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대회는 끝났지만, 우리나라에서 잼버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방만한 행사 준비와 위기 상황에서의 부실한 대처 능력에 따른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아쉽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마치 쏟은 우유처럼 말이다. 하지만 벌어진 일을 어떻게 수습하고 해결할 지에 대한 과정은 어렵지만 매우 중요하다. 그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그 배운 바가 앞으로 어떻게 적용될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 새만금 잼버리는 여러분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여러분들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아흐마드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이 환송사에서 한 멘트다. 총장의 피곤한 기색도 이를 증명하는 듯했다.
“그 어떤 행사도 이렇게 많은 도전과 극심한 기상 상황에 직면한 적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총장의 검게 탄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메시지는 반전된다.
“역사상 그 어떤 잼버리도 여기 계신 스카우트와 같은 결단력, 창의성 및 회복력을 보여준 적도 없었지요!”
우리가 잼버리 사태의 책임이 전북도인지, 공항을 짓기 위한 정치적 장치였는지, 여가부인지 아님 중앙이나 국정상황실인지를 고민하느라 이번 행사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전 세계 대원들이 이번에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배워야 했던 덕목은 누가 뭐래도 스카우트 정신이다. ‘유쾌한 잔치’ 또는 `즐거운 놀이’를 의미하는 잼버리(Jamboree)의 목적은 캠핑, 하이킹, 스포츠, 문화 체험과 봉사 활동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교류하고, 스카우트 정신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 핵심 정신은 위기 극복을 통한 도전과 협력이고 우정과 평화다.
총장의 단호한 목소리는 결론까지 이어졌다.
“여러분들은 시련에 맞섰고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으로 바꾸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돌아왔고(made it back) 잼버리는 재결합했습니다(we united our Jamboree)!”
지친 그들이 만들어낸 박수 소리는 우레 같았다.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의미였으리라. 어린 영웅들은 자신과 함께 한 동료들을 자랑스레 둘러봤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미션 완수에는 조력자들의 도움이 컸다. 외국에서도 유명하다는 k-치킨을 맛 보여주려고 직접 튀겨왔다는 치킨집 사장님부터 고생하는 대원들 생각에 빵이며 제철 과일이며 박스째 날라다 준 아저씨들, 길 가다 눈에 띄면 아이스크림부터 쥐여준 아주머니들, 화장실 청소를 위해 득달같이 달려온 시민들까지 딱, 한국 엄마(물론 아저씨 포함)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문화적으로 우리는 손님에게 약하다. 그래서 손님맞이에 진심이다. 그러니 처음으로 부모 손을 떠나 머나먼 한국까지 왔을 어린 손님들인데 말해 뭐 하겠나. 이참에 아주 그냥 K-엄마의 정(情)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빠져있다. 국민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뻘에 빠져있던 행사를 무사히 건져냈다고 안도할 때가 아니다. 자모(慈母)와 한 몸인 엄부(嚴父)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스카우트 운동에서 극기는 매우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극복하고 도전하는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잼버리에 참여한다. 산악자전거 타기, 수상 스포츠와 참가자들이 높은 곳에서의 도전 등 다양한 극기 체험 프로그램에 꼭 넣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새만금 잼버리에서는 폭염과 태풍 등 안전상의 문제를 K-pop 댄스 레슨과 전통 떡 만들기 등 견학과 관광으로 대체해 버린 것은 참 아쉽다. 이건 태풍이 와도 강행해라, 극기할 기회다! 식의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알맹이 빠진 대안이란 점을 환기하는 거다. 까진 무릎을 잡고 울고 있는 아들딸에게 아빠들은 보통 단호하다.
“울지 마, 괜찮아. 아빠도 다 그렇게 배웠어. 너도 곧 아빠처럼 자전거를 타게 될 거야”
강하지만 속 깊은 아빠의 정을 배울 기회를 놓쳤다는 게 아쉬운 거다. 물론 태풍이 몰려온다는데 그런 프로그램을 뚝딱 만들 수는 없다. 그저 어린 손님들에게 균제된 엄부자모 정신을 맛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워서 괜히 딴지를 거는 거다. 아참, 이번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주제는 ‘너의 꿈을 펼쳐라(Draw your Dream!)’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