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북면 맑은 공기를 품은 산밑자락에 자리한 원예 전문 브랜드 거목산업사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생명의 토대를 만드는 곳이다. 1997년 창립 이래 최고급 분갈이흙부터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소포장 원예 자재, 프리미엄 비료, 그리고 수제 테라코타 토분까지 아우르며 전국 홈가드닝 시장과 도매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이곳의 수장 유미경 대표. 사양길에 접어든 작은 가업을 이어받아 연 매출 수십억원의 탄탄한 제조 기업으로 일궈내기까지, 흙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묵묵히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 온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저물어가는 가업의 위기, 부부의 굳은 결의로 맨땅에서 다시 서다
유미경 대표가 흙과 뒹구는 원예 자재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10년 무렵이다. 당시 거목산업사는 서양란 식재용 소나무 껍질(바크)을 가공하던 시아버지의 작은 사업체였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부부가 공장을 이어받았을 무렵, 서양란 시장은 급격히 축소되며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던 부부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당신이랑 나랑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하면 분명 길은 열릴 거다. 우리 한번 치열하게 해보자”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세 아들의 엄마로서 갓난아이를 업고 밤낮없이 현장을 누벼야 했던 고단한 나날이었지만,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든든한 육아 지원 덕분에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부부는 기존의 바크 생산 비중을 줄이는 대신, 대중적인 일반 식물용 최고급 흙 제조로 사업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식물의 몸살과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완벽한 비율의 흙을 개발해 냈지만, 보수적인 오프라인 도매상들은 신생 업체의 흙을 선뜻 받아주지 않고 거부하기 일쑤였다.
거절을 딛고 개척한 온라인 시장, 타협 없는 ‘염도 관리’로 입소문을 타다
오프라인 시장의 냉대 앞에서도 유 대표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가 돌파구로 선택한 것은 당시만 해도 원예 업계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온라인 시장이었다. 2012년 무렵 독학으로 더듬더듬 홈페이지를 만들고 상세 페이지를 직접 제작했다.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그녀의 온라인 판매는 입소문을 타고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일반 사람들은 흙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식물이 자라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원재료인 코코피트의 염도(염분)입니다. 염도가 높은 저렴한 원료를 쓰면 결국 식물이 죽게 되죠. 원가가 훨씬 비싸더라도 저희는 염도가 완벽히 조절된 최상급 원료만 고집했습니다. 최근 ESG 환경 문제 이슈로 원재료 값이 폭등해 어려움을 겪는 공장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저희는 결코 이 품질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유 대표의 깐깐한 품질 고집은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봤다. 한 번 거목산업사의 흙을 써본 사람들은 식물의 확연히 다른 성장 속도와 생명력을 경험하고는 무조건 다시 이곳의 흙을 찾았다. 온라인 시장에서 거목산업사가 15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탄탄한 브랜드로 자리 잡자, 처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오프라인 도매상들과 모던하우스,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망들이 오히려 앞다투어 물건을 납품해 달라고 먼저 요청해 왔다.
소통의 진정성을 깨닫고, 위기를 프리미엄 비료 생산으로 돌파하다
한때 회사를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화려한 방송 홍보나 광고에 눈을 돌리기도 했지만, 단발성의 홍보는 기대만큼의 큰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를 통해 그녀는 “식물은 살아있고 성장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생명체인 만큼, 일회성 노출보다는 블로그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흙의 가치와 올바른 식물 관리법을 진정성 있게 꾸준히 소통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라는 단단한 경영 철학을 얻게 되었다.
그녀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은 최근의 극심한 불경기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원예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거래하던 하위 화훼 농가들이 문을 닫으며 위기가 찾아왔지만, 부부는 발 빠르게 대기업과 손잡고 원예용 프리미엄 비료생산 라인을 대폭 증설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식물이 있는 한 비료의 수요는 꾸준하다는 점을 간파해, 하락하는 시장의 위기를 오히려 대규모 물량을 소화하는 안정적인 성장의 기회로 완벽하게 뒤집어버린 것이다.
“화려한 꽃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생명의 밑거름입니다”
유 대표가 흙을 다루며 가장 큰 긍지와 벅찬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경주시에서 열린 ‘황금정원 나들이’ 행사에 자사 흙을 전폭적으로 협찬했을 때다.
“막상 행사장인 천마총 근처에 가보니 화려한 꽃과 조경만 보일 뿐, 저희가 정성껏 만든 흙은 전부 덮여서 눈에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처음엔 내 제품이 안 보여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내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저 화려한 생명들이 흔들림 없이 피어날 수 있는 건, 결국 우리 흙이 가장 밑바닥에서 단단하게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거목(巨木), 즉 ‘큰 나무’라는 회사 이름처럼, 그녀는 화려한 꽃이 되기보다는 식물과 사람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자처한다.
창업을 꿈꾸며 주저하는 젊은 후배들을 향해 유 대표는 “어떤 일이든 시작을 결심했다면 끈기를 갖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 필요합니다. 사양길에 접어든 낡은 공장에서 시작한 저희도 서로를 믿고 버텨낸 진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묵묵히 견뎌내면 반드시 단단하게 성장하는 순간이 옵니다.”
사시사철 푸른 산의 기운을 받으며, 유미경 대표는 오늘도 포대 자루 사이에서 가장 따뜻하고 생명력 넘치는 ‘착한 흙’을 빚어내고 있다. 화려함 뒤에 철저히 가려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묵묵히 키워내는 그녀의 우직한 땀방울이, 앞으로 만들어갈 거창하고도 푸른 거목의 숲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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