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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장석영의 「김씨 삼효자 망천비명」을 번역하며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37호 입력 2026/06/25 11:29 수정 2026/06/25 11:30

 

오상욱 시민전문기자경북고전번역연구원원장확대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원장
삼효각(三孝閣)은 월성김씨 노파(鷺坡) 김응벽(金應璧), 남고(南皐) 김응규(金應奎,1526~1601), 인의(引儀) 김응정(金應井) 삼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61년 명종년간에 세운 정려각이다. 앞서 필자는 2022년 12월에 [경주김씨 효자 삼효각이야기]로 소개한 바 있다. 삼형제는 부친 김신종(金信宗), 의성김씨 모친에게서 태어났다. 부친상을 당해 삼년 간 시묘하고, 상복을 벗은 후 1565년경에 내남면 화곡리 어연동에 어연정(魚淵亭)을 지었다. 어연동은 숭혜전 남쪽으로 화곡지가 내려다보이는 성부산 북쪽으로 자리잡은 마을로 김씨 세거지이다.

효자의 시묘살이와 위험에서 삼형제를 구한 부친의 이야기기는 인구에 회자된다. 특히 똑똑한 ‘신춘(神春)’ 명견의 이야기는 신기함을 더하고, 토종견 동경이 계통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삼형제 맏이의 배필은 선산김씨로 자식이 없었고, 묘는 오래되어 전하지 않는다. 둘째의 배필은 오천정씨로 세 아들을 두었고 김경두(金景斗)는 현감, 김형두(金亨斗)는 봉사(奉事), 김건두(金建斗)는 정자(正字)가 되었다. 묘는 어연동 왼편에 있다. 막내의 배필은 의성김씨로 아들 광두(光斗)를 두었고 주부(主簿)가 되었다. 묘는 둘째의 오른편에 있다.

둘째와 막내의 후손들이 어연정을 중수하였으나, 맏이의 대가 끊어진 것을 차마 잊지 못하고, 봄가을로 성묘하면서 퇴계의 합제재사(合祭齋舍) 가르침을 본받아 정자 안에서 세 공을 함께 제사 지냈다. 이는 선조의 아름다운 행적이 오래되어 사라질까 염려하여 정자 앞에 비를 세우고, 묘역을 바라보는 표석으로 삼아 그 효행을 뚜렷이 새겼으니, 참으로 효자의 후손다운 일이라 하겠다.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1851~1926)은 삼효자의 행적과 효행을 기리는 망천비(望阡碑)를 지었고, 1966년에 후손 김협(金鋏)이 「어연정중건기」를 지었다.


김씨 삼효자 망천비명 병서 – 회당 장석영


학성(鶴城:울산)의 수재 김증술(金曾述)이 나[장석영]를 찾아와 그의 선조 묘역 앞에 세울 비문을 청하고, 또 선조의 행적은 이미 「선정기(先亭記)」에 자세히 실려 있다고 말하였다. 내가 그것을 보니, 곧 나의 벗 기암(起巖) 이중업(李中業,1863~1921)이 지은 글이었고, 그 글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므로 믿을 만하였다.

조선 정릉(靖陵:중종) 때 월성김씨 삼형제가 있었으니, 맏이는 김응벽, 둘째는 김응규, 막내는 김응정으로, 부모 섬김에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다. 부친상을 당하자 세 형제는 함께 무덤 곁 여막(廬幕)에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올리고 음식을 바치며 슬피 곡을 멈추지 않았다. 무덤 앞에 꿇어앉아 곡하며 무릎이 닿은 곳이 몇 치나 패일 정도였다.

집에는 ‘신춘’이라는 개가 있었는데, 여막 곁에 와서 지켰다. 사람들이 턱짓으로 시키며 집에 보낼 편지를 그 목에 달아주면, 개가 가서 편지를 전하였고, 집안사람 또한 글이 있으면 그렇게 하였다.

어느 날 천둥 번개와 큰비가 몰아치고 밤이 깊어 바람까지 몹시 불었는데, 부친께서 밖에서 급히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사람은 없었다. 잠시 뒤 또 아까처럼 소리가 나니, 이상하게 여겨 부친의 신주(神主)를 안고 여막 밖으로 나왔는데, 겨우 여막 밖으로 나오자마자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 여막이 모두 휩쓸려 가버렸다.

상을 마친 뒤에도 아침저녁으로 사당에 참배하며 평생토록 부모를 사모하였고, 선영 가까이에 어연정을 짓고 형제는 평생을 함께 살았다. 그 일들이 조정에 알려지자 임금이 그 효행을 가상히 여겨 정문(旌門)을 내렸다. 맏이는 참봉, 둘째와 막내는 인의 벼슬을 받았으니. 이 일은 『동경지』에 실려 있다.

군자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아, 『주역』에 ‘마음이 신실(信實)하면 돼지나 물고기 같은 감수성이 무딘 것이라도 이를 느껴 안다(信及豚魚)’, 『서경』에 ‘지극한 정성이 신명을 감동시킨다(至誠感神)’”라고 하였으니, 이는 바로 효자를 두고 한 말이다.

효성이 감응을 일으키는 것은 예로부터 모두 그러하였으나, 거짓된 겉모습이나 꾸민 정성으로 억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늘에 뿌리박은 참된 성심이 있어야 비로소 하늘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것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일찍이 글로써 여러 사람의 효행을 드러낸 적이 많았으나, 숨 한 번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에 돌아가신 부모의 혼령이 나타나 목숨을 구해준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다. 또 짐승인 개가 아무 지각도 없으면서 일을 알아듣고 사람의 부림을 받아 편지를 전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하였다. 아!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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