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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년 전 신라 공주 장례 복원한 쪽샘 44호분

오선아 기자 suna7024@hanmail.net 1742호 입력 2026/08/06 12:55 수정 2026/08/06 13:07
“도면과 직접 몸으로 부딪친 현장은 달랐다”
오랜 학계 통설 뒤집은 실험 고고학

시신과 부장품 안치 후 모습. <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확대
시신과 부장품 안치 후 모습. <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붉은 안료인 주(朱)가 흩뿌려지고 토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금동관과 은허리띠를 차고 열 손가락에 반지를 낀 10세 전후 어린 공주의 모습이 1550년의 시공간을 넘어 현대의 눈앞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지난달 17일과 20일 선보인 ‘경주 쪽샘 44호분 장례 재현식’에서는 10년간 무덤 1기를 전면 해체하고 제자리에 다시 쌓아 올리며 신라 왕족 장례의 실체와 학술적 진실을 입증해냈다. 세계 고고학사상 초유의 결실이다.

1550년 전 왕실의 권위와 부형의 슬픔이 서린 이 정교한 고대 유산을 1차 축조 실험이 끝나는 오는 10월 이후 다시 흙으로 덮어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시민과 세계가 함께 향유할 역사 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것인가. 보존과 활용이라는 갈림길 위에서 현장을 지켜온 연구진의 노고와 임승경 소장의 진솔한 철학을 통해 경주 문화유산이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미래 가치를 짚어본다.


1550년 만에 드러난 붉은 안료와 비단벌레의 빛깔


경주 쪽샘지구 한가운데 자리한 발굴관 현장,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열기 속에서도 정적이 감돌았다. 1550년 전, 5세기 후반 신라의 10세 전후 어린 공주를 떠나보내던 당대의 마지막 장례 의식이 현대의 눈앞에 완벽히 재생되는 순간이었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최근 선보인 ‘경주 쪽샘 44호분 장례 재현식’은 국내는 물론 세계 고고학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실험 고고학의 결정판이다. 지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동안 무덤 1기에 대한 전면 해체 조사를 마친 연구진은 2024년부터 무덤이 있던 원래 위치, 원래 크기, 원래 형태로 다시 돌과 나무를 쌓아 올리는 초유의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내덧널 뚜껑 닿는 모습. <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확대
내덧널 뚜껑 닿는 모습. <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이번 장례 재현식은 축조 공정 21단계 중 10~12단계에 해당하는 ‘시신 및 부장품 안치, 매장 의례’ 과정이었다. 동쪽 제단에서부터 외덧널 주변으로 고대 붉은 안료인 주(朱)를 흩뿌리고 토제 방울을 흔드는 의례가 진행됐다. 주인공인 어린 공주는 금동관과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허리띠를 착용하고 열 손가락 모두에 반지를 낀 화려한 모습으로 노출돼 안치됐다. 공주의 얼굴 주변으로는 영롱한 돌비늘(운모)이 뿌려졌고, 돌단 위에는 400여 마리의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된 화려한 말다래(말 타는 이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마구에 늘어뜨리는 판)가 놓였다.

그동안 발굴 현장에서 파손되고 부식된 2차원적 흔적으로만 확인되던 고대 신라인의 매장 관념이, 마침내 3차원의 생생한 행위와 공간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제사장이 붉은 안료를 흩뿌리는 모습. <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확대
제사장이 붉은 안료를 흩뿌리는 모습. <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추측은 틀렸다” 실험고고학이 밝혀낸 뜻밖의 진실들


이번 장례 재현을 통해 학계의 오랜 통설이 뒤집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직접 1550년 전의 방식대로 돌과 나무를 얹으며 몸으로 부딪쳐보는 과정에서 머릿속으로 그리거나 도면으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학술적 진실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순장자의 안치 시점이다. 당초 학계에서는 무덤 주인공을 안치하고 그 주변에 순장자들을 배치한 뒤 내덧널(내곽) 뚜껑을 덮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13매의 두꺼운 목재 판재와 48개의 철제 꺾쇠로 조립된 무게 500kg 상당의 내덧널 뚜껑(가로 4.3m, 세로 2.6m)을 실제로 제작해 올려보는 과정에서 거대한 반전이 일어났다. 이 육중한 뚜껑을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덮기 위해서는 주인공을 안치한 직후 뚜껑을 먼저 덮고, 그 이후의 의례 단계에서 순장자들을 안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실용적 마구가 아닌 순수 장례용품으로 제작된 비단벌레 장식 말다래가 시신보다도 맨 나중에, 가장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위치에 올려졌다는 점도 새로이 밝혀졌다. 관을 사용하지 않고 시신 그대로를 화려하게 노출한 점, 그리고 화려한 꽃잎 모양의 마구 장식 등은 당시 마립간을 비롯한 신라 최고 권력층이 어린 공주의 죽음을 신라 국력과 왕실의 권위를 안팎에 과시하는 정치적 무대로 활용했음을 입증한다.


부장품 안치 모습. <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확대
부장품 안치 모습. <사진=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보존과 활용의 갈림길 “경주의 유산은 시민과 세계의 자산”


이 거대한 학술적 성과의 중심에는 묵묵히 현장을 지켜온 연구진의 노고와 함께, 임승경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장의 신중하면서도 진솔한 소신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13년간 막대한 예산과 공을 들여 발굴조사하고 실험한 이 유적을, 실험이 끝난 뒤 여타 무덤처럼 흙으로 덮어서 복원해야 하는지 물으십니다. 기존 방식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과, 수많은 예산을 들인 만큼 상설 활용해야 한다는 학계의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문제는 연구소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으며, 실험이 끝난 후 경북도 및 경주시와 긴밀히 협의하여 보관 및 정비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임 소장은 연구소가 학술 조사라는 본연의 임무를 엄격히 수행하면서도, 그 과정과 가치를 독자와 시민들에게 정직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경주는 국가유산의 보물창고입니다. 우리가 유적 위에서 발굴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쪽샘유적발굴관’을 국내 최초로 세운 이유도, 학술적 연구 성과를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춰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시민과 방문객들이 발굴과 연구의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할 때, 비로소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자긍심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임승경 소장. 오선아 기자확대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임승경 소장. 오선아 기자



덮어둘 것인가,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쪽샘 44호분 축조 실험은 오는 10월 돌무지와 덧널 축조 공정을 끝으로 1차 단계가 마무리된다. 이후 봉분까지 완벽히 쌓아 올리는 2차 실험으로 나아갈지, 혹은 현 상태를 정비해 시민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문화·교육 공간으로 활용할지는 경북도와 경주시, 그리고 지역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10년에 걸친 발굴과 이후 축조 재현을 통해 1550년 전 신라 고분의 축조 기술과 매장 의례를 입증해 낸 만큼, 이 유적이 연구소 내에만 머물지 않고 경주 시민의 일상 속에서 문화적 가치를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승경 소장 역시 유적의 보존과 상설 활용을 두고 지자체와의 정직하고 긴밀한 협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올가을 1차 축조 실험이 완료되는 쪽샘 44호분 현장은 신라 고고학의 중요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다. 나아가 경주시와 관계 기관이 유적의 향후 정비 및 활용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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