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와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주최하는 여행 프로그램으로 대구 시민과 울산시민, 경북도민을 제외한 전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경북도내 각 지역을 둘러보고 특히 해당지역 전통시장을 반드시 방문하는 ‘고향사랑 전통시장 탐방’ 상품인 시티 패스(city pass)가 출시되어 주목을 끈다. 시티 패스는 1인당 3만원의 경비를 내면 3만원의 온누리 상품권을 도로 참가자에게 지급, 이를 해당 경북지역 여행도시의 상가나 전통시장에서 다시 쓸 수 있도록 조치한 관광상품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경북을 찾은 대중적 버스관광이 급격히 줄어든 시점에서 대구 및 울산 시민들과 전국 각 지역 국민들에게 경상북도 관광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관광지 상가와 전통시장의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고 상가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한 일석이조의 상품으로 평가된다. 경주 금아여행사가 주관하는 이 관광상품은 20인 이상 모객됐을 때 출발하는 것으로, 매주 토요일 대구 ‘동대구역 제2 맞이방’과 울산 ‘태화강역 광장’에서 09시 30분에 출발하는 상품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8월 20일 울진과 영덕편을 시작으로 8월 27일 문경과 포항, 9월 3일 안동과 구미, 9월 17일 영천과 상주, 9월 24일 청송과 봉화편이 준비돼있다. 당일치기로 시행되는 이 상품은 교통비를 기본으로 일정에 포함된 입장료, 여행자 보험이 포함돼 있으나 중식은 불포함이다. 대신 참가비로 낸 3만원을 온누리상품권으로 되돌려 주므로 현지에서 사먹을 수 있다. 아쉽게도 이 두 상품은 대구와 울산에서만 출발한다. 만약 경상북도를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는 출발할 20인 이상 단체가 있을 경우 별도로 문의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번 관광상품에서 경북도민의 참여가 제한된 것에 대해 관계자는 “이 상품은 경북으로 타지역 여행객들을 유치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라 경북도민들이 제한됐다”며 도민들의 양해를 당부했다.(문의 : 금아여행사 054-742-7001)
화재 예방과 진압을 담당하던 소방관들이 응급구조대 역할을 맡게 된 것은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참사를 계기로 특전사 출신 구조대를 편성하면서부터였다. 대형화재, 항공기 추락이나 대형교통사고,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응급구조대가 배치된 것은 88서울 올림픽을 전후해서이고 성수대교 붕괴참사(1994), 삼풍백화점 붕괴참사(1995) 등을 거치며 각 시 단위 소방서에도 응급구조대가 배치되기 시작해 2000년 전 지역 소방서에 119구조대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119구조대가 벌집을 떼준 것은 언제쯤부터였을까? 소방방제청 소속 소방서들이 119안전센터를 발족한 것이 2007년이니 공식적으로 이때부터 뱀 퇴치, 멧돼지 퇴치, 말벌집 제거 등을 지원했을 것이다. 지금은 119안전센터에 생활안전구조대가 따로 설치돼있다. 지난 14일 엄필란 씨가 페이스북에 119구조대에 신고해 말벌 집을 제거한 소식을 올렸다. 오래 비운 농장에 오랜만에 돌아가 작업을 하려고 보니 전기박스 안에 무지 큰 말벌집이 있었다고. 엄필란 씨는 이런 일로 바쁜 119대원들을 부르는 것이 맞는 일인지 몰라 조심스럽게 전화했다. 그러나 엄필란 씨의 염려와 달리 119에 신고하자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119대원들이 달려와 순식간에 벌집을 제거해 주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보다 앞서 9일에는 커피 명가 ‘얀’의 손인석 씨도 얀 주위에서 벌집을 발견, 119구조대에 신고해 벌집을 제거했다. 손인석 씨는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고마워 과테말라 원두로 내린 아이스 커피를 대접했다고 썼다. 기자 역시 25~6년 전쯤 집 근처의 벌집을 제거하기 위해 119에 신고한 적 있다. 그랬더니 119대원들이 누가 그런 일을 119에서 처리한다고 했냐며 난감해했다. ‘미국 출장 가서 봤다’고 했더니 고맙게도 방화복으로 완전무장한 채 달려와 벌집을 떼주었다. 그때는 임무 외의 일을 해준 셈이니 지금 생각하면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최근 119소방관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SNS상에서 높아지고 있다. 온갖 사고와 재해,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119대원들을 위해 국민들이 나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당국은 반드시 소방공무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정한 주민참여 예산제가 되길…
작은 나무 조각이야기 나에게 가까이 있는 것들, 작은 것들, 귀여운 것들, 동물들, 사람들, 생각들, 나는 이것들을 조합하여 조각하고 그것들은 즐거운 이야기가 된다.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있다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 유전된다는데 어느 정도인지, 또 나 때문에 내 딸이나 아들이 암에 걸린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엄마나 언니가 유방암으로 진단받으면 더욱 불안하다. 그러나 유방암은 유전적 요인이 10% 이내이고 진단과 치료방법이 눈부시게 발전해 정기검진만 잘 받는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20년도 더 된 일로 기억한다. 필자가 대학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20~30대 여성이 유방암으로 진단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몇몇 환자는 결혼을 포기하거나 파혼당하는 걸 보기도 했고, 그 후 젊은 유방암 환자들이 힘들게 치료하는 과정을 보는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힘든 사람은 어머니였을 것이다. 특히 본인이 유방암으로 진단받은 적이 있다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유방암의 특징과 예후를 설명하며 안심을 시키려 해도 유전에 관한 자료는 외국 데이터만 있던 시절이라 ‘유전이 되나요?’라는 질문에 ‘외국은 이러이러합니다’라는 설명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두 번도 넘게 변한 지금은 한국인에 대한 유방암 관련 연구 자료가 발표되고 있다. 그동안 임상 현장에서 받은 질문과 걱정을 ‘한국산’ 자료를 토대로 답을 해보자. Q. 엄마가 유방암에 걸리면 딸도 환자가 될 위험이 큰가요? A. 유전되는 경우는 5~10%입니다.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발병 위험이 2배 정도 높다. 유방암으로 진단받은 가족 수가 많거나 평균보다 젊은 나이에 진단되는 경우에도 그 위험이 크다. 쉽게 말하면 40대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둔 딸이 60대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둔 딸보다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핵심은 ‘유전’만이 원인은 아니다! 유방암의 원인은 크게 ‘유전’과 ‘생활환경’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많은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유전성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약 5~10%를 차지한다. 어머니들의 걱정은 실제 10명 중 1명 미만의 경우에만 해당한다는 말이다. 또 유전자 검사를 하면 유방암의 위험성을 미리 확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유전성 유방암은 미국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어머니는 난소암, 이모는 유방암으로 사망한 가족력이 있어 유전자 검사를 받았고 BRCA(BReast CAncer gene: 브라카)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물론 이 또한 오래전 일이라 현재는 이런 유방절제술을 바로 권하진 않고 다른 다양한 관리 방법을 협의하고 있다. 본래 BRCA 유전자는 암으로 변할 수 있는 손상된 DNA를 고치는 역할을 하지만 돌연변이가 생길 경우(약 400명 중 1명의 확률) 유방암을 막아줄 수 있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50% 확률로 남녀 구분 없이 자녀에게 전달될 수 있어 아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유전자 이상이 있는 이런 경우는 전체 한국인 유방암 중 5~10% 정도만 해당된다. Q.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유방암 환자가 있으면 유전될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요? A. 10% 미만입니다.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유방암은 크게 ‘유전성 유방암’과 ‘가족성 유방암’으로 나뉜다. 유전성 유방암은 유전자변이를 물려받은 것으로, 평생에 걸쳐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70~80%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하면 자기 나이가 유방암 발생 확률이라 생각하면 된다. 유방암 외에 난소암, 남자의 경우 전립선암, 췌장암 등 다른 암의 위험성 도 올라간다. 하지만 전체 유방암 중 10% 미만이다. 가족성 유방암은 유전적 원인 없이 가족이 공유하는 생활환경적 요인으로 발생되는 경우이며, 전체 유방암 중 15% 정도가 해당된다. 이런 유전자 문제나 가족의 생활환경을 고려해도 부모로 인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유방암은 25% 미만이다. 이런 연구를 종합해보면 유방암의 원인은 유전적 특성이라기보다 사회환경적 원인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발병률이 높아지는 선진국형 암의 대표적인 예가 유방암이니 앞으로도 증가하는 유방암의 원인은 대부분이 환경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문제로 발생되는 경우 젊은 나이에 나타나거나 악성도가 높은 유방암이 생길 수 있어 대한민국 건강보험에서는 기준을 정하고 유전자 검사를 국가보험으로 일부 지원하고 있다. 아래 같은 경우는 유전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위 경우 환자 본인의 혈액을 통해 유전자변이가 있는지 검사한다. 혈액 20cc를 채취해서 3~4주 정도 지나면 유전자 이상 여부를 알 수 있고 정확도는 90% 정도이다. 이 결과를 기초로 가족들의 전반적인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조정할 수 있으니 ‘유전이 되나요?’라는 질문에 더 정확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위험요인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 대부분의 생활 모습과 닮아 있어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자! 걱정을 만드는 유전적 원인은 10%이고 검사방법도 확실하게 있으니 대책을 세울 수도 있다. 90%를 차지하는 생활환경은 바꾸기가 쉽지도 않다. 빨리 결혼해 자녀를 많이 낳으라고 그 누가 마음 편히 말할 수 있을까 말이다. 다행히 20년 동안 유방암의 진단, 치료, 관리는 많이 발전해왔고 조기 진단만 된다면 생존율이 95%에 달할 정도로 어려운 병이 아닌 단계에 이르렀다. 따라서 규칙적인 자가검진과 병원 검진을 생활화한다면 유방암은 더는 어머니를 눈물짓게 만드는 병이 아닌 날이 올 것이다.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광역시지부 건강검진센터 글 : 이병길 한국건강관리협회 전북지부 건강증진원 과장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
권영석 봉화일보 회장이 최근 제19대 한국지역신문협회(한지협) 중앙회장에 당선됐다. 권 회장은 "앞으로 한지협 중앙회장으로서 풀뿌리 언론인 지역신문이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전국에 소재하고 있는 한지협 회원사들이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지역민들과 상생하는 '공동체문화' 조성을 위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전국 네트워크'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한지협 경북협의회 회원사인 봉화일보와 대구경북 일간지 경안일보를 경영하고 있으며, 임기는 올해 8월 1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다. (사)한국지역신문협회는 1991년 1월 지역민들의 알권리 충족과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발족됐다. 전국 최초로 지역신문사 회원사들이 결성한 사단법인이다. 서울·경기협의회를 비롯해 전국에 시·도협의회를 두고 있으며, 각 시·군·구 200여 회원사들이 지역민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풀뿌리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자연미 통해 휴식 제공하는 백자 다구 원리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움과 평화로움의 의미를 다구에 담아낸다. 전통 청화백자의 아름다움 위 현대적 감각으로 조색한 톤과 문양을 보태고 소탈함을 함께 다구에 담는다. 어린 시절 들에 핀 꽃잎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몰입하듯 하늘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에 마음 빼앗기듯 소탈한 백색 위 연꽃과 모란, 국화 등의 회화를 시문한다. 차 한잔 즐기는 동안 바쁜 생활 속 놓쳐버린 계절을 음미할 수 있는 매개로서 다구를 꿈꾼다.
경주시가 자원회수시설(소각장)을 민간에 위탁해 운영키로 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하는 ‘경주시 자원회수시설 한시적 민간위탁운영 동의안’이 지난 8일 경주시의회 문화도시위원회에서 원안 가결됐다. 앞서 경주시는 지난 6월 초 소각장 운영사인 경주환경에너지에 민간투자사업 협약 해지를 통보한 뒤, 7월 25일 계약을 최종 해지한 바 있다. 경주환경에너지는 서희건설이 지배기업인 특수목적법인으로, 2013년부터 2028년까지 15년간 자원회수시설을 운영하기로 시와 협약을 했었다. 하지만 경주시는 계약을 조기 해제하고 민간위탁운영을 위한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회사가 설비 고장 등을 이유로 소각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고, 소각로 보수도 소홀히 해 시정 명령까지 내렸지만 개선할 움직임이 없자 이뤄진 조치다. 계약 해지를 한 경주시는 이 동의안의 시의회 최종 승인을 얻은 후 이달 중으로 민간위탁자 모집공고를 내고,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10월 중 수탁자를 최종 선정할 방침이다. 민간위탁 기간은 2022년 10월부터 2024년 9월까지 2년으로, 시는 향후 자원회수시설 관리이행계획을 수립해 경주시직영 또는 민간위탁, 개량운영 등 운영방식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시가 이번에 계약을 해지한 주된 사유로는 경주환경에너지의 의무 소각 불이행, 유지보수 및 관리 태만에 따른 실시협약 위반, 소각장 처리 능력 감소, 쓰레기 대란 우려 등을 들었다. 이는 이 회사가 민간투자 방식으로 380억원을 들여 조성한 자원회수시설을 지난 2013년부터 운영을 해왔지만, 수리와 보수에 들어가는 대수선비 등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는 사이 자원회수시설은 노사분규 장기화와 가동중단이 반복돼왔다. 또 지난해는 환경단체가 폐수처리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폐수를 무단 방류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에 2019년에는 폐수처리장 부적정 운영이 적발돼 조업정지 처분을 받는 등 비정상적인 운영을 거듭해왔다. 이 같은 파행 운영으로 자원회수시설 내 생활 쓰레기가 쌓여갔고, 쓰레기대란 위기까지 초래하면서 경주시 행정에 대한 비판여론도 높아졌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 경주시가 계약 해지 카드를 꺼내고 민간위탁운영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향후 정상운영까지는 민간위탁자 공모 및 선정을 비롯해 시설 대수선 작업 등 단순치 않은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계약을 해지한 회사 측과의 법적 다툼 여지도 남아 있다. 경주시가 정상운영을 목표로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고, 향후 개선 및 운영 방안을 마련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그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
경주시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2023년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한다. 사업의 유형은 공모형, 현장소통형, 읍면동 계획형 등 세 가지다. 이중 공모형과 현장소통형은 접수가 완료됐다. 남은 사업유형은 읍면동 계획형으로 총 50억원 규모다. 사업별로는 최대 5000만원까지이며, 경주시민 누구나 제안이 가능하다. 각 읍면동별로 제안사업을 받아 지역회의에서 우선순위를 선정해 이달 26일까지 경주시로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경주시는 제안 받은 사업의 추진 타당성, 적법성 등을 검토해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심의과정을 거쳐 시의회에 제출하고, 시의회를 통과하면 내년도 사업에 반영된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이 직접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제안하고 선정까지 예산편성 전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재정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 특히 읍면동 계획형은 소규모 지역밀착형사업이 대다수다. 주민참여의 가장 기본단위인 읍면동 지역회의를 거쳐 주민이 체감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사업인 것이다. 그래서 제안 사업들은 주민들의 생활불편 해소에 우선을 두게 마련이다. 경주시 23개 읍면동마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들은 많을 것이다. 사업 추진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면 필요한 사업이 우선 시행되면서 주민 관심과 함께 사업 효과도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사업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한 사업 추진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주민들이 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사업 발굴과 추진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시민들이 참여 동기를 유발하고 실제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홍보도 필요해 보인다. 사업별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꼼꼼히 챙겨보는 주민참여예산제가 이뤄져 사업효과가 배가되길 기대해본다.
요즘 장안의 화제 드라마는 ENA의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역삼역? 재미난 라임에 인기 배우인 박은빈과 동그라미 역으로 인턴 여기자로 뜬 주현영이 나온다. 총 16회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케이블 TV와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또 다른 한류를 예고하고 있다. 극중 우영우 변호사는 서울대와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여성변호사다. 대형로펌에 근무하며 천재적인 두뇌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일상의 자폐스펙트럼은 상대를 헷갈리게 한다.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아동기에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애, 언어성 및 비언어성 의사소통의 장애, 상동적인 행동,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으로 대개는 3세 이전에 다른 또래들과의 발달상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극에서도 그렇게 나온다. 언어 발달이 늦어서 생후 18개월쯤부터 상대적으로 양호한 다른 아이들과 차이 나기 시작해 학령기가 되어서야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는다. 극에서는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이웃과 싸우다 처음 말을 하게 되는데 첫 말이 상해에 관한 형법을 외운 것이다. 이후 법률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게 되어 서울대를 졸업하여 우여곡절 끝에 대형 로펌에 취직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한다. 극 중 따뜻한 상관 정명석 변호사와 봄날의 햇살 같은 동료 최수연 변호사 등이 우영우를 도운다. 그러나 현실은 장애인이 사회에 잘 적응하거나 안착하기가 어렵다. 우영우 변호사가 서울대 수석 졸업자임을 강조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렇게 강조되는 자체로 일반적인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장애인이 많다. 우영우처럼 선천적 장애인도 있지만 후천적 장애인이 더 많다. 교통사고 같은 사고로 장애가 되기도 하고 노환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떨어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장애로 인정된다. 경주시 통계를 보면 2019년 경주시 등록인구 수 26만7196명(외국인 포함)중 장애인 수는 1만6506명이다. 6.17%의 인구가 등록된 장애자인 것이다. 한편 65세 이상 고령자는 5만4639명으로 20.44%이고 이 속에 거동이 어려운 노인이 다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부모님도 작년에 장애인 등급 신청이 받아들여져 장애인으로 등록되었다. 등록외국인 수는 1만1794명으로 4.41%다. 외국인은 언어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일종의 사회적 언어장애라 볼 수 있다. 이렇게 가정했을 때 생활 속 장애인의 수는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시민 4명 중 1명이 장애라고 생각해야 한다. 필자는 아버님을 모시고 주말에 성당에 간다. 장애인을 위한 램프 시설이 되어 있는데 경사가 너무 급해서 아버님께서 올라가기 힘들어하신다. 휠체어를 밀고 가려니 경사가 급해서 올라가는 것도 힘들고 내려가는 것은 더 힘들었다. 지난주에는 계단에 긴 경사로가 설치가 되어 있어서 무척 기뻐하셨다. 작은 배려 하나가 장애를 가진 아버님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게 하였다. 경주뿐 아니라 어느 지방자치단체라도 시정을 구상하거나 행사를 기획하고 공공건물을 지을 때 장애에 대해 얼마나 배려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더 정확히는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권, 학습권이 기본으로 설계와 시설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 모든 시설과 행사에 숨 쉬듯 당연하게 장애인을 위한 설계와 시공이 시행되어야 한다. 특히 이제는 일반인 누구라도 내 주변의 자폐나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과 대화하며 더불어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장애에 관해 인식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 봄날의 햇살 같은 이웃들과 정책적인 배려로 우영우를 비롯한 모든 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경주시를 기대해 본다.
‘원전 최강국 건설’, ‘탈원전 백지화’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 슬로건이다. ‘새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이 지난 7월 5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심의·의결됐다. 새로운 정부의 에너지 정책 목표와 방향을 살펴보면 2030년까지(28기 원전가동) 원전 비중을 30%까지 확대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착수하고,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하여 2030년까지 총 10기 원전수출을 목표로 범정부 차원의 ‘원전수출전략추진단’을 산업부 내에 신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자원·안보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중립 목표가 중요한 가운데 재생에너지의 확대, 보급과 탈 석탄화도 중요한 이슈이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정책의 우선순위를 살펴보면 원전수출이 일순위에 들어간다. 원전생태계 복원과 한미원자력 동맹 강화 차원에서 원전수출의 수주활동(체코·폴란드)에 범정부차원에서 대응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원전생태계 복원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통하여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한 정책 지원’과 2025년까지 총 1조원 이상의 신규 일감을 발주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R&D 로드맵’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기술 청사진이 발표된 것이다. 물론 정부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지금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넷째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계획이다. 다섯째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특별법’을 들 수 있다. 그럼 윤석열 정부의 원전정책을 통한 경주의 원전과 관련한 시급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핵을 하든, 찬핵을 하든, 안핵(안전한 핵)을 하든지 원자력에너지를 이용하고 나면 반드시 핵폐기물이 나온다. 우리가 아파트를 짓던, 맨션을 짓던 화장실은 꼭 지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 2016년(박근혜)과 2021년(문재인)에 두 차례에 걸쳐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및 특별법안을 마련했지만 흐지부지 끝났다. 윤석열 정부는 2060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운영한다는 목표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운반 및 저장 분야 연구기술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30년간 월성원전에 ‘관계시설’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중수로 고준위핵폐기물 48만 다발을 임시로 보관하고 있었다. 이제 빨리 빼내야 한다. 물론 그간에 보관세를 꼭 받아야 한다. 임시 건식저장시설의 설계 수명이 50년(올해 맥스터 추가 7기 16만 다발을 제외 하더라도)을 고려하면 앞으로 2042년에 월성원전 임시저장시설에 있는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래서 지난 정부가 최종처분장을 정할 때까지 임시저장 형태로 각 원전 사이트별로 건식저장시설(중간저장 형태)을 운영하려고 입법을 시도한 것이다. 정부가 바뀌고 지금은 일부 국회의원과 원자력 쪽 전문가(원자력연구원 일부)들 중에 사용후핵연료로부터 우라늄 등을 추출해 재활용(재처리)하는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 기술개발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넣어 달라고 산업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2016년, 2021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공론화위원회와 재검토위원회에서 직접처분으로 결정된 정부정책을 일부 친원전 극우 인사들이 연구기술 개발에 따른 원자력기금을 활용할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방폐기금은 직접처분에 따른 시스템에 의해서 편성된 돈이다. 작년 감포에 착공한 ‘문무대왕과학연구소’는 절대로 소형모듈원자로(SMR)만 연구하지 않는다. 소듐냉각고속로, 고온가스로, 용융염원자로, 파이로프로세싱 같은 위험한 기술도 연구할 개연성이 크다. 결국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소형이라는, 일체형이라는, 모듈이라는 예쁜 포장을 한 또 하나의 작은 원자력 발전소이고 핵폐기물도 나온다. 앞으로 경주시민들은 사용후핵연료(재활용, 재처리에 대한 복선이 깔려 있다)라는 표현대신 고준위방사성폐기물(고준위핵폐기물)이라는 직접 처분에 더 가까운 느낌의 용어를 쓰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야 하루빨리 월성원전에 있는 고준위핵폐기물이 경주 밖으로(원래 정부에서 2016년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나갈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탈원전, 탈석탄 정책’인 에너지전환정책이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는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앞으로의 원전정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전수출, 원전생태계복원, 수명연장, 고준위핵폐기물 문제, 해체산업 등 친원전 극우세력이 발호(跋扈)하면 5년 후에 국민들이 또 0.73% 심판한다.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아들 녀석이 괜히 목소리를 깔고는 한다는 말이 “아빠는 말끝마다 나를 애 취급하는데 기분이 안 좋아” 한다. ‘어? 내가 뭐라고 했지?’ 복기도 덜 끝났는데 “이젠 다 컸으니 어른 취급을 해 달라”고 녀석은 정색을 한다. 옆에서 와이프도 거든다. “댁의 아드님은 수업 마치고 집에 올 때나 학원 갈 때 친구들이랑 편의점에 들러 캔 커피도 한잔씩 하고 그래요, 몰랐죠?”한다. ‘뭐, 뭐라고? 중학생이 커피를 마신다고?’ 우리 아들이 왠지 낯설다. 순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기습적으로 물었더니 녀석은 “아니, 난 달짝지근한 커피가 좋아”하고는 환하게 웃는다. “에이 그게 뭐야, 중딩 입맛이잖아! 커피의 쓴 맛을 봐야지”하고 약을 살짝 올렸더니 “아냐, 나 에너지 드링크도 마셔봤어!”한다. 에너지 드링크라는 게 인지 능력을 극대화하고 두뇌를 활성화시킨다고 마치 약처럼 선전하지만, 사실은 신경 또는 심혈관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는 카페인 음료다. 좋은 의미의 에너지 드링크가 결코 아니다.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특히 위험한데 각성(覺醒) 효과가 있어 대학생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시험 기간이면 주로들 마신단다. 시험이나 경기처럼 중요한 일 앞두고 마셔 버릇하면 중독성도 강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손 떨림 같은 증상이 수반될 수 있다. 이런 걸 마셔봤으니 어른 아니냐는 녀석의 여드름 난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지 순간 웃을 뻔했지만 끝까지 잘 참았다. 그건 이제 청소년이 된 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이번 여름에 개봉한 영화 〈토르(thor)〉도 우리 아들의 심기를 긁기는 마찬가지다. 아이언 맨(Iron Man)이나 헐크(Hulk)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토르(커다란 망치를 휘두르는 천둥의 신(神)으로 알려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토르의 능력을 가진 지 얼마 안 돼서 그래(She’s only been a Thor for a minute)”라는 원문을 ‘토린이(토르+어린이)’로 번역해버린 거다. 자막은 속성상 최소한의 글자로 영화의 빠른 전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시간 예술이란 점에서 아마도 고심 끝에 ‘토린이’를 썼으리라. 하지만 여자 주인공에게 새롭게 생겨난 엄청난 능력을 좌충우돌 배워가는 장면에서 왜 우리는 자동차 핸들을 처음 잡아보는 초보 여성 운전자를 떠올리고 있을까. 주식 초보가 ‘주린이’가 되고 이제 막 헬스를 시작했다고 ‘헬린이’라고 부르는 것도 불편한데, 이 장면에는 젠더(gender) 문제까지 뒤섞여 있다. 그저 웃자고 하는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싶다가도 언제부터 어린이가 초보자인, 뭔가 어설픈, 풋내기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린이’라는 표현은 아동 비하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에너지 드링크에는 에너지가 없고 어린이라는 단어가 아동 혐오적 표현이 되어버린 현실을 곱씹는다. 성경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했다. 제자들은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걸 기정사실화 했고,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천국의 높은 자리에 있음을 눈치챈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주문했다. 우리 아들이 다섯 살 때였나, 하얀 플라스틱 공이 있길래 그걸 그려보랬더니 한참 만에 들고 온 스케치북에는 아무것도 그려있질 않았다. “우리 아들, 뭘 그린 거야?” 혀 짧은 소리로 물었더니 녀석은 눈이 사라질 정도로 공을 얼굴에 바짝 붙이고 “아빠, 이렇게 보잖아? 그럼 공이 이래” 하면서 빈 도화지를 내민다. 애들이 뭘 모른다고? 애송이라고? 난 우리 아들이 피카소인 줄, 천재인 줄 알았다. 받아쓰기 40점 받아오기 전까진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아이는 순수의 상징이다. 순진과는 구별되는 순수이자 희망이다. 그러니 뛰다가 자빠져도 벌떡 잘도 일어난다. 세상이 너무 궁금해 누워있을 시간이 없다. 자빠졌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어린이에게 실패는 그저 배우는 과정일 뿐이니까. 불경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성인처럼 팔다리는 멀쩡하지만 아직 힘이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구실을 할 수 있다” 어느새 청소년이 되어버린 아들의 커피 취향도 존중해야겠다. 이 녀석들에겐 오늘보다 내일이 더 환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들이 종합 검진 예약을 해 두었다고 해서 검진을 받았다. 검진 이틀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평소 어지럽거나 메스꺼운 증상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없었노라고 하니 좌측 뇌 쪽 경동맥에 꽈리와 같이 부풀린 부분이 있으니 일단 검사 기관에 와서 상담을 받으라고 한다. 문진 의사를 만나보니 뇌출혈 등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대학병원으로 가 보라고 한다. 아들에게 알리니 서울 대형병원에 예약을 한다. 아마도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평소 건강을 자신해 왔는데…… 건강에 이상이 있으니 약사여래의 가피(加被)에 기대고 싶어진다. 마침 이번 주는 기림사 약사전 이야기이다. 약사여래는 약사유리광여래 · 대의왕불이라고도 하는데, 동방정유리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는 부처님으로, 과거세에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을 세웠다. 이 십이대원 속에는 약사여래가 단순히 중생의 병고를 구제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의복이나 음식 등의 의식주 문제는 물론 사도나 외도에 빠진 자, 파계자, 범법자 등의 구제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 십이대원 이외에도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 악귀를 물리쳐서 횡사를 면하고 싶은 자, 온갖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자들이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면서 발원하면 구제를 받는다. 또, 외적의 침입과 내란, 성수(星宿)의 괴변, 일월(日月)의 괴변, 때아닌 비바람, 가뭄, 질병의 유행 등 국가가 큰 재난에 처했을 때도 약사여래의 본원력을 통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대의왕불’로도 불리는 약사여래는 보통 왼손에 약합을 들고 큰 연화대좌 위에 앉은 모습으로 조성되고 유리보전 혹은 약사전에 봉안된다. 이곳 경주 지역에 있는 약사여래상으로는 분황사 보광전의 약사여래 입상을 비롯하여 백률사 청동약사여래입상, 남산 용장계곡의 약사여래좌상, 굴불사지 사면석불의 동방불, 남산 윤을곡 마애여래좌상 등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본스님이 『약사경』을 읽어 선덕여왕의 병을 고쳤고, 경덕왕 때에는 분황사에 30만7600근의 거대한 약사여래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약사여래는 사천왕, 12지신을 권속으로 삼는데, 석탑에 약사여래 권속을 조각하는 풍속이 생길 정도로 통일신라시대 약사신앙은 유행했다. 사방불을 조성할 때, 동방에는 항상 약사여래를 모셨다. 약사여래는 동방유리광세계의 교주이기 때문에 기림사 약사전은 본전인 대적광전의 좌측 즉 동편에 있는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기림사 사적 중건기에 의하면 약사전은 1654년에 중창되었으며, 1678년 약사법당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1600년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각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바로 옆의 대적광전에 비해 규모가 작다. 약사전 내부로 들어서면 정면에는 연화대좌 위에 좌상의 약사여래, 좌우협시보살은 입상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다. 본존인 약사여래는 편단우견의 법의에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붙여 위로 들어올리고 있다. 그런데 왼손 손바닥 위에 약합이 보이지 않는다. 조성 당시에 있었을 것이나 이후 유실된 듯하다. 일광과 월광보살의 경우 좌우 대칭이나 보관에 해와 달이 명확하지 않다. 후불탱화(後佛幀畵)는 약사여래의 정토인 동방약사유리광회상도가 결려 있다. 벽면에 있는 헌다(獻茶)벽화는 국내 유일의 가장 오래된 벽화로 이 도량의 역사가 차와 함께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기림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문화 성지임을 알리고 있다. 벽화에 등장하는 세 사람 중 좌측에서 차를 들어 바치는 사람은 안락국의 아버지인 수다라국의 왕이고 차를 받는 인물은 안락국을 보내 기림사를 창건하게 한 광유성인, 성인의 옆에 있는 분이 기림사를 창건한 안락국으로 추정된다.
소금 이경록 1 나는 발표했어, 오늘 아침 저 바다에 관한 새로운 교서를, 오늘 아침 나는 발표했어. 지금까지는 너무 수월했어. 나도 알아 너무 적에게 말려들었어. 한여름 내내 뜨겁던 여론, 뜨겁던 햇빛만으로 되는 줄 알았어. 어떤 국지전에도 견뎌낼 수 있는 강건한, 짜디짠 소금이 구워지는 줄 알았어 나도 알아. 그것이 나의 취약성이야 부삽 속에 떠올려진 조수 속의 염분을 언제나 객관적으로만 보는 버릇, 사태의 핵을 뚫어보지 못하는 점, 그것이 나의 고쳐지지 않는 결점이야 물론 이번의 참패는 아무것도 아냐. 나는 발표했어. 2 전 해안은 이미 봉쇄되었어. 끝났어.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바다의 총면적, 아니 퍼렇게 끓고 있는 바다의 총량이야 그 곳에 숨어 있는 적들의 분포도, 희고 단단한 이마, 변하지 않는 소수의 강경파. 그들의 뿌리를 뽑고 구워내는 일이야. 그리고 나는 다시 휘어잡고 다스리겠어. 저 맹물만 남은 바다, 정신이 죽은 바다를 ……. -소금을 통해 정권의 근시안과 맹목을 풍자 시적인 긴장을 갖추면서도 대사회적인 목소리를 등한시하지 않은 것이 이 시의 매력이다. 이 시는 시적 화자 왕이 대적(여기서는 ‘소금’)을 제압하기 위해 ‘교서’를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왕은 그와의 대결에서 참패했음을 인정(“물론 이번의 참패는 아무것도 아냐”)한다. 그 참패의 원인은 이렇다. “한여름 내내 뜨겁던 여론, 뜨겁던/햇빛만으로” “어떤 국지전에도 견뎌낼 수 있는 강건한,/짜디짠 소금이 구워지는 줄” 알고 있는 안일한 판단. 여기에다 “부삽에 떠올려진 조수 속의 염분을/객관적으로만 보는 버릇”이 추가된다. 사태의 핵은 그런 안일한 태도 너머에 있다고 왕의 마음 속 또 하나의 목소리가 교서의 후반부에서 말한다. “퍼렇게 끓고 있는 바다의 총량” “그 곳에 숨어 있는 적들의 분포도, 희고 단단한/이마, 변하지 않는 소수의 강경파./그들의 뿌리를 뽑고 구워내”버리겠다는 것이다. 폭압적이고 단순하고 근시안적인 정권의 알레고리가 미학적으로 승화되어 나타나 있다.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여론, 혹은 객관적인 분석으로도 뿌리 뽑지 못한 엄청난 파장의 소금바다와 소금을 만드는 민중의 정신세계의 광활을 제압하는 것이. 어깨 겯고 단단히 뭉친 민중들의 견고한 뚝심 속에서 “강경파들의 뿌리를 뽑고 구워”낸다는 건 도도히 흐르는 역사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 해안은 이미 봉쇄되었”다고, “저 맹물만 남은 바다, 정신이 죽은 바다를” “다시 휘어잡고 다스리겠”다는 왕의 선포는 민중을 죽은 객체로 인식한 정권(왕)이 가진 맹목과 어리석음에 대한 반어다. 여기에 숨은 결기가 살아 있다. 이 시는 결국 화자인 왕의 두 개의 목소리를 통해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1970년대 초중반 당시 들끓었던 민중의식을 소금이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당대의 민중시가 투쟁 일변도였을 때 이경록은 이미 미학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선구적으로 시대와 삶을 모두 녹여낸 작품을 만들어냈다. 70년대 우리 시사에서 특별히 기억해야 할 작품인데, 뒤늦은 조명이 안타깝기만 하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경주지역 위원장을 맡은 한영태 위원장의 일상은 여느 때보다 바쁘다. 지난 6월 1일 치른 지방선거에서 겨우 비례대표 1석만 시의회에 진출한 만큼 시정 견제자로서 민주당 역할을 더 무겁게 여기고 있어서다. 지난 7월 13일, 더불어민주당 경주지역 위원장에 임명된 한영태 위원장은 선거 이전에 불거졌던 많은 불협화음을 정리하고 더불어민주당 경주지역 당원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그런 한영태 위원장에게 요즘 상영되는 영화 ‘한산’은 누구보다 의미심장하다. 마침 지난 8월 3일 가족들과 함께 한산을 보았다는 한영태 위원장은 가장 먼저 리더십에 대한 소견을 내비친다. “한산에서 등장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이후 이순신 장군의 행보를 보면 지도자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산대첩은 선조를 포함한 조선 조정이 의주까지 피난 간 채 아무런 지원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뿐 아니라 전라우수영과 경상도 수군까지 한데 묶어 왜군을 격퇴한 전쟁이다. 한영태 위원장은 한산에 앞서 ‘명량’까지 떠올리며 지난 6월 치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겪었던 자신의 모습이 마치 명량에서 본 이순신 장군의 입장과 비슷하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한영태 위원장의 이 말에는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일어났던 더불어민주당 경주지역위원회의 이해하기 어려운 공천잡음이 짙게 깔려 있었다. 8대 지방 의회에서 어렵게 3석이 진출했고 비례대표까지 더해 4석이 시의회에 진출해 나름대로 충실한 시정 견제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 자신을 포함한 3인의 민주당 시의원이 아무런 이유나 사전 숙의도 없이 공천심사대상에서 제외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마치 거듭되는 승리를 통해 해상권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조에 의해 삭탈관직은 물론 심한 고문까지 당했던 이순신 장군의 처지와 흡사했다. 그 와중에 경주시장 후보를 자임해 자칫 주낙영 국민의힘 후보의 무투표 당선이 될 뻔한 경주시장 선거에서 의미 있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런 노력이 바탕이 되어 더불어민주당 경주지역위원장에 임명되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한산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다소 부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원균에 대한 이순신 장군의 관용입니다. 비록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우리편’을 끝까지 인정하고 함께 하는 모습을 통해 기강을 바로 잡고 결국 승리를 이끌어내지요” 한영태 위원장은 자신의 역할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다짐한다. 경주에서는 만년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25% 가까운 지지를 보여주고 있는 경주지역 진보성향 시민들의 오랜 바람을 위해서라도 과거의 잘잘못과 난맥상은 일소에 붙이고 함께 더불어 발전하는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관용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런 한편 시의회에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비례대표 1석으로 외로운 상황인 만큼 경주시정을 견제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감시하고 돕는 역할도 자신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반대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도 않고 시민들을 위한 정치도 아닙니다. 좋은 정책은 지지하고 불합리한 시정을 함께 숙의해서 개선하는 방향으로 일하는 것이 시민을 위한 일이고 당을 위한 일이라 믿습니다” 최근 한영태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사들을 초빙하는 공고를 내고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해 주변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학익진을 구상하며 적재적소에 장수들을 배치하는 심정이 한영태 위원장의 지금 심경과 닮아 보인다. 이와 함께 자신 역시 좀 더 다방면으로 관심과 기량을 넓혀 경주 더불어민주당 발전을 위한 기틀을 다지겠다는 포부다. 고군분투 끝에 경주지역 위원장의 임명 받은 한영태 위원장, 마침 개봉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에서 한영태 위원장이 얻은 교훈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원래 지도 제작업에 종사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서쪽으로 가다 보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인도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허황하기 그지없던, 한낱 지도 제작업자의, 말을 믿고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이 그를 후원하기로 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아끼던 보석까지 팔아 콜럼버스 대항해에 투자했다. 조선의 역사로 치면 정확히 임진왜란 100년 전인 1492년이었다.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를 위시한 배 3척으로 선단을 꾸려 90여명의 선원과 함께 스페인을 떠났다. 2달이 넘는 긴 항해 끝에 마침내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상륙하였다. 콜럼버스는 그 곳을 인도로만 알았다. 스페인으로의 귀환 길에 나선 콜럼버스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증거물을 챙겨 가기로 했고, 고심 끝의 증거는 그곳의 원주민과 앵무새였다. 그가 내놓는 증거를 보고 유럽 사람들은 그를 믿었다. 콜럼버스가 신세계를 다녀왔듯이 필자 역시 향가라는 망각의 세계를 다녀온 바 있다. ‘내가 그곳에 다녀왔고 그곳은 놀라운 세계였다’라고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떠들었다. 그러나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았다. 어느 신문사는 보도에 앞서 공인받기를 원했고, 교수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떠드는 나를 멀리하려 했다. 겨우 몇 사람만이 나의 말을 인정해주었다. 콜럼버스가 원주민과 앵무새로 사람들을 설득하였듯이, 나에게도 사람들을 설득할 무엇인가 증거가 필요하였다. 만일 필자가 향가 세계에서 발견해낸 사실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필자의 말을 믿게 될 것이다. 지금은 별세하셨지만 이영희 포스코 교수 등 몇몇 한국의 만엽집 연구가들은 ‘일본의 만엽집이 한국어로 읽힌다’고 주장해 왔다. 만일 이 사실이 증명될 수 있다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일 두 나라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영희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일부 근거를 제시하였으나, 일본의 연구자들을 설득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녀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급기야 부작용까지 생겨났다. 이솝의 ‘양치기 소년과 늑대’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우리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들을 탓할 수 없다. 충분한 입증의 책임은 언제나 주장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우연에 힘입어 향가의 세계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 일본의 만엽집이 있었고, 만엽집의 작품들은 한반도어로 읽히고 있었다. 만엽집 4516장의 작품 중 1000여 장을 검토해 본 결과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일본인 연구자들에게 배척 받았지만 이영희 교수 주장은 비록 일부이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만엽집 한 작품을 예로 들어 보이겠다. <15번가>는 다음과 같이 한자로 씌어 있고, 한반도어로 읽히고 있다. <15번가>는 서기 661년 왜국의 제명 천황 장례식 때 그의 아들이 어머니의 일생을 회고하며 지은 눈물에 젖은 향가이다. 渡 津 물을 건너가는 나루 * 渡 물을 건너다 도, 津 나루 진. 海 乃 豊旗 雲 尒 바다 에 에끼 구름이 (끼어 있구나) * 乃 노젓는 소리 애, 豊 굽 높은 그릇 례, 旗 깃발 기, 尒 아름다운 모양 이. 伊 理 比 沙之 그대는 다스림에 (나와) 나란하 삿지. * 伊 너 이, 理 다스리다 리, 比 나란하다 비, 沙 사공 사, 之 가다 지. 今 夜 乃 오늘 밤 에 *今 오늘 금, 夜 밤 야, 乃 노젓는 소리 애. 月 夜 淸 明己 曾 달이 밤 깊도록 맑아 (길을) 밝히 겠찌 * 夜 깊은 밤 야, 淸 맑다 청, 明 밝다 명, 己 몸 기, 曾 찌다 증, 明己 밝기다. 위의 작품은 한자로 써놓고 한반도어로 읽었음이 분명하다. >>다음화에 계속
-프로방스의 「라벤드」꽃 이야기 프로방스 시골 마을 입구에서 한 할아버지에게 큰 도로 쪽으로 나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데, 안심이 안 되는지, 직접 자기 차를 몰아 큰 거리까지 20여분간이나 칸보이해 주셨다. 가는 길 중간중간 야트막한 산길, 들길이 이어지면서 보랏빛 라벤드 꽃 농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7월 이곳에는 보라색 라벤드와 노란색 해바라기 단지가 자주 나타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가 차를 세우고, 조용히 흔들거리는 넓은 라벤드 꽃 들판을 쳐다보았습니다. 보라색 평원 속에 듬성듬성 갈라져 있는 라벤드 꽃길, 여행길의 피곤이 그 속으로 빠져, 쏴∼악 흘러갑니다. 부처꽃이라 불리는 이 꽃은 지중해 주변이 주 생산지이며, 여름에 꽃이 피니 지금이 그 절정 시기입니다. 이 꽃으로 젤리, 아이스크림, 차를 만들고, 꽃을 증유해서 얻은 기름은 향수와 향료, 화장품의 재료가 됩니다. 약용으로 해열, 신경쇠약, 곤충에 물린 데에 쓰이고, 특히 은은한 향기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줍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이 라벤드꽃길 쪽으로 길을 안내해준 데에는, 평생 우리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길 의도적인 의미가 있었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크라이나 국화,「해바라기」꽃 이야기 남 프랑스 여행 중에 해바라기꽃은 라벤드와 함께 들녘에 많이 피어 있습니다. 그것도 산야에 끝이 안 보일 듯이 바다처럼 크게 자리하고 있었고, 특히 ‘아를’지방에 많이 재배되고 있었어요. ‘빈센트 반고흐’가 이 꽃을 극진히 좋아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노란 정열의 해바라기를 자기의 자화상으로 여겨, 평생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하지요. 1888년에 병 속의 해바라기 정물화를 4점이나 그렸다고 해요. 꽃잎 한 장 한 장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묘사되었고, 잎의 붓 자국은 그의 힘찬 정열을 상징하고 있어요. 고흐가 말년에 입원했던 정신병원이나, 그림 그리던 카페 등 기타 ‘아를’지역 여기저기 그가 그림을 그리거나 거처한 곳을 해바라기의 노란색으로 페인팅하여 고흐의 흔적으로 보존하고 있었어요. 이 꽃은 우크라이나의 국화입니다. 1700년대 우크라이나에서 재배되면서 식용유 기름을 얻기 위해 넓은 국토에 대규모로 경작하게 되었어요. 세계에서 해바라기 기름 생산의 1/3을 공급하는 수출 국인데, 지금 러시아의 침략으로 국란을 겪고 있어요, 이 전란으로 세계 각국에는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가격이 급등한다니 이 꽃의 위력이 대단하네요. 러시아 침략에 대한 저항의 상징화로서, 항상 밝은 태양을 향해 우러러보는 이 꽃의 생태처럼, 온 세계와 하늘의 태양은 이 꽃을 지켜줄 것이며, 우크라이나를 구해줄 것이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찰즈브르크에 있는 600년된 전통 호텔에서 잠을 자다 독일로 가는 길에 시간이 지체되면서 날이 어두워 갔습니다. 여행길에 밤의 자동차 주행은 답답하고 불안했어요. 중소도시인 ‘프랭켄 마그트’안내 센터에 들러 겨우 숙소 하나를 잡았습니다. 건축된 지 600년이나 지난 3층 호텔(gasthof-post)인데, 1900년부터 호텔 영업을 하여 오고 있다고 해요. 오스트리아 전통복장을 한 여주인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1층 입구에 들어서니 사방 벽에 오래된 사진들이 쫙 부쳐져 있어 의아해하니까. 여사장이 웃으며 설명을 합니다. 남편을 5년 전에 사별하고 부인 혼자서 운영하고 있어요. 실내 한쪽에는 우물이 있고, 그 위에 두꺼운 유리판을 깔아 놓아, 누구든지 그 위를 걸어 다니며 아래를 내리다 볼 수 있게 지어진 특이한 집입니다. 깊은 우물 위에 집이 있고 그 내벽에는 돌로 둘러싸여 이끼와 풀들이 붙어있었어요. 120여년간 영업을 하여 오고, 지금은 혼자서 운영하다 보니 힘든다고 해요. 그러나 조상과 남편이 가문의 전통을 이어오며, 지켜온 집이라 포기할 순 없다고 합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827년 3월 황오동 277번지(주차타워 건설중)에서 아버지 최종수와 어머니 월성 배씨의 아들로 태어난 최경상은 6세에 어머니를, 15세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생계를 위해 누이동생과 포항 신광으로 이주하여 머슴살이와 제지소에서 일하며, 19C 혼란한 시기에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결혼 후, 흥해 검곡에서 화전민의 힘든 삶을 살다가, 1861년 6월(음력) 경주에서 무극대도(동학)의 큰 가르침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최경상(34세 해월 최시형)은 약 80리 길인 고향 경주 용담으로 한 달에 3~4번씩 수운 최제우 선생을 만나러 다녔다. 1861년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 최한기의 영향을 받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나온 해 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운명적 만남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진정한 근대사가 시작될 수 있었고, 청년 최경상이 걸어온 그 깨달음의 길이 경주시에서 조성 중인 ‘동학가는 길’이다. 수운의 가르침을 받은 학자와 제자는 많았지만, 수운이 도통 전수자로 해월을 선택한 것은 지식과 학식이 아닌 해월이 갖춘 인품의 깊이와 순결한 의지로 그의 무극대도가 왜곡됨 없이 인류에 펼쳐질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해월 최시형은 수운의 유언인 고비원주(높이 날고 멀리 뛰어라)를 실천하며, 동학 도인들과 함께 우리민족의 세계적 저서인 수운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관군을 피해 산간벽지를 다니며 간행을 계속이어갔다. 용담유사는 한글가사로 누구나 베껴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암송되어 민중 속으로 수운의 말씀이 수운의 언어로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해월의 사인여천 사상에 의해 개벽세상의 간절한 염원이 프랑스혁명보다 더 위대했고,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전국적 동학농민혁명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 경주시민과 학생들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여름 방학과 휴가를 이용해 꼭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특히, 용담유사(도올 김용옥 역 통나무 출판사)는 19C 중엽 순우리말로 표현된 민중을 깨우치기 위한 수운이라는 한 인간이 고백한 아름다운 노랫말로 한글 가사문학 (8수)의 극치이다. 국정 국어 교과서에 문학작품으로 반드시 실려야하며, 경주문화재단의 창작뮤지컬로 용담유사가 무대에 올려져 전국적 공연과 아울러, 동학의 주도권을 경주시가 가져와서 발상지다운 지위와 역할을 다하는 관심, 노력과 투자가 지속되어야한다. 황오동 해월생가복원도 초가집 형태의 공원화가 아니라, 남여노소 누구나 동학사상을 체험할 수 있는 해월사상체험관으로 조성해서 관광상품화하여 동학브랜드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야한다. 동학농민군들과 전봉준 장군이 전투에 임하기 전, 마음을 가다듬으며 밤새워 구송한 수운의 숭고한 철학을 담은 21자 주문소리와 용담유사를 암송한 옛 민중의 목소리가 개관을 앞둔 수운기념관의 컨텐츠에 반드시 담겨져 온 국민이 함께 그 가치와 이미를 공유해야한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채워나가고 있다. 내가 오늘 걸어가는 그 길이 내일의 역사가 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임을 느끼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한다.
개를 표현하는 한자는 구(狗), 견(犬), 오(獒), 술(戌) 등이다. 고문서에 기록된 개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면 삼국시대 우리 조상들은 개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의미로 키웠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역사서인 범엽(398-445년)의 『후한서』동이열전 부여국(後漢書 東夷列傳 夫餘國)과『삼국지』위서 동이전 부여조(三國志 魏書 東夷傳 夫餘條)에 기론된 관직의 명칭인 구가(狗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인 『三國史記』에는 개를 견(犬) 또는 구(狗)로 표현하고 있으며, 의미는 각각 다르게 사용되었다. 개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오감 능력으로 사람의 충(忠)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록에는 견(犬)을 사용하고 있다. 『三國史記』卷 第四十二 列傳 第二 >金庾信 中 > 遂復入於百濟, 告任子曰, “奴自以謂旣爲國民, 冝知國俗, 是以出遊, 累旬不返. 不勝犬馬戀主之誠, 故此來耳” 任子信之不責.不勝犬馬戀主之誠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미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니 마땅히 나라의 풍속을 알기 위해 집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노닐다가 수십 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개나 말은 주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므로 이렇게 돌아왔을 따름입니다”라고 고하였다. /∙卷第四十二 列傳 第二 >金庾信 中> 庾信曰, “犬畏其主, 而主踏其脚, 則咬之. 豈可遇難而不自救乎. 請大王許之” “[김]유신은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이옵니다. 어찌 어려움을 만났는데 스스로 구할 방법을 찾지 않겠사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이를 허락하시옵소서”라고 말하였다. /∙卷第四十四 列傳 第四 >金陽 > 陽召萱伯曰, “犬各吠非其主. 爾以其主射我, 義士也. 我勿校, 爾安無恐” “[김]양이 [배]훤백(萱伯)을 불러, “개는 각기 그 주인이 아니면 짖는다. 네가 그 주인을 위하여 나를 쏘았으니, 의사(義士)다. 나는 따지지 않겠으니, 너는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卷第四十五 列傳 第五 > 金后稷 > 然後徳政醇羙, 國家可保. 今殿下, 日與狂夫獵士, 放鷹犬逐雉兔 奔馳山野, 不能自止.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미친 사냥꾼과 더불어 매와 개를 풀어 꿩과 토끼들을 쫓아 산과 들을 빨리 달리기를 스스로 그치시지 못합니다. /∙卷第四十六 列傳 第六 >崔致遠 > 請以犬馬之誠, 助定一方之難, 入唐朝謁, 自此而始. 이때 저희 무열대왕께서 지극한 정성(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개와 말을 가리킨다)으로 한쪽 지방의 걱정을 다스리는 것을 돕기를 청하였으니 당나라에 들어가 조알(朝謁)한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卷第十三 髙句麗本紀 第一 > 東明聖王(기원전 37년)> 王棄之與犬豕, 皆不食, 又棄之路中, 牛馬避之 “왕이 그 알을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으며, 다시 길 가운데 버렸으나, 소와 말이 피하고 밟지 않았다. 흉사와 길사를 미리 알려 주는 벽사의 의미를 나타내는 기록에는 구(狗)를 사용하고 있다. 『三國史記』卷第四 新羅本紀 第四 > 眞平王(631년 02월) > 春二月, 白狗上千 宮墻. 봄 2월에 흰 개가 궁궐 담장에 올라갔다. /∙卷第八 新羅本紀 第八 > 聖德王(736년 11월) > 狗登在城皷樓, 吠三日. 개가 월성의 고루에 올라 짓다. /∙卷第九 新羅本紀 第九 > 孝成王(739년 09월) > 狐鳴月城宫中, 狗咬殺之. 여우가 월성(月城)의 궁안에서 울었는데, 개가 그것을 물어 죽였다. /∙卷第十二 新羅本紀 第十二 > 景明王(919년) > 三年, 四天王寺塑像所執弓弦自絶, 壁畫狗子有聲, 若吠者. 3년(919)에 사천왕사(四天王寺)의 소상(塑像)이 들고 있는 활의 줄이 저절로 끊어지고, 벽화의 개가 소리를 냈는데 마치 짖는 것 같았다. / ∙卷第二十八 百濟本紀 第六 > 義慈王(660년 06월) > 有一犬狀如野鹿, 自西至泗沘河岸, 向王宫吠之, 俄而不知所去. 王都羣犬集於路上, 或吠或哭, 移時即散.有一鬼入宫中大呼, “百濟亡, 百濟亡” 即入地. 들사슴 같은 개 한 마리가 서쪽으로부터 사비하 언덕에 와서 왕궁을 향하여 짖더니 잠시 후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서울의 모든 개가 노상에 모여서 짖거나 울어대다가, 얼마 후에 흩어졌다. 귀신이 하나 대궐 안에 들어 와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고 크게 외치다가 곧 땅 속으로 들어갔다. 고대 우리 민족은 개의 특이한 행동 표현이 사람의 길·흉사를 미리 알려주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였고,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는 벽사(酸邪)로 믿었다. 오늘날 개가 생활공간으로 들어온 반려동물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선조들의 벽사의 믿음으로 반려견을 구(狗), 견(犬)의 의미로 잇고 싶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시림의 아름다운 계절 안개가 흐릿한데 (始林佳期淡烟微) 한낮 금닭은 울지도 날지도 않는구나 (白日金鷄際不飛) 석궤에 가을바람 일자 지난 일이 처량하고 (石櫃秋風凄往事) 붉은 등나무 꽃 아래 이슬비가 흩날리는구나 (紫藤花下雨罪罪) 조선 후기 경주 양동사람 이헌하(李憲河, 1701~1775)가 경주 계림(鷄林)을 노래한 ‘계림’이란 제목의 시다. 계림은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金閼智)가 태어난 곳으로 전해진다. ◆김알지 탄생설화 전하는 신성한 숲 탈해이사금 9년(65) 3월의 일이었다. 밤중에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에서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公)을 시켜 살펴보게 했다. 가서 보니 금빛이 나는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의 이야기를 들은 왕이 궤짝을 가져와 열게 하니, 남자 아이가 그 안에 있었는데 용모가 뛰어나게 훌륭했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에 일러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준 것이라 하고 거두어 길렀는데,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이름을 ‘알지’(閼智)라고 불렀다. 또, 금색 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라 하였으며, 알지가 발견된 ‘시림’의 이름을 ‘계림’(雞林)으로 고치고, 그것을 국호로 삼았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한편, ‘삼국유사’엔 전체적인 줄거리는 비슷하나 ‘삼국사기’와는 다소 다른 내용도 보인다.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西里)를 지나다 시림에서 큰 빛을 보았는데, 하늘에서 땅으로 드리운 자주색 구름 속에 황금 상자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거기에서 빛이 나왔다. 또한 흰 닭이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왕이 직접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알지’라는 이름이 당시 말로 ‘어린아이’(小兒, 소아)를 뜻한다고 언급한 부분도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다음 내용이 이어진다. ‘(탈해)왕은 길일을 가려 그를 태자로 책봉했으나, 그는 뒤에 태자의 자리를 파사왕에게 물려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았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았으며, 아도는 수류(首留)를, 수류는 욱부(郁部)를, 욱부는 구도(俱道)를,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으니, 미추가 왕위에 올랐다. 이리하여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됐다’ 이에 대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내용이 이처럼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은 전자가 국가나 왕실의 역사를 기록한 데 반해, 후자는 신이한 이야기까지를 포함해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라왕실의 본산…56왕 중 38왕이 경주 김씨 성 밖 문묘(文廟, 공자를 모신 사당, 향교) 옆에는 몇 이랑의 황폐한 언덕에 늙은 나무가 쓸쓸하게 서 있으니, 곧 닭 우는 소리가 들렸던 옛 숲이다. -홍성민(洪聖民, 1536~1594), 계림록(鷄林錄) 시림(始林)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리니 우물이 있었다. 그 가운데 8개의 모서리가 있는데, 또한 돌로 덮어 놓았다. (중략) 시림은 지금 향교 곁에 있는데, 특별히 볼 것이 없었지만 우리나라 김씨가 나온 땅이기에 방황하면서 오래도록 떠날 수 없었다. -김상정(金相定, 1722~1788), ‘동경방고기’(東京訪古記) 시림은 경주부 남쪽 4리쯤에 있는데, 다만 보이는 것은 늙은 수목들이 무성한 것뿐이다. -박종(朴琮, 1735~1793), ‘동경유록’(東京遊錄) 오늘날 경주를 방문한 관광객 상당수는 계림을 스쳐지나가거나 아예 둘러보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계림은 경주를 찾은 선비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위상 높은 사적지 중 하나였다. 학계는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김씨 왕실의 시조 신화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을 미추왕대 이후로 본다. 또한 신라의 56왕 가운데 38왕이 김씨였으니, 그 시조인 알지가 태어난 계림은 신라에서 가지는 위상도 그만큼 높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계림의 이러한 상징성은 그것이 나라 이름으로 사용된 점이나 이후 경주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사용된 것을 통해서도 추정할 수 있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부터 조선 태종 15년(1415)까지 경주의 명칭은 ‘계림부’(鷄林府)였다. ◆오래된 숲, 유구한 세월의 풍상 계림은 1963년 사적 제19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첨성대에서 월성 방향으로 펼쳐진 넓은 잔디밭 사이로 난 길 오른편에 계림이 있다. 이곳엔 조선 순조 3년(1803)년에 세운 ‘계림김씨시조탄강유허비’(鷄林金氏始祖誕降遺墟碑, 계림 김씨 시조가 태어난 곳에 세운 비)가 남아있다. 비문(碑文)은 당시 규장각 직제학으로 있던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이 지었다고 한다. 김알지의 탄생에 관련된 설화와 김알지 이후의 김씨 왕가의 계보‧치적, 글을 쓰게 된 동기 등이 담겨 있다. 계림을 거닐며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눈에 띄는 큰 무덤 하나를 만나게 된다. 신라 첫 김씨 왕이었던 제17대 미추왕의 조카였던 내물왕(내물마립간, 356~402)의 무덤이다. 그는 비록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도움을 받으며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 아래 놓이게 만들었지만, 왕의 호칭을 이사금에서 ‘대군장’이란 의미의 마립간으로 바꾸고 김씨왕위 세습을 확립했다. 이후 52대 효공왕까지 김씨 왕조의 시대를 연 것이다. 내물왕릉 인근까지 이어지는 계림 숲은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느티나무와 고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사시사철 사진가들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특히 가을이면 빽빽한 단풍이 화려한 색을 뽐낸다. 숲 속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교촌마을과 경주향교, 월정교 등도 만날 수 있다. 김운 역사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