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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기록자에서 세계 무대로, 사진가 김지용의 두 번째 프레임

오선아 기자 suna7024@hanmail.net 1744호 입력 2026/08/27 10:34 수정 2026/08/27 10:39
IPA 출품과 인센스 연작으로 건네는 작가적 출사표

김지용 사진작가. <사진=김지용 제공>확대
김지용 사진작가. <사진=김지용 제공>
어두운 작업실 한구석, 가느다랗게 피어오른 향 연기가 빔프로젝터의 서늘한 빛을 가르며 허공에 흩어진다. 16년 넘게 무대 위 결정적 순간을 쫓아온 사진가 김지용의 시선이 요즘은 고요한 작업실, 공중으로 흩어지는 연기 위에 머물러 있다.

익숙한 카메라를 쥔 손끝에 오랜 시간 묵혀둔 갈증과 팽팽한 긴장감이 동시에 감돈다.

 


셔터 뒤의 밥벌이,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갈증


김지용 사진가의 카메라는 굽이진 길을 돌아 다시 현장에 섰다. 대학 사진과를 졸업한 뒤의 삶은 거칠었다. 두 차례의 스튜디오 개업과 인테리어 시공 현장, 경주의 바와 여의도 지하 75평 대형 호프집 운영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사업 실패와 방황이 이어졌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카메라를 쥐고 2010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든 곳이 바로 찰나의 빛과 호흡이 교차하는 공연 예술 현장이었다.

“처음엔 그저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시작했죠. 그런데 감당하기 힘든 번쩍거리는 무대 조명, 그 역동적인 호흡을 맞추다 보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장비도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16년을 버텼습니다.”

어느덧 경주문화재단과 대형 축제, 오페라와 연극 무대의 공식 기록을 도맡는 베테랑이 됐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수십만장의 컷 속에서 무대 위 주인공들은 찬란히 빛났으나, 그 프레임을 만든 기록자의 이름은 늘 제공이라는 두 글자 뒤로 숨겨지기 일쑤였다.

“미술을 전공한 첫째 형님이 술 한잔할 때마다 그래요. ‘너 언제까지 남의 공연 행사만 찍을래? 네 작품 만들어야지.’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면서도 늘 자극이 됐어요. 나이 들면서 언제까지 이 무거운 장비를 메고 현장을 뛸 수 있을까, 내 생각과 정신을 담은 진짜 내 작업을 해야 한다는 갈증이 끝없이 올라왔죠.”


좁은 문을 넘어 100개국이 격돌하는 세계의 눈(IPA)으로


소재와 판로를 찾아 헤매던 그는 시선을 과감히 국경 밖으로 돌렸다. 풍경이나 관광 사진 위주로 편중된 국내 공모전의 좁은 틀이나 지역 예술계의 카르텔 안에서는 찰나의 무대 에너지를 포착하는 자신의 작업이 온전히 평가받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그가 선택한 곳은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사진 공모전 중 하나인 ‘인터내셔널 포토그래피 어워즈’였다. 매년 전 세계 100개국에서 1만4000점 이상의 작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글로벌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파인아트, 이벤트, 에디토리얼 등 현대 사진예술 전반을 엄격하게 평가하는 무대다.

“국내에는 공연이나 인물, 무대 예술을 독립된 카테고리로 깊이 있게 봐주는 공모전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IPA에는 이벤트와 무대 예술의 찰나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있더군요. 최근 오페라 축제 포스터로 선정된 강렬한 무대 컷을 비롯해, 현장의 제약과 초상권의 한계를 뚫고 건져 올린 작품들을 추려 출품했습니다. 인맥이나 연줄이 아닌,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시선 앞에서 제 사진의 위치를 제대로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IPA 연감 수록과 ‘베스트 오브 쇼’ 국제 순회 전시라는 높은 벽을 향해 던진 도전장은 그에게 있어 수상이 목적이 아닌 16년 기록 노동에 대한 스스로의 증명이자 작가적 출사표였다. 그리고 현재 본선 심사 대상인 공식 선정작 목록에 이름이 올려져 있다.


Soul Line (魂線), 2026, Digital Image, 5168×6460 px. <사진=김지용 제공>확대
Soul Line (魂線), 2026, Digital Image, 5168×6460 px. <사진=김지용 제공>


흩어지는 향 연기 속에서 마주한 ‘연기(緣起)’


무대 사진으로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동시에, 그는 작업실 안쪽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준비 중이다. 어느 날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스님이 피워 올린 향 연기’에 매료된 이후 시작된 ‘인센스 프로젝트’다.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구름처럼 매 순간 모양이 다르고,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그 찰나의 흐름이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무엇보다 인센스 연기를 이처럼 정밀하고 실험적인 조형 언어로 다루는 작가가 국내외에 거의 없다는 점도 승부욕을 자극했습니다.”

Ashes Remember, 2026, Digital Image, 2639×3958 px. <사진=김지용 제공>확대
Ashes Remember, 2026, Digital Image, 2639×3958 px. <사진=김지용 제공>
천주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늘 불교적 사유와 윤회(輪廻)에 대한 물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생전 전국 각지의 스님들과 수많은 환자의 척추를 손으로 교정해주며 만년을 보냈던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셨어요. 저 역시 허공으로 사라지는 연기(煙氣)를 찍으며 불교의 연기(緣起)와 생의 순환, 환생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에어컨조차 틀지 못하는 밀폐된 스튜디오에서 빔프로젝터를 쏘고 배경을 바꿔가며 수없이 테스트 컷을 누르고 있는 그다.

“내년쯤에는 정리된 개인전으로 이 작업들을 세상에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제 막 작가로서 첫 발을 뗀 셈이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제 결대로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무대 위의 격렬한 순간을 쫓던 16년의 시선이 이제 작업실의 고요한 연기 속으로 향한다. 남의 찰나를 기록하던 카메라가 비로소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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