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설화, 오종수, 약사전 헌다벽화, 용연폭포, 안락국 태자 변상도, 원효와 김시습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가득하지만, 기림사가 우리나라에서 불상을 가장 많이 만든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17~18세기경 기림사에서 만들어진 불상들은 전국으로 공급되었다. 경상도뿐만 아니라 전라도, 강원도 그리고 제주도까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임진왜란으로 전국의 사찰이 불에 타거나 폐허가 된 곳이 많았다. 전쟁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중창 불사가 일어났고 파괴되고 훼손된 불상을 다시 만들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증가했다. 비교적 빨리 조각할 수 있는 연질의 돌이 기림사 주변에서 생산되었다. 이 돌을 불석(佛石)으로 불렀고 옥석(玉石)으로 부르기도 했다.
경주 불석(佛石)
경주 불석의 산지는 함월산과 천태산을 중심으로 문무대왕면 용동리, 호암리 일대이다.
경남 옥천사 사지는 불령산(佛靈山) 또는 불석산(佛石山)으로 기록될 만큼 신비감이 더해진다. 지금은 불상을 조각하는 이가 없지만, 용동리 마을 어른들이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불상을 만드는 사람이 더러 있었고 산에는 불석을 캔 채석 현장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는 규조토 또는 제올라이트(Zeolite)로 불리는 광물을 생산·가공하는 회사가 몇 있다.
제올라이트는 주로 화장품, 유기질 비료, 육묘용 상토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제올라이트는 분쇄하여 벼 육묘용 흙으로 많이 쓰이는데 영양 성분이 좋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벼는 미질이 좋고, 지역 특산품인 토마토 또한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올라이트 성분의 토질 때문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전국으로 간 기림사에서 만든 불상들
조선 후기 기림사에는 전국에 이름난 조각승들이 머물며 불상 제작에 참여했다. 완성된 불상은 점안식을 마친 후 전국 각 지역으로 이송되었다. 기림사에서 만든 불상이 존재하는 전국의 사찰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경기(서울 지장암, 김포 금정사, 평택 약사사) △강원(고성 무량사, 평창 월정사, 영월 보덕사) △전라(해남 대흥사, 강진 옴천사, 군산 상주사) △제주(정방사) △경남(창원 성주사, 고성 옥천사, 울주 문수사, 울산 보덕사, 기장 장안사) △경북(김천 직지사, 칠곡 송림사, 의성 수정사, 달성 유가사) 이외에도 조사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
군산 상주사의 경우 삼존불과 16나한상 등 총 26위를 유명한 조각승 승호가 조각했다. 기장 장안사 여래삼존불은 조각승 녹원의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창원 성주사 지장보살상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기림사에서는 주로 크지는 않고 수가 많은 천불전 불상을 많이 조성했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 김천 직지사 천불전, 서울 지장암 천불전 등이 대표적이다.
제작 시기는 김천 직지사와 서울 지장암이 1784년, 해남 대흥사가 1817년에 조성되었다. 서울 지장암 불상의 경우 이동 경로가 비교적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1784년 12월 기림사에서 259위를 조성 후 이듬해 정월 24일 점안식을 마치고 육로로 26일 출발하여 2월 4일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림사에서 출발하여 열흘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의 교통수단으로는 비교적 빠르게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은 주로 바닷길로 이송한 흔적도 보인다. 특히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재미가 있다.
기림사에서 간 해남 대흥사 천불전 이야기
해남 대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로 전라도 서남해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는 대찰이다. 서산 대사의 얼이 전해지는 호국사찰이자, 초의선사가 한국 차 문화를 선도했던 곳이다. 경주 기림사 불상들이 멀리 해남 대흥사로까지 오기까지 전해지는 이야기는 가공의 소설보다 재미있다.
1811년 화재로 소실된 천불전을 복원하기 위해 완호 스님은 제자 풍계 스님을 경주 기림사로 보내 천불상을 만들게 했다. 불상 조성은 경산(京山) 화원 9명, 영남 화원 24명, 전라도 화원 11명이 참여했다. 점안식을 마친 다음 장진포(감포 전촌)에서 완도 상선에 싣고 대흥사로 출발했다. 과적한 바람에 울산 장생포에서 큰 배인 함경도 홍원 상선에 768위를, 완도 상선에 232위를 두 척의 배로 나눠 싣고 오다 부산 근처에서 풍랑을 만났다. 작은 배는 항구로 피했으나 큰 배는 미처 배를 돌리지 못하고 표류하여 일본 오시마(大島)에 도착했다. 이후 나가사키현으로 송환되어 6개월 여 체류했다. 일본의 절에서 천불상을 모시려고 했으나 주지 스님 꿈에 ‘전라도 해남 대흥사로 가야지 여기는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꿈을 꾸고는 다시 대흥사로 돌아오게 된 사연이 있다. 일본으로 갔다 온 불상들은 다산 정약용의 권유로 다른 불상과 구분하기 위해 일본을 뜻하는 일(日)자를 왼쪽 등과 어깨 사이 표시하였다. 대흥사를 방문하여 이를 확인해 보고자 했으나 천불상들은 모두 금빛 가사를 입고 있었다.
기림사에서 만든 불상을 실은 배가 일본으로 표류하여 겪은 일련의 일들은 1821년 풍계 현정이 쓴 『일본 표해록』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대흥사 천불전 불상은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게 옷을 입고 있는데 옷을 입게 된 재미있는 선몽 이야기가 있다. 4년마다 옷을 갈아입히는 것 또한 선몽과 연결된다. 이는 멀리 있는 부산의 신도들이 주도하고 있다. 대흥사 천불전 앞 안내판에는 경주 기림사에서 옥석으로 만들었고, 일본으로 갔다 온 내용이 적혀 있다. 초의선사가 지은 대흥사 천불전 상량문은 명문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목침으로 끼워서 지은 건물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흥사를 방문하여 경주 기림사가 고향인 천불전 불상들은 마주하였을 때 묘한 감흥이 일어났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멀리까지 온 한 분 한 분 눈을 맞춰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비단 대흥사뿐만 아니라 기림사에서 만들어진 것을 알고 그 절을 찾는다면 느낌이 남다를 것이다.
기림사에 이런 기록들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국 개개의 사찰 기록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파악도 가능할 것이다. 이름 없는 작은 절과 암자까지 합하면 그 수가 엄청 날 것이다. 필자가 알아본 것은 어쩌면 조족지혈일 수도 있다.
기림사에 유명한 불상이 많다.
기림사에서 만든 불상들이 외부로 많이도 나갔지만, 기림사에도 유명한 불상들이 많다.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반가상(乾漆菩薩半跏像)은 다른 불상과 달리 나무로 틀을 만들고 흙으로 모양을 만든 후 삼베로 감아서 그 위에다 칠을 하여 만든 흔치 않은 불상이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불상을 모신 삼천불전은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기림사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옥으로 만든 삼천 위 부처는 하루 종일 헤아려도 다 못 셀 것이다. 이외에도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 관음전의 천수천안 관음보살상, 오백나한상도 있다.
2025년 10월경 원로사학자 강우방 선생님과 기림사를 동행한 적이 있다. 선생께서는 불상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관찰하며 감격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문화재의 소중함과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회였을 것이다.
기림사 불상 제작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기림사 때문만이 아니라 해남 대흥사 이야기를 비롯한 전국 각 사찰의 불상 조성기록을 통해서 기림사의 존재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경주의 문화콘텐츠, 기림사의 스토리텔링, 문무대왕면의 고향 이야기가 하나씩 늘어났으면 좋겠다.
전인식 시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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