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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오피니언 연재 박성철의 문화단상

불완전함이 빚은 완전함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32호 입력 2026/05/21 13:59 수정 2026/05/21 14:00


박성철 교수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확대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 이제 두 사람이 부른다. 포개진 소리는 더 큰 울림이 된다. 여러 사람들이 부르는 합창은 그래서 큰 하나의 소리다. 그런데 만약 같은 노래를 다르게 부르면 어떻게 될까? 노래는 소음으로 바뀌어버린다. 불협화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아주 살짝만 다르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와,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 경주 국립박물관 성덕대왕 신종이 내는 소리가 딱 그렇다. 오늘은 천년을 울려온 그 ‘아주 조금의 차이’를 알아보자.

 

유럽의 교회 종은 선율을 위해 설계되었다. 애초부터 말이다. 가령 영국의 캐링턴(carillon:편종), 네덜란드의 탑 종이나 독일의 대형 교회 종들은 여러 개를 한데 걸어 멜로디를 연주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단일 종 하나가 내는 소리는 명료하고 또렷해야 한다. 땡! 하고 치면 정확한 그 음정이 나와야 하고, 다음 종소리와 뒤섞이지 않게 빨리 사그라져야 한다. 완벽하게 조율된 단음(單音)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범종의 경우는 좀 다르다. 울림은 길고 깊어야 하지만 소리의 성격은 외려 단조롭고 고요하다. 마치 수면 위에 돌을 던졌을 때 파문이 점차 넓어지다가 잔잔해지는 것처럼 소리는 그저 일직선으로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이 고요한 쇠락을 일본 선(禪) 불교의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의 대표 종인 성덕대왕 신종은 좀 다르다. 소리가 단순히 커졌다 줄어드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것처럼 고동친다. 마치 종에 심장이 달려있는 것처럼 그르렁거린다. 다른 종과의 차이가 단순히 크기나 재질 문제가 아니다. 우리 종 안에는 물리학도 숨어있지만, 무엇보다 신라 장인들의 놀라운 설계 철학이 녹아있다.

박수 소리로 설명을 이어가 보자. 여기 A와 B 두 사람이 있다. A는 1초에 4번 박수를 치고, B는 5번 친다고 하자. 처음은 둘이 동시에 짝! 하고 시작하니까 소리가 겹쳐서 크게 들린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A가 짝! 할 때 B는 손을 벌린 상태인 경우다. 이때 두 소리는 정반대로 어긋나 서로를 상쇄한다. 소리가 가장 작아지는 순간이다. 또 짝! 하고 소리가 겹치면서 다시 커지는 과정이 1초에 한 번 반복된다. 이렇게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주기적인 파동을 맥놀이(beating)라고 한다. 두 소리의 주파수(쉽게 말해 진동수) 차이가 맥놀이의 빠르기를 결정한다. 앞에서처럼 초당 4번과 5번이면 차이가 1이면 맥놀이가 1초에 한 번 일어나고, 초당 4번과 7번이면 차이가 3이니까 맥놀이는 1초에 세 번 일어나는 식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맥놀이 주기는 몇 초에 달한다. 두 주요 진동수의 차이가 매우 작다는 의미다. 그 덕분에 마치 ‘느리게 고동치는’ 것처럼 들리는 거다. 흥미롭게도 그 리듬이 우리 심장박동과 비슷한 속도란다. 신종이 울면 공명이 된 듯 우리 가슴도 절절해지는 이유이다.

그럼 도대체 신라 장인들은 이 다른 진동수를 종 안에 어떻게 집어넣었을까? 보통 종을 치면 수십 개의 진동수가 동시에 발생한다. 이것을 배음(倍音)이라고 한다. 기본음의 2배, 3배로 진동수들이 함께 울리는 식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핵심은 이 배음들 중 특정한 두 개가 서로 ‘아주 조금만 다른’ 진동수를 갖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주파수가 같은 두 배음은 하나의 소리로 합쳐진다. 하지만 신라 장인들은 이 두 배음이 미묘하게 어긋나도록 설계를 해서 소리가 수십 초씩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느낌을 받게 만든 것이다.

이 맥놀이만으로 에밀레종의 신비를 다 설명한 것은 아니다. 종 내부의 불규칙한 표면이 또 다른 비밀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내부를 정밀 스캔했더니 표면이 놀라울 정도로 불규칙하더란다. 표면이 불규칙하면 소리가 여러 방향으로 난반사(亂反射)되며, 서로 다른 경로로 반사된 소리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만나고 섞인다. 그 과정에서 외국의 종소리처럼 심심하게 쇠감하지 않고 새로운 간섭 패턴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지속된다. 이 불규칙한 반사가 맥놀이와 결합이 되어서 성덕대왕 신종만의 살아있는 질감을 더하는 것이다. 그 옛날 우리 장인들은 청동을 주조하는 과정에서 이 불규칙성을 ‘의도적’으로 조율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이 발매한 정규 5집에는 국보 제29호 신종 소리를 그대로 담은 트랙이 수록되었다. 1분 37초 동안 진행되는 그 ‘불완전함이 만든 가장 완전한’ 여운을 한번 느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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