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회 종은 선율을 위해 설계되었다. 애초부터 말이다. 가령 영국의 캐링턴(carillon:편종), 네덜란드의 탑 종이나 독일의 대형 교회 종들은 여러 개를 한데 걸어 멜로디를 연주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단일 종 하나가 내는 소리는 명료하고 또렷해야 한다. 땡! 하고 치면 정확한 그 음정이 나와야 하고, 다음 종소리와 뒤섞이지 않게 빨리 사그라져야 한다. 완벽하게 조율된 단음(單音)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범종의 경우는 좀 다르다. 울림은 길고 깊어야 하지만 소리의 성격은 외려 단조롭고 고요하다. 마치 수면 위에 돌을 던졌을 때 파문이 점차 넓어지다가 잔잔해지는 것처럼 소리는 그저 일직선으로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이 고요한 쇠락을 일본 선(禪) 불교의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의 대표 종인 성덕대왕 신종은 좀 다르다. 소리가 단순히 커졌다 줄어드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것처럼 고동친다. 마치 종에 심장이 달려있는 것처럼 그르렁거린다. 다른 종과의 차이가 단순히 크기나 재질 문제가 아니다. 우리 종 안에는 물리학도 숨어있지만, 무엇보다 신라 장인들의 놀라운 설계 철학이 녹아있다.
박수 소리로 설명을 이어가 보자. 여기 A와 B 두 사람이 있다. A는 1초에 4번 박수를 치고, B는 5번 친다고 하자. 처음은 둘이 동시에 짝! 하고 시작하니까 소리가 겹쳐서 크게 들린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A가 짝! 할 때 B는 손을 벌린 상태인 경우다. 이때 두 소리는 정반대로 어긋나 서로를 상쇄한다. 소리가 가장 작아지는 순간이다. 또 짝! 하고 소리가 겹치면서 다시 커지는 과정이 1초에 한 번 반복된다. 이렇게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주기적인 파동을 맥놀이(beating)라고 한다. 두 소리의 주파수(쉽게 말해 진동수) 차이가 맥놀이의 빠르기를 결정한다. 앞에서처럼 초당 4번과 5번이면 차이가 1이면 맥놀이가 1초에 한 번 일어나고, 초당 4번과 7번이면 차이가 3이니까 맥놀이는 1초에 세 번 일어나는 식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맥놀이 주기는 몇 초에 달한다. 두 주요 진동수의 차이가 매우 작다는 의미다. 그 덕분에 마치 ‘느리게 고동치는’ 것처럼 들리는 거다. 흥미롭게도 그 리듬이 우리 심장박동과 비슷한 속도란다. 신종이 울면 공명이 된 듯 우리 가슴도 절절해지는 이유이다.
그럼 도대체 신라 장인들은 이 다른 진동수를 종 안에 어떻게 집어넣었을까? 보통 종을 치면 수십 개의 진동수가 동시에 발생한다. 이것을 배음(倍音)이라고 한다. 기본음의 2배, 3배로 진동수들이 함께 울리는 식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핵심은 이 배음들 중 특정한 두 개가 서로 ‘아주 조금만 다른’ 진동수를 갖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주파수가 같은 두 배음은 하나의 소리로 합쳐진다. 하지만 신라 장인들은 이 두 배음이 미묘하게 어긋나도록 설계를 해서 소리가 수십 초씩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느낌을 받게 만든 것이다.
이 맥놀이만으로 에밀레종의 신비를 다 설명한 것은 아니다. 종 내부의 불규칙한 표면이 또 다른 비밀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내부를 정밀 스캔했더니 표면이 놀라울 정도로 불규칙하더란다. 표면이 불규칙하면 소리가 여러 방향으로 난반사(亂反射)되며, 서로 다른 경로로 반사된 소리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만나고 섞인다. 그 과정에서 외국의 종소리처럼 심심하게 쇠감하지 않고 새로운 간섭 패턴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지속된다. 이 불규칙한 반사가 맥놀이와 결합이 되어서 성덕대왕 신종만의 살아있는 질감을 더하는 것이다. 그 옛날 우리 장인들은 청동을 주조하는 과정에서 이 불규칙성을 ‘의도적’으로 조율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이 발매한 정규 5집에는 국보 제29호 신종 소리를 그대로 담은 트랙이 수록되었다. 1분 37초 동안 진행되는 그 ‘불완전함이 만든 가장 완전한’ 여운을 한번 느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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