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들이 종합 검진 예약을 해 두었다고 해서 검진을 받았다. 검진 이틀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평소 어지럽거나 메스꺼운 증상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없었노라고 하니 좌측 뇌 쪽 경동맥에 꽈리와 같이 부풀린 부분이 있으니 일단 검사 기관에 와서 상담을 받으라고 한다. 문진 의사를 만나보니 뇌출혈 등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대학병원으로 가 보라고 한다. 아들에게 알리니 서울 대형병원에 예약을 한다. 아마도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평소 건강을 자신해 왔는데…… 건강에 이상이 있으니 약사여래의 가피(加被)에 기대고 싶어진다. 마침 이번 주는 기림사 약사전 이야기이다.
약사여래는 약사유리광여래 · 대의왕불이라고도 하는데, 동방정유리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는 부처님으로, 과거세에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을 세웠다.
이 십이대원 속에는 약사여래가 단순히 중생의 병고를 구제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의복이나 음식 등의 의식주 문제는 물론 사도나 외도에 빠진 자, 파계자, 범법자 등의 구제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 십이대원 이외에도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 악귀를 물리쳐서 횡사를 면하고 싶은 자, 온갖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자들이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면서 발원하면 구제를 받는다. 또, 외적의 침입과 내란, 성수(星宿)의 괴변, 일월(日月)의 괴변, 때아닌 비바람, 가뭄, 질병의 유행 등 국가가 큰 재난에 처했을 때도 약사여래의 본원력을 통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대의왕불’로도 불리는 약사여래는 보통 왼손에 약합을 들고 큰 연화대좌 위에 앉은 모습으로 조성되고 유리보전 혹은 약사전에 봉안된다. 이곳 경주 지역에 있는 약사여래상으로는 분황사 보광전의 약사여래 입상을 비롯하여 백률사 청동약사여래입상, 남산 용장계곡의 약사여래좌상, 굴불사지 사면석불의 동방불, 남산 윤을곡 마애여래좌상 등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본스님이 『약사경』을 읽어 선덕여왕의 병을 고쳤고, 경덕왕 때에는 분황사에 30만7600근의 거대한 약사여래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약사여래는 사천왕, 12지신을 권속으로 삼는데, 석탑에 약사여래 권속을 조각하는 풍속이 생길 정도로 통일신라시대 약사신앙은 유행했다. 사방불을 조성할 때, 동방에는 항상 약사여래를 모셨다. 약사여래는 동방유리광세계의 교주이기 때문에 기림사 약사전은 본전인 대적광전의 좌측 즉 동편에 있는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기림사 사적 중건기에 의하면 약사전은 1654년에 중창되었으며, 1678년 약사법당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1600년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각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바로 옆의 대적광전에 비해 규모가 작다.
​약사전 내부로 들어서면 정면에는 연화대좌 위에 좌상의 약사여래, 좌우협시보살은 입상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다. 본존인 약사여래는 편단우견의 법의에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붙여 위로 들어올리고 있다. 그런데 왼손 손바닥 위에 약합이 보이지 않는다. 조성 당시에 있었을 것이나 이후 유실된 듯하다. 일광과 월광보살의 경우 좌우 대칭이나 보관에 해와 달이 명확하지 않다.
후불탱화(後佛幀畵)는 약사여래의 정토인 동방약사유리광회상도가 결려 있다. 벽면에 있는 헌다(獻茶)벽화는 국내 유일의 가장 오래된 벽화로 이 도량의 역사가 차와 함께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기림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문화 성지임을 알리고 있다.
벽화에 등장하는 세 사람 중 좌측에서 차를 들어 바치는 사람은 안락국의 아버지인 수다라국의 왕이고 차를 받는 인물은 안락국을 보내 기림사를 창건하게 한 광유성인, 성인의 옆에 있는 분이 기림사를 창건한 안락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