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오세영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님’의 체취와 말씀에 길을 잃고 아득해지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길에 대한 의미의 진술과 변주로 이루어진다.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이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내겐 길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숲 속에서”, “들녘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그것을 시인은 “님의 체취에/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이고, “님의 말씀에/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 현상에서 님의 체취와 님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면서 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렇다. 우주적 섭리로 바라보면 삼라만상의 향기와 소리에는 절대자로 표상되는 님의 체취와 말씀이, 그리고 ‘님’이 만든 길이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왕성한 향기와 소리 속에서 너무 취한 나머지 우리는 길이 부재하고 잃기도 한다.
길 없음은 유월이 주는 계절의 축복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때로는 밤꽃으로, 때로는 개구리 울음으로 맡고 듣는 님의 체취와 말씀에 정신은 아득해지고 황홀해진다. 더욱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하니 “눈먼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대체 방향을 잡을 수 없을 정도다. 여기서 길을 잃는 것은 차라리 하나의 경이다.
“타오르는 불길”로, 심지어 “숨막힐 듯 푸는 연기마저” 내는 무성한 숲과 들, 흐르는 강물과 바람이 서로 자기에게 오라고, 오감을 자극하는 유월의 속살을 이렇게 황홀하게 노래하는 드문 유월 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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