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문태준
소나기가 지나가고 활 같고 낫등 같은 무지개가 여름 하늘에 걸렸습니다 무지개는 측백나무 위에, 널어놓은 내 젖은 비옷 위에, 칸나 위에, 다시 붉은 꽃 주변을 어정거리는 흰나비 위에, 저르렁 울려오는 소읍의 유희와 소음 위에 떠 있습니다 무지개는 한가운데가 높고 양쪽 끝은 여름 과일즙처럼 하늘의 큰 유리컵에 담겼습니다 무지개 아래에는 이층 양옥집이 있고 볼일 보러 사람이 나가고 슈퍼마켓과 세탁소와 식당은 붙어 있습니다 숲은 옹기종기 웅크려 있고 새는 사방으로 흩어지지만 무지개의 궁륭 지붕을 벗어나기 않습니다 나는 언덕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호른 소리가 들려오는 무지개 아래로 들어갑니다 하늘의 무곡(舞曲)인 무지개는 내가 다 올라설 때까지 나를 기다립니다 웬일인지 오늘의 이 무지개는 높은 언덕 위에 수정(水晶)을 소복이 쌓아 놓고선 물러가지 않습니다
무지개, 그 둥근 모성의 성채
“활 같고 낫등 같은 무지개”라는 말에서 우리는 얼마나 토속적이고 농경사회적인 비유를 보는가? 그는 확실히 우리 삶에 밀착하고 있지만 오늘, 여기의 일상으로 넘어간다. 무지개는 “측백나무 위에, 널어놓은 내 젖은 비옷 위에, 칸나 위에, 다시 붉은 꽃 주변을 어정거리는 흰나비 위에, 저르렁 울려오는 소읍의 유희와 소음 위에” 공평하게 떠 있으며, 이층 양옥집과 볼일 보러 가는 사람, 슈퍼마켓과 세탁소와 식당, 숲과 흩어지는 새를 다 안고 있다. 자연의 자잘한 세목, 동식물과 소읍 사람들의 삶을 다 어머니처럼 품어안고 있다는 거다.
시인은 자연과 우주가 인간과 함께 호흡하고 교감하는 교감하는 연기적(緣起的) 존재임을 어머니 품같은 무지개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모성의 무지개, 이 바탕 위에서 이 시는 역동적인 비유의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다. 무지개라는 자연 현상은 시인의 시안을 통과하자 더없이 풍요로운 우주 생명의 비경(祕境)이 되어 눈앞에 선연하게 다가온다.
“활 같고 낫등 같은 무지개”에서 출발한 비유는 “무지개는 한가운데가 높고 양쪽 끝은 여름 과일즙처럼 하늘의 큰 유리컵에 담겼습니다”에서는, 무지개가 하늘의 유리컵에 담긴 과일즙으로 투명하고 역동적인 생명으로 비약한다. 모성이 하늘과 연결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 비유는 “호른 소리가 들려오는 무지개 아래로 들어갑니다”에 이르면 무지개가 호른이라는 거대하고 둥근 악기가 되는 경이에 이른다. “하늘의 무곡(舞曲)인 무지개”의 궁륭 아래로 들어가는 발걸음의 황홀을 생각해 보시라. 더욱이 무지개는 내가 들어갈 때까지 “높은 언덕 위에 수정(水晶)을 소복이 쌓아 놓고선 물러가지 않”고 있으니! 더할 수 없는 모성의 장엄함이라니!
푸른 잎사귀에 여름비의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빗방울의 심장이” 뛴다고, 빗방울의 심장이 심벌즈를 닮은 “바라(의) 춤을” 춘다고(「잎사귀에 여름비가 올 때」), 소금 같은 ‘귤꽃’의 향기를 “홑겹 이불로 덮고/요로” 깐다(「귤꽃이 피는 동안」)고 했던 시인이 도달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비경 속 어느덧 우리의 본모습과 마주하는 소홀치 않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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