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정치가 그렇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내부 갈등과 계파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보다는 상대를 공격하고 같은 편끼리도 권력을 놓고 다투는 모습이 일상화되었다. 정치인의 무책임한 발언과 말실수는 반복되고 잘못에 대한 사과나 책임지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국민의 삶보다 정치인 자신의 생존과 진영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현실, 이것이 정상인가?
경제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많다. 주식시장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여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정부의 정책과 정치권의 발언 하나에도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식시장이 국가 경제의 성장과 기업의 가치를 반영하는 건전한 투자시장이 아니라, 국민의 기대와 불안을 자극하는 투기장처럼 비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는 주식시장의 상승을 성과로 내세우기보다 시장의 안정성과 신뢰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국민이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 피해와 불신은 국가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기업의 현실도 모순적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편중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세계적인 기업의 임직원들은 뛰어난 실적으로 높은 보수와 성과급을 받는다.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고 그 성과를 직원들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같은 대한민국에서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어느 기업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소득과 삶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누군가는 성과급으로 다른 누군가가 수년간 모아야 할 목돈을 받는다. 이런 격차가 개인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K-POP을 비롯한 음악과 영화, 드라마, 음식과 문화가 세계인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가 세계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세계가 우리의 문화를 배우고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 역시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분 좋은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창의성과 역량이 만들어 낸 자랑스러운 결과다.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는 세계의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기존 정치 질서에 논란을 일으켜 온 인물이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도 과거의 논란이나 비판과 관계없이 강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기와 자극적인 언행, 진영에 대한 충성심이 지도자의 능력과 도덕성보다 앞서는 사회라면 그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이 모든 문제를 정상화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 답이 국민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을 만드는 것도 국민이고 잘못된 정치인을 퇴장시킬 수 있는 것도 국민이다. 국민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지지를 보내고 그 사람의 잘못에는 눈을 감으면서 상대편의 잘못에만 분노한다면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선동에 흔들리지 않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누가 우리 편인가 보다 누가 일을 잘할 사람인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말보다 실천을, 인기보다 능력을, 과거의 인연보다 미래의 비전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경주도 다르지 않다. 비정상적인 지금을 정상화하는 출발점은 구호나 새로운 정치인이 아니고 바로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상식과 양심 그리고 책임있는 선택’이다. 우리 모두가 변하고 노력해야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회 분위기에 가깝고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는 정치인의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선택하고 감시하는 시민의 수준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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