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의 물
박목월
물이 된다. 자기의 중량으로 물은 포복할 도리밖에 없다. 한 사람에게 오십여 년은 긴 것이 아니라 무거운 것이다.
땅에 배를 붙이고 낮은 곳으로 기어가는 물은 눈이 없다. 그것은 순리, 채우면 넘쳐흐르고 차면 기우는 물의 진로進路. 눈이 없는 투명한 물의 머리는 온통 눈이다.
물은 땅으로 스며든다, 흐르는 동안에 잦아져 버리는 물줄기를 나는 알고 있다. 그 자연스러운 잠적潛跡은 배울 만하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에는 꽃잎에 현신하는 이슬방울.
나의 시詩.
나의 죽음.
하늘로 피어오른다. 그 날개를 가진 현란한 비천飛天. 그것은 헤세의 시에서 은빛 빛나는 구름으로 인생의 무상을 현현하고 안개로 화하여 서울 거리를 덮는다. 이 전신轉身과 윤회輪廻를 나는 알지만 또한 모르지만.
하지만 나도, 내가 노래할 시詩도 물이 된다. 오늘은 자기의 무게로 기어가는 물이지만 내일은 어린것의 눈썹에 맺히고 목마른 자의 가슴 속을 지나 당신의 처마에 궂은 가을 빗줄기로 걸리는 기나긴 역정歷程과 순회巡廻에
나는 순리順理와 전신轉身을 깨달을 뿐이다.
물의 순리와 전신을 통해 깨닫는 삶과 죽음
시인 역시 물이다. “자기의 중량으로” 포복하는 물. “ 한 사람에게 오십여 년은 긴 것이 아니라 무거운 것이다.” 아래로 처지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물은 ‘배’와 ‘눈’을 가진 동물적 형상으로 감각화되면서 “채우면 넘쳐흐르고 차면 기우는” 순리를 알고 있다. 1연에서 시인은 아직 물과의 본질적 거리를 가진다.
2연에서 물은 또 하나의 다른 속성으로 시인에게 나타난다. 잠적과 현신의 이미지로서다. 물은 하늘로 피어오르고 날개를 단다. 그러면서 꽃잎의 이슬방울과 안개로 모습을 드러낸다. 누워 있던 물은 상승되면서 투명화된 물로 응축(이슬)되거나, 공기와 결합되어 확산(안개)된다. 하강과 상승의 양가성은 소멸과 신생으로 연결되면서, 삶의 결정체인 시와 시인 자신의 죽음까지를 물의 섭리의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승화시키게 한다. 죽음은 “그 날개를 가진 현란한 비천飛天”이라는 몸 바꾸기로 가볍게 전신한다. 이 전신과 윤회를 “나는 알지만 또 모르지만”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시인을 보라.
이런 시인의 태도는 마침내 3연에서 “오늘은 자기의 무게로 기어가는 물이지만 내일은 어린것의 눈썹에 맺히고 목마른 자의 가슴 속을 지나 당신의 처마에 궂은 가을 빗줄기로” 걸린다고 함으로써 세대의 연속성과 윤회의 정신마저 수용하는 담담하고 관조적인 자세를 확보하게 된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노래할 시”에도 적용된다.
목월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던가를 묻는 독자들에게, 물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우리의 전통정신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시를 보여주고 싶다. 목월 시가 도달한 지점은 넓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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