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도심 한복판에 절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인 법장사다.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대릉원·황리단길 인근에 있지만, 호기심 많은 일부 외국인 관광객을 제외하면 대다수 관광객들은 이곳을 무심코 지나친다. 법장사는 도심 외곽이나 산자락에 있는 사
경주시 동부동 경주경찰서에서 동쪽으로 200m쯤 가다보면 경주읍성을 만날 수 있다. 지난 2018년 말 복원을 마친 읍성 동문인 향일문과 동쪽 성벽 일부다. 옛 신라 왕경을 품은 조선시대 경주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경주시는 현재 경주읍성 복원과
낮은 건물들 사이로 봉긋하게 솟은 신라 고분의 부드러운 곡선. 경주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그런데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 서편엔 특이하게 생긴 고분이 있다. 다른 무덤과는 달리, 낮고 평평한 모습이 마치 누군가 무덤 위를 뭉텅 잘라낸 것처럼
국립경주박물관 마당 한쪽엔 ‘에밀레종’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 있다. 봉덕사종(奉德寺鐘)으로도 불린다. 신종의 주인공인 신라 33대 성덕왕(재위 702~737)은 8세기 초반 35년간 재위하면서 통치체제를 정비하고 국가경
세련되고 독특한 조형미, 화려한 장식과 황금빛 찬란함…. 신라의 상징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신라 금관이 빠질 수 없다. 그중에서도 처음 세상에 나온 금관총(金冠塚) 출토 금관(국보 제87호)은 순도 90%에 육박하는, 보는 이를 신비로움에
일제강점기 경주엔 신라 문화유산의 보존을 명분으로 설립된 조선총독부의 관변 단체가 있었다. 1913년 5월 발족한 경주고적보존회다. 경주고적보존회는 재단법인으로 출발했는데, 1912년 11월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1852~1919)의 경주 방문이 설
경주는 찬란한 신라 역사를 품은 고도다. 하지만 경주엔 ‘신라’만 있는 게 아니다. 고려시대엔 영남지역 행정중심인 안동도호부가, 조선시대엔 경상좌도 감영이 설치됐던 도시다. 일제강점기엔 수많은 고대 유적을 기반으로 한반도 최고 관광지라는 명성을 누렸다. 경주읍성과 옛
경북 경주는 찬란한 신라 역사를 품은 고도다. 하지만 경주엔 ‘신라’만 있는 게 아니다. 고려시대엔 영남지역 행정중심인 안동도호부가, 조선시대엔 경상좌도 감영이 설치됐던 도시다. 일제강점기엔 수많은 고대 유적을 기반으로 한반도 최고 관광지라는 명성을 누렸다. 경주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