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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어래산, 잊혀진 소년들의 귀향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38호 입력 2026/07/03 09:34 수정 2026/07/03 09:38
경주 학도병 이봉수 선배님을 생각하며

 

<사진=이금락 제공>확대
<사진=이금락 제공>
지금의 안강 들녘은 평화롭다.


가을이면 황금빛 벼가 넘실거리고,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웃으며 뛰어논다. 농기계가 오가는 들녘과 저녁마다 켜지는 마을의 불빛은 전쟁과는 너무나 먼 풍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1950년 8월, 이 평화로운 들판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한국전쟁 당시 안강·기계 일대는 낙동강 방어선 동부전선의 핵심 요충지였다. 북한군은 포항과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진격하기 위해 이 지역에 전투력을 집중했고, 국군은 이를 막아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 전쟁의 한복판에 경주의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열여섯, 열일곱의 소년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던 학생이었다. 아직 미래를 꿈꾸고 부모님의 품을 그리워해야 할 나이였지만, 나라가 위태로운 순간 그들은 교과서 대신 소총을 들었다.

최근 어래산 전적지에서 진행된 국군유해발굴 과정에서 경주중학교 배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흙 속에 묻혀 있던 작은 배지 하나.

75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디고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 배지는 단순한 금속 조각이 아니었다.

그 배지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것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교실에서 친구들과 웃고,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던 평범한 학생의 것이 아니었을까.

전쟁이 시작되자 학도병이 되어 어래산으로 향했던 한 소년의 흔적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있다.

그 배지의 주인은 나라가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 조국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쳤다는 것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어래산 전투에 참전했던 경주중학교 학도병 이봉수 선배님 역시 그곳에서 전사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75년이 흐른 뒤인 2025년, 국군유해발굴감식단의 노력으로 신원이 확인되어 마침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셨다.

소년이었던 한 학도병이 75년 만에 귀향한 것이다.

전쟁 기록에는 전투 결과와 작전 상황만 남는다.

그러나 그 기록 뒤에는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숨어 있다.

어래산에서 발견된 작은 경주중학교 배지는 우리에게 그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를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곳에 있었습니다.”

75년 만에 돌아온 소년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달려 있었던 작은 배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래산의 바람은 오늘도 불고 있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에는 1950년 여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던 경주 학도병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조용히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글 이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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