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이경록
1
나는 발표했어, 오늘 아침
저 바다에 관한 새로운 교서를,
오늘 아침 나는 발표했어.
지금까지는 너무 수월했어. 나도 알아
너무 적에게 말려들었어.
한여름 내내 뜨겁던 여론, 뜨겁던
햇빛만으로 되는 줄 알았어.
어떤 국지전에도 견뎌낼 수 있는 강건한,
짜디짠 소금이 구워지는 줄 알았어
나도 알아. 그것이 나의 취약성이야
부삽 속에 떠올려진 조수 속의 염분을
언제나 객관적으로만 보는 버릇,
사태의 핵을 뚫어보지 못하는 점,
그것이 나의 고쳐지지 않는 결점이야
물론 이번의 참패는 아무것도 아냐. 나는 발표했어.
2
전 해안은 이미 봉쇄되었어. 끝났어.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바다의 총면적, 아니
퍼렇게 끓고 있는 바다의 총량이야
그 곳에 숨어 있는 적들의 분포도, 희고 단단한
이마, 변하지 않는 소수의 강경파.
그들의 뿌리를 뽑고 구워내는 일이야.
그리고 나는 다시 휘어잡고 다스리겠어.
저 맹물만 남은 바다, 정신이 죽은 바다를 …….
-소금을 통해 정권의 근시안과 맹목을 풍자
시적인 긴장을 갖추면서도 대사회적인 목소리를 등한시하지 않은 것이 이 시의 매력이다. 이 시는 시적 화자 왕이 대적(여기서는 ‘소금’)을 제압하기 위해 ‘교서’를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왕은 그와의 대결에서 참패했음을 인정(“물론 이번의 참패는 아무것도 아냐”)한다. 그 참패의 원인은 이렇다. “한여름 내내 뜨겁던 여론, 뜨겁던/햇빛만으로” “어떤 국지전에도 견뎌낼 수 있는 강건한,/짜디짠 소금이 구워지는 줄” 알고 있는 안일한 판단. 여기에다 “부삽에 떠올려진 조수 속의 염분을/객관적으로만 보는 버릇”이 추가된다. 사태의 핵은 그런 안일한 태도 너머에 있다고 왕의 마음 속 또 하나의 목소리가 교서의 후반부에서 말한다. “퍼렇게 끓고 있는 바다의 총량” “그 곳에 숨어 있는 적들의 분포도, 희고 단단한/이마, 변하지 않는 소수의 강경파./그들의 뿌리를 뽑고 구워내”버리겠다는 것이다. 폭압적이고 단순하고 근시안적인 정권의 알레고리가 미학적으로 승화되어 나타나 있다.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여론, 혹은 객관적인 분석으로도 뿌리 뽑지 못한 엄청난 파장의 소금바다와 소금을 만드는 민중의 정신세계의 광활을 제압하는 것이. 어깨 겯고 단단히 뭉친 민중들의 견고한 뚝심 속에서 “강경파들의 뿌리를 뽑고 구워”낸다는 건 도도히 흐르는 역사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 해안은 이미 봉쇄되었”다고, “저 맹물만 남은 바다, 정신이 죽은 바다를” “다시 휘어잡고 다스리겠”다는 왕의 선포는 민중을 죽은 객체로 인식한 정권(왕)이 가진 맹목과 어리석음에 대한 반어다. 여기에 숨은 결기가 살아 있다.
이 시는 결국 화자인 왕의 두 개의 목소리를 통해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1970년대 초중반 당시 들끓었던 민중의식을 소금이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당대의 민중시가 투쟁 일변도였을 때 이경록은 이미 미학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선구적으로 시대와 삶을 모두 녹여낸 작품을 만들어냈다. 70년대 우리 시사에서 특별히 기억해야 할 작품인데, 뒤늦은 조명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