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은 선거운동원의 율동이 유권자의 표심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 선거마다 30% 안팎을 유지하는 지역 내 정당 지지층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세금을 낭비하는 보여주기식 정치 대신 조용히 골목을 걸으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일반 유권자 시절 시의원 선거에 유세차를 동원하는 것에 강한 반대 입장을 가졌던 만큼, 후보가 됐다고 태세를 전환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행보였다. 출마 소식에 대화조차 거부했던 아내 역시 정직하게 발품을 파는 그의 합리적인 행보에 마음을 열고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었다.
타협하지 않는 강한 책임감은 김 의원이 살아온 삶의 궤적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대학에서 사진영상을 전공한 김 의원은 20대 중반 서울의 웨딩 촬영 전문 스튜디오로 이직했다. 당시 스튜디오에는 고가의 암실 장비가 있었지만 운용 능력을 가진 직원이 없어 방치된 실정이었다. 재학 시절 사진 인화 실기 능력을 인정받았던 김 의원은 이를 지나치지 않았다.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퇴근 시간을 늦춰가며 외부업체에 맡기던 흑백 인화를 자체 소화해 업체의 비용 절감을 도왔다. 배우러 간 서울 업체에서 오히려 가르쳐 준 게 더 많은 것 같다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가진 것을 타인에게 나누는 소탈하고 이타적 태도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1997년 29세의 나이로 사진관을 열었으나 직후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로 폐업을 겪었다. 생계의 무게 속에서도 현실에 주저앉지 않았다. 2010년 직업훈련소에 들어가 금속 가공 기술을 배웠고, 평소 관심이 많았던 발명과 특허를 위해 까다로운 3D 모델링 프로그램까지 독학으로 마스터했다. 김 의원은 “평범한 가장으로서 생업의 고단함을 겪어봤기에 일할 기회를 준 주민들의 선택이 얼마나 무겁고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러한 책임감은 정당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2022년 민주당 지역위원회는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0석, 비례대표 1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두며 당 조직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엄중한 시기를 맞았다. 김 의원은 사무국장 직을 제안받고 역량 부족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맡길 사람이 없다는 말에 결국 수락했다. 생업과 병행해서는 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기형적으로 기울어진 정치 지형을 바로잡는 일에 매진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동료들이 뛸 수 있도록 무대를 세팅해 준 헌신은 의회 안에서 화합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의회에 임하는 김 의원의 각오는 거창한 공약보다 시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선거 기간 내내 수백억원대의 대규모 토목 공약을 남발하는 관행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의원은 다리를 놓고 도로를 까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며, 거창한 사업은 집행부가 예산과 장기 계획에 맞춰 진행할 일이라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이를 자신의 성과로 포장하는 것은 유권자 기만이라고 짚었다. 시의원의 본분은 예산을 살피고 행정 사각지대를 감시해 혈세 낭비를 차단하며, 주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을 해소할 조례를 세밀하게 설계하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나아가 지역구인 외동읍과 불국동의 현실적인 변화를 구상했다. 외동읍은 전체 주민 수와 비슷한 노동인구가 관내 산업현장에서 근무하지만, 이 중 절반은 타 지역에서 통근한다. 외동읍에 주거환경을 확장하고 문화·복지 시설을 갖춰 정주 여건을 향상해야 인구 유입을 유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청년과 노동자가 정착할 수 있는 주거 기반을 확대하고 아이 키우기 좋은 생활 환경을 조성해 인구 25만 선을 회복하는 중심축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불국동 등 농촌 지역 역시 농업을 식량안보이자 미래를 지키는 일로 규정하고, 농업인이 자부심을 품고 일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과 안정적인 영농 환경 조성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김 의원은 “정치는 시민의 삶을 지키는 일”이라며 “더 낮은 자세로 듣고 치열하게 뛰며 약속한 일을 포기하지 않고, 말보다 성과로 보답하는 참된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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