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파만파
김광협
남정네들이 낫을 간다.
낫이 무디어졌다고 슥삭슥삭
낫의 날을 세운다.
보리 한 단을 베어 넘기기 위해서
숫돌의 몇분지 몇푼을 축낸다.
뻐꾸기 소리와 꿩꿩장서방 소리가 와
낫의 날과 숫돌 사이에 와 먹는다.
낫의 날과 숫돌 사이에 파도소리가 와서 먹는다.
파도가 넘심넘실 넘실거린다.
낫의 날과 숫돌 사이에 파도가 인다.
보리밭에 파도는 천파만파로 들락퀸다.
에익, 파도를 넘자, 넘어서 가자.
남정네 한 평생 까짓, 파도쯤이야
시퍼렇게 날이 선 낫을 허리춤에 차고
이 세상 더러운 세상 까짓,
낫 한 자루, 그것이라도 휘두르며 넘어서 가자.
세상을 건너가는 낫 한 자루
그러나 낭만은 낭만일 뿐. 아무리 보기 좋은 보리라도 끝도 없이 우리 몸을 찌르는 까끄라기를 가지고 있어 더위 속에 보리를 베는 일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마침내 보리 베기가 시작되나 보다. “남정네들이 낫을” 갈기 시작한다. 숫돌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그 물이 시커멓게 될 때까지 낫을 벼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남정네들은 “보리 한 단을 베어 넘기기 위해서/숫돌의 몇분지 몇푼을 축”내 가며, 손톱을 낫날에 대어 제대로 벼려졌는가, 그 날이 잘 먹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마침내 날이 기가 막히게 잘 벼려져 모든 것을 먹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그에 따라 시인의 감각도 무르익는다. 시인은 “뻐꾸기 소리와 꿩꿩장서방 소리가 와/낫의 날과 숫돌 사이에 와 먹는다.”라고 미학적으로 승화된 표현으로 묘사한다. 촉각이 청각과 공감감적으로 작용하여 낫은 뻐꾸기, 꿩 소리, 심지어 다음 행에서는 “파도소리”마저 쓰윽, 베어넘길 정도라는 것이다. 문제는 빼어난 공감각에서 이 시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리 이랑 사이로 “천파만파로 들락”퀴는(‘날 듯이 껑충껑충 뛰는’) 파도소리는 우리 인생 모두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현실의 파도로 도약한다.
보리밭 사이로 일렁이는 그 아름다운 천파만파가, 우리네 심사에 엄청난 무게로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밀려오는 세파(世波)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네 삶엔 껑충껑충 뛰어 우리 어깨와 가슴을 짓누르며 놓아주지 않는 근심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특히 한 가정의 식솔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가장들에게 닥치는 파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시인은 “파도를 넘자, 넘어서 가자”고 우리에게 슬며시 권유한다. 천파만파로 닥쳐오는 “세상, 더러운 세상”을 겁내지 않기 위해서는 그 허리춤에 “시퍼렇게 날이 선 낫”, 즉 ‘벼린 마음’을 차는 게 필요하다. 시인은 특히 “에익, 파도를 넘자, 넘어서 가자./남정네 한 평생 까짓, 파도쯤이야” 등에서 “에익”, “까짓”이라는 부사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세파에 무릎 꿇지 않는 그 태도를 이끌어낸다.
보리가 한창 익어가는 시절에, 각 구절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힘을 가진 시편을 통해 팍팍한 오늘의 현실을 건너가는 용기와 예지를 발견해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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