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
송시올
저 스스로 빈 꽃병 속에
하늘을 마주하는 우주를 꽂아 놓았다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좌르르
삼백예순 두 개의 돌로 나이테 굴리며
천상의 은핫물 사다리 타고 걸어오는 별들
숲을 떠밀던 새들의 지저귐으로
구름의 언저리를 떠돌던 바람 소리로
지구의 옆구리에서 빛나는 행성들처럼
저 홀로 은하 건너 안드로메다까지
남동으로 네모난 창 하나 걸어두고
은핫물 맑게 부셔 바라보고 싶은 듯
아득히 돌아오지 않는 별들을 기다린다
초승달 반을 채워 보름 지나 그믐으로 돌아
둥근 지구를 반 바퀴 돌아가는 달에게
자잘한 꽃씨도 뿌려보고 싶은데
일 년 열두 달 남은 이십사 절기의 길흉을
오롯이 하늘의 천川이라고
한 개의 물병이라고
수많은 별꽃 오들오들 피어있다
첨성대, 돌아오지 않는 별을 기다리는 ‘빈 꽃병’
시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이 현실과 결부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쉬이 발견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존재를 들썩이게 하는 감각이라면, 송시올 시인의 시는 그런 감각의 심부를 건드리고 있다. 이런 감각은 이번에 낸 시집 『구름 세탁소』에서 적잖게 눈에 뜨인다. 특히 유적을 노래할 때 더욱 활달하고 웅대한 스케일이 되는데, 그러면서서도 시인은 여전히 현실 인식을 잃지 않는다.
‘첨성대(瞻星臺)’는 문자 그대로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라는 뜻인데, 시인은 “이십사 절기의 길흉을” 점쳤던 이곳을 서두에서 “빈 꽃병”으로 은유하며 “하늘을 마주하는 우주를 꽂아 놓았다”고 하여 작은 사물 하나가 우주, 천체와 통하는 지점을 열어놓는다. 더더욱 서두에서 ‘우주’를 꽂아두었던 이 ‘꽃병’이 결미에서 “오들오들 피어있”는 ‘별꽃’을 꽃아놓은 ‘물병’으로 바뀌는 지점은 감각적으로 서늘한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한다.
첨성대의 은유는 꽃병과 물병 이외에도, 나무(“뿌리에서 우듬지까지”, “나이테 굴리며”), 행성(“지구의 옆구리에서 빛나는 행성”), 하늘의 내(“천상의 은핫물 사다리 타고 걸어오는 별들”, “오롯이 하늘의 천川이라고”)로까지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입체적 감각을 열어놓는다. 단숨에 근원으로 직핍하는 이런 상상력은 존재의 실존적인 층위에서 자연 만물과 우주가 하나로 화융(和融)함은 물론 대자연의 영원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의지에서 말미암는다.
그러나 이 시가 더 나아가는 지점은 싱그러운 상상력과 함께 그 반대편, 오늘의 생태문제까지 열어놓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별을 관찰했던 신라의 관리는, 수많은 별들이 말곳말곳 숨쉬고 있는 밤하늘, 그 때 별똥별 하나가 떨어져 푸른 금을 그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온몸이 전율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온갖 오염으로 흐려진 하늘에는 그 맑은 별들 보기가 쉽지 않다. 시인은 이제 “남동으로 네모난 창 하나 걸어두고/은핫물 맑게 부셔 바라보고” 싶은데, “아득히 돌아오지 않는 별들을 기다”리는 암담한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다.
“둥근 지구를 반 바퀴 돌아가는 달에게/자잘한 꽃씨도 뿌려보고 싶은” 시인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우주 자연과 사물, 그 공간의 축소와 확장이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미학적 구조와 함께, 현실 인식의 균형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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