보기로 하고 곧장 신나게 달렸습니다. 높이 1000~1500미터의 산으로 둘러 있고, 산에 구름이 띠 모양으로 걸쳐있으며, 산 정상 주변에는 줄곧 빙설로 하얗게 덮혀 있어, 낭만적이면서 주변 지역이 말끔하고 청결하며, 신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추운 날씨에 텐트를 칠 수 없어, 비엔비를 통해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아퀴레이리 바다의 고래구경(wale watching) 이곳의 주 관광 포인트는 바다에 나가 고래구경을 하는 것입니다. 내항에서 큰 유람선에 30~40명을 태우고 먼바다로 나가 고래가 솟아오르기를 기다립니다. 1시간 정도 고래를 기다렸으나 3~4 마리가 등을 뵐 듯 말 듯 할 뿐 고래의 재주가 시원치 않았어요. 당초 기대와는 달라 선장이 오늘은 고래가 사람 보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고 조크를 하며 미안해합니다. 고래 관광보다는 푸른 대양을 바라보고 긴 바다를 따라 전개되는 북극의 만년설과 초원의 아름다운 경치가 오히려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멋있는 쌍 십자 교회 이 도시 중앙쯤 높은 언덕에 멋진 계단이 있는 특이하게 생긴 교회가 있어요. 아이슬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교회라고 하는 데 쌍둥이 건물 두 개가 딱 붙어있고, 지붕 위 십자가도 똑같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이름이 ‘아퀴레이 라르 키르캬’ 라고 하는데 보통 쌍십자 교회로 통하고, 이 도시 랜드마크로 이름나 있어요. 계단을 따라 올라 교회 앞마당에 서니 시가지가 눈 아래 펼쳐집니다. 푸른 언덕과 중세 모습의 아름다운 항구 풍경이 잘 조화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거리에 서 있는 요상하게 생긴 괴물 인형(트롤) 시내를 걷다 보면 식당이나 건물 앞에 괴물같이 생긴 2개의 대형 남녀인형이 이상한 모습으로 구부정하게 서 있습니다. 사람 크기만 한 데, 머리털이 삼단같이 길고 코가 뭉텅하게 크며, 얼굴이 비틀어져 있으며, 긴 수염이 덜렁덜렁, 자세가 허늘허늘합니다. 북유럽 신화 속에 나오는 환상의 괴물, ‘트롤’이라고 하며, 요정으로 불립니다. 우리는 징그러워 옆에 가기도 싫은 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옛날부터 복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상이라고 해, 길거리나 집밖에 세워두고 오가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아이슬란드 캠핑장에 처음 천막을 치다 이곳엔 물가가 비싸고, 숙소가 적어 대부분 캠핑 생활을 합니다. 우리도 시내 가까운 「그린랜드 캠핑장」에서 수십 개의 텐트가 운집해 있는 한편에 처음으로 텐트를 쳤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많고,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도 보였어요. 다소 쌀쌀한 날씨 탓에 침낭, 공기부양 벨트, 그리고 내의에 덧옷까지 껴입는 등 잠자리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내일부터 시내 구경을 위해 잠을 자야 하는데, 쉽게 어두워지지 않는 백야의 나라라 자정을 넘었는데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레이캬비크 시내중심에 있는 「할그림스키르캬」 교회 추운 지방이라 도시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우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밝고, 평온합니다. 그리고 몸짓들이 가볍고 활기차게 보였어요. 도시 공간도 넓고, 녹지가 많아 평화롭고, 도로 상가에는 털옷, 인형, 기념품들이 많이 눈에 띄입니다. 도시 중심을 걷다 보니 맞은편 언덕에 높고 큰, 독특하게 생긴 교회가 있는데, 「할그림스키르캬」교회라고 합니다. 높이가 75미터 정도 흰색 건물인데, 형상이 분출되는 용암처럼 생겼어요. 가운데가 높이 치솟고, 좌우로 같은 높이로 점점 작아지며 오르간 건반을 세워 놓은 모습입니다. 1945년 짓기 시작하여 40여년 만에 준공했다고 해요. 교회 안에는 한쪽 벽 천정에 닿을 마한 큰 오르간이 자리하고 있는데, 높이 15미터, 무게가 25톤 정도 되는 대형 파이브 오르간 시스템입니다. 1992년 독일에서 제작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 이름이 부르기 복잡한데, 이 나라 최고의 시인이자, 성직자였던 ‘할그리뮈르 페테르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해요. 이 도시 최상의 트레이드 마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 건물 앞에는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먼저 아메리카대륙에 갔다고 전하는 「에릭손」이라는 사람의 동상이 서 있는데, 이는 아이슬란드 의회 100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이 선물한 조각물이라고 합니다. -레이캬비크 항구의 유명한 「핫도그」 맛을 보다 아이슬란드에 소문난 먹거리로 잘 알려진 핫도그 가게가 있습니다. 이 도시 부둣가 으슥한 공터에 2평 남짓한 핫도그 가판대인데, 좁은 공간 안에서 두 남자가 핫도그를 만들고 있어요. 손바닥만한 긴 빵 속에 양고기 소세지를 넣어 덮고, 크림을 쭉 발라 네프킨에 싸서 주는 데, 개당 우리 돈 8000원쯤 됩니다. 콜라와 함께 궁합이 잘 맞아 맛이 기가 차요. 1937년부터 이곳에서 만들어 판다고 하는 데, 예부터 항구에서 가난한 어부나 일꾼들이 허기를 달래던 간편한 음식으로 전해와, 인기도 대단하거니와 맛이 그만입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직접 여기 와서 먹었다고 해, 더욱 그 이름이 나 있어요. 주변 환경은 구질하고, 좌석도 변변치 못해 서서 빵을 먹어야 하는데, 그래도 이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줄을 서서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섬나라 ‘아이슬란드’로 가는 길 스코트랜드 에딘버러 공항을 떠나 ‘아이랜드’를 경유하여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공항까지 오는 데 총 6시간이 걸렸습니다. 30여km 떨어진 시내까지 공항버스를 이용하여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었어요. 10여개의 크고 작은 짐에다 손자 녀석들 포함, 총 가족 여섯 명이 함께하니만큼 이동과정이 여간 힘들지 않았고요. 내일부터 시작되는 캠핑 생활로 텐트와 침구, 취사, 식재준비는 물론이요 렌트카도 인수하는 등 쉴 새 없이 바빴답니다. 낯설고 추운 북쪽 나라 이곳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자동차로 10여일간 돌아볼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거니와 걱정이 앞섰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이런 곳 아이슬란드는 오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한 섬나라입니다. 얼음과 불의 나라라고 할 만큼 빙하와 만년설이 많고, 화산과 온천이 많은 곳으로 상극의 자연환경이 함께하며, 원시적이고 목가적인 자연환경도 풍부한 나라예요. 영국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놀웨이와 비슷한 위도상에 있는 외딴 나라랍니다. 역사적으로 노르웨이, 덴마크의 자치령을 거쳐 1918년 독립되었고, 군대가 없으며, 자유가 보장된 민주공화국으로 35만 정도의 인구에 평균 수명 79세의 세계적인 장수국에 속한다고 해요. 고래, 대구 등 수산자원도 풍부하고 폭포와 호수가, 그리고 초원과 가축도 많으며. 더욱이 백야의 나라입니다. 이런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 세계의 관광객들이 근래에 들어 이 나라를 많이 찾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여행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의 남.서해 안에 위치한 인구 12만의 이 나라 수도입니다. ‘안개 낀 항만’이란 뜻을 가진 항구도시로, 이 나라 인구의 1/3이상이 여기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제일의 항구도시일 뿐 아니라 상공업,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행정의 중심도시로 산업시설 반 이상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세풍의 도시지만 신개발 붐으로 깨끗한 주택, 반듯하고 넓은 계획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어요. 유럽과 미국문화가 혼재되어 핫도그, 피자집이 많으며, 저녁이 되면 북유럽 스타일의 카페나, 도로변에서 주변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주변에 초원이 많아 150여개의 캠핑장이 있다고 해요. 깨끗한 잔디밭 위에 텐트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전기시설, 조리대, 공동화장실, 샤워실, 통신시설 등 모든 편의시설을 잘 갖춰놓고 있어요. 인당 1만2000원 정도 사용료를 지불하면 된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체코의 가장 아름다운 다리「카를교」를 거닐며 구(舊)시가지 광장에서 10여분 걸으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가 나타납니다. 카를교입니다. 볼타브강을 사이에 두고 신·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 다리지요. 길이가 520미터, 폭이 10여 미터, 바탕에는 네모난 돌들이 박혀있으며, 30개의 조각상이 좌우 난간에 서있어요. 일반 다리와는 달리 구조와 모습이 특이하죠. 카를 4세에 의해 1406년에 준공, 그의 이름을 따서 다리 이름을 지었데요. 처음은 목조 다리였는데 12세기경 볼타브강 홍수 때 유실되어 재건축했다고 해요. 다리 위에는 거리 화가, 악사, 기념품 노점상, 행위예술가 등이 여기저기 관광객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프라하에 오면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 하니,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복작거리게 되죠. 앞을 보면 프라하 성으로 이어지는 길 주변에 교회건물이며, 중세 오렌지 색의 집들이 사이좋게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어요. ▼프라하의 순교자 성「얀네 포무즈키 동상」 카를교 다리 위에는 체코의 성인 30명의 조각상이 있는 데, 신부 출신인 성「얀네 포무츠」 조각상이 프라하의 순교자 상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왕(바츠라프 4세)이 외부와의 전투로 궁을 비우게 되면서 왕비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고, 그녀의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인 얀네 포무초에게 외도사실을 묻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침묵하자, 왕은 신부의 혀를 자르고, 화형을 시켜 돌에 매달아 볼타브강에 던져 수장을 시켜요. 얼마 후 부패하지 않고, 강 위에 떠오르고, 그 자리에 5개의 별이 광채를 반짝거리며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신부는 300여년이 지나서 시성을 받았고, 고백자의 성인, 또는 수호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조각상 아래에 있는 이 성인의 동판을 만지면 소원성취하며, 왕비를 만지면 프라하로 다시 돌아온다는 속설이 전해와, 무수한 관람객들이 이를 만져 반들반들해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 소원을 빌며 두 동판을 쓰다듬었습니다. ▼구 시청 청사탑과 천문 시계 구 시청사 남쪽 벽에는 1410년에 만든 천문 시계가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시계랍니다. 시간은 물론, 일출·몰 시각, 태양과 달의 위치, 별자리까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매시 정각이면 인형들의 퍼모먼스가 실시 되는 데, 사람 해골이 나와 줄을 당기고 모레 시계를 뒤집으며, 2개의 창문을 통해 12명의 사도의 행렬이 시작되고, 끝날 때 황금 닭이 울고,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최고의 시계와 기이한 율동을 보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고 우리도 함께했습니다. 이 종 제작과 관련된 전설 한 가지가 전해오더군요. -「하누시」라는 시계공이 이 시계를 만들었는데, 시 의회에서 이 시계공이 다른 곳에도 이런 훌륭한 시계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의심해, 이 시계의 유일 보존을 위해 하누시의 눈을 멀게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프라하의 봄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소개 (1)프라하 중앙역에 가면 ‘영국의 쉰들라의 동상’이라고 하는 동상이 있습니다. 영국의 금융인 「니콜라스 윈튼」이 1938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어린이를 탈출시키는 데, 기차를 이용해 유대인 애들을 네델란드에 보내고, 다시 배로 영국으로 보낼 계획이 었습니다. 처음 669명은 탈출에 성공했으나, 이듬해 250명은 실패했어요. 이 아이들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에 자기의 행적을 알리지 못하고 고히 간직하며 평생을 살았다는데, 1988년 아내가 다락방에 숨겨둔 애들 사진과 명단을 발견,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영국에서는 그에게 훈장과 기사작위를 수여하고, 체코는 명예시민으로 선정하고, 2009년 이곳 중앙역에 동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가 구한 어린이들에게 딸린 가족이 지금은 600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2)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 가면, 바츨라프 동상 위쪽에 두 대학생의 분신자살 추모비가 있습니다. 1968년 소련의 침공으로 프라하의 봄이 좌절된 후, 이듬해 1월 16일 21살의 「안팔라」학생이 옷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한 후, 1개월 뒤 「안자익」학생이 뒤를 이어 역시 분신자살합니다. 타 추념비와는 달리 사람의 모양으로 십자가처럼 땅에 뉘어있는 비석인데, 십자가 왼쪽에 두 학생의 이름과 죽은 날짜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소련의 침공에 항거하는 젊은이의 분노이지만, 체코 인의 항쟁을 다그치는 열망의 깃발처럼, 그리고 조국을 위해 순직한 십자가처럼 보입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첵코 ‘프라하’의 모습 독일 뮌헨에서 8월 16일 정오쯤에 도착한 프라하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인구 130여 만의 도시는 ‘볼타브’강을 사이에 두고, 신·구시로 구분되어 있었어요. 매년 수천 만의 관광객이 몰리는 도시이며, 또한 많은 역사 변동을 겪었기에 그만큼 중세의 아름다운 역사 문화 볼거리가 다양한 것 같아요.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로 1948년 공산화되었다가 ‘프라하의 봄 (민주화 운동)’으로 1993년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체코슬라바키아에서 독립하였습니다. 중세도시 거리 풍경이 잘 보존되어있어, 프라하 역사지구를 포함 ‘동유럽의 파리’, 또는 ‘동유럽의 보석’으로 불리우며, 동유럽 최대의 관광지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중요한 관광지로는 프라하성, 바츨라프 광장, 화약 탑, 카를교, 천연 시계탑 등이 있어, 어디를 가도 프라하의 거리는 관광객들로 만원입니다. -프라하의 봄 역사적 현장인 ‘바츨라프 광장’에서 민주화 항쟁의 주 무대가 된 광장, 체코 현대사의 격전지입니다. 중세에는 말〔馬〕을 매매하는 시장이었는데, 1968년 자유항쟁인 프라하의 봄과 소련의 탱크 진압, 대학생들의 분신, 벨벳 혁명 등이 일어났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여기에 체코 건국의 아버지이며, 수호성인으로 불리는 성인 ‘바츨라브’ 기마상이 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고, 동상 앞에는 무력진압에 무참히 희생된 100여명의 위령비가 있으며 시위 도중 분신한 두 대학생의 얼굴이 새겨진 대리석 위령비가 있습니다. 체코 관광의 시발점이요,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프라하 중심 거점 역할을 하고 있어요. -검은 색상의 화약탑 바츨라프 광장을 걷다 보니, 검은색 건물이 눈에 뜨입니다. ‘함스블크’시절 화약을 보관하던 장소라고 해요. 17세기 구시가지를 지키던 13개의 성문 중 대표 요새로, 연금술사의 화약 창고 및 연구실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높이 60여 미터 정도, 주위 건물은 전부 오렌지 색 밝고 선명한 색상인데, 유독 이 탑 건물만은 화약이 베어 그런지 검은색이며, 어둡고 칙칙하게 보입니다. -체코의 랜드마크 ‘프라하 성(城)’ 체코의 상징물로 유럽에서의 최대의 중세시대의 성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대통령궁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정문에 근위병 2명이 지키고, 타이탄 석상 2개가 좌우로 서 있으며. 왕궁 정원 6개, 노래하는 분수, 황금 소로 등 볼거리가 많아요. 특히 성 비타 대성당이 있어 프라하의 최고 큰 성당으로 체코 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곳이며, 수호성인과 군주,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신성한 곳입니다. 특히 유명한 성인 ‘얀 네포무츠키’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무덤은 천사가 끄는 수레에 은 3톤으로 만든 것으로 머리에 별 5개, 손에는 십자가를 든 동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체코 국빈 방문 때, 이 성당 안에 있는 성 바츨라프 예배실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전합니다. 구내의 스테인 그라스도 화려하고,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프라하 시가지의 조망은 극치의 풍경이었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