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강가에서
고은
하늘 아래서 강은 하늘을 낳는다
여름 강가에 나가
물푸레나무 손풍금 소리를 듣는다
강은 저 홀로 깊어지지 않는다
항상 저 홀로 있으나 누가 그리워하게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여기까지 온 빛과 소리
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길이다
저마다 한 굽이 한 굽이의 귀의歸依로서
얼마나 눈부신 잠이 되는가
이윽고 잠의 잔치인 강가에
여름의 기나긴 아름다움이여 소년이여 소녀들이여
그대들의 둘레를 거룩한 해으름 쌓이는 것은
그대들의 童貞의 타는 금빛이 강물에 실려 떠나기 때문이다
여름 강물이 이렇게 흐르듯이
이 세상 소년의 역사도 그렇게 흐를 수 있다면
이 강을 건너간 나그네들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
이 세상의 노을은 그대들의 것이며
밤이면 밤마다 새로운 별을 비춰주는 이 있으리라
하늘 아래서 강은 하늘을 낳는다
소년이여 소녀들이여 그대들의 손풍금 소리
이 강은 公的으로 깊고 강 건너 그대들의 마을이
밤의 부유富裕 여름밤 하늘의 잔치로 드넓어지리라.
‘강’의 아름다움과 ‘밤’의 부유(富裕)를 접하는 젊음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은 ‘강’이며,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영원한 흐름의 형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여름밤의 강물을 바라보며 시인은 자신의 느낌을 시로 표현한다. 그런데, 그런 강이 그곳 제주에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시인은 없는 강을 상상하여 썼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강이 눈앞의 강만이 아니라, “그대들의 童貞의 타는 금빛이 강물에 실려 떠나기 때문”이라는 표현에 이어, “이 세상 소년의 역사도 그렇게 흐를 수 있다”는 구절에서 보이듯 소년 소녀들의 삶의 매개물로서의 강이라고.
“하늘 아래서 강은 하늘을 낳는다”는 반복이 있는 이 시에서 시인은 아마 고등공민학교의 소년 소녀들의 삶이 빛나는 강을 이루어 마침내 “하늘을 낳”는 경지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소년 소녀의 삶은 자연과 친화를 이룬다. 그래서 초반부의 “물푸레나무 손풍금 소리”는 후반부에서는 “그대들의 손풍금 소리”로 달라지고 있으며, 마침내 “그대들의 마을이/밤의 부유富裕 여름밤 하늘의 잔치로 드넓어지리라.”고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삶은 메말라 있어서는 안 된다. 강물은 다른 나라에서 이 세상으로 밝은 ‘빛’과 아름다운 ‘소리’를 전달하여주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시인은 그래서 “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길이다”이라 하고 “저마다 한 굽이 한 굽이의 귀의歸依로서/얼마나 눈부신 잠이 되는가”고 말한다. 이는 그들이 절대자에게 순종하는 종교적 귀의의 모습이면서, 자기 생의 눈부신 흐름으로 스스로 강이 되고 ‘밤’의 부유(富裕)를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고은은 『해변(海邊)의 운문집(韻文集)』(1964)과 『濟州歌集』(1967)을 냄으로써 제주 시절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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