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아들 녀석이 괜히 목소리를 깔고는 한다는 말이 “아빠는 말끝마다 나를 애 취급하는데 기분이 안 좋아” 한다.
‘어? 내가 뭐라고 했지?’ 복기도 덜 끝났는데 “이젠 다 컸으니 어른 취급을 해 달라”고 녀석은 정색을 한다. 옆에서 와이프도 거든다. “댁의 아드님은 수업 마치고 집에 올 때나 학원 갈 때 친구들이랑 편의점에 들러 캔 커피도 한잔씩 하고 그래요, 몰랐죠?”한다.
‘뭐, 뭐라고? 중학생이 커피를 마신다고?’ 우리 아들이 왠지 낯설다. 순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기습적으로 물었더니 녀석은 “아니, 난 달짝지근한 커피가 좋아”하고는 환하게 웃는다. “에이 그게 뭐야, 중딩 입맛이잖아! 커피의 쓴 맛을 봐야지”하고 약을 살짝 올렸더니 “아냐, 나 에너지 드링크도 마셔봤어!”한다.
에너지 드링크라는 게 인지 능력을 극대화하고 두뇌를 활성화시킨다고 마치 약처럼 선전하지만, 사실은 신경 또는 심혈관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는 카페인 음료다. 좋은 의미의 에너지 드링크가 결코 아니다.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특히 위험한데 각성(覺醒) 효과가 있어 대학생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시험 기간이면 주로들 마신단다. 시험이나 경기처럼 중요한 일 앞두고 마셔 버릇하면 중독성도 강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손 떨림 같은 증상이 수반될 수 있다. 이런 걸 마셔봤으니 어른 아니냐는 녀석의 여드름 난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지 순간 웃을 뻔했지만 끝까지 잘 참았다. 그건 이제 청소년이 된 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이번 여름에 개봉한 영화 〈토르(thor)〉도 우리 아들의 심기를 긁기는 마찬가지다. 아이언 맨(Iron Man)이나 헐크(Hulk)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토르(커다란 망치를 휘두르는 천둥의 신(神)으로 알려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토르의 능력을 가진 지 얼마 안 돼서 그래(She’s only been a Thor for a minute)”라는 원문을 ‘토린이(토르+어린이)’로 번역해버린 거다. 자막은 속성상 최소한의 글자로 영화의 빠른 전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시간 예술이란 점에서 아마도 고심 끝에 ‘토린이’를 썼으리라. 하지만 여자 주인공에게 새롭게 생겨난 엄청난 능력을 좌충우돌 배워가는 장면에서 왜 우리는 자동차 핸들을 처음 잡아보는 초보 여성 운전자를 떠올리고 있을까. 주식 초보가 ‘주린이’가 되고 이제 막 헬스를 시작했다고 ‘헬린이’라고 부르는 것도 불편한데, 이 장면에는 젠더(gender) 문제까지 뒤섞여 있다.
그저 웃자고 하는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싶다가도 언제부터 어린이가 초보자인, 뭔가 어설픈, 풋내기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린이’라는 표현은 아동 비하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에너지 드링크에는 에너지가 없고 어린이라는 단어가 아동 혐오적 표현이 되어버린 현실을 곱씹는다.
성경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했다.
제자들은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걸 기정사실화 했고,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천국의 높은 자리에 있음을 눈치챈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주문했다.
우리 아들이 다섯 살 때였나, 하얀 플라스틱 공이 있길래 그걸 그려보랬더니 한참 만에 들고 온 스케치북에는 아무것도 그려있질 않았다.
“우리 아들, 뭘 그린 거야?” 혀 짧은 소리로 물었더니 녀석은 눈이 사라질 정도로 공을 얼굴에 바짝 붙이고 “아빠, 이렇게 보잖아? 그럼 공이 이래” 하면서 빈 도화지를 내민다.
애들이 뭘 모른다고? 애송이라고? 난 우리 아들이 피카소인 줄, 천재인 줄 알았다. 받아쓰기 40점 받아오기 전까진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아이는 순수의 상징이다. 순진과는 구별되는 순수이자 희망이다. 그러니 뛰다가 자빠져도 벌떡 잘도 일어난다. 세상이 너무 궁금해 누워있을 시간이 없다. 자빠졌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어린이에게 실패는 그저 배우는 과정일 뿐이니까. 불경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성인처럼 팔다리는 멀쩡하지만 아직 힘이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구실을 할 수 있다”
어느새 청소년이 되어버린 아들의 커피 취향도 존중해야겠다. 이 녀석들에겐 오늘보다 내일이 더 환하게 빛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