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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히딩크 감독의 교훈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40호 입력 2026/07/16 09:53 수정 2026/07/16 09:58

오기현 <br>전 경주문화재단 대표이사확대
오기현
전 경주문화재단 대표이사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직후 방송사에서 ‘히딩크사단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팀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이 영웅으로 칭송될 당시, 그들을 도와서 그라운드 바깥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한 대표팀 스태프들의 숨은 노고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었다. 한국은 그때까지 월드컵 4회연속 본선 진출국이었지만 4무10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있었다. 공동개최국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2002년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필요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레알 마드리드와 네덜란드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세계적인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을 과감히 영입했고, 그의 요구를 전폭 수용해 10명이 넘는 초호화선수단을 구성했다. 이미 대회가 끝난 시점이라 히딩크를 비롯한 선수단 취재가 쉽지 않아, 제작진은 히딩크가 한국에 도착한 2001년 초부터 월드컵 경기가 끝난 2002년 6월 말까지 모든 영상자료를 수집하여 정밀분석했다. 그리고 거기서 한국팀의 선전이 대부분 히딩크의 지도방식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히딩크사단’의 비밀이 아니라 ‘히딩크의 비밀’이었던 셈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주제도 ‘히딩크사단의 비밀’에서 자연히 ‘히딩크의 리더십’으로 바뀌었다.

2001년 1월 한국에 도착한 히딩크는 전문가들에게 한국축구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투지’를 꼽았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한국축구의 무기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히딩크의 분석은 정반대였다. 체력이 한국축구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히딩크는 한국팀을 맡자마자 우선 한국대표팀을 새로 구성했다. 당시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평가 받았지만 몸싸움에 소극적이었던 이동국을 제외하고 경기 내내 쉴새 없이 뛰는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등 올라운드 플레이어 중심으로 대표팀을 재편했다. 수비는 몸싸움이 뛰어난 최진철, 김태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체력훈련에 집중했다. 이를 지켜본 한국의 축구지도자들은 히딩크의 훈련방식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히딩크가 한국축구의 현실을 잘못 파악하여 큰 오류를 범한다는 지적이었다. 급기야 체코와 친선경기에서 5대0, 프랑스와 친선경기에서 5대0으로 연달아 패하자 우려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당장 훈련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월드컵에서 망신을 당할 거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히딩크에게 ‘5대0’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히딩크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대표팀의 체력이 최상승하는 시점을 월드컵 기간으로 잡고 체력훈련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월드컵 직전인 2002년 5월, 이전대회 우승국인 프랑스와 친선경기에서 한국팀은 2대2 무승부를 기록했다. 경기결과와 별개로 한국팀의 체력이 프랑스팀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체력적 강점은 월드컵 본선 경기내내 이어졌다. 축구계는 한국축구의 과학적 훈련방식이 처음 도입된 시점을 대체로 히딩크 감독 때라고 본다. 당시 꿈나무 육성선수로 뽑혀서 히딩크 감독 아래에서 훈련을 받아 본 최성국 선수는, 감독이 그날의 훈련 목적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처음 경험해봤다고 털어놨다. 이전에는 감독들이 ‘운동장 10바퀴 돌아!’ 혹은 ‘슈팅 100회씩!’이라는 식의 지시만 했지, 왜 운동장을 10바퀴 돌아야하는지 혹은 슈팅 100회 연습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고 한다. 사소한 차이였지만 선수들의 성취동기 부여에 많은 도움이 되는 훈련방식이었다. 감독은 늘 근엄한 표정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꾸었다. 그는 농담을 즐겼고 선수들은 감독을 ‘할배’라고 부르며 재미있게 훈련에 참여했다. 즐거우면 자발성이 배가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유독 세계적인 선수가 많이 배출된 것은 역시 히딩크의 지도방식 덕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고주의 타파’의 성과물이다. 네덜란드 파르세벨트에서 태어난 히딩크 감독이 한국의 출신지와 학벌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오직 기량만으로 선수들을 선발했다. 앞에서 언급한 박지성, 이영표, 최진철, 김태영 외에도 김남일, 이을용, 설기현 등은 2002 월드컵 이전까지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선수선발에 대중적인 인지도나 경력은 철저히 배제됐다. 선후배 문화도 바꾸어놓았다. 경기중 선배가 잘못하면 후배도 지적하라고 독려하고, 식사시간에도 선후배가 섞여서 앉도록 유도했다.

한일월드컵이 열린 지 24년 지났다.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예선탈락을 한 한국대표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론이 드세다. 국회청문회도 예정되어 있다. 연고주의가 감독선임의 절차적 정당을 훼손하고 선수선발과 기용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 때문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아직도 인맥이 작용한다면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비단 스포츠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연고주의는 능력 있는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고 성장을 가로막으며 결국 집단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고질적인 연고주의가 없는지 한번 둘러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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