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깃든 못이라는 뜻의 용담에 자리한 정자다. 신라의 왕릉이나 불국사처럼 널리 알려진 유적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정신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가 서려 있다. 1860년 음력 4월 5일. 오늘날 용담정이 자리한 이 일대에서 한 사람이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했다고 기록했다. 몸이 떨리고 신비로운 음성을 들으며 새로운 도(道)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다. 동학(東學)은 이 체험을 창도의 출발점으로 기억한다. 당시 누구도 그 일이 조선 사회에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경주 산골에서 시작된 가르침은 영남을 넘어 호남과 충청 등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신분 질서와 가난 속에서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의 귀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높고, 어떤 사람은 평생 낮은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가.
동학의 가르침은 이러한 질문을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늘을 섬기는 일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동학의 인간 존중 사상은 최제우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후대 교단의 활동과 사상적 발전을 거치며 더욱 뚜렷해졌다.
우리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장면들이 있다.
1919년 3·1운동의 독립만세, 1960년 대구 2·28민주운동과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를 거쳐 일어난 4·19혁명,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다. 우리는 이 장면들을 민주주의의 역사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시대에도 이 땅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백성이 살아갈 세상의 질서를 고민하는 사상과 운동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가 동학이다.
최제우는 1824년 경주에서 태어나 1864년 대구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은 박해 속에서도 동학을 지켰고, 3대 교주 의암(義菴) 손병희는 그 전통을 계승해 1905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했다.
동학은 개인의 종교적 깨달음에 머물지 않았다. 보국안민(輔國安民), 곧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이상과 광제창생(廣濟蒼生), 곧 널리 세상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지향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동학의 사상과 조직적 기반을 바탕으로 전개된 대규모 민중운동이었다. 농민들은 관리들의 수탈과 불합리한 제도에 저항하며 폐정개혁을 요구했다.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일대에서 운영된 집강소는 지역의 폐정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 기구였다. 운영 방식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농민들이 개혁의 주체로 나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1919년 3·1운동에서는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독립운동의 주요 세력 가운데 하나로 참여했다. 물론 동학이 곧 현대 민주주의였던 것은 아니다. 최제우가 오늘날의 국민주권이나 선거제도를 주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동학의 인간존중 정신과 평등의 지향은 한국 사회가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상적 자산이 되었다.
그 역사적 의미를 보여 주는 기록들은 세계적으로도 보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23년 5월, 동학농민혁명기록물 185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동학농민군과 조선 정부,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들이 역사의 귀중한 증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변화의 사상적 출발점은 어디였는가.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과 3·1운동의 민족 대표들을 기억하면서, 그보다 앞서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했던 최제우와 동학 창도의 장소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곳이 바로 경주 용담정 일원이다. 오늘날의 용담정 건물은 최제우가 수행하던 당시의 건축물이 아니다. 이후 다시 세워진 정자다. 이곳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건물의 연대보다 동학 창도의 장소로 전해지고 기억되어 왔다는 사실에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선언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이 조항이 동학에서 직접 비롯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는 근대 인권사상과 독립운동, 민주공화국의 수립과 민주화운동 등 다양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우리 역사에서 되짚어 볼 때, 동학이 남긴 인간존중의 정신은 결코 지나칠 수 없다.
프랑스의 바스티유 광장이 시민혁명의 상징으로 기억되듯, 경주 용담정 역시 한국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향한 새로운 사상이 싹튼 장소로 기억할 만하다. 한국 민주주의가 오직 한 장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여러 사상과 운동,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실천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향해 흘러온 여러 역사적 물줄기 가운데 하나가 경주 용담정에서 발원했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오랜 질서에 질문을 던지게 했는가.
다음 이야기는 출생의 조건이 삶의 기회를 가르던 시대에 태어난 한 아이, 수운 최제우의 삶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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