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 중심에서 경주의 조선을 느낄수 있는 경주읍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96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무작위적인 파괴와 근현대의 도시개발 사업 속에서 그 옛 모습은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경주읍성 내의 현존 유적은 완전히 변모했거나 무너지고 흩어진 잔상만 남았다. 성벽을 비롯해 객사, 집경전, 동헌, 내아, 종각 등 주요 건물이 모두 그러한 모습이다. 1900년대에 이르러 관장(官長)은 망궐례를 행치 않았고 성문 개폐때마다 치던 봉황대 종각의 종소리가 멎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고 읍성은 기나긴 침묵을 깨고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신라 이후 경주 천년 역사 심장부는 읍성이었다. 동성벽 일부와 향일문(向日門, 동문)이 복원된 경주읍성을 걸어보았다. 실로 100년이 지나 밟아보는 조선의 경주읍성이었다. 흑백사진에서나 보아왔던 조선의 읍성이라니! 가시적으로 ‘조선의 경주’를 상징하는 읍성을 일별이라도 할 수 있음은 축복이다. 경주읍성은 2030년까지 사업비 605억 원을 들여 4만5496㎡ 부지를 사들이고 동쪽과 북쪽 성벽 1100m, 치성 12개소, 문루2개소(향일문은 복원됨, 공진문)를 복원할 계획이다. 아직 주변 정비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복원된 부분만이라도 안전을 기할 부분들이 더러 보였다. 더불어 읍성 전체에 대한 안내와 발굴 현황, 읍성 주변의 유적을 설명하는 안내표지판 설치도 시급해보였다. 복원된 읍성의 동문을 중심으로 읍성과 관련된 유적과 주변 문화유적들을 찾아보았다. 경주문화원으로 이어지는 향토사료관, 집경전, 동경관 등의 건물은 일부 헐린 부분도 있지만 조선시대 모습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담배인삼공사(KT&G) 경주지사 자리와 경주상공회의소는 옛 동헌 자리였고 조선 시대 내아(內衙)였던 구박물관은 지금의 경주문화원이다. 이들과 함께 현재 읍성 주변에 있는 서경사, 화랑수련원 등의 주목할만한 유적지도 함께 살펴보았다. ▲주요행정 담당했던 조선 시대 내아(內衙), 현 경주문화원 경주지역의 주요행정을 담당했던 관청으로 조선 시대 내아(內衙)였던 구박물관은 지금의 경주문화원 자리다. 경주문화원은 1926년부터 1975년까지 경주박물관이었던 곳이었다. 1975년 현재의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축되어 옮겨간 뒤부터는 경주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남향 기와집은 현재 향토사료관으로 조선시대 문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사료관은 신라시대 원형초석을 사용해 팔작지붕의 목조와가로 지었다.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의 전시관으로 ‘온고각’이라는 현판을 걸고 신라 이후의 유물을 전시했다고 한다. 현재 사료관에는 ‘온고각’이라는 현판과 ‘경주군청’ 현판이 보존돼 있다. 이밖에도 조선시대 당시 경주읍성 축소모형판이 있고 100년 전 경주시가지 모습, 경주읍성 전투에 쓰였던 비격진천뢰 모형 등의 유물 등이 전시돼있다. 문화원 입구에 성덕대왕신종 종각도 일제강점기 당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한편 경주문화원에서는 희망자들의 신청을 받아 월 1회 정도 경주읍성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재해설사들이 축소된 모형도를 통해 경주읍성을 소개하고 역사현장을 걸어서 탐방하고 있는 것. 경주문화원 고복우 사무국장은 “하드웨어로서 경주읍성이라는 문화재가 복원정비 되고 있는데 컨텐츠 개발을 통한 활용이 시급하다. 그 일환으로 시 예산없이 문화원에서 자발적으로 읍성 투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시에서의 예산이 지원된다면 보석같은 조선의 경주를 더욱 활발하게 알릴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집경전지...태조 이성계 어진이 봉안되었던 성내 유일한 전우(殿宇), 옛 경주여중 인근에 남아있어 동문이 복원된 곳에서 성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경주여자중고등학교가 옮겨간 터가 나온다. 지금은 경주평생학습센터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부지 바로 옆 공터에 ‘집경전’ 구기비와 ‘하마비’가 서 있다. 집경전지에서 나온 통돌을 깎아 만든 계단돌 일부, 장초석 등 석재와 석비는 한쪽에 모아두었고 집경전 구기비와 하마비가 간격을 두고 옮겨져 있었다.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전국 거진(巨鎭)에 자신의 어용을 봉안하게 했다. 이반된 민심을 어루만지고 집약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 이에 경주에 어용전이 건립됐고 1442년(세종24) ‘집경전’이라는 전호가 내렸다. 그러나 임란으로 집경전은 돌무더기만 남긴 채 모두 불탔다. 이후 경주 인사들은 여러 차례 집경전을 다시 세워달라고 청했으나 정조(1798년)는 대신 어필로 ‘집경전구기’라는 다섯 글자를 써서 내려 비각을 건립토록 했다. 소실되기 이전 집경전은 경주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부윤이나 사신이 경주에 오면 반드시 이곳에 와서 참배하고 업무가 시작됐다. 성내 유일한 전우(殿宇) 집경전은 그 권위와 상징성이 실로 대단했었다. 지금은 집경전의 전각은 없어지고 집경전의 흔적이 남아있다. 집경전 복원은 ‘집경전 구기도(오른쪽 사진 참조)’가 남아있어 정확한 복원사업일텐데 부지 확보 등의 이유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도심에서 만나는 유일한 근대 건축문화재 서경사, ‘보존 관리 소홀’ 서부동에 있는 서경사는 2006년 12월 등록문화재 제290호로 정식 지정됐다. 서경사는 도심에서 만나는 유일한 근대 문화재로 1932년경에 건립한 목조 팔작지붕의 일본 전통 불교 양식 건축물이다. 근대문화재는 우리 근대사의 아픔도 함께한다. 일본식 전통사찰인 서경사는 1933년 당시 보기 드문 우뚝한 건물로, 혹은 이국적 풍광을 함께 선보였을 것이다. 지붕이 건물 높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정면과 측면의 길이가 일대일 비율에 가까워 위에서 바라본 건물의 평면이 정사각형이며, 정면의 지붕이 돌출되어 있는 등 일본 전통 불교 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해방이 되자마자 해병전우회 사무실, 사방관리소, 한전 사무실, 농촌지도소 사무실, 소방출장소, 서부동 사무실, 박덕화 씨의 정가전수관 등으로 임대해 활용되었으며 현재는 정순임 판소리 전수관으로 임대되고 있다. 지난 25일 찾았던 서경사 뜰안에는 승용차들이 정원을 가득 채우며 주차해 있었는데 방문객들의 진입과 관람이 어려울 정도였다. 귀한 근대건축물이면서 등록문화재인 공간이 마치 사적인 공간인양 비쳐졌다. 근대문화재에 대한 예우는 실종된 것인가. 또 서경사 바로 옆에선 ‘경주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공사(11월말경 준공예정)를 하고 있었는데 그 흔한 천막 가리개도 없이 서경사가 콘크리트 분진과 진동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그리고 공사 현장의 도구와 서경사 측의 집기들이 뒤섞여 서경사 쪽 건물에 이리저리 무질서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오른쪽 사진 참조> 차제에 서경사 리모델링도 함께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문화재에 대한 어떤 보호 장치도 없어 보였다. 이에 건축주인 경주시 담당자는 “건축 공간이 협소해서 최소한의 장치를 할 수 없었다.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면 해야 되겠다”라면서 애매한 답을 해왔다. 수시로 문화재 현장을 방문할 방문객들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답답한 마음에 경주시 문화재과에 다시 문의했더니 “서경사 내의 주차문제는 전수관이 준공되면 별도의 주차장이 완비되므로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분진문제는 분진이 옮겨 붙지 않도록 시공 업체에 조치토록 하겠다”고 답했다. -경주최초의 일제시대 신식의원이었던 건물 ‘화랑수련원’, 1938년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 경주최초의 일제시대 신식의원이었던 건물이 경주시 동부동에 있다. 현재 ‘화랑수련원’이란 이름으로 경주경찰서 옆 상공회의소 건물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이 건물은 일반 건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1938년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작고한 전 경주문화원 김태중 원장은 “일제강점기때 야마구찌 산구 씨가 구 상공회의소 자리에 세웠는데 맞은 편 자리로 건물을 옮겼다고 전해진다. 야마구찌 씨가 의사였으면서 병원 소유주였는지, 단순한 건물 주인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원주 야마구찌 노브즈내 읍내 산구의원’으로 알려져있고 그 당시의 종합병원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던 바 있다. 이 건물은 202㎡(61평)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서양식의 지붕형태다. 지금은 경주경찰서에서 체력단련실로 사용하고 있다. ▲경주 동헌 건물 ‘일승각’은 지금의 법장사 대웅전 일승각은 경주부 관아 건물군의 일부로 원래는 ‘제승정’이라 했다. 조선 영조 30년(1754) 경주부윤 홍익삼이 중수해 일승정이라 하고 건물의 동쪽부분을 풍월루, 서쪽부분을 망경루라 칭했다(‘동경통지’). 이후 고종 20년(1883년)부터 21년에 경주부윤 김원성이 중건해 일승각으로 개명(‘경주읍지’)하고 경주 동헌의 가장 주된 집채인 정당(正堂)으로 이용한다. 다시, 1937년 동부동에 있던 일승각 건물을 배씨 부인이 인수해 작고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위해 기림사에 기증한다. 이듬해인 1938년 현재의 자리인 노동동에 이건해 대웅전을 세우고 사찰로 개창하고 기림사 경주시 포교당으로 쓰인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의 말사인 법장사 대웅전이다. 경주 동헌 건물이 지금의 법장사 대웅전인 것이다. ▲읍성에서 가장 중심자리에 위치했던 고려 때부터 내려온 객사 ‘동경관’, 지금은 서헌만 남아 경주문화원 근처 삼락회관 건물 뒤로 고려 때부터 내려온 객사의 부속건물인 ‘동경관’이 나타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돼있는 이곳은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없다. 그래서 동경관을 안내하는 안내표지판도 이 삼락회관 건물 입구에 자그마하게 달려있을 뿐이다. 현재는 경주문화원이 전통문화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옛 동경관은 집경전에서 정남으로 몇 채의 민가를 지나면 객사가 나타났고 읍성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고 뜰도 넓었다고 한다. 일승각보다 훨씬 더 웅장했다고 한다. 삼동일체(三棟一切)의 건물로 이뤄진 객사였다. 객사를 이처럼 크게 지은 것은 살아있는 임금을 상징한 전폐와 궐패를 모셨기 때문이었다. 이에 객사는 읍성에서 가장 중심자리에 위치했다. 임란시 왜구들이 주둔했고 이후 몇 차례 중수됐다. 임란때 소실된 객사를 1613년에 중수하고 지은 상량문과 1786년 객사를 중수하고 생원 손희일이 지은 상량문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러니 지금의 건물은 정조 10년(1786)경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으나 지난 26일 다녀온 동경관의 기둥 초석과 바닥에는 무청과 고추들이 널려져있고 <오른쪽 사진 참조> 한쪽 벽면 바닥에는 각종 농기구와 잡다한 살림도구들이 어지럽게 방치돼 있었다. 여느 시골 농가에서나 봄직한 모양새보다 더 난잡했다. 이 건축물의 중요성과 위상을 반추해볼때 심각한 상황이었다. 문화재인 고건축물에 대한 관리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이에 대해 경주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동경관과 유적주변경관지의 환경 정비는 사적관리과와의 협조를 구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북유럽의 일상이 고스란히 전시장에 펼쳐진다. 연말을 맞이해 오션갤러리에서는 12월 한 달 간 ‘한주은 작가의 초대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말, 창문, 집, 나뭇잎, 고양이, 가구 등 북유럽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한 추억을 블루페인팅 안에 그려 기억하고 있다. 북유럽에서 오랜 기간 작가생활을 하면서 그곳의 문화와 생활환경등을 도자기에 블루페인팅으로 표현함으로써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해 왔던 작가는 유럽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서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그들의 문화를 일깨워 주기 위해 일상생활의 오브제 등에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너무 익숙해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들과 항상 그 자리에 놓여져 있는 소소한 사물들, 그리고 늘 똑같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일상적인 오브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추억과 맞물린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재탄생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작가는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도예가 한주은 1974년 서울 출생으로 스웨덴 샬머스 대학교 응용정보공학 석사, 고덴버그 대학교 도예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스웨덴의 주택조합, 서부 주, 베네스보리 공원, 샬그린스카 대학 병원, 고덴버그 대학교, 샬머스 대학교, 아이티 대학교와 목아박물관, 청학갤러리, 하나은행, 연세세브란스병원 등에 작가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한편, 오션갤러리는 경주현대호텔 로비층에 위치해 있으며 무료입장이다. 월요일 휴무.
금빛상자 매달린 나뭇가지 아래 붐한 어둠을 밀치고 새날을 밝히는 흰닭의 신성함으로 태어난 귀한 생명의 이름 ‘알지’. 김씨 성(性) 탄생신화를 껴안은 숲의 등걸을 매만지면 하늘문 열어가는 키 높이로 나무는 길이 되고 바람막이 숲이 된다. 경주의 삼기(三奇) *팔괴(八怪)중 여덟가지 괴이한 것을 일컫는 팔괴는 경치가 아름답고 전설 깃던 곳을 뜻하는데, 계림은 계림황엽(鷄林黃葉)으로 속설되어 전하는 곳이다. 황엽 즉 단풍은 가을에 물드는데 계림에는 한여름에도 단풍이 든다는 것이다. 신라말의 학자 최치원은 나라의 국운(國運)이 이미 쇠퇴되었음을 짐작하고 고려의 왕건에게 상서문(上書文)을 올린다. 상서문장에 곡령청송(鵠嶺靑松) 계림황엽(鷄林黃葉)이라는 글귀가 있다. 그 뜻은 곡령 즉 송악의 고려는 청송과 같이 성하고, 계림 즉 신라는 황엽으로 시든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계림의 숲은 누렇게 물들었다는 속설이다. 뿌리 깊은 계보를 펼치며 역사의 큰맥을 짚고 있는 숲의 둘레로 신라시대 도랑물길 발천(撥川)이 흘러, 빗줄기 세게 퍼붓고 난 뒤 숲길 거닐어보면 물살이 콸콸 제법 옴팡지게 자연의 귀씻김소리 내어놓고 있다. 신라 38왕 김(金)씨 족보를 거머쥔 피돌기 꽉 차게 국호(國號)로 불린 계림, 누런 잎사귀 재끼고 젖내 풍기는 숲의 신화는 하늘 땅 연결하는 나이테로 울창하다. *팔괴[八怪]는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오는 여덟 가지의 괴상한 풍경을 일컫는다. 1.남산부석[南山浮石], 남산 국사골 바위는 큰 바위 위에 또 한 개의 둥근바위가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여 부석(浮石)이라 불린다. 2.문천도사[蚊川倒沙], 남천의 옛이름 문천은 물이 맑고 부드러운 모래가 물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처럼 보여 「물개내」라 불렸다. 왕궁과 연결되는 교량들이 있으며 일정교 월정교 효불효교 유교등이 대표적이다 3.계림황엽[鷄林黃葉], 계림에는 한여름에도 단풍이 든다. 4.압지부평[鴨池浮萍], 안압지 물 위에는 부평초(말밤초)가 떠 있었다. 뿌리가 땅에 닿지 않고 바람이 불면 풀무더기들이 구름처럼 떠다니는 기이한 정경이라 하였다. 5.백률송순(栢栗松荀)백률사의 소나무는 가지를 친 뒤에는 솔순이 생긴다고 한다. 6.금장낙안[金丈落雁], 금장마을 형산강변의 바위언덕 임금이 노닐던 금장대에 날아온 기러기가 쉬어갈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7.불국영지[佛國影地], 아사달 아사녀 전설이 깃든 영지 못에는 불국사의 전경이 비치는데, 석가탑만 비치지 않아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 한다. 8.나원백탑[羅原白塔], 현곡 나원리 통일신라시대 화강암 5층 순백색 탑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빛깔이 변함없다. 96년 해체 보수시 금동제 사리함등 유물이 출토 되었다.
구정동 불국사역을 다녀왔습니다. ‘100년 역사(驛舍)’라고 씌어져있는 파란색 플랜카드에는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경주시내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울산방면으로 약 15분 거리 우측에 위치한 경주 ‘불국사역’.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불국사의 절 이름을 딴 역입니다. 불국사역은 이 지역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완행열차의 정거장이자 삶의 애환이 담겨있는 곳입니다. 코레일 대구본부 불국사역이 지난 1일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불국사역은 1918년 11월 1일 영업을 시작해 올해로 100년 역사를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1916년 조선경성철도주식회사로 부설 면허를 취득하고 1918년 하양, 학산, 불국사간 협궤선이 개통됩니다. 1921년 10월 불국사 울산간 18.7㎞가 연장되었다지요. 동해남부선으로 1918년 10월 조선경북사철 노선으로 경주-포항 사이를 영업했는데요, 당시 궤간은 762㎜협궤였으며 1936년 12월 울산 경주간 광궤선 개설공사가 준공됐다고 합니다. 2013년 코레일은 경주역, 불국사역의 역사를 철도기념물로 지정·보존한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우리 지역 두 개의 역에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와 의미가 더욱 부각되었던 것이죠. 조선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도입한 역사로서 현재 한국에서 당시의 역사가 남아 있는 것은 경주역과 불국사역 뿐이라고 합니다. 불국사역사는 외장재나무, 기둥, 지붕의 양식, 건물의 골격 등이 근대건축 초기의 외형을 충실히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의 정서를 표상하는 의미의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우리지역의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1936년 신 광궤선 공사 당시 건축가와 기술자는 모두 일본인이었고 인부들은 지역의 주민들이었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불국사역은 대단한 역할을 했습니다. 불국사 인근지역이 면 소재지 정도에도 못미칠 때 신라고도 ‘고적’이라고 인정하고 면 단위 역으로는 최고의 규모로 만들었지요. 그 당시 그보다 더 잘 지은 역이 없었을 정도였고요. 불국사역이 일제에 의해 지어진 것은 못마땅했지만 우리지역 시설물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신 광궤철도가 생겨 대환영이었지요” 라고 회고합니다. 하루에도 수 백 명이 불국사역을 다녀갔다고 하는데요, 한 차에 20~30명씩 하루에 몇 번씩 수차례 내리고는 다시 갔다고 합니다. 불국사 관광객방문으로는 한국전쟁 이후가 최고였습니다. 현재 불국사역은 동해남부선 여객열차인 무궁화호가 21회 정차하고 있지만 2020년 신노선이 개통되면 폐선될 예정입니다. 최근 폐선만은 막아달라고 청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사라지는 모든 역들을 보존할 수는 없겠지요. 구정동 불국사역의 미래가 밝기만을 염원해 볼 수 밖에요.
집이 집에 없다 -이문재 집이 집에 없다. 집이 집을 나갔다. 안방이 제일 먼저 나갔다. 안방이 안방을 나가자 출산이 밖으로 나갔다. 윗목이 방을 나가자 마루가 밖으로 나가자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마당이 마당 밖으로 나가자 잔치가 사라졌다. 다 나갔다. 돌잔치 집들이 결혼식 진갑잔치 팔순잔치 병든 이 늙은이 외로운 이가 다 집을 나갔다. 그러는 사이 죽음이 집을 나갔다. 죽음이 집밖으로 나가 죽었다. 집이 집을 나가자 죽음이 도처에서 저 혼자 죽어가기 시작했다. 죽음이 살지 못하고 저 혼자 죽기 시작했다. -집을 잃은 사람들 ‘집에 집이 없다’니! ‘집이 집을 나갔다’니! 그러나 계속 읽다보면 독자들은 그 ‘집’의 의미를 금방 눈치 채게 된다. 이런 변화는 편리한 아파트가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마루가 없어지고, 마당이 없어진 자리에 온갖 ‘산업’이 들어섰다. 대행사와 상조회사, 요양병원이 그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의례를 모두 집 밖에서 한다. 기실 모든 잔치는 집안의 내력과 가풍과 정서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집은 그 집을 거쳐간 사람들의 숨결과 애환을 간직한다. 예컨대, 돌잔치는 그 가문 속에 갓 들어온 새생명을 환영하는 자리다. 진갑잔치는 그 집에서 육십갑자를 살아오신 어른에 대한 경의를 보내는 자리다. 참석자들은 그 가문의 숨결을 느끼며 경건하게 그 자리에 스며든다. 집은 가문의 내력과 함께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자리다. 오래된 집일수록 삶과 죽음이 동거하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넘쳐난다. 이제 잔치가 나가고 병든 늙은이, 외로운 이들이 나가고 죽음마저 나가버리니 몇 억 짜리라는 상품으로서의 자산만 남았지, 집은 빈껍데기가 되었다. 이웃과의 담도 높아졌고, 형제간의 우의도 사라졌다. 집을 잃었다는 것은 나로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 시는 그런 점에서 현대인의 장소상실을 다루고 있다. ‘저만치’ 달려나가버린 집을 ‘안방’과 ‘윗목’과 ‘마루’를 마음으로나마 모셔 들여야 할 때다.
맑은 하늘과 알록달록 가을을 품은 나무들이 색을 빛내는 그렇게 예쁜 날. 10번째 문화탐방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로 들어서는 길, 왼편 양동초등학교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을길 옆으로 소박하니 피어난 국화와 이름 모를 꽃들이 더해져 가을소풍을 온 것 같은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양동마을은 설창산의 산등성이가 네 줄기 능선으로 갈라져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다.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160여 호의 고가옥과 초가집이 어우러져 우거진 숲과 함께 펼쳐져 있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 알고 있었는데, 내가 직접 마주선 양동마을은 동그란 초가지붕 뒤로 중후한 기와가 몇 채 보이는 소담한 마을로 보여 의아함을 가득 품고 문화탐방을 시작했다. 원래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사돈지간이었으며 서로 의식과 경쟁으로 마을이 번창하고, 더 뛰어난 인물이 배출될 수 있었다는 문화해설사분의 설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들어선 양동마을은 처음에 느낀 소담한 마을이 아니었다. 관가정(보물 제442호)을 뒤로하고 언덕을 오르자 물봉동산이라는 너른 공간이 나고 저 멀리 골짜기 마다 기와와 초가가 자리 잡은 것이 마을규모가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도 6.25때 소실돼 반 정도가 남은 것이라 하니 옛 모습이 가히 상상이 되질 않았다. 더욱이 국사시간에 말로만 들었던 99칸의 기와집. 일부 불타 규모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보기에도 규모가 상당한 보물 제412호 향단을 보며 조선시대에 이 마을의 위세가 엄청났을 거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관가정과 향단을 지나 마을길을 따라 걷는 길. 동네 어르신께서 손을 분주히 놀리며 짚으로 예쁘게 댕기를 땋고 계신다. 알고보니 댕기처럼 엮은 짚은 초가지붕에 이엉을 얹기 위해 엮는 거라고. 새로운 모습에 신기해하고 있던 찰라 무첨당에 도착한다.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종가 별택으로 마루와 널따란 정자가 이어져 있는 이색적인 모습과 흥선대원군이 이곳에서 머무르며 썼다는 ‘좌해금서’ 편액을 보니 이 건물이 많은 학자와 사람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였다는 해설사분의 설명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방문지인 서백당은 양민공 손소가 지은 월성 손씨의 종가집으로, 이 집터를 잡을 때 설창산의 혈맥이 모이는 이 터에서 세 명의 위대한 인물이 배출될 거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경절공 우재 손중돈 선생과 문원공 회재 이언적 선생이 여기에서 태어났고 아직 한명은 미탄생이라 한다. 요즘도 서백당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하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인물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두 시간여 양동마을을 둘러보고 경주로 돌아오는 길. 천년고도 신라의 도시로 일컬어지는 경주에서 조선을 만난 것이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행복했다. 옛것을 꾸준히 지켜나간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계속 유지돼 많은 사람들이 찾아 뜻밖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문화유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라문화탐방동아리 경장 이종희
한여름 밤, 캄캄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몸무게 100킬로그램이 넘는 바다거북이 알을 낳기 위해 해변으로 올라온다. 모래사장 구덩이에 100개쯤 되는 알을 낳은 바다거북은 모래를 덮은 뒤 곧장 바다로 다시 돌아가고, 60여 일 만에 알에서 깨어난 아기바다거북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밝은 빛을 따라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삼성생활예술고(교장 정상희)는 지난 27일 ‘삼성 ON DAY~!, 삼성 온데이~!’를 주제로 학교에서 배워온 실습을 통해 키워 온 재능을 지역 사회에 베풀고, 나눔을 통해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의 날을 운영했다. 올해 2년 째 맞은 이 행사는 내남면사무소와 연계해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김장김치 나누기 봉사를 진행했다. 이날 관광조리과 학생들은 지역사회보장협의체(내사랑복지단), 내남면새마을남녀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새벽부터 배추를 절이고 각종 소를 넣은 김치를 정성스레 포장해 학교 인근 홀로 사는 어르신들께 전달했다. 또 뷰티디자인과 학생들은 ‘사랑의 무료 미용 봉사’도 함께 실시해 학교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뽐냈다. 뷰티디자인과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인 미용과 염색, 어깨·손·발 마사지 및 네일아트 서비스를 하고 어르신들께 장수사진을 찍어 드렸다. 관광조리과 학생들도 김장김치와 함께 직접 만든 수육과 밑반찬·간식거리·음료 등을 제공해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박용환 내남면장은 “특성화고 학생들과 함께 하는 특별한 봉사를 통해 뿌듯함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상희 교장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세대간의 이해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삼성온데이 행사를 통해 우리 학생들이 어르신들께 삶의 지혜를 배우고, 바른 인성을 갖고 사회에 나가 국가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국사(교장 이윤출)는 지난 27일 전교생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제409차 민방위의 날 화재 대피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누전으로 인한 정전과 화재 발생을 가정해 실제 상황처럼 진행됐다. 화재 최초 발견자가 “불이야”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화재경보 비상벨을 울리자 학생들은 낮은 자세로 손수건 등으로 코와 입을 막고 학급별 대피 경로에 따라 질서 있게 대피했다. 이윤출 교장은 “겨울철은 일 년 중 가장 기온이 낮고 건조해 화재발생 위험이 매우 높은 시기다. 화재 대피훈련을 실제 상황처럼 생각하고 화재예방에 경각심을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교육지원청은 지난 27일 대회의실에서 제8회 경주세계문화유산 학생 해설사 인증식을 가졌다. 경주세계문화유산 학생 해설사는 예비인증과정을 통해 외국어로 문화재 해설 실력을 인증받은 학생을 대상으로 소양교육, 문화재 탐방활동, 홍보도우미 활동을 실시해 전 과정을 성실히 수료한 지역 초·중생 17명이 인증자로 선정됐다. 인증식에는 학부모와 지도교사도 함께 참석해 인증학생들을 축하해 주었다. . 김현동 교육지원과장은 "학생들이 문화재 홍보 도우미활동을 바탕으로 경주세계문화유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외국어로 소통하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주교육지원청은 지난 27일 대회의실에서 경상북도경주교육지원청부설영재교육원 중등 영재반 38명에 대한 수료식을 개최했다. 수료식에는 3월 24일 개강식을 시작으로 8개월 동안 주중에는 토요일, 여름방학 중에는 캠프(집중)활동, 그리고 때로는 원격(사이버) 수업 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개인당 120시간의 영재수업을 수료한 수학 18명, 과학 20명 영재학생 및 학부모, 그리고 지도강사가 참석했다. 특히 영재 학생으로 선발된 전원이 한 명도 낙오 없이 수료함으로서 서로 간의 배려와 나눔, 창의성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김현동 영재교육원장(교육지원과장)은 "그 동안 열심히 참여해 준 중등영재 수료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감사와 축하를 드린다. 이번에 수료한 영재학생들이 경주교육을 이끌고, 경주교육이 경북교육에 중심이 되고, 경북교육이 대한민국 교육을 선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자기개발에 매진해 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동방초(교장 서인숙)는 지난 27일 체육시간에 경북육상연맹에서 주최하는 ‘키즈런 페스티벌(신나는 육상) 순회 지도’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경북육상연맹에서 초등학생들의 체력증진과 건전한 학교 생활을 위해 ‘다 함께 즐기는, 신나는 육상 놀이’ 형식의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을 보급하기 위해서다. 행사는 4학년 32명을 대상으로 스피드 레더, 허들 왕복 달리기, 제자리 멀리 뛰기, 로켓 모형 멀리 날리기, 정확히 던지기, 이어달리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진행했다. 학생들은 3개조로 나누어 60분간 체험하며 육상 경험뿐만 아니라 흥미까지 갖는 기회가 됐다. 이날 행사를 담당한 최세권 교사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학생들이 육상을 순위가 정해지는 경쟁이 아닌 다 함께 즐기고 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경주경찰서는 28일 별관 3층 화랑마루에서 경주시, 출입국사무소 관계자 및 외국인지원 민간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외사치안협의회를 발족했다. 외사치안협의회는 경주경찰서, 경주시, 울산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관계기관 및 외국인채용기업단체 대표, 외국인NGO, 외국인자율방범대, 외국인 주민대표 등 각계각층의 외국인관련 정책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대표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외사안전구역(외동읍․성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외국인 관련 정책을 추진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치안환경 개선을 통한 내외국인 사회통합과 안전한 다문화사회 건설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외사치안협의회 발족을 계기로 경주경찰서는 성건, 외동외국인자율방범대에 방한용품을 지급하며 추운겨울 순찰활동에 대한 치하 및 외국인 치안조력자로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배기환 경찰서장은 “도내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경주에서 외사치안협의회는 외국인 치안정책 네트워크 구축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 경찰은 이를 이용해 내외국인 위화감 감소 및 효율적인 치안정책 수립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랑교육원은 27일부터 29일까지 2박 3일간 경북생활과학고 120명을 대상으로 2018학년도 창의융합과정 제14기 수련을 실시했다. 창의융합과정은 옛 화랑의 얼과 기상을 계승하고 풍류를 체험함으로써 호연지기를 함양하며 자연과 호흡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되고 있다. 그리고 힐링 기회 제공, 단위학교별 수련 운영으로 교우와 사제 간의 소통 및 공감대 형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학생들은 2박 3일 동안 세상을 바꾸는 메이커, 체인지메이커를 비롯해 통쾌한 국궁, 유쾌한 드론, 장애 체험 등 새화랑 3쾌 공동체 놀이와 미래를 찾아 떠나는 경주 역사 유적 답사, 숲 오리엔티어링 등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지난 27일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경주장복)에서 ‘찾아가는 이동법률상담’을 실시했다. 찾아가는 이동법률상담은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교통이 불편한 곳에 거주하거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도시까지 나올 수 없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법률문제 전반에 대해 상담하고 소송접수 등의 절차까지 도움을 주는 적극적인 법률구조 서비스이다. 이날 이동법률상담에서는 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 및 자원봉사자들이 상담을 받았다. 경주장복 관장 종성스님은 “법률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장애인을 위한 전문서비스제공의 어려움을 해소해 준 공단에 감사드린다”며 “지역장애인의 조그만 불편함도 함께 해결 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다. 나눔을 실천하는 단체와 기업이 늘어나 지역의 장애인들이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도록 우리복지관에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경주장복에서는 지역의 대학, 봉사단체, 기업체와 연계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있는 이들은 054-776-7522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소방서는 지난 27일 오전 10시부터 경주시 양북면 소재 연대산~이견대 일원에서 안태현 소방서장을 비롯한 소방공무원 4명과 경주소방서 의용소방대장 31명이 참석한 가운데 겨울철 산불예방캠페인을 실시했다. 이날 캠페인은 겨울철 건조한 날씨로 인한 화재 및 등산객의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아짐에 따라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산불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실시됐다. 이날 직원 및 대원들은 연대산 등산로를 산행하면서 등산로 주요지점에 산불조심 현수막 및 리본을 설치하고 등산객을 대상으로 화재예방 전단지를 배부하며 화재예방을 당부했다. 안태현 경주소방서장은 “겨울철에는 건조한 날씨로 인해 산불발생 위험이 커지고 화재 발생시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며 “소중한 자연을 보호하고 인명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산불 예방 훈련과 홍보를 계속 추진해 산불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의 일환인 청소년수련기관 화랑마을이 10월 개관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은 경주, 청도, 영천, 경산을 중심으로 화랑정신을 체험, 교육, 계승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총 918억 원이 투입된 국책사업이다. 화랑마을은 경주시 석장동 일원에 연면적 1만9605㎡(5940평), 사업비 918억원을 들여 전시관과 교육관, 생활관, 한옥생활관, 야영장, 명상관, 전시과, 구령대 등의 시설을 갖추고 개원했다. 시는 화랑마을이 화랑문화의 체계적 연구와 가치정립 및 다양한 청소년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청소년, 교육, 문화, 관광이 복합된 문화공간이 되기 바라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운영되는 화랑마을에 대해 부정적 여론도 적지 않다. 경주에는 화랑마을과 비슷한 성격의 청소년수련시설인 화랑교육원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청소년수련시설이 800여 개가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화랑마을은 경주시가 직영으로 운영하며 매년 33억 가까운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경주시는 매년 시 산하 기관 운영비로 50억~60억의 예산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화랑마을 운영비 33억까지 더해진다면 경주시 재정압박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번 기획기사는 화랑마을과 비슷한 성격의 국내·외 기관 취재를 통해 경주 화랑마을이 나가야할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
경주시 원전정책에 대한 자문과 정책제안을 위해 출범한 ‘경주시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향후 역할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원전관련 현안 해결을 위해 한 목소리로 대응하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자문중심의 기구여서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등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대책위의 자문기능과 함께 시민요구를 담은 결의문 채택에서부터 필요에 따라 대정부 집회까지 강력 대응할 수 있는 기구 또는 단체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 24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정부 탈원전 에너지 정책에 대한 범시민 차원의 대책 수립을 위한 경주시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 출범식과 위원 위촉식을 가졌다. 대책위는 시의회, 언론, 학계, 시민단체를 비롯해 원전 관련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29명의 위원으로 구성했다. 위원장에는 남홍 (사)경주지역발전협의회 고문, 부위원장은 신수철 감포읍발전협의회장이 각각 선출됐다. 출범식에 참석한 주낙영 시장은 대책위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지역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발전적 대안을 함께 모색해 줄 것을 당부했다. 주 시장은 “원전 6기를 비롯해 방폐장과 한수원,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 원전 관련 시설이 밀접한 경주에서 원전산업 전반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지대하다”며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시민의 가장 큰 관심사가 원전 현안에 있는 만큼 민간이 주도하는 자율적 기구로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큰 버팀목이 돼 달라”고 말했다. 남홍 위원장은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지역의 위기는 위원들뿐 아니라 시민 모두가 공감하는 현안 문제”라며 “지역을 대표하는 위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시민의 뜻을 모으는데 최선을 다 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출범한 대책위는 앞으로 경주시 원전 정책에 대한 자문과 정책제안을 담당하게 된다. 정부 탈원전 정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월성원자력발전소 안전성문제, 원전관련 주요 현안사항, 그 밖의 원전관련 시정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 등에 대한 대책 등을 수립한다. 경주시는 이 같은 사항을 ‘경주시 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안’에 명시했다. 그러나 조례에 따르면 결국 대책위는 경주시의 지원 아래 출범한 범시민 차원의 민간주도 기구지만, 그 기능은 자문과 정책제안으로 한정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울진군의회와 지역 사회단체로 구성된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와 영덕군의 천지원전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정부에 탈원전 정책에 따른 피해보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활동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 이 같은 주장은 경주시가 직면한 원전 관련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 경주시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따른 세수 및 일자리 감소로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또 월성원전 내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의 포화시기가 2020년 6월로 예상되면서 월성 2∼4호기마저 가동 중단될 우려에 놓여 있다. 특히 월성1호기 조기폐쇄로 법정지원금 144억원, 지역자원시설세 288억원이 감소하고 전체 원전의 설계수명 10년을 연장하지 못하면 약 5000억원의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 이는 지역 주민 고용문제에서 원전종사자의 실직, 협력업체 침체, 소비 감소 등으로 이어져 지역경제에 미치는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지지부진한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사업 문제를 비롯해 원자력해체연구센터 등 원전관련 국책사업 유치 등 모두 열거가 어려울 정도다. 이로 인해 원전관련 현안에 대한 정부대책 마련과 국책사업 유치 등을 강하게 피력할 수 있는 대책위 산하 또는 민간주도 기구나 단체 설립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대책위 신수철 부위원장은 “이번에 출범한 대책위는 자문 중심 기구로 향후 상황에 따라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대책위 산하에 기구나 단체 설립을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경주시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비롯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지역주민의 피해를 보다 객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피해조사 용역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원전소재 지자체 행정협의회를 통해 원전 내 보관중인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한 지방세법 개정을 비롯해 탈원전으로 인한 지역개발 저해비용의 제도적 환수를 위한 ‘원전피해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문화도시에 걸맞게 교통문화 개선에 적극 나서야…
구독자 여러분, 시민·출향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경주신문 서울지사를 맡게 된 박근영입니다. 2018년도 다 기운 12월에 이렇게 중책을 맡아 여러분 곁에 서게 되니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특히 그간 소홀하게 여겨져 왔던 서울지역 지사를 맡아 앞으로 출향인분들을 비롯해 경주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소식들을 전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기도 합니다. 서울에 사는 경주 출향인들을 명부상으로 2만분 정도 보고 있습니다. 이에 오르지 않은 분들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몇 배가 될 것이라 짐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출향인 행사도 참가자는 400분을 넘기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물론 이정도만으로도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엄청난 숫자이며 지역별 혹은 직능별 모임에만 참여하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고려하면 적극적인 출향관계자들은 훨씬 많을 것이라 추산할 수 있습니다. 경주말에 ‘고향까마구’라는 게 있습니다. 편을 만들고 지역성을 돌출시키는 말일 수 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듣기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을 통해 고향까마구들은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경주 출신분들은 여느 도시 출신들에 비해 사뭇 다른 자부심과 향토애를 발휘하며 열심히 어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고향까마구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조차도 정작 필요할 때는 서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이 애향심 높은 분들이 고향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경주 입장에서도 이 충실한 출향인들을 경주 발전을 위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깝고 안타깝게 여깁니다. 이런 와중에 본지가 서울지사를 설립하고 제가 그 대표 역을 맡았습니다. 만만치 않게 막중한 자리이기에 해야 할 많은 활동이 있겠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출향인들을 연결하는 창구가 돼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연결은 출향인 사이를 넘어 경주와 연결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출향인사 상호와 경주가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가교역할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울러 경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와 경주를 위한 참여방법도 적극적으로 출향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소식들이 출향인들에게 필요한 지 탐구해 이를 보도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거꾸로 홍보하는 역할에도 충실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이 혼자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자의 시선과 노력에 달렸겠으나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민과 출향인 여러분이 끓임 없이 관심 가지고 도와주셔야 합니다. 더구나 저는 서울지사를 대표하기 이전에 더 근본적으로 경주신문 소속기자 중 한 명입니다. 고향과 출향인들을 위해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보다 가치 있는 기사와 반가운 소식으로 독자여러분과 시민, 출향인분들을 뵙겠습니다. 저희 신문과 서울지사에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