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그 자체만으로 멋지지만, 젊음은 불안과 동의어기도 하다.
아줌마의 예를 들어보자.
오십대. 늙었다, 모르는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십대가 된 아줌마는 여전히 성장 중이고, 덜 컸고,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사십대. 삶의 목표는 다 이루고 삶에 대해 불평만 하는 기성세대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사십대 때 아줌마는 여전히 삶에 대해 불안했고, 노후에 대한 불안,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젊었을 때 생각했던 사십대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삼십대. 이십 대였을 때 삼십대 때는 완전 아저씨였다. 원하는 직장에 다니며 원하는 일을 하며 안정을 찾아가는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줌마의 삼십 대는 이십 대의 불안이 증가한 시기였을 뿐이다. 주변에서 나름 성공한 또래가 있다면 그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십대. 젊음 그 자체, 대학의 낭만과 가능성의 나이. 하지만 이십 대의 아줌마는 가능성보다는 한계를 경험하고, 그 한계 밑,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십대. 공부만 해야 하는 나이. 공부를 잘 해야 대접받는 나이. 아줌마는 수학을 좋아했고 영어는 몰랐다. 수학 시간에는 우쭐했고 영어 시간에는 선생님의 시선을 피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둘 다 경험한 나이였다.
다시 젊음을 얻는다면 좋을까?
지금의 경험과 기억을 갖고 갈 수 있다면 다시 젊은 나이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냥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줌마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아줌마의 삶이 다시 리플레이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그냥 지금에 충실하련다.
요즘 젊은 친구들보다 아줌마는 그래도 덜 불안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인터넷문화라고 아줌마는 생각한다. 아줌마 때는 TV와 신문이 다였다. 매체의 성격상 엄청나게 성공한 인물들이 나오더라도 많이 거론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터넷 문화가 일상이 된 지금, 성공의 기준이 달라졌고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고, 나만 흙수저인 것 같다. 가능성, 희망보다는 포기와 좌절이 쉽다.
어린 나이에 명품을 휘감고 자랑하거나 많은 돈을 벌었다가 과시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사회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람들을 선동하는가 하면, 모든 것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이들도 있다.
알고 싶지 않은 데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배경에는 인터넷이 있다. 안 그래도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환경은, 포기와 좌절에서 나의 가능성과 희망을 망가뜨린 것들에 대한 분노로 변하기도 한다.
이십대의 아줌마는 기성세대들이 사회를 비판하는 소리를 낼 때면 ‘자기들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불평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 젊은이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젊은이로 살았던 아줌마가 기성세대가 되어 오십이 넘었지만 시대는 나의 젊은 시절보다 공정하고 바른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아줌마는 젊은 친구들에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100% 공정하고 바르지는 않더라도 비판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이들에 의해 한 뼘씩은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로 인해 변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 와중에 불공정과 비리로 가득한 사건들이 사회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것이 많다. 하지만 하나씩 밝혀지고 하나씩 수정해 나가면 어제보다는 나아지는 것이 아닌가?
현실에 대한 불확실성, 미래에 대한 불안도 그렇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다 그랬다. 확실하고 안정된 세대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젊음이란 그런 불확실성과 불안정으로 인해 엄청난 가능성과 마법을 가진 것이다. 그 시간을 버텨왔기에 그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언제나 남는다.
그러니 즐겨라, 버텨라, 기다려라!
그대들의 젊음이 숙성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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