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집에 없다 -이문재 집이집에 없다.집이 집을 나갔다.안방이제일 먼저 나갔다.안방이 안방을 나가자출산이 밖으로 나갔다.윗목이 방을 나가자마루가 밖으로 나가자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마당이 마당 밖으로 나가자잔치가 사라졌다.다 나갔다.돌잔치 집들이결혼식 진갑잔치 팔순잔치병든 이 늙은이 외로운 이가다 집을 나갔다.그러는 사이죽음이 집을 나갔다.죽음이 집밖으로 나가 죽었다.집이 집을 나가자죽음이 도처에서저 혼자 죽어가기 시작했다.죽음이 살지 못하고저 혼자 죽기 시작했다. -집을 잃은 사람들 ‘집에 집이 없다’니! ‘집이 집을 나갔다’니! 그러나 계속 읽다보면 독자들은 그 ‘집’의 의미를 금방 눈치 채게 된다. 이런 변화는 편리한 아파트가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마루가 없어지고, 마당이 없어진 자리에 온갖 ‘산업’이 들어섰다. 대행사와 상조회사, 요양병원이 그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의례를 모두 집 밖에서 한다. 기실 모든 잔치는 집안의 내력과 가풍과 정서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집은 그 집을 거쳐간 사람들의 숨결과 애환을 간직한다. 예컨대, 돌잔치는 그 가문 속에 갓 들어온 새생명을 환영하는 자리다. 진갑잔치는 그 집에서 육십갑자를 살아오신 어른에 대한 경의를 보내는 자리다. 참석자들은 그 가문의 숨결을 느끼며 경건하게 그 자리에 스며든다. 집은 가문의 내력과 함께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자리다. 오래된 집일수록 삶과 죽음이 동거하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넘쳐난다. 이제 잔치가 나가고 병든 늙은이, 외로운 이들이 나가고 죽음마저 나가버리니 몇 억 짜리라는 상품으로서의 자산만 남았지, 집은 빈껍데기가 되었다. 이웃과의 담도 높아졌고, 형제간의 우의도 사라졌다. 집을 잃었다는 것은 나로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 시는 그런 점에서 현대인의 장소상실을 다루고 있다. ‘저만치’ 달려나가버린 집을 ‘안방’과 ‘윗목’과 ‘마루’를 마음으로나마 모셔 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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