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이상국
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안 가본 데가 없는 비는
들을 지나고 징검다리를 건너와
추녀 끝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이 새고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장맛비, 세상을 무장해제시키는 힘
올여름은 유례가 없이 덥기도 했지만 비도 참 많이 내렸다. 처서가 지나고 여름 끝물에 들어선 요즘도 장맛비가 잦다. 비는 사람이나 짐승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시골에 살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공감할 수 있는 이 시에서 우리는 그것을 실감한다. 기승전결, 그 장면의 전환이 드물게 좋은 작품이다. 시는 이런 맛에 읽는가 보다.
비 오는 날 외양간에서 되새김질을 하며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는 소의 눈망울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바깥’ 대신에 “비가 오면/짐승들은 집에서/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라고 썼다. 소 한 마리에 세상이 딸려나온다. 이런 날에는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공치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또 시인은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쓴다. 우리는 여기서 지구와 세상이 호응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비가 오면 서둘러야 하는 것이 비설거지다. 빨래도 걷어야 하고,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도 들여놓아야 한다. 심지어 논에 베어놓은 보리나 밀을 서둘러 리어카에 싣고 와야할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물이 불어나면 냇가나 강을 건너는 게 큰 일이었다. 사고의 불길한 소식까지 건너오는 경우도 있었다. “낯선 마을의 불빛과/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에서 그런 기척이 느껴진다.
그렇다. 온 사방에 비가 내리니, 비는 “안 가본 데가 없”다. 심지어 “들을 지나고 징검다리를 건너와/추녀 끝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고 하다가, 다음 행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에 이르면 추녀 끝에 있던 것이 비인지 그대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이런 미적 감각이 이 시에는 있다.
끝부분에서 비는 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이 새고”라고 했지만 이 구절의 ‘낡은 집’은 시인이 거주하는 집이면서 시인의 몸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다. 시인은 결국 ‘나의 시 쓰기’로 마무리를 한다.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는 ‘내 몸’에서 “물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 쓰기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이 시의 구성이 탄탄하다는 이야기다. 장맛비가 올 때의 심정과 상황을 이렇게 차분하고도 힘을 빼고 쓴 시를 읽고 아, 하는 감탄을 나직이 내뱉는다. 그러나 그 소리도 빗소리가 다 데려가 버리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