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만큼일까? 혹은 범위를 넓혀 친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또 얼마만큼일까? 핵가족 시대를 넘어 1인 가구 시대를 향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개념은 점점 더 옅어져 간다. 특히 노인들은 부부가 의존하면서 살다가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병이 깊어 움직이지 못할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괴리와 불안은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요양시설과 재가방문요양사들이 활약하지만 시설과 요양사들이 상실감까지 채워주지는 못한다.
자녀들이 다른 도시에 살 경우에는 삶이 더 난감해진다. 이런 경우 오히려 자녀가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상실감이 생긴다. 설혹 자녀들이 부모를 모신다고 해도 어느 한쪽이 자신의 영역을 떠나 한쪽으로 합쳐서 사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갖 의료기관과 발전된 문명 속에서도 고독사의 비율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셈이다.
‘오토(톰 행크스 분)’라는 노년의 남자가 있다. 성격이 까칠해 주변 사람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남자다. 그는 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한다. 오래전 사고로 아내는 하반신 불구가 되고 뱃속의 아들까지 잃고 만다. 그러다 그 아내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오토에게는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토가 죽음을 선택하기 직전 하필 그때 이웃에 이사 온 가족을 만나 얼떨결에 목숨을 지키고 새 이웃의 삶에 동화되어 간다.
이 영화의 전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평범하게 흘러간다. 도중에 몇 개의 사건과 사고로 극적인 재미를 주지만 전체적으로는 의혹과 갈등을 이기고 좋은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줄거리보다 더 눈길을 끄는 소재가 있다. 그것은 오토가 가지고 있는 심장병이다. 오토는 이 병의 진행 과정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병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고 유언장을 써두는 것으로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이끌어 간다. 그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숭고하고 경건한지 연민이나 슬픔보다는 위안과 평안이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서 과연 병원에서 삶을 이어가는 것과 자연상태에서 살다가 홀연히 떠나는 삶을 비교하게 된다. 오토는 후자를 훨씬 가치 있게 조명한 셈이다.
이 영화는 좋은 이웃이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주기도 한다. 오토는 가족이 없지만 삶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좋은 가족을 얻었다. 우리나라 1980년대 신조어 중의 하나로 ‘이웃사촌’이 있는데 이 영화는 이웃사촌을 넘어 ‘이웃가족’을 만들어 보여준다. 삶에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의 숭고함은 때로 가족이나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10일자 본지의 보도에 따르면 경주의 전체 가구 11만9353가구 중 1인 가구가 4만2790가구로 전체의 35.6%에 이르고 이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의 1인 가구가 1만 5272가구로 전체 가구의 12.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독거노인’에 대한 전면적인 정책개선과 제도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러나 정책과 제도가 독거노인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 사회 전반의 성찰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 성찰은 다름 아닌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다. 이제 언제 누가 독거노인이 될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내 부모에게도 관심 가지기 어려운 와중에 이웃의 노인을 어떻게 챙길까 고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토라는 남자가 혹은 오토라는 여자가 영화에서만 존재한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영화에서 오토의 이웃은 오토의 죽음을 간단하게 알아차린다. 날마다 눈을 치우던 오토가 그날은 늦도록 눈을 치우지 않았던 것이다. 오토를 찾아간 이웃은 싸늘하게 식은 오토의 곁에 놓인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시간을 미리 예견한 아름다운 배려가 그 속에 들어 있었다. 자신을 가족처럼 아껴준 이웃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누군가 영화에서처럼 이런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그 마지막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