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학원 시절 한 교수가 강의 중에 ‘나는 좋은 교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안 좋은 교수들로부터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나의 경우는 어떠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초·중·고교를 거쳐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 긴 기간 동안 많은 선생님과 교수들을 접했다. 돌이켜 보면 필자도 그 미국 교수와 마찬가지로 좋은 선생님과 교수님으로부터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들을 배운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다른 한편, 좋지 않은 선생님과 교수님들로부터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한 분들이 나의 자존심을 긁어주셔서 승부욕을 가지게 되었음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 학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구슬치기, 딱지 따먹기, 삼치기[짤짤이], 화투, 탁구, 당구, 나중에는 테니스(지금도 친다) 등 놀기 바빴다. 들로 산으로 쏘다녔으며 만화와 갖가지 순정 소설(예를 들면,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시험 기간이 되면 벼락치기 공부에 면피성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하여 집과 학교에서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작란(作亂)이 심하고 불평불만이 많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5월 하순경 수업 시간에 ‘대학 진학’에 대해서 약간 언급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필자는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대학 진학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이 놀기만 하였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공부는 그해 여름방학 때부터 시작되어 어린 시절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한꺼번에 하려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결국, 재수와 삼수를 거쳐 1차는 낙방하고 천신만고 끝에 2차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면 완전히 개천에서 소위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로 만족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공자가 위의 말씀을 하실 때 반드시 학교 교육 만을 두고 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우리들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흔히 ‘세상은 울타리 없는 학교’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 주변에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부대끼면서 발생하는 일상생활 모두가 학습 대상이 될 수 있다.
성품과 인심이 좋고 인자한 사람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고 나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다른 한편, 모질고 인색하고 성미가 고약한 사람들을 보면 ‘최소한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실은 전자보다 후자가 영향력이 더 크다고 회자된다. 그런 측면에서 ‘반면교사’가 해롭고 ‘악의 축’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런 이들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을 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 다른 한편 여러 사람들에게 ‘저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본보기와 교훈을 준다는 차원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이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직장에서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어떤 사람들은 뒤에서 욕을 하면서 그것을 배워 써먹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용감(?)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체육 등 각 분야에서 반면교사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을 잘 모셔야 한다. ‘미운사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혹여 내가 그 떡을 받아먹는 사람이 아닐까 걱정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남들이 나를 보고 ‘저 사람처럼 되지는 말아야지’하는 교훈을 줄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돌아서서 씨-익 웃는 나 또한 누군가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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