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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오피니언 연재 손진은 시인의 詩間

몽돌3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38호 입력 2026/07/03 09:41 수정 2026/07/03 09:43

몽돌3

 

                              전종대

 

몽돌에겐 없는 게 많다

몽돌에겐 손도 없고 발도 없다

그러니 악수할 수도 없고 달아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몽돌에겐 털이 없다

털이 없으니 털을 곤두세울 일도 없다

몽돌에겐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은 더 더욱 없다

그러니 솔기도 없다 그러니 거추장도 없다

매끈매끈한 물살의 흔적 바람의 흔적

달빛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그리하여 몽돌에겐 무늬만 있다

둥근 가슴만 있다


닳고 닳은 것인지 아물고 아문 것인지

닳으면서 안을 채운 것인지

닳으면서 안을 다진 것인지

무게가 만만치 않다


몽돌은 입이 없으면서 말을 품고 있고

몽돌은 눈이 없으면서 달을 품고 산다

다행히 몽돌에겐 날개가 없다

그것이 그 중 제일 귀한 것이다

 

 


몽돌, 세속의 초월을 꿈꾸는 시인의 운명


 

손진은 시인확대
손진은 시인
가끔 바닷가에서 몽돌의 소리를 듣는다. 그건 물살과 바람과 달의 주기와 관련된 달빛이 작용하여 내는 소리다.

시인은 하나의 그 몽돌을 잡는다. 그리곤 인간성과 사물성, 주체성과 도구성 사이에 놓인 본성의 회복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것은 시인의 꿈과 사물의 꿈의 긴장 관계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초월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의 시는 ‘물/불’, ‘무거움/가벼움’, ‘슬픔/기쁨’ 등과 같은 정서의 대립을 통해 정신의 역동적 긴장을 탐구한다.

이 시 역시 마찬가지다. ‘있음’과 ‘없음’의 대립을 통해 보여주는 존재의 역설이다. 몽돌에겐 없는 게 너무 많다. 손도 발도 없으니, 악수할 수도 없다 하면서 은근히 “달아날 수도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비겁하지 않다는 말이다. 몽돌은 동물이 가진 장식 ‘털’이 없다. 내가 입은, 멋과 미를 덧칠하는 “옷은 더 더욱 없다”고 하지만, 타자의 시선은 물론, 꾸밈과 장식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자긍(“그러니 솔기도 없다 거추장도 없다”)은 있다.

오히려 우주와의 친화, 교감과 상호 접촉을 통해 자기 존재에 새기는 ‘무늬’와 자연과 세상을 포용하는 “둥근 가슴만”이 있는, 닳으면서도 “안을 채”우고 “다”지는 “무게 만만치 않”은 몽돌의 생!

결구로 갈수록 ‘없음의 역설’이 가장 빛난다. 침묵이 가장 깊은 말(“입이 없으면서 말을 품고 있고”)이며, 우주를 안고 사는 삶(“눈이 없으면서 달을 품고 산다”)이 소중하다는 걸 아는 몽돌, 가시적인 날개가 없기에 그게 진정한 초월이라는 역설로 시를 마감한다. 그 작은 몸집 안에 물살과 바람, 달빛을 품고 있는 몽돌, 바다와 하늘과 달빛의 둥굶을 가진 몽돌에겐, 역설적으로 날개가 없는 “그것이 제일 귀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몽돌’에서 ‘세속에의 초월’을 원하는 ‘시인의 운명’을 읽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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