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부친인 윤기중 선생이 얼마전 별세했다. 마지막으로 상당한 돈을 연세대에 기부하고 깨끗한 삶을 마쳤다. 그분의 이력을 살펴보니, 일본 히토쯔바시(一橋) 대학에서의 유학이 삶의 큰 전기가 된 것 같다. 나는 1989년 한국 법관 최초로 국비로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의 최고재판소에 근무하면서 히토쯔바시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있었으니, 그분의 히토쯔바시 대학 후배인 셈이다. 그분은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은 최초의 수혜자였다고 하고, 아마 나는 한국 국비로 일본 유학을 간 최초의 사람인지 모른다. 나 역시 보통의 한국인처럼 막연한 적개감을 안은 채 일본에 갔다. 귀국 후 히토쯔바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펴낸 ‘일본 땅 일본 바람’이란 책은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책은 일본사회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한 한국 최초의 책으로 안다. 이 책에서 나는 한국 사법부 구성원들의 일탈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이것은 큰 파문을 일으키며 결국 내가 법관직을 떠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그러나 책 전반의 내용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어떤 이는 이 책을 루쓰 베네딕트 여사의 ‘국화와 칼’이라는 책보다 뛰어나다고 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히토쯔바시 대학이라고 하면 우선 일본 제일의 명문 국립대학이다. 일본인을 만나서 내가 그쪽에서 공부를 했다고 말하면 거짓말 같지만 자세를 고쳐 앉는다. 명문답게 고색창연한 캠퍼스가 무척 아름답다. 매일 점심을 먹으러 연구실에서 나와 캠퍼스의 구석구석까지 산책했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겹게 그리운 풍경들이다. 히토쯔바시 대학의 스기하라(衫原) 선생은 내 일본인 스승이다. 어떤 겨울날 그분의 연구실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건물 전체에 난방이 들어오지만 그 연구실은 난방을 일부러 꺼놓아 한기가 심했다. 선생은 태연히 커피포트에서 끓인 물로 차를 우려내어 나와 함께 한 잔씩 마시며 추위를 삭였다. 평생 일본과 한국, 중국 3국의 평화공존을 원하여 헌법학 분야에서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셨다. 선생이 한 번은 일본에 오신 내 한국 은사 고 김철수 선생께, “신(申)상은 일본에 있으면 얼마든지 뻗어 나갈 사람인데,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니 무척 아쉽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그만큼 극진히 내 뒷받침이 되어주셨다. 귀국 후에도 히토쯔바시 대학에 자주 들렀다.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히토쯔바시 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와있던 이화여대의 신인령 교수와 마침 그곳에 있던 최봉태 변호사와 함께 히토쯔바시 출신의 우사끼(右崎) 교수 댁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일본인은 거의 자기 집에 손님을 초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단 초대를 하면, 농담 삼아 하는 말로 ‘기둥뿌리를 뽑는 식’으로 융숭하게 접대한다. 그날도 음식은 끝없이 나왔다. 그런데 너무 더웠다. 달랑 그 집에 있는 선풍기 한 대로는 땀을 식히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선풍기마저 우리를 위하여 옆집에서 급히 빌린 것이었다. 심한 더위를 견디다 못해 나는 그만 복통을 일으키고 말았다. 고 윤기중 선생이나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윤 대통령 역시 나처럼 그쪽 인사들과 정성과 진심이 어린 인간관계를 맺으며 큰 감명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윤 대통령의 대일정책 수립은 그 소년기의 경험, 그리고 부친의 일본에 대한 호의적 태도가 크게 영향을 끼쳤음이 틀림없다. 고 윤기중 선생과 대척점에 선 사람이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이다. 그는 운동권 세력이 주축이 된 지난 진보정권 하에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운동권세력의 전형적 배일(排日)관에 투철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모두 다 친일파’이고 “반민특위를 부활시켜 150만 친일파를 전부 단죄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까지 말하였다. 그는 또 대단한 반미주의자다. 어느 날 한국에 온 미국 여성학자의 면전에서 “나는 미국놈들이 싫다. 미국놈들은 악랄한 제국주의자들이다”라고 소리쳤다 한다. 그의 지독한 반미, 반일은 거의 광기 수준이다. 도대체 현기증 나는 그 광기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한일간의 사이에는 교착된 많은 앙금이 남아있다. 그것을 전제하며 한 마디로 말하자. 우리가 대일정책의 기본을 수립할 때 고 윤기중 선생이나 나의 구체적 경험 같은 것을 참고해야 할까 아니면 조정래 작가의 광기 어린 막연한 말 따위를 중시해야 할까?
‘우리는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면 그 상상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 중에서- 동일본 대지진으로 파괴 되었던 후쿠시마 원전의 삼중수소가 포함된 오염수 방류로 인해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과 유통을 전면 금지하였다. 일본 기시다 총리의 지역구에서도 원폭 피해단체들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성되며 그중 일부는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게 된다. 오염수의 위험성은 그 안에 포함된 물질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다르지만 아래와 같은 점들이 주요한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 첫 번째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삼중수소는 원전에서 배출되는 방사성물질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환경방사능 감시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이 물질은 생명체에게 피폭될 경우 DNA 손상, 세포 변이, 암 발병 등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속적 누출 가능성이다. 이번에 방류하는 오염수는 전 세계가 공유하는 바다로 방류하므로 인해 해양생태계, 해양 생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 번째는 방사능의 반감기가 워낙에 길어서 장기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방사능은 장기간에 걸쳐 환경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인류와 해양생태계는 수백 년 동안 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생태계 및 인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류는 여러 국가들에게 우려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우리나라 동해안은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에 있으며 어민들과 수산물 유통업체나 식당들은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경주시는 동해를 끼고 일본과 매우 가까운 도시이므로 오염수 방류로 인한 우려와 두려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경주시와 시민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투명성 확보다. 원전 오염수로 인한 영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교육 및 공유해야 한다. 소금 사재기나 수산물 거부 같은 불필요한 공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 전달이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감포, 양남, 양북 등 지역 어촌 어민들, 수산물 관련 업체들과 시와의 협력이다. 어촌 지역의 어민들과 함께 어획물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오염수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수산물 검사 강화와 대안 식품의 소개 및 권장은 물론, 오염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동해안 지역의 어민들을 위한 지원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더불어 국내 타지역과 국제적인 협력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 후쿠시마와 관련된 이슈는 단순히 한 지역이나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다양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지역 사회의 참여와 의견 제시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주시민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함께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며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민 참여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방안을 모아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주시는 지속적인 도시생태계통합관리 시스템 구축을 통해 환경에 대한 다양한 모니터링 및 긴급 대응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오염의 농도는 옅어지겠지만 오염수로 인한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만약 오염 수준이 예상보다 높아진다면 이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경주시와 동해안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큰 도전이다. 하지만 정보의 투명성, 협력, 시민 참여, 그리고 도시생태계통합관리 시스템 등을 통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정보공유를 통해 원전 오염수 방류로 인한 환경적 재앙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함께 머리맞대고 해결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경주서 2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2023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가 지난달 25일 14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해외 자매우호도시 중국 ‘양저우시’, 일본 ‘나라시’ 축구팀을 비롯해 전국 학교·클럽에서 201개팀, 1만여명이 출전해 1600여경기를 소화했다. 이번 대회에서 단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지난 4월 문을 연 국내 최초 정규규격 실내 축구장인 ‘스마트에어돔’이다. 이 시설은 1만752㎡ 부지에 107억원을 들여 정규규격 인조축구장 1면, 모래훈련장 1면, 전술회의실, 탈의실, 주차장 등을 완비한 사계절 전천후 축구 전문구장이다. 구장의 형태는 공기압을 이용해 기둥과 옹벽 없이 거대한 막 구조물로 돼있으며, 가로 120m, 세로 78m, 높이 25m 규모의 K리그 인증 구장이다. 특히 냉·난방 시스템을 갖춰 온·습도 및 기온, 강추위, 미세먼지 등 외부환경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 여름에는 영상 24도, 겨울에는 영상 18도, 습도 50%를 유지해 쾌적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다. 이 같은 장점으로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축구관련 221개 팀 6590명, 체육행사 11회 2700여명 등 총 9290여명이 이 구장을 사용하는 실적을 거뒀다. 이번 화랑대기에서도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1차 대회기간 48경기를 치렀고, 대회 마지막 날까지 다수의 팀들이 무더위 속에서도 쾌적하게 훈련과 연습구장으로 활용하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스마트 에어돔이 설치된 곳은 경주가 최초다. 이에 따라 전국 지자체, 관련기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건립 당시 제기됐던 안전성 관련 의문이 사용을 거듭할수록 해소됐고, 경주시의 새로운 스포츠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마트 에어돔의 장점이 확실해진만큼 이제는 스포츠와 연계한 특수목적관광을 개발해야 할 때다. 대회와 동계훈련 등을 이전보다 더 많이 유치하고, 경주의 풍부한 숙박·관광 인프라와 연계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스마트 에어돔의 활용방안을 더욱 확대하길 기대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법정문화도시 지정 사업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지난해 예비문화도시로 선정된 경주시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됐다. 문체부는 지난달 14일 제5차 예비문화도시로 선정된 16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와 간담회를 갖고 법정문화도시 지정평가를 중단한다는 결정을 공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19일 예정됐던 제5차 법정문화도시 선정을 위한 최종 현장실사가 취소되기도 했다. 중단 이유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국비로 지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또 기존 지정된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사업은 앞으로 지역의 자율예산으로 진행되며, 국비지원은 중단될 예정이라고 전해지면서 해당 지자체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경주시는 법정문화도시 선정을 위해 2020년부터 세 차례 도전 끝에 지난해 예비문화도시로 선정됐다. 이어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법정문화도시 선정에 힘써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그간의 노력들이 모두 헛수고가 된 셈이다. 특히 이번 문체부의 법정문화도시 지정 사업 중단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 사업과 결을 같이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기존 법정문화도시 사업과 본질적인 개념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권역별 문화도시 육성과 인근 도시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문화균형발전을 지향하는 광역형 선도모델이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은 지역을 광역시, 경기, 충청, 강원, 경상, 전라, 제주 등 총 7개 권역으로 나눠 최종 7개 도시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미 법정문화도시 선정된 지자체는 공모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들 2개 사업의 개념이 유사한데도 수년간 지속해왔던 법정문화도시 지정 사업을 지자체만의 사업으로 규정하고 중단한 이유는 석연치 않다. 이에 대한 문체부의 명확한 해명조차 없다보니 전 정부 사업 지우기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광역권으로 나눠 7개 도시를 선정하는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 사업은 경북도내에서만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된 경주, 안동이 있고, 또 많은 콘텐츠를 가진 시·군이 경쟁에 뛰어들 것은 자명하다. 이로 인해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됐던 경주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로서는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특히 문체부는 현재 사업취소가 아니라 사업중단이라는 애매모호한 입장만 전달해 지자체들만 혼란해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체부는 지금이라도 명확한 방침을 결정하고 공식발표해 더 이상의 혼선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새만금 대회는 끝났지만, 우리나라에서 잼버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방만한 행사 준비와 위기 상황에서의 부실한 대처 능력에 따른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아쉽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마치 쏟은 우유처럼 말이다. 하지만 벌어진 일을 어떻게 수습하고 해결할 지에 대한 과정은 어렵지만 매우 중요하다. 그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그 배운 바가 앞으로 어떻게 적용될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 새만금 잼버리는 여러분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여러분들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아흐마드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이 환송사에서 한 멘트다. 총장의 피곤한 기색도 이를 증명하는 듯했다. “그 어떤 행사도 이렇게 많은 도전과 극심한 기상 상황에 직면한 적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총장의 검게 탄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메시지는 반전된다. “역사상 그 어떤 잼버리도 여기 계신 스카우트와 같은 결단력, 창의성 및 회복력을 보여준 적도 없었지요!” 우리가 잼버리 사태의 책임이 전북도인지, 공항을 짓기 위한 정치적 장치였는지, 여가부인지 아님 중앙이나 국정상황실인지를 고민하느라 이번 행사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전 세계 대원들이 이번에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배워야 했던 덕목은 누가 뭐래도 스카우트 정신이다. ‘유쾌한 잔치’ 또는 '즐거운 놀이’를 의미하는 잼버리(Jamboree)의 목적은 캠핑, 하이킹, 스포츠, 문화 체험과 봉사 활동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교류하고, 스카우트 정신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 핵심 정신은 위기 극복을 통한 도전과 협력이고 우정과 평화다. 총장의 단호한 목소리는 결론까지 이어졌다. “여러분들은 시련에 맞섰고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으로 바꾸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돌아왔고(made it back) 잼버리는 재결합했습니다(we united our Jamboree)!” 지친 그들이 만들어낸 박수 소리는 우레 같았다.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의미였으리라. 어린 영웅들은 자신과 함께 한 동료들을 자랑스레 둘러봤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미션 완수에는 조력자들의 도움이 컸다. 외국에서도 유명하다는 k-치킨을 맛 보여주려고 직접 튀겨왔다는 치킨집 사장님부터 고생하는 대원들 생각에 빵이며 제철 과일이며 박스째 날라다 준 아저씨들, 길 가다 눈에 띄면 아이스크림부터 쥐여준 아주머니들, 화장실 청소를 위해 득달같이 달려온 시민들까지 딱, 한국 엄마(물론 아저씨 포함)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문화적으로 우리는 손님에게 약하다. 그래서 손님맞이에 진심이다. 그러니 처음으로 부모 손을 떠나 머나먼 한국까지 왔을 어린 손님들인데 말해 뭐 하겠나. 이참에 아주 그냥 K-엄마의 정(情)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빠져있다. 국민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뻘에 빠져있던 행사를 무사히 건져냈다고 안도할 때가 아니다. 자모(慈母)와 한 몸인 엄부(嚴父)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스카우트 운동에서 극기는 매우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극복하고 도전하는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잼버리에 참여한다. 산악자전거 타기, 수상 스포츠와 참가자들이 높은 곳에서의 도전 등 다양한 극기 체험 프로그램에 꼭 넣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새만금 잼버리에서는 폭염과 태풍 등 안전상의 문제를 K-pop 댄스 레슨과 전통 떡 만들기 등 견학과 관광으로 대체해 버린 것은 참 아쉽다. 이건 태풍이 와도 강행해라, 극기할 기회다! 식의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알맹이 빠진 대안이란 점을 환기하는 거다. 까진 무릎을 잡고 울고 있는 아들딸에게 아빠들은 보통 단호하다. “울지 마, 괜찮아. 아빠도 다 그렇게 배웠어. 너도 곧 아빠처럼 자전거를 타게 될 거야” 강하지만 속 깊은 아빠의 정을 배울 기회를 놓쳤다는 게 아쉬운 거다. 물론 태풍이 몰려온다는데 그런 프로그램을 뚝딱 만들 수는 없다. 그저 어린 손님들에게 균제된 엄부자모 정신을 맛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워서 괜히 딴지를 거는 거다. 아참, 이번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주제는 ‘너의 꿈을 펼쳐라(Draw your Dream!)’였다.
작원성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자료를 찾기가 힘이 든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서는 아예 이에 대한 언급이 없고, 『동경통지』에 1줄로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고, 『경주시지』에는 단지 8줄이 기록되어 있으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기가 더러 보인다. 어떻게 하지……? 문득 칠곡 망월사 동진스님의 책 ‘행복한 사람’ 속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행복한 사람은…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하고, 고독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한다. 건강하면 일을 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병이 들면 조용히 쉴 수 있다고 좋아한다.… 재난을 만나면 나를 단련시키고 마음을 비우게 해준 은덕에 고마워한다. 봉사할 일이 생기면 이웃을 돕고 기쁨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좋은 사람을 한 명 사귀면 만남의 길이 열렸다고 좋아한다. 이제부터 작원성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데 참고할 자료를 찾지 못해 막막하니 재난을 만난 셈이다. 그래도 이를 은덕으로 생각하고 나 자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옛 돌궐제국의 장군이였던 톤유쿠크의 비문에 적혀 있는 구절이다. 필자가 재직할 당시 교장 및 교감 자격연수 강의를 할 때, 그리고 경상북도교육혁신홍보대사를 하면서 교육혁신에 대해 강의할 때도 자주 인용하던 구절이다. 교육지도자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진취적인 자세를 가져야 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동·서 돌궐은 당의 지배기를 포함하여 160여 년간 존속하다가 결국 멸망하여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성을 쌓고 적의 침입에 대비한 신라는 천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런 엉터리 인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성을 쌓아 안으로 안정을 다지고 밖으로 나아간 신라 사람들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신라는 서라벌 가까이에서만 명활산성, 선도산성, 서형산성, 주사산성, 남산성, 관문산성 등을 쌓아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기에 천 년 가까이 역사를 이어왔다. 선덕여왕 지기삼사(知幾三事) 이야기에 의하면 바로 근처에 있는 부산(富山) 아래 여근곡(女根谷)에 백제 병사 500명이 매복해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으니 서라벌의 안전을 위하여 작원성을 쌓아 군사를 훈련하고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리라.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명활산성 등의 산성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작원성에 대해서는 그 자료가 거의 없다. 빈약하지만 문헌을 찾고 현장을 누비며 그 흔적을 더듬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필자가 퇴임 5년 후 지금까지 작원성이 있는 이곳 대곡에 160여 평의 밭을 마련하여 10여 년간 주 2-3회 이 지역을 드나들고 있어 주민들로부터 작원성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원고를 구상하고 있던 차에 평소 자주 만나던 주민과 작원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기대 이상으로 작원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성으로 가는 길은 자기가 건천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바로 통학로라고 했다. 그러고는 실제 성으로 안내를 하겠다며 앞장선다. 건포산업로에서 용명대곡 교차로로 내려와 대곡용명길을 따라 200여m 대곡 쪽으로 가면 용명에서 내려오는 개천 위에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 서쪽으로 1km쯤 가면 산을 절개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안내를 한 주민의 말을 들으면 옛날 이 길을 내면서 산을 잘랐는데 목재 등 성문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 성의 흔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토석혼축성으로 냇돌과 논흙, 개천의 흙으로 쌓았다. 다시 한번 더 살펴보기 위해 수일 후 좁은 농수로를 따라 이곳을 찾다가 자칫 길옆 수로에 차가 빠질뻔했다. 승용차로 현지를 답사하고자 할 때 각별히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성벽은 모두 무너져 곳곳에 그 흔적만 관찰될 뿐 원래의 모습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릉의 남쪽 높은 지점을 따라 이은 성(城)의 형태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산의 정상부 가까이에는 성벽의 열을 따라 곳곳에 무너진 성의 흔적으로 보이는 냇돌이 있고 주변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들이 간혹 보인다는데 실제 확인을 하지는 못했다.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이상국 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안 가본 데가 없는 비는 들을 지나고 징검다리를 건너와 추녀 끝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이 새고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장맛비, 세상을 무장해제시키는 힘 올여름은 유례가 없이 덥기도 했지만 비도 참 많이 내렸다. 처서가 지나고 여름 끝물에 들어선 요즘도 장맛비가 잦다. 비는 사람이나 짐승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시골에 살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공감할 수 있는 이 시에서 우리는 그것을 실감한다. 기승전결, 그 장면의 전환이 드물게 좋은 작품이다. 시는 이런 맛에 읽는가 보다. 비 오는 날 외양간에서 되새김질을 하며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는 소의 눈망울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바깥’ 대신에 “비가 오면/짐승들은 집에서/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라고 썼다. 소 한 마리에 세상이 딸려나온다. 이런 날에는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공치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또 시인은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쓴다. 우리는 여기서 지구와 세상이 호응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비가 오면 서둘러야 하는 것이 비설거지다. 빨래도 걷어야 하고,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도 들여놓아야 한다. 심지어 논에 베어놓은 보리나 밀을 서둘러 리어카에 싣고 와야할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물이 불어나면 냇가나 강을 건너는 게 큰 일이었다. 사고의 불길한 소식까지 건너오는 경우도 있었다. “낯선 마을의 불빛과/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에서 그런 기척이 느껴진다. 그렇다. 온 사방에 비가 내리니, 비는 “안 가본 데가 없”다. 심지어 “들을 지나고 징검다리를 건너와/추녀 끝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고 하다가, 다음 행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에 이르면 추녀 끝에 있던 것이 비인지 그대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이런 미적 감각이 이 시에는 있다. 끝부분에서 비는 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이 새고”라고 했지만 이 구절의 ‘낡은 집’은 시인이 거주하는 집이면서 시인의 몸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다. 시인은 결국 ‘나의 시 쓰기’로 마무리를 한다.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는 ‘내 몸’에서 “물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 쓰기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이 시의 구성이 탄탄하다는 이야기다. 장맛비가 올 때의 심정과 상황을 이렇게 차분하고도 힘을 빼고 쓴 시를 읽고 아, 하는 감탄을 나직이 내뱉는다. 그러나 그 소리도 빗소리가 다 데려가 버리는 저녁이다.
삶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만큼일까? 혹은 범위를 넓혀 친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또 얼마만큼일까? 핵가족 시대를 넘어 1인 가구 시대를 향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개념은 점점 더 옅어져 간다. 특히 노인들은 부부가 의존하면서 살다가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병이 깊어 움직이지 못할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괴리와 불안은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요양시설과 재가방문요양사들이 활약하지만 시설과 요양사들이 상실감까지 채워주지는 못한다. 자녀들이 다른 도시에 살 경우에는 삶이 더 난감해진다. 이런 경우 오히려 자녀가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상실감이 생긴다. 설혹 자녀들이 부모를 모신다고 해도 어느 한쪽이 자신의 영역을 떠나 한쪽으로 합쳐서 사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갖 의료기관과 발전된 문명 속에서도 고독사의 비율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셈이다. ‘오토(톰 행크스 분)’라는 노년의 남자가 있다. 성격이 까칠해 주변 사람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남자다. 그는 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한다. 오래전 사고로 아내는 하반신 불구가 되고 뱃속의 아들까지 잃고 만다. 그러다 그 아내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오토에게는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토가 죽음을 선택하기 직전 하필 그때 이웃에 이사 온 가족을 만나 얼떨결에 목숨을 지키고 새 이웃의 삶에 동화되어 간다. 이 영화의 전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평범하게 흘러간다. 도중에 몇 개의 사건과 사고로 극적인 재미를 주지만 전체적으로는 의혹과 갈등을 이기고 좋은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줄거리보다 더 눈길을 끄는 소재가 있다. 그것은 오토가 가지고 있는 심장병이다. 오토는 이 병의 진행 과정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병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고 유언장을 써두는 것으로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이끌어 간다. 그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숭고하고 경건한지 연민이나 슬픔보다는 위안과 평안이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서 과연 병원에서 삶을 이어가는 것과 자연상태에서 살다가 홀연히 떠나는 삶을 비교하게 된다. 오토는 후자를 훨씬 가치 있게 조명한 셈이다. 이 영화는 좋은 이웃이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주기도 한다. 오토는 가족이 없지만 삶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좋은 가족을 얻었다. 우리나라 1980년대 신조어 중의 하나로 ‘이웃사촌’이 있는데 이 영화는 이웃사촌을 넘어 ‘이웃가족’을 만들어 보여준다. 삶에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의 숭고함은 때로 가족이나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10일자 본지의 보도에 따르면 경주의 전체 가구 11만9353가구 중 1인 가구가 4만2790가구로 전체의 35.6%에 이르고 이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의 1인 가구가 1만 5272가구로 전체 가구의 12.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독거노인’에 대한 전면적인 정책개선과 제도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러나 정책과 제도가 독거노인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 사회 전반의 성찰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 성찰은 다름 아닌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다. 이제 언제 누가 독거노인이 될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내 부모에게도 관심 가지기 어려운 와중에 이웃의 노인을 어떻게 챙길까 고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토라는 남자가 혹은 오토라는 여자가 영화에서만 존재한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영화에서 오토의 이웃은 오토의 죽음을 간단하게 알아차린다. 날마다 눈을 치우던 오토가 그날은 늦도록 눈을 치우지 않았던 것이다. 오토를 찾아간 이웃은 싸늘하게 식은 오토의 곁에 놓인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시간을 미리 예견한 아름다운 배려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 자신을 가족처럼 아껴준 이웃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누군가 영화에서처럼 이런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그 마지막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경주 송화도서관은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1일부터 도서관 홍보와 독서활동을 장려하는 다양한 행사를 연다. 먼저 도서관 속 생태계라는 주제로 성인 대상 ‘작은 정원 꾸미기’, 초등학생 대상 ‘벌꿀체험과 제로웨이스트 샴푸바 만들기’ 특강이 펼쳐진다. 신청은 5일 오전 10시부터 경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선착순 접수한다. 송화도서관 로비에서는 ‘책 속에 나의 인생 문장’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자신의 인생 문장을 소개, 전시하고 기념품을 수령하면 된다. 또 어린이자료실에서는 매주 토요일(2일, 16일, 23일) 어린이 도서연구회 활동가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종합자료실에서는 ‘4050, 책이란 인생의 길’이라는 전시명으로 사서가 추천하는 도서를 전시할 예정이다. 세부 사항은 경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 또는 SNS를 참고하거나 송화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포은선생추모사업회가 주최하고 포은서예국제대전운영위원회가 주관한 ‘제6회 포은서예국제대전 교류전’에서 경주의 박양훈(69) 씨가 영예의 대상을 차지해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게 됐다. 고려시대 충신이자 유학자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고향인 포항에서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고자 마련된 ‘포은서예국제대전 교류전’과 ‘포은선생추모백일장 국제공모대전’ 입상자가 지난달 21일 발표됐다. 대상을 차지한 박양훈 씨는 서예 부문 한문전서 작품 이백 시 ‘춘야낙성문적(春夜洛城聞笛)’을 출품했다. 또 최우수상은 서예부문 한문 행초서 작품 윤계 시 ‘途中(길에서)’를 낸 도충현(포항시)씨가 선정돼 경북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우수상은 서예부문 한문 서만성·이용식·이윤환·임금자·정순태·허화지, 한글부문 강다은, 서각부문 이영진, 캘리부문 박경희, 외국부문 張靖宇(중국), 楊千瑩(대만), 麥錦超(홍콩), 歐中文(말레이시아) 씨 등 13명의 작품이 각각 선정됐다. 특별상엔 김영태·정만기·周繼中(중국)·呂令賀(중국)·張衛華(중국)·張富貴(대만)·葉潔華(홍콩)·李純瑩(말레이시아) 씨가 수상했으며, 문화상 김명헌 씨, 초대작가상에 김성환(전 한국서가협회 이사장), 김용석(대한민국미술협회 심사위원) 씨가 각각 선정됐다. 포은서예국제대전운영위원회는 최근 심사를 통해 이번 대회 최고상인 대상 1점, 최우수상 1점, 우수상 13점, 삼체상 60명, 특선 108점, 입선 199점, 특별상 8점 등 총 450점의 수상작품을 확정, 발표했다. 수상작 전시는 오는 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포항문화예술회관 전관에서 열리며 시상식은 10월 14일 오후 2시 포항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전국 및 국내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제2회 포은선생추모백일장 국제공모대전’에는 정하윤(포항 송림초 5년) 학생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5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 공모한 백일장에는 전국에서 210여명이 참가해 6, 7행시 운자 ‘문충공 정몽주’, ‘고려 충신 정몽주, ‘일편단심 정몽주’를 시제로 그동안 갈고 닦은 글솜씨 경연을 펼쳤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4일 오후 1시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상준·김살로메 심사위원은 “올해 포은선생 추모백일장 국제공모대전은 작년에 비해 응모 편수가 조금 늘어나, 국제 공모전을 표방한만큼 점점 커가는 규모에 심사자도 고무됐다”며 “대상을 받은 작품은 포은의 충성심과 절개, 포은의 인품과 학식, 그의 사상을 본받아 대한의 일꾼이 되겠다는 다짐 등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북도와 경북문화관광공사는 빗장이 풀린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짜이 경북’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다. 도와 공사는 지난달 23일 서울역에서 개최한 경상북도 중화권 전담여행사 간담회에서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이번 프로젝트를 채택했다. ‘짜이 경북’ 프로젝트는 중국어로 ‘다시’라는 의미와 ‘모든 것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 프로젝트는 중국 온·오프라인 네트워크 복원과 중국인 관광객 수용태세 개선, 전담여행사 중국 맞춤형 관광 상품 개발 등이 주요 골자다. 먼저 중국 온·오프라인 네트워크 운영 정상화 및 활성화를 위해 온라인여행사(OTA)를 통한 경북 관광 상품 홍보를 강화한다. 경북관광 인지도를 제고하고 TickTok, Ctrip 등 모바일 생태계를 적극 활용하는 등 중국 젊은 세대들에게 경북관광을 광범위하게 홍보할 방침이다. 오프라인으로는 한한령으로 운영이 위축된 중국 경북 관광 홍보사무소 운영을 재개해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또 중국 유소년 축구단(대련, 연태, 상해 등)과 중국청소년 예술협회와의 예술 교류도 재개한다. 이와 함께 대구·경북 연계 의료 관광단 유치와 중국어가 가능한 청년개척단을 현지여행사와 연계 운영해 경북을 홍보할 예정이다. 중국인 관광객 수용태세를 적극 개선하기 위해서는 2019년부터 공사가 시행한 음식 및 숙박업체 시설환경 개선을 지속해 관광 편의성을 제공한다. 또 중국어 간체 관광 홍보책자와 QR코드 식당 메뉴판, 입식시설 개선 등을 추진해 중국인 관광객의 불편이 없도록 특화된 맞춤형 수용태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유소년 문화예술 및 축구교류 수용태세 개선을 위해 기숙사 환경도 개선한다. 중국 트렌드 및 니즈를 반영한 경북만의 특화된 관광 상품도 개발한다.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외전담여행사와 협업해 쇼핑, 문화관광 상품을 적극 개발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12월 31일까지 입장료 50% 할인 행사도 연다. 공사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통합을 통해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엑스포 입장료를 50% 할인해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이외에도 공사는 경북 22개 시·군과 관광지 입장료 및 공연 등을 50% 이상 할인할 수 있도록 협의해나갈 계획이다. 공사 김성조 사장은 “‘짜이 경북’ 프로젝트를 통해 보다 많은 중국 유커들의 방문해 경북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경북 각 관광지에 유커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밝혔다.
월성원자력본부는 지난달 27일 ‘2023 한수원과 함께하는 경주 바람의언덕 전국 힐클라임 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사진> 이번 대회는 친환경에너지로 탄소중립 사회를 선도하는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가 주최하고 경주시 자전거연맹 주관, 경주시체육회와 경상북도자전거연맹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만 18세 이상 전국 남녀자전거 동호인 500여명이 참가했으며, 사전 참가 접수 이틀 만에 마감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경기코스인 경주 바람의언덕은 토함산 국립공원에 위치해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문무대왕면 장항리에 위치한 한수원 본사 일원에서 경주 풍력발전소까지 23km 거리다. 특히 힐클라임 코스 경사도가 최대 20, 평균 6.2로 오르막길이 혹독해 강한 체력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대회는 사이클 6개부, MTB 7개부로 진행되었고, 한수원 본사에서 기림사까지 왕복 약 16km의 퍼레이드를 거친 후 경주 풍력발전소까지 7km의 본경기로 치러졌다. 또 번외경기로 원자동, 아톰바이크 등 동호인들도 참여하며 대회를 풍성하게 했다. 대회 수상자는 △사이클(남) 1부·2부 통합1위 김민성, 3부 1위 박경일, 4부 1위 김특세 △사이클(여) 1부·2부 통합1위 김미소 △MTB(남) 1부·2부 통합1위 권기원, 3부 1위 최재식, 4부 1위 이주화, 5부 1위 장성만 △MTB(여) 1부·2부 통합1위 조선연 등 45명이 수상했다. 본 대회에 앞서 열린 개막식에는 선수와 관람객 포함 6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환영사에서 “원자력과 자전거는 친화경적이고 온실가스 배출도 없다는 점에서 닮았다. 친환경에너지로 국민의 삶을 편안히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주 화랑마을이 화랑전시관 내 생활밀착형 숲 ‘화랑 휴 정원’을 조성했다. 생활밀착형 숲 ‘화랑 휴 정원’은 산림청 주관 다중이용시설 내 생활정원조성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총사업비 10억원이 투입됐으며, 이중 5억원은 국비, 1억5000만원은 도비로 충당했다. 화랑마을 화랑전시관 내 조성된 ‘화랑 휴 정원’은 1~2층 실내정원에 345㎡, 3층 옥상정원에 643㎡ 규모로 꾸며졌다. 1~2층 실내정원은 공기정화 효과가 우수한 관목 및 초화류 총 35종 6631본을 식재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실내식물 성장에 필요한 생장조명은 물론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수목이름표, 경관조명도 설치했다. 옥상정원은 사계절 다양한 수종으로 총 40종 5852본을 식재해 공간을 극대화했다. 또 정원 속 휴식공간에서 치유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목재 스탠드 및 퍼걸러 등을 설치했다. 특히 자동급수 시스템을 도입해 적정한 습도 및 주기에 따라 자동 물주기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외에도 실내 공기 질을 측정하고 외부 공기와 대비되는 쾌적한 실내 공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공기질 자동측정 시스템도 설치했다. 경주 화랑마을은 생활밀착형 숲 ‘화랑 휴 정원’ 조성에 맞춰 9월 한 달간 기획 행사(이벤트)를 시행할 예정이다. 응모방법은 실내정원에 직접 방문해 나만의 사진 촬영 구역(포토존)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후 #화랑마을실내정원이라는 핵심어 표시(해시태그)를 달면 된다. 총 15명을 선정해 소정의 선물을 지급할 예정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화랑마을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암 발생기작이란 암이 발전하는 과정 중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반응 및 기타 병리학적 진행 과정을 규명한 것을 말한다. 개는 실험동물 중에서 사람과 자연환경과 동질의 먹거리를 수만 년을 함께 했기 때문에 개와 사람이 공유하는 질병이 많다. 개를 실험동물로 활용하여 사람의 불치병 치료의 회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이유이다. 개를 실험동물로 활용하는 연구 분야는 심혈관 연구, 심장수술, 골수이식, 골 접합술, 당뇨 연구, 수의학적 연구 등이 있다. 의학이나 생물학 분야에서는 해부를 통해 동물의 생체를 관찰하거나 유전적 특징, 성장 과정, 행동 양식 등을 연구하기도 하고, 때론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재료를 채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실험은 새로운 제품이나 치료법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의약품뿐만 아니라 농약이나 화장품, 식품 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오늘날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이 넘었다. 반려동물의 사회적 역할도 증가하고 있어, 반려동물의 건강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가증되고 있다. 반려견은 인간에 비해 수명이 짧고(소형견종의 경우 약 15∼16년, 대형견의 경우 10여년), 10살 이후부터 암의 발생 빈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암이 발생한 반려견은 기대수명 및 치료비용의 한계로 적극적인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었으나, 최근에는 반려견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수술과 항암치료 등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개의 암에 대한 병리학적인 형태와 연구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으나 유전자를 분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사람에 비해 적은 수의 개체에서만 실시되어 유전자 변이지도를 그리는 것은 불가능 상태였다. 최근 의학약학한국연구재단에서 유선암에 걸린 개의 유전자 변이지도에 관한 연구를 완료했다. 개의 유전정보는 이미 해독되었지만,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전체 유전체를 대상으로 유전자 변이지도를 만든 것은 의학약학한국연구재단이 처음이다. 유선암은 암컷 개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발생하는 암이다. 사람의 유방암과의 공통점 및 차이점에 대한 연구로 개 암의 치료 연구 모델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변이지도는 하나의 질병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유전변이의 종류와 빈도를 망라한 것이라 질병의 원인, 진단, 치료를 판별하는 데에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암에 걸린 반려견에 대한 적극적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고, 또 개와 사람의 비교 의학적 분석을 통해 사람의 암을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람에서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변이는 대부분 밝혀져 있고, 또 환자 각각의 유전변이를 토대로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는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가 실현되고 있다. 개의 경우는 사람과 유사한 모양과 과정으로 암이 진행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암을 일으키는 유전변이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선암이 발병한 반려견을 대상으로 종양 유전체 정보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전변이와 유전자 발현을 분석하여 유전자 변이지도를 완성하였다. 유선암에 걸린 개의 유전자 변이 지도와 사람의 유방암에서 변이가 나타나는 주요 유전자들이 서로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빈도로 변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람과 개 사이에 핵심이 되는 유전변이의 연구 성과는 사람의 유방암과 개의 종양 치료에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암에 걸린 개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한 결과와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개가 암에 걸리는 유전적 배경을 밝힌 연구 성과는 반려견의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또 개는 인위적으로 종양을 유발시킨 실험 동물모델과 달리 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반려견에서 자연적으로 생긴 암을 분석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람의 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사람에게 사용되는 표적 항암제와 차세대 항암제를 동물들의 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반려견의 건강 및 복지 증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사람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회 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을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르는 장소가 있다. ‘별일 없었습니까?’ 그리운 사람처럼 찾아가 안부를 묻고 싶은 곳은 박물관 뒤뜰의 고선사지 탑이다. 그리운 것들은 지금에 없거나 사라진 경우가 많다. 고선사지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경주에 흔한 것이 폐사지이지만 고선사지만은 좀 특별하다. 왜냐하면 탑이나 주춧돌이라도 남아 허전한 들판과 산기슭의 서정이라도 지키고 선 다른 폐사지와는 달리 고선사지는 물속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선사지는 3층 석탑과 서당화상비(誓幢和上碑)와 같은 귀중한 유물과 원효와 관련된 사복불언(蛇福不言)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1975년 덕동댐 건설로 석탑을 비롯한 금당 터와 비각들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선사지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29대 무열왕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선사지는 1탑 1금당 양식으로, 한 공간이 아닌 두 공간으로 나눠 배치된 특이한 양식이다. 이때부터 탑 중심에서 금당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학술적 비중이 높은 곳이다. 국보이기도 한 고선사지 3층 석탑은 감은사지 탑과 가장 많이 비교된다. 닮은 듯 다른 듯해서 같은 장인의 작품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감은사지 탑보다 미학적으로 우위에 두는 사람들도 있다. 사학가 고유섭 선생은 고선사지 탑에 대해서 모든 점에서 한국 석탑의 범례를 이루고 있으며 노성한 대인의 품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경주박물관장으로 재직한 강우방 교수도 고선사 탑이 자기 자리에 있지 못하고 수몰을 피하여 박물관 정원으로 옮겨진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 그런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저서『강우방 예술론,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1997년 1월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 부임한 이래, 박물관 뜰 한구석에 침묵하고 있는 고선사 석탑을 매일 찾는 일이 버릇이 되었다. 그 탑은 우람하여 그 앞에 서 있으면 나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진다. 커다란 화강암을 두부 썰 듯이 덤덤하게 판석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폼이 제법 대단하여 큰 맛이 넘친다. 고선사에는 원효보살(元曉菩薩)이 머물렀으므로 매일 이 탑을 돌았을지도 모른다. 암곡 절터는 유현(幽玄)한 자리였다. 산 중턱에 조금 넓은 평지가 있었는데, 좁은 계곡을 옆에 끼고 고선사 탑은 그 우람한 모습으로 산곡(山谷)을 메웠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원 구석에 서 있으니 집 잃은 처량한 신세여서 나의 마음조차 쓸쓸하다” 고선사지 탑에 대해 평소 느끼는 필자의 마음과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여 반갑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학자의 마음과 일반인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서당화상비는 원효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어 원효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손자인 설중업이 원효를 추모하기 위해 각간 김언승의 후원으로 세운 것이다. 서당이란 원효의 어릴 적 이름이다. 1914년 고선사의 옛터에서 3편으로 조각난 채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그리고 비신의 상단부는 1968년 동천동 부근 농가에서 발견되어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문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의 성명은 전하지 않고, 비에 글을 새긴 사람의 이름만 전해지고 있다. 전체 33행에 각 행은 61자로 추정되며, 문장은 4자와 6자를 기본으로 한 대구(對句)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사륙변려체이다. “수공 2년(686) 3월 30일 혈사에서 마치니, 나이 70이었다. 곧 절의 서쪽 봉우리에 임시로 감실을 만들었다. 여러 날이 지나지도 않아서 말 탄 무리가 떼를 지어 장차 유골을 가져가려 하였다” 비의 파편에 남아있는 기록의 일부이다. 원효에 관한 정확하고 확실한 기록인 한편 미스테리한 기록의 일부도 엿보인다. 어떤 이유로 유해를 가져가려 했을까? 사라져서 알 수 없는 뒷부분이 궁금해진다. 원효가 고선사지에 있을 무렵 사복불언(蛇福不言)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져 온다. 다음은 원효와 사복의 대화 내용이다. “태어나지 말기를, 죽음이 괴로우니. 죽지 말기를, 태어남이 괴로우니” 사복이 “게송이 복잡하다”고 하자 다시 고쳐서 하기를 “죽고 태어남이 괴롭구나!”라고 하였다. (“莫生兮, 其死也苦. 莫死兮, 其生也苦” “詞煩” “死生苦兮”) 고선사지는 생과 사의 진중한 문답을 이리도 쉽게 주고받는 사복 설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사복설화는 불교적으로 삶과 죽음, 윤회의 업보를 통해 현생의 정진을 말하고 있다. 원효와 사복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스님도「사복불언찬」이란 시를 지었다. 고선사지와 이웃한 마을에서 태어난 것도 인연으로 작용했는지 필자도 시 한 편 쓸 수밖에 없었다. 문학에 뜻을 세우던 젊은 날에 쓴 졸시「사복에게 배우는 시론」을 인용해 본다. 사복에게 배우는 시론 말 많은 세상 제대로 한마디 하기 위하여 무수한 형용사와 수식어의 숲 상징과 은유의 계곡 헤매이다가 겨우 찾아낸 금빛 은빛 이파리들 자신만만 펼쳐 보일 때 말이 너무 많다 말과 말사이에 섬을 만들어라 그 여백의 공간 물결치게 하라 이르는 당신의 말에 버리기가 아깝고 쓰기도 힘들다 하면 아예 쓰지를 말라 하네 말하기 위하여 말하지 않는 법을 늦은 밤 무릎 끓고 앉아 배우는 당신의 시론! 고선사지 탑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물속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물빛이라도 보이는 어느 곳 언덕배기에 다시 자리 잡을 수는 없을까? 그것마저 어렵다면 물가에 안내판이라도 설치하고 그 옛날 사진 한 장이라도 걸어두면 어떨까? 덕동호 둘레길이면 참 좋겠다. 그곳은 오어사, 기림사, 골굴사 등 원효의 길과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박물관 외진 구석 고선사지 탑에서는 원효의 숨결을 느낄 수가 없다. 탑은 산과 강,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야 제격이다. 고선사지 탑도 무장봉에서 알천으로 흘러드는 물소리와 동대봉산 넘어오는 동해 맑은 바람 소리를 그리워할 것이다. 실향민처럼 쓸쓸하게 서 있는 고선사지 탑, 남의 집 셋방살이하듯 불편한 기색으로 서 있음이 안타깝다. 눈을 감으면 종달새 나는 푸른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탑이 보인다. 물속의 절 갈 수 없는 그곳, 오늘 밤 꿈속 그 옛날 하얀 신작로 길을 따라 고선사지 찾아가면 왠지 뎅 뎅 뎅 종소리 들려 올 것만 같다. 원효의 법문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전인식 시인(시민전문기자)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는 경로당의 틀니사용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틀니세정 등 관리법교육을 진행했다. <사진> 틀니 관리는 소홀한 경우가 많고 치과검진 등에 대해 인식이 낮은 편이다. 틀니는 맞춤 후 일정 기간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 사용 초기 덜그럭거리는 등 불편함을 느낄 때는 치과에서 점검을 받으며 맞춰나가야 한다. 교육을 진행한 경로당 행복선생님은 틀니 세정제로 올바른 틀니관리법을 시연해보여 어르신들의 관심을 끌었다. 행복선생님들은 의치는 자연치와 다르므로 위생이 중요하고, 치약으로 세척하거나 끊는 물에 소독하는 경우 잇몸염증이나 틀니가 변형될 수도 있는 만큼 주의를 당부했다. 반면 전용세정제에 5분정도 담궈두면 99.9% 살균효과가 있어 구치유발, 틀니구내염, 곰팡이 균 등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으며 얼룩 및 플라그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노인회 경주시지회 행복선생님은 “평소 틀니 세정 관리법도 잘 알고 실천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을 상대로 틀니 관리법에 대한 교육을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경로당행복선생님 43명은 지난 7월부터 경로당 어르신들과 함께 복주머니에 건강과 향기, 관심과 칭찬을 전하는 미술·공예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진> 복주머니는 많은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손자녀에게 줄 용돈부터 경로당 화투놀이에 필요한 동전 넣어두기, 커피를 넣어 방향제 만들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폭염과 소나기에 지친 어르신들은 좋은 프로그램으로 전통문화도 느낄 수 있고 이색적인 활동에 즐거움과 함께 큰 호응을 얻었다. 노재원(이편한 세상 경로당) 회장은 “복주머니에 한방약재 넣어서 방에 걸어 놓는다고 어머님들 하신거 보시고는 부엉이 암수 한 쌍을 갖고 싶어진다”며 “방향제 아이디어가 참 좋은 시간이며 새와 꽃이 어우러진 복주머니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박경희 행복선생은 “부엉이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간까지 이어졌으며 1시간 동안 웃고 즐겁게 활동하는 모습은 행복과 건강이 저절로 다가오는 듯했다”며 “회원들 모두 참여해 다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아쉬워하는 회원들의 모습에서 두터운 정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복주머니 만들 때처럼 환한 미소, 행복한 마음으로 언제나 웃음가득하길 기원한다.
육군사관학교가 교정내 독립유공자 5인의 흉상을 철거하고 백선엽 장군의 흉상으로 대체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전국의 SNS들이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성토대열에 앞장서는 추세다. 특히 독립운동정신을 이어온 대표적 단체 ‘광복회(회장 이종찬)’는 지난달 25일, 국방부에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을 압박했다. 이 공개서한에 따르면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군 5인의 흉상을 제거하는 것은 일제가 민족정기를 들어내려는 시도와 같고 ‘독립운동 흔적지우기’라며 성토했다. 아울러 “광복회는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무 장관이 철거 계획 백지화를 국민들에게 밝히고, 혼란을 야기한 책임자를 찾아내 엄중 문책하기를 촉구한다”며 이를 시도한 주체와 배후인물들, 이유와 또 배경에 대해서도 국회차원의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이번에 국방부가 철거하기로 한 흉상은 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 광복의 빛나는 유공자들이다.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 봉오동 대첩의 홍범도 장군,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북로군정서 출신 광복군 이범석, 온 재산을 팔아 만주로 이전 신민회와 서전서숙을 설립한 이회영 선생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독립유공자들이다. 급기야 지난 8월 28일 여야를 막론한 비판여론에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핀셋 제거’하기로 했다가 분노의 불을 더 지폈다. 홍범도 장군을 빼는 이유가 장군이 독립운동시 소련과 협조했다는 것. 이종찬 회장은 이것은 더 용납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과 연합할 때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으로 정작 이 무렵 일제의 앞잡이로 독립군을 소탕했던 백선엽 장군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기 때문. 최근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와 함께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높아진 가운데 일어난 이번 흉상철거 논란은 미래지향적 외교를 구사한다는 정부의 주장과 동떨어진 친일행각으로 평가되며 국민적 빈축을 사고 말았다. SNS 세상에 던진 광복회의 한마디가 이번만큼 파격적인 적도 없었다.
기타 연주자 송영민 씨와 플루트 연주자 한주희 씨의 아주 특별한 연주회가 지난달 24일과 25일 학동역 삼익아트홀에서 열렸다. 기타와 플루트 음을 모스부호로 전환하고 이를 다시 빛에너지와 운동에너지로 바꾸어 전선으로 연결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실험적인 공연이었다. 이날 동원된 전구가 모두 300개이고 북, 징, 장고, 바라, 꽹과리가 로봇에 연결돼 움직이는 모습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기타리스트 송영민 연주자는 서울예술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며 특히 디지털 아트에 관심을 가지며 모스부호를 접목한 연주를 시도해왔다. ‘아직은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자체와 기술적인 접목에 더 집중하느라 전반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의 35%정도’라고 자평했다. 그만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다. 특히 이 공연이 빛으로 전환할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음악의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된다. “모스부호가 의외로 생활 속에 많은 쓰임이 있습니다. 부호를 통해 문장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좀 더 좋은 의미의 문장으로 공연해보고 싶습니다” 이번 공연은 모스부호의 의미에 맞게 창세기 1장1절 첫 말씀인 ‘거기에 빛이 있으라’를 음악으로 연주했다는 송영민 연주자는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모스부호와 음악의 접목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한편 이 공연에 앞서 모스 부호를 설명하기 위해 길고 짧은 표시를 해둔 목걸이 만들기 체험과 개인 명함 만들기 체험 시간을 만들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었다. 한 참가자는 ‘공연이 낯설었지만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관객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하며 빛과 움직임으로 승화되는 소리의 세상을 체험했다’며 새 연주를 높이 평가했다. 이번 연주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아트테크가 후원하고 삼익문화재단에서 장소를 협찬해 이뤄졌다.
교촌의 중심은 당연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주최부자댁 종택이다. 경주최부자댁이 교촌으로 이사온 이후 대대손손 지키고 살고 있으니 달리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최부자댁을 진정으로 최부자댁 답게 하는 중요한 공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최부자댁 앞에 넓게 펼쳐진 공터다. 넓이가 15미터, 길이가 60미터 정도 되는 이 공터는 마을의 중심축 역할을 하던 곳이다. 내가 어렸던 시절 이 공터를 왜 만들었는지는 몰랐으나 적어도 이 공터는 최부자댁이 처음 생길 때부터 있었던 공터였음은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공터를 큰마당이라고 불렀는데 마당치고는 이름 그대로 정말 넓은 마당이었다. 큰 기와집이 많다는 것 이외에 한적한 시골이었던 이 교촌에 도대체 왜 이런 넓은 마당이 필요했을까? 큰마당은 소통의 장이었고 정보전달의 공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누구 한 사람 뭐라 하지 않았다. 비록 만들어진 의도는 몰랐으나 큰마당은 마을 사람들이 크고 작은 일을 벌이는 중심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마을에서 철마다 여는 풍물놀이의 시작과 끝도 큰마당이었고 마을 공동의 큰 행사를 열 때도 이곳에서 했다. 아주 가끔씩 경주시에서 시민들 대상으로 영사기를 돌렸다. 그때마다 동네 통장 아재가 ‘오늘 밤에 큰마당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며 반드시 나와보라고 집집마다 알리고 다녔는데 ‘영화’라는 말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시간에 맞추어 큰마당으로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럴 때 큰마당에는 응당 넓은 차양이 하나 쳐진 후 그 아래 영사기 놓을 책상이 설치되고 영사기 맞은 편 10여 미터에 하얀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스크린 앞으로는 멍석과 가마니가 깔리고 동네 주민들은 다투어 좋은 자리를 찾아 않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영화란 것이 ‘대한뉴스’ 수준도 안 되는 홍보성 흑백 영사물이어서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도 시골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영사기를 통해 사진과 동영상이 자막에 비춰진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은 구경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큰 역할을 하는 곳이 이 큰마당이었다. 이 큰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윗마을이라 했고 서쪽은 아랫마을이라 불렀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수시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패를 갈라 공차기도 하고 걸핏하면 전쟁놀이도 했다. 전쟁놀이라고 했지만 이때의 놀이는 고무줄 새총과 활까지 동원하는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아이들끼리의 전쟁이어서 간혹 돌맹이나 화살에 맞아 다치는 아이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긴 몽둥이와 대나무 장대를 들고 휘두르다 보면 머리가 터지고 손이 깨지는 일도 흔했지만 된장 한 덩이를 바르는 것으로 대부분 부상이 무마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마당에서 하루종일 욕설과 함성이 난무하고 악쓰는 소리, 우는 소리, 웃는 소리와 온갖 난리굿을 떨었는데도 최부자댁은 물론이려니와 그 근처의 어느 큰 기와집에서도 동네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못 놀게 하거나 야단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최부자댁이 바로 근처에 있다고 해서 조심하거나 망설이는 아이들도 없었다. 가끔씩 공을 차다 공이 근처 큰 집들의 담장을 넘어가면 누구랄 것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대문으로 달려가 공을 주워오기도 했다. 큰마당의 기능은 또 있었다. 6~70년대는 텔레비전은 거의 없고 라디오도 한 집 건너 한 대씩 있었던 시대였다. 신문이 있었지만 신문 보는 사람은 어느 정도 살만한 사람이고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야 했다. 그런 만큼 국민들이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에서 비행기로 삐라를 살포했다. 내 기억에 일 년에 서너 차례, 아마도 3개월에 한 번쯤 삐라를 뿌렸을 것이다. 삐라가 뿌려지는 날은 파란 하늘에서 비행기가 날아가고 그 꽁무니로 하얀 종이가 마치 반짝이 비닐 가루 떨어지듯 흩날리며 내려왔다. 그 종이의 대부분이 큰마당과 최부자댁으로 떨어졌다. 하늘에서 보면 최부자댁 사랑채가 불에 타 공터처럼 변했고 큰마당이 목표점으로 보였을 테니 교촌에 삐라를 뿌린다면 그 두 지점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삐라가 뿌려지면 동네 아이들은 벌떼처럼 큰마당과 최부자댁으로 달려 들었다. 아이들은 경쟁하듯 삐라를 주운 이유가 딱 하나, 딱지를 접기 위해서였다. 종이 자체가 귀한 시절, 삐라는 딱지 접기에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재료였다. 그 내용은 대부분 대통령이 그려져 있었으니 보나마나 정부를 홍보하는 내용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그런 내용은 볼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삐라는 딱지로 사용되다 종국에는 아궁이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로 사용되며 원래 목표보다 훨씬 다양한 기능을 하며 최후를 마쳤다. 이런 대략의 일로 미루어 큰마당은 동네 주민들의 소통의 장이었고 정보전달의 공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최부자댁이 교촌에 들어오면서부터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나눔의 공간, ‘사방백리에 굶어죽은 사람이 없게 하라’ 그 역사적인 장소 이 큰마당에 대해 어린 시절 내가 들은 아주 특별한 쓰임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 할매’가 해주신 말씀이었다. “한 번은 억수로 큰 숭년이 져가 사람들이 마케다 굶어 죽을라 캤디라. 그때 이 마다(마당)서 가마솥을 질다랗게 걸어놓고 죽을 쏘가 농갈라 줬디라” 우리 할매는 돌아가실 때 연세가 여든넷이셨는데 그때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역산하면 1891년생이시니 경주의 근현대사를 다 보고 살아오신 셈이다. 그런 할매가 당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때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할매의 말씀은 내가 본격적으로 최염 선생님을 통해 최부자댁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큰마당을 왜 만들었느냐는 내 질문에 최염 선생님은 풍수적으로 대문 앞이 탁 틔어야 복이 들어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내가 할매께 들은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당신도 무릎을 치셨다. “맞아, 내가 어릴 때는 일제 강점기고 가산이 다 일본놈들에게 빼앗겼을 때라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흉년 들면 거기서 구휼했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 보통 죽을 쒀서 나눠주었는데 그걸 알려주신 분이 계셨구만!” 최염 선생님 당대에는 백성들에게 무얼 나누어 주지 못했지만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구휼 이야기를 오히려 우리 할매의 증언을 통해 들으신 최염 선생님은 무척 감회롭게 생각하셨다. 그때 문득 내가 경주의, 교촌에 살게 된 것에 대한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방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큰마당은 바로 경주최부자댁의 가장 큰 가르침인 이 가훈을 실현한 역사적인 자리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 큰마당이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또 다른 쓰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큰마당이 본격적으로 ‘요석궁’의 주차장으로 쓰인 것이다. 요석궁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있었지만 초등학교 들어간 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밀어닥치면서 그들을 실어나르는 대형 버스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이 되면 연이어 몰려드는 관광버스들로 인해 우리들의 놀이터는 중요한 하나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이 사라진 큰마당에는 동네 아지매들이 기념품을 들고 나타났다. 요석궁에 관광버스가 들어오고 버스 문이 열리면 동네 아지매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파는 물건은 자수정 목걸이, 조개나 복숭아 또는 살구씨로 만든 목걸이, 페넌트, 석가탑이나 다보탑 모형, 기타 경주 인근에서 파는 관광기념품들이었다. 그게 시중 상점과 품질은 비슷하면서 가격은 반 이하였다. 성가셔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내밀어 보이는 아지매들의 호객 소리와 짧은 일본어들은 큰마당의 새롭고 오랜 변화였다. 대형 관광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교촌을 둘러싸고 있던 길에도 변화가 생겼다. 계림을 지나 들어오던 작은 길이 어느 날 두 배 이상 넓어졌고 남천교 쪽에서 오던 길도 두 배 이상 넓어졌다. 취로사업을 통해 동네 주민들 상당수가 이 공사에 투입되었고 일요일에는 동네 학생들이 동원되어 크고 작은 돌을 골라내 길을 고르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 길로 하루에 수십대씩의 관광버스들이 드나들었다. 요컨대 지금 교촌을 드나드는 길의 기본적인 형태가 이때 만들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